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으로 걸어간 산책자
엘링 카게 지음, 김지혜 옮김 / 다른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Walking one step at a time". 이 책의 제목이다. 이 말이 어떻게 '남극으로 걸어간 산책자'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정말 남극에서 산책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줄 알고 빌린 책인데(극한의 남극 산책 이야기로 자극을 받고 싶은 마음에). 남극이 나오기는 한다. 작가가 남극에 가 보기도 했으니. 그러나 주인공은 남극이 아니라 '산책', 즉 '걷기'다. 처음부터 걷기에 주목하고 읽었더라면 책 제목에 속은 듯한 이 낭패감이 없었을 텐데. 


책은 작고 얇은 편에 속하며 한 편 한 편의 길이도 길지 않다. 대개 두 쪽에서 네 쪽 정도? 한 쪽짜리도 다섯 쪽짜리 이상의 글도 있기는 하지만. 읽기에 부담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순서대로 읽을 것도 아닌 구성이다. 아무 쪽이나 펼쳐도 걷는 일과 그 일로 느끼고 있거나 품고 있는 작가의 생각과 만날 수 있다.


걷는 데에 이런 좋은 점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는 하는데 막 새롭지는 않다. 세상에는 걷는 게 좋다는 사람이 아주 많고 그들 중 그 좋은 면을 혼자 간직하고 있기에는 섭섭하다고 책으로 말로 드러내 보여 주는 사람도 아주 많아서 종종 봐 왔던 덕분이다. 이 작가만의 특별한 면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사는 곳 주변을 걷다가 북극에, 남극에, 에베레스트까지 가 보았더라는 것이겠다. 아무리 잘 걷는 사람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는 하다.


날이 걷기에 점점 좋아지고 있다. 태풍이 온다고 하는데, 짧은 가을 날씨를 아쉽지 않게 누려야겠다. (y에서 옮김202109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산책시편 - 개정판 ㅣ 민음의 시 52
이문재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책이라는 말은 참 정답다. 정말 '산책'이라는 것을 하면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냥 돌아다닌다는 말과 산책을 한다는 말 사이에는 야릇한 차이가 있다. 그게 꼭 우리말과 한자말의 차이를 의미한다는 게 아니라 어쩐지 산책을 한다는 말에서는 몸과 마음을 한 길에서 만나게 해 주려는 것 같은 산책하는 사람의 의도적인 느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산책이라는 것을 해 보고 싶을 때면, 내 몸과 내 마음이 하나로 만나 시가 되고 음악이 되고 영화가 되었으면 하고 꿈을 꿀 때면, 이 시집을 펼치곤 했다. 그러면 이곳에는 이미 산책을 끝낸 한 젊은 남자의 시와 노래들이 제 각각의 음성으로 울리고 있었다. 어느 한적한 시골길을 거닐기도 하다가, 그 길 밖에서 중얼거리기도 하다가, 갑자기 메마른 도시의 어두운 길을 걷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공해에 찌들려 신음하는 지구의 한쪽 아픈 몸을 종일 쓰다듬고 있는 것이다.

그래, 젊은 것이겠지. 이제 시집이 나온 지가 10년 쯤 되었으니 그때 그 젊은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또 이렇게 아팠을 것이다. 길에서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나이는 그리 길지 않은 것이다. 산책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고 사는 사람에게나 눈을 뜨고 사는 사람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고 있을 것이므로. (y에서 옮김200202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더블린 사람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7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으로 나는 먼먼 나라의 도시 하나를 얻는다. 더블린, 가 보고 싶다고 열망하게 되는, 그러나 가게 될 것 같지는 않은, 마음에 드는 도시라고, 좋아하는 도시라고 말하게 될.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도시 하나를 얻다니. 더블린을 배경으로 삼은 글을 몇 번 봤다. 호감을 가졌고 이 책으로 굳힌다. 


작가가 쓴 율리시스를 읽어 보려다가 포기하고 대신 잡은 책이다. 더블린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1900년대 초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들인데 나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읽었다.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누추한 모습과 바꿔 놓는다고 해도 전혀 달라질 게 없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사람도, 집도, 인물 간의 갈등도, 각 인물들이 꿈꾸는 이상향도, 인물들이 지닌 내면의 소박한 편견이나 허물까지도.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자각, 다 조금씩 모자라거나 넘쳐서 스스로를 고생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에 불쌍하다가도 괘씸해지고 마는 이중성까지 느끼게 된다. 우리는 나아질 수 없는 존재인 것만 같다는 절망마저 친숙해졌으니. 이미 백 년이나 지났으나 여전한 우리. 


더블린에 대해 인터넷 자료로 찾아보았다. 영국과의 역사, 영국과의 관계,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인들의 애증 등 어딘가 우리네 처지와 비슷한 점이 있다. 약자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을 테니, 국가 차원에서도 험난한 시절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일랜드 기근은 얼마나 혹독한 사건이었던가. 세상의 일부를 열고 얻는 좋은 방법 하나, 훌륭한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이 단단해졌다. 


책을 읽은 후에 동네를 걸었다.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고 길고양이를 보고 가게의 간판을 읽고 빈 가게에 허전함을 느꼈다. 어쩐지 모든 풍경이 전과 많이 달라 보였다. 더블린이라는 이름 대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을 넣고 내가 방금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담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생각만 한 것이지.   


