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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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재는 음악, 주제는 쓸쓸함. 다섯 편의 이야기가 '우습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펼쳐지고 있는데 전혀 우습지 않다. 웃음을 지을 만큼 여유를 느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애잔하고 애처롭다. 우리가 사는 모습을 한 겹만 들추고 들여다보면 다 이럴까?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화려했고 아무리 빛났던 삶이라 해도, 그 한 꺼풀만 벗기면 드러나는 지극히 쓸쓸하고 허무한 생. 그래서 우리에게는 음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 때 바로 음악이 있어서, 녹턴 같은 음악이 있어서 한 번씩 쓰다듬어 주어야 할 테니.   


한 사람의 작품을 연달아 읽게 되면 질리거나 지루해지거나 지치기 쉽다. 비슷한 분위기나 비슷한 인물들이나 비슷한 배경에 각각의 이야기들이 구별이 안 되면서 잠시라도 벗어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아직은 아니다, 이 책이 세 권째 연달아 읽는 이 작가의 책인데 여전히 좋다는 느낌이다. 어느 새 익숙해진 문체(번역이 좋은 덕분일까?)도 좋고, 자신 없는 듯 망설이는 듯 서술하는 표현도 마음에 들고, 같은 듯 보이면서 다른 삶의 양식도 다채롭고. 다른 일 안 하고 소설만 내리 읽는 중독 상태였으면 싶을 정도다.(이미 사 놓은 이 작가의 작품은 11월 19일까지 다 읽고 리뷰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Yes24로부터 행운상을 받는 행운이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단편이다. 장편에 비해서는 아쉽다. 순전히 더 길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긴박감이 거의 없는 소설을 이렇게 긴장하며(언제 어떻게 끝나려고 하나 하면서) 읽어 나가기도 쉽지 않을 텐데. 2017년 내가 만난 고마운 작가로 기록해 둔다.  (y에서 옮김201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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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리커버)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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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우리 소설을 좀 읽어 보겠다는 각오로 택한 책. 이 책은 내 취향에서 벗어난 듯 싶다. 많은 독자들의 호평에도 나는 그다지 몰입을 하지 못했다. 무엇이 나를 떨떠름하게 했던 것일까. 


내게 소설은 첫 페이지를 읽고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 거의 결정이 된다. 찬찬히 성의를 다해 읽게 될까, 대충 생략해 가며 읽게 될까. 세상에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으니 꼭 읽지 않아도 된다면 그런 책은 굳이 다 읽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우리 소설의 경우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지 하는데,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책 읽는 재미는 떨어지고 만다.


이 소설, 문장의 호흡이 길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 문장이 길다고 해서 내가 싫다고 느끼는 건 아닐 텐데, 문장의 마침표를 찾아야 할 만큼 길구나 하고 확인하다 보니 나는 이미 소설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어 등장하면서 마음을 보여 주는 상수와 경애. 작가는 우리 시대에 고단한 몸과 어지러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젊은이의 모습을 둘의 이야기로 번갈아 보여 준다. 둘은 만난 듯 만나지 않은 채 같은 시간 안에서 살아가다가 마침내 만나기도 한다. 만남이라고 하기 어려운 만남을 거치면서. 


상수도 경애도 고단한 삶의 주인공이라 안타까운 느낌은 가졌으나 끝내 애착은 생기지 않았다. 장편소설에서 내 마음에 드는 인물을 만나지 못하면 읽기 힘든데, 나는 왜 상수에게도 경애에게도 끌리지 않을까.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인데, 나쁜 사람도 아니고. 답답해서 그런가? 


이렇게 겨우겨우 읽었다. 읽지 않았다면 내내 궁금하게 여겼을 것이다. (y에서 옮김2019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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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行 야간열차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4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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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입한 시집이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읽은 시집이었는데, 모처럼 긴 시간 여유잡고 넘겼다가 다시 돌려 넘겼다가 하며 읽었는데, 예전의 어떤 것처럼 몇 편 혹은 몇 줄은 옮겨 적고 싶어 볼펜과 노트도 옆에 두며 읽었는데. 


작가가 바뀌진 않았을 것이고, 내가 바뀐 것인가? 공감대가 이렇게 떨어져서야 스르르 미안해졌다. 작가는 홀로 이 세상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음에 반해 나는 가족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데서 오는 차이일까? 그녀의 고양이도 예전의 그 고양이가 아니고 그녀의 권태도 내가 예전에 함께 누린 그 권태가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영락없이 생활에 찌든 아줌마가 된 탓인가 싶다. 


