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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온 소설집이다. 다행이다, 책이 나온 것과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이.
이 소설집의 이런 소설,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잠시 바란다. 나도 소설가가 되어 보았으면, 소설가처럼 이야기를 지어 보았으면, 소설가처럼 다른 사람에게 주목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무엇보다 내가 만든 이야기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내가 받았듯이, 내가 감동하였듯이, 내가 나를 애틋하게 아낄 수 있게 되었듯이.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이야기가 되는 순간, 이것이 마법이다. 잠시 현실을 잊고, 지긋지긋한 일상을 지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원수가 되는 순간을 막을 수 있는 시간, 소설을 읽는 시간. 나는 어떤 사람인지,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무엇보다 함께 있어 행복한지 떨어져 있어 더 행복한지 확인하고 점검하고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
아일랜드와 영국의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다. 멀다. 낯설다. 그런데도 마음이 쓰리다. 두근거리고 울컥하고 뜨끔하고 난처해진다. 등장인물이 바뀌고 배경 공간이 바뀌어도 내 안에서 일렁이는 움직임은 비슷하게 난폭하다. 거칠어지는 호흡이 소설을 읽는 나를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시켜 준다. 이렇게 흔들릴 수 있다니, 아직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삶에 열려 있구나 하면서.
모두 10편. 나는 10번 이상의 삶을 지나왔다. 한 사람을 지나고 다음 사람을 만나면서 앞사람을 잊었다. 10편 모두 읽은 뒤 모두 잊었다. 사람은 가고 이야기만 남는다더니 나는 이야기도 보낸다. 다 보냈는데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 살아 있다, 내 주변에. 마트에서 카페에서 건널목에서 주차장에서 자꾸 나타난다. 소설도 못 쓰는 내게 어쩌라고?
어떤 이야기는 소설이 되고 어떤 이야기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어떤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다. '모르는 여자'가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다들 조금씩 모자라고 조금씩 외롭고 조금 더 짖궂은 면을 갖고 있어서 상처를 입힌다. 이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소설을 읽으면 조금 덜 하지 않을까 기대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