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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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재미로 읽는 소설. 작가 이름에 대한 기대로 부담없이 읽는 소설. 딱 그만큼의 즐거움으로 읽었다.  


배경은 스키장이다. 내가 스키를 타지는 못하지만 스키장에서 남들이 스키 타는 것을 보며 노는 일은 다소 즐거워하는 편이므로 소설을 읽는 일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상상하는 것도 좋았고. 


추리소설이나 범죄 드라마의 공식 같은 것 하나. 초반에 의심받을 만한 사람은 범인이 아니더라는 것. 그러면 두 팀의 대결이 된다. 작가나 감독이 한쪽, 다른 쪽에는 독자나 시청자가 있다. 둘은 특히 작가 쪽은 상대를 완벽히 속여 보려고 한다. 독자나 시청자가 끝까지 범인을 찾지 못하고 반전을 느낀다면, 그리고 작가의 의도에 감탄한다면 작가도 독자도 만족하게 되는 결과. 


이 작가의 작품을 어지간히 읽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갈 것인가 읽는 중에는 제법 파악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역시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직도 충실한 독자로 남아 있을 수 있겠다. 더 읽고 싶기도 하니까.


소설 속 흐름을 잡고 있는 한 가지 더-상처가 미치는 영향. 한 인간에게든 그 인간이 속한 공동체에게든,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관계를 힘들게 한다는 것. 소설 속이니까 해피앤드가 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고. (y에서 옮김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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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ㅣ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8
    박남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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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글 그 안에 담겨 있는 긴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읽는다. 이 가을에.

    자라면서 혹은 살면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늘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들, 늘 곁에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 어느 순간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굳이 챙기지 않았는데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그게 꼭 나이 탓인 것만 같다. 그런 나이가 오는 것이다. 저절로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

    박남준의 시를 이 시집에서 처음 본 것은 아닌데, 내 감상의 기록의 흔적을 찾지 못하겠다. 어쩌면 그때는 또 내게 보이지 않았던 탓인지 모르겠다. 다시 찾아봐야겠다. 내게 있을 그의 다른 시집을.

    아주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끄집어 내어 소중한 느낌으로 만나게 한다. 내가 이것을 잊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잊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생각해 내었으니 참 다행이다, 라고 느끼게 하는 구절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좀 아팠다. 1부에서는 그저 좀 편했는데, 2부, 3부, 4부로 넘어가면서 시들이 아프게 한 것이다. 우리 말로 된 시들이 깊고 깊은 아픔을 준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아직도 이 아픔과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세상은 참으로, 좀처럼 변하기 어려운 모양인 것이지. (y에서 옮김20110918)

    한때 그대를 위해 붉은 목숨을 내놓으리라
    그런 날이 있었다 - P18

    한마디로 인연이란 만나는 일이다
    기쁨과 고통,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물들어간다는 뜻이다 - P29

    사람의 삶도 상처를 통해서야
    비로소 깊어지는가 - P30

    사랑은 쉬지 않고 닮아가는 것
    동그랗게 동그랗게 모나지 않는 것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는 것 - P32

    그리움도 오래된 골목 끝 외딴 감나무처럼 낡아질 수 있을까 - P37

    꽃을 바라보다 내 얼굴을 만져보네
    새들의 하늘을 올려보다 걸어온 발등을 바라보네
    이제 그만 나른해져야겠네 - P71

    비, 비, 이 땅은 지금 우기의 날들
    저 비를 딛고 일어설 아름다운 희망의 꿈을 꾸어봅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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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이야기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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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온 소설집이다. 다행이다, 책이 나온 것과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이.


    이 소설집의 이런 소설,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잠시 바란다. 나도 소설가가 되어 보았으면, 소설가처럼 이야기를 지어 보았으면, 소설가처럼 다른 사람에게 주목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무엇보다 내가 만든 이야기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내가 받았듯이, 내가 감동하였듯이, 내가 나를 애틋하게 아낄 수 있게 되었듯이.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이야기가 되는 순간, 이것이 마법이다. 잠시 현실을 잊고, 지긋지긋한 일상을 지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원수가 되는 순간을 막을 수 있는 시간, 소설을 읽는 시간. 나는 어떤 사람인지,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무엇보다 함께 있어 행복한지 떨어져 있어 더 행복한지 확인하고 점검하고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 


    아일랜드와 영국의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다. 멀다. 낯설다. 그런데도 마음이 쓰리다. 두근거리고 울컥하고 뜨끔하고 난처해진다. 등장인물이 바뀌고 배경 공간이 바뀌어도 내 안에서 일렁이는 움직임은 비슷하게 난폭하다. 거칠어지는 호흡이 소설을 읽는 나를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시켜 준다. 이렇게 흔들릴 수 있다니, 아직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삶에 열려 있구나 하면서.  