홀로 이 겨울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 더러 쓸쓸하고 외롭지만 그만큼의 고독을 즐기고 계시는 분들, 적당히 세상을 비웃을 줄 알고 적당히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아는 분들, 따뜻하고 풍성한 꿈 따위 조금 멀리 내던져 놓고 시린 세상에 시달리면서도 오늘을 버티는 일에 삶의 가치를 담으시는 분들께, 이 시집이 위로가 되어 드리기를. 


추위에 젖어 있으면서도 메마른 느낌을 주는 시들을 보고 잠깐이나마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y에서 옮김200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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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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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한 편도 섭섭하다는 느낌 없이 잘 읽었다.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작가이고 이 작가의 글을 읽은 적도 있었는데 이번만큼 호감을 가진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막 너무 좋다 여기까지 이른 것은 아니고. 이대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정도? 이 작가의 책읽기는 이제 시작이군 하는 마음으로.

소설가들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 누구에게 들어 본 말인지 혼자 떠올려 본 말인지 모르겠다. 상관없다. 사건과 인물과 주제를 다루고 있는 모습에 따라 나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세 시제를 두로 잘 쓰는 사람도 있을 테고 특별히 한 영역에 대해 탁월하게 잘 쓰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읽는 쪽에서도 이 점에 유의해 보면 달리 보이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작가의 이번 책은 미래가 주인공인 모양이다. 책 제목으로 잡은 것에서부터 알아챌 수 있겠다. 나는 책의 제목이 된 작품보다는 '인간의 쓸모'에 더 끌렸다. 우리네 인간은, 아니 작품 속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 '사람'은 정녕 지구 미래에 쓸모가 있는 존재일까. 미래를 밝게 그리는 쪽과 어둡게 그리는 쪽도 가치관을 나타내는 하나의 취향이라고 하더니.

작가가 그리는 미래는 대체로 밝지 않다고 읽었다. 그렇다고 아주 어두운가. 또 마냥 그렇지도 않았다. 바람이 깃든 때문이겠지. 어둡지만, 어두워 보이지만 밝았으면, 밝게 만들어 나갔으면, 밝아 주기를,... 과 같은 소망을 가진 작가로서. 그래서 내가 이 작가의 글에 마음이 열린 것일 수도. 예전 독서에서는 찾아 내지 못했던 빛살 같은 것들 덕분에.

사람이 사람을 창조하는 일의 가치와 사명을 생각한다.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러워진다. 대상이 무엇이든 창조되어 존재하고 나서부터는 세상이 전과 달라진 것이 된다. 하물며 우리네 사람이라면 더더욱. 신비한 세상에 신비하게 머물러 있다가 떠났으면 한다. 작가가 내가 준 선물처럼.(y에서 옮김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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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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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는 다르다.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자주 잊는다.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다른데도, 다른 점이 아주 많은데도 가끔 만나는 같은 점에 눌려 또 잊는다. 우리가 다르다는 것, 이것만 잘 기억해도 많은 오해와 갈등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는데. 내가 생각하는 바와 네가 생각하는 바가 같지 않다는 것, 같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각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소설은 참 재미있게 읽었다. 마지막 편에서는 책장 넘어가는 게 아쉬워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빨리 읽고 싶은 마음과 더 오래 읽고 싶은 마음 사이의 헛된 갈등이라니. 기억력이 없어서 내용은 또 금방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지금 느끼는 이 인상만큼은 한동안 이어지리라. 마치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처럼.

오다 노부나가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지만 거의 배경으로 쓰일 뿐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역을 일으킨 인물인 아라키 무라시게와 오다가 무라시게를 설득하라고 보낸 구로다 간베에다. 설득당하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간베에를 지하감옥에 가둬 놓고 문제가 생기면 그를 찾아가는 무라시게. 두 사람, 두 삶, 두 생각. 참 답이 없다.

살고 죽는 일 앞에서 하는 생각이라. 어떻게 하든 죽을 길밖에 없어 보이는데 죽기 직전까지 또 어떻게 살아보겠다고 머리를 굴려야 하는 모양새라니. 둘 다 같이 살 수는 없고 내가 살고 네가 죽거나 네가 살고 내가 죽거나.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죽기 전에 나보다 오래 살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복수는, 사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끝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또 그렇게 되는 것인가. 한쪽은 이미 죽고 없을 일,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안 하고도 살 수 있는 것일까.

대망을 읽어 놓은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 전국시대 무사들의 싸움이 낯설지 않았으니까.(y에서 옮김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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