아무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내내 버티는 사람들, 서로 눈치 보고 서로 미워하면서도 서로를 견디는 사람들, 더 나은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은데도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 하찮은 위선과 부질없는 욕망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제 삶을 망가뜨리면서도 아닌 척 하면서 허영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 어쩌자고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물리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내용으로는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는데. 작가의 글솜씨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율리시스는 아직 힘들겠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넘어가 보나 어쩌나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정본 백석 시집 - 개정판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머리에>에서 엮은이가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시는 작가가 1935년부터 1948년까지 발표한 시들을 담았다고. 아뿔싸, 나는 참 오래도 오해하고 있었다. 이 오해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지는 이제부터 더 짙은 실망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해방 이후 북쪽에 남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의 성향을 가진 시인이었으리라고, 작품도 그런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 자꾸만 색안경을 쓰고 시를 봤더라는 것, 그러니 이 시인의 시를 더 읽어 보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겠지. 무지가 얼마나 위험한 요소인지 아프게 깨닫는다.


책은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 앞쪽에서는 작가의 시가 다시 3부로-이 책을 구하도록 동기가 되어 준 ‘사슴’, ‘함주시초’, ‘흰 바람벽이 있어’-펼쳐져 있고 이 뒤에 이 시들의 원본이 실려 있다. 내가 사투리와 옛말 때문에 읽기 힘들다고 느꼈던 점을 없애 놓은 편집이다.(앞쪽의 시들에는 낱말 풀이도 자세하고 친절하게 나와 있다.) 풀이해 놓은 낱말들이 가끔 공부를 해야 할 듯한 부담과 착각을 불러내기는 했지만 이 조급증만 다스린다면 금방 확인하고 비교해 볼 수 있어 아주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작가와 관련된 전문 자료가 실려 있어 작가나 작가의 시를 좀더 많이 공부하려는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시인의 시를 새로 본다. 내 하찮은 편견과 선입견은 버리고 1935년부터 1948년 사이의 우리 옛 땅과 옛 사람과 옛 삶을 읽는다. 심지어 2부의 ‘함주시초’에는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남쪽 지방을 작가가 여행하며 쓴 시들이 실려 있다. 낯익은 땅의 이름이 새삼 반갑다. 통영, 창원, 고성, 삼천포. 작가가 살았던 터전인 북쪽 땅의 이름에서 얻었던 낯선 느낌과는 또 다르다. 그래, 그랬지, 그때는 남북으로 한 나라였지, 갈 수만 있다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모두 오갈 수 있었겠지. 살아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어도 다 우리의 땅, 우리의 사람들이었겠지. 


시인이 시로 내보이는 장면들이 몇몇으로 구분되어 눈에 들어온다. 땅의 풍경, 집의 풍경, 그 집에 사는 이들의 애틋한 삶의 역사, 사람 가까이에 사는 동물들의 모습, 이곳저곳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길의 풍경, 길 위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삶의 풍경, 작가가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을 향한 고백과 사랑까지. 소설이 아닌 한 권의 시집만으로도 한 시대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본다. 우리보다 조금 앞선 사람들이 살았던 이야기를 읽는다. 조금도 모자라지 않게 조금도 섭섭하지 않게.


시가 덜 읽히는 시절이라는 생각이 나만의 오해이고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220602)    


93쪽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코끼리
김재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마다 조금씩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고통의 연속이기도 할 것이다. 가난이라든가 폭력이라든가 차별이라든가 이 모든 것을 다 합해 놓은 처절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 반갑지 않다. 그럼에도 알아야 한다는 게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는 게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읽으면서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을 떠올렸다. 책을 떠올린 건지, 그 책을 읽을 때의 나를 떠올린 건지는 분명하지 않다. 겹쳤다. 한때, 아주 젊었을 때(어렸을 때가 아니다), 이런 주제를 담고 있는 글을 제법 읽었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읽는 내가 마음에 들었고, 읽으면서 분노하고 다짐하던 내가 다행스러운 시절이었다  그 이후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내놓고 말못하겠지만 적어도 알게 된 나는 좀 덜 비겁해졌으리라 생각한다. 무섭고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어도 아예 고개돌리지는 않을 정도로.


이 책, 오래된 책이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의 <더읽기> 자료에서 소개받았다. 단원 주제가 '공동체와 문학'이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구한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일, 우리나라의 형편에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듯 싶다. 단일민족이라면서 보이는 배타적 태도가, 그것도 우리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나라의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상당히 심각한 문제들을 낳고 있으니까. 이를 해결해 나가기에는 짐작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수월하게 읽히지 않는다. 하나하나 무겁고 가슴맺히는 응어리를 남긴다. 나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문제인가 싶어도 곧 연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는 외국노동자, 그들의 가족, 아픈 현실.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차원을 넘어선 공동체의 의식 수준. 인간 관계의 기본적인 갈등 관계. 나는 잘 살고 싶고, 나보다 못한 너를 짓밟고 싶고, 남의 고통은 모른 척 하고 싶고, 내게만 좋은 일이 있으면 만족하고,...... 우리는, 나는, 앞으로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집이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이토록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승화시켜 내는 것일까. 정말 이것이 작가에게는 벌이고 또 상인 걸까. 이런 생각도 잠깐 해 본다. (y에서 옮김201804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