    모두 10편. 나는 10번 이상의 삶을 지나왔다. 한 사람을 지나고 다음 사람을 만나면서 앞사람을 잊었다. 10편 모두 읽은 뒤 모두 잊었다. 사람은 가고 이야기만 남는다더니 나는 이야기도 보낸다. 다 보냈는데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 살아 있다, 내 주변에. 마트에서 카페에서 건널목에서 주차장에서 자꾸 나타난다. 소설도 못 쓰는 내게 어쩌라고?


    어떤 이야기는 소설이 되고 어떤 이야기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어떤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다. '모르는 여자'가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다들 조금씩 모자라고 조금씩 외롭고 조금 더 짖궂은 면을 갖고 있어서 상처를 입힌다. 이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소설을 읽으면 조금 덜 하지 않을까 기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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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누면서 채워지는 이상한 여행 - 탕가피코 강에서 배우는 나눔의 규칙 ㅣ 모두가 친구 35
    디디에 레비 지음, 알렉상드라 위아르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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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상이 재미있고 유익하다. 세상 어느 곳에선가 이런 유형의 여행이 있다면, 이런 여행에 참가할 사람을 모은다면, 글쎄, 주최측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잠깐 해 보고. 아니, 그럴 마음만 품고 있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여행이 아닐까? 결국 해 보고 싶다는 건 내 막연한 동경일 뿐이고 실제로 해 볼 의지 같은 건 없는 것으로. 


    아버지를 찾아서 오지로 배를 타고 간 어린이의 여행. 중간중간에 이곳저곳을 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각자 가진 것으로 원주민과의 물물교환을 한다. 어린 주인공은 이게 또 영 마뜩하지 않다. 자기 물건을 빼앗기는 듯 여기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응하는데. 그러나 언뜻 봐서는 필요 없을 듯했던 물건들이 이후 여행에서 중요한 필수품이 되는 걸 보면서 서서히 마음이 달라진다. 그걸 보는 내 마음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으니, 이런 취지의 여행이라면....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여행의 배경지는 내 취향이 아니다. 갈 일도 없고. 다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만큼은 썩 근사했다. 나눔의 의미라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본 기회이기도 했고. 나눈다는 건 내가 내놓고 싶은 것을 내놓는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걸 내놓는 것이라는 점. 그게 내게도 귀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해도. 그러니 나눔도 쉬운 일은 아닌 거다.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마음이 열려 있으려나? 이 책도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y에서 옮김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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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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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에서 2009년까지 발표된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과 같은 평론집은 글이 나온 시기를 기억하면서 읽는 게 좋다. 적어도 시간 상의 착오로 오해를 하지 않게 되니까.  

     

    모두 6부로 이루어져 있다. 비평가로서의 작가가 다른 작가들을 크게 시인과 소설가로 나누어 편집해 놓은 구성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문학의 전문가들은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작품들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비평가의 설명을 얼마만큼 받아들일 것인가는 독자로서의 개인적인 선택이고 영역이므로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길 것까지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작가의 글은 근사한 맛이 있다. 앞서 읽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빌려 본 건데 만족스럽다. 이 책이 나올 당시에 읽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내 마음이 궁금하기는 한데 지금 이렇게 괜찮게 여겨지는 걸로 봐서 그때 읽었더라도 만족했을 것 같다. 글의 세계에서 10년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미 읽은 책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작가에 대해 써 놓은 글을 읽을 때는 당연히 반가웠다. 내가 놓쳤거나 무시했거나 부정했던 사항들을 멋지게 되살려 놓은 표현들 앞에서는 감탄했다. 그래, 이게 전문가지. 나는 왜 이만큼 읽어 낼 수 없나 하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하고, 또 이 작가처럼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는데 없는 능력 때문에 한탄하면서 스스로를 들볶을 필요는 없다는 것까지 알게 된 나이가 되기도 했고.

     

    제일 좋은 건 비평가의 도움으로 새로운 작가의 이름을 얻을 때다. 내가 이미 좋아하고 있는 작가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서 이 비평가가 내가 같은 작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확인하면 뿌듯하기는 하지만 새롭지는 않다. 즐거움의 영역이 넓어진 것은 아니니까. 내가 몰랐거나 제대로 못 읽어서 못 누린 작품과 작가를 소개받게 되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으면, 나는 비평가에게도 빠지고 만다. 지금처럼. 그리고 김경주 시인을 더 얻었다. 

     

    3부에 모아 놓은 짧은 글들도 산뜻하게 읽었다.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글들이다. 다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한숨이 난다. 우리는 좀처럼 변하지 못하고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 얼마나 더 읽어야 스스로를 안아 줄 수 있게 될까? (y에서 옮김20200101)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 P9

    독자가 이 가치들을 전달받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것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에 독자가 마중을 나가기만 하면 될 때도 있고, 그것을 만나기 위해 독자가 낯선 길을 더듬어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분명하게 눈에 보여서 편안하지만 그래서 재미가 덜할 때도 있겠고, 너무 희미해서 과연 그것이 있기는 한가 수상쩍어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대개 전자를 ‘고전적’이라 하고 후자를 ‘실험적’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고전은 어제의 실험이었고 오늘의 실험은 내일의 고전이 될 수 있다. -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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