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수수밭 ㅣ 창비시선 122
천양희 지음 / 창비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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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밭을 이미지로 찾아 본다. 많이 본 듯한 풍경이지만 아마 실제로 내가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봤더라도 그게 수수밭인지 몰랐을 테니, 못 본 것이나 다름이 없고. 마음에 수수밭이 있다면, 혹은 마음에 수수밭을 가꾸고 있다면, 그 마음은 어떠할까. 수수밭을 모르니 마음까지는 더 모르겠고. 그럼에도 시집 제목과 같은 첫시는 뭔지 모를 스산함으로 마음을 때리고. 


시인은 1942년생,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은 1994년판이다. 꽤 오래 전 책인데, 내가 사 놓고 정리를 안 한 건지, 선물로 받은 책인지 알 수가 없다. 개정판이 나와 있으니 아직도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시집인 모양이다. 이 시집이 나올 때쯤의 시인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막 구한 기분으로 시집을 읽었다. 


전체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 있는 시들이 좋다. 15편인데 고르게 나를 울린다. 이렇게 계속 좋으면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2부로 넘어가면서는 덜해졌다. 시를 읽는 마음의 간격이 커져 버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안 읽히는 이유를 대느라 고민하지 말고 잘 읽혀서 와 닿는 시들을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시의 화자를 동경하는 마음이 큰 듯하다. 1부의 시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다. 구체적인 지명을 향한 길도 있고 막연하게 꿈꾸는 길도 보인다. 길을 가는 생 앞에 서서 망설였다가 걷고 머뭇거렸다가 내딛는 화자의 의지가 애틋하다. 비슷한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내가 이러고 있었던 것 같아서. 


반백년을 넘게 살아도, 어른이 된지 한참이 지났다 싶어도, 여전히 생의 길은 첫길이다. (y에서 옮김20201225)

가지 않은 길 하나씩 품고 있는 한줌 기대와 기대 속에 묻힌 한 그루 추억의 푸른 나무 - P13

빠른 길만이 앞선 것은 아니다.

- P16

앞길은 언제나 막막한 것일까. - P24

나는 지상의 모든 책들을 다 읽었노라던 말라르메의 그 말이,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던 김수영의 그 말이, 흠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던 랭보의 그 말이,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소라던 브로드스키의 그 말이, 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떻게 알겠느냐던 니체의 그 말이,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던 발레리의 그 말이…...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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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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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블로그(하루님)에서 관련 글을 보고 빌려 본 책이다. 책 제목이 마음에 썩 들었고, 음악을 배경으로 소재로 삼았다는 소설이라고 해서 흥미를 느끼게 했다. 내가 음악을 모르기는 하지만 좋아한다고는 여기고 있어서.


책의 분량은 짧은 편이었고 빠르게 넘어가는 속도감도 있었다. 내용은, 음, 내가 모르는 음악만큼이나 저높이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책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를 봤다면 딱 지루하다고 할 관객. 쉽게 포기한다. 어쩔 수 없지, 뭐. 책 제목은 참 근사했는데, 나도 세상의 모든 아침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는데. 결국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하니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할 포기의 자세인가 싶고. 


예술가, 이를테면 화가나 연주가, 건축가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더러 있다. 다들 비슷한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예술 자체에만 임할 것이냐, 예술 밖의 조건들도 고려하며 예술을 할 것이냐. 소설도 영화나 드라마도 종종 봐 온 것 같아 낯설지는 않다. 그리고 늘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예술가는 못되겠구나, 저 정도의 열정이나 집착이나 몰입이 없으니, 예술가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 작품이 나오는 모양이구나, 그냥 내 수준에서는 보고 즐기는 걸로 만족하자, 이런 정도의 독백으로 마무리하면서. 


이 소설도 실제로 프랑스에 있었던 두 명의 연주가를 모델로 삼고 있다. 짧은 사실로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소설가. 그리고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내는 영화인.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는 너무 서운한 생이 되고 말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듯하다. 내 취향에 아주 가까운 소설은 아니었으나 나는 이런 확장을 좋아한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고 문학과 영화가 서로를 넓혀 주는 일은 계속되기를 바란다.


책을 보고 영화도 찾아 보려고 했는데, 그러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y에서 옮김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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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ㅣ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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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책이다. 앞서 읽으면서 반하다시피 하여 이 책을 연달아 읽게 된 것인데, 결론으로는 입맛이 아니 보는 술맛이 썼다. 앞의 책만큼 취하지 못했다. 읽는 내 탓일까, 쓴 작가 탓일까, 따져 보는 것도 딱히 의미가 없어 무료했다고 쓴다.


작가가 언급하는 술들의 이름이 영 낯설다. 술의 종류 정도만, 그것도 큰 분류로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낱낱의 이름 앞에서 주눅이 들고 말았다. 술맛 자체를 짐작할 수 없으니 읽는 느낌이 시들할 수밖에. 책에 나오는 술이든 영화에 나오는 술이든 이 또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작가의 술에 대한 애정만 인정하게 되었다. 


술은 다 같은 술이라고 여겼는데 술에도 좋은 술이 있다니, 이것도 놀랄 일이다. 맥주 한 컵에 취하는 정도인 내가 어떻게 술의 오묘한 경지를 알겠는가. 단순하게도 한 잔의 그 취한 맛이 좋아서 술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찾고 읽고 새기고는 있는데 이번에는 내 수준에서 영 멀리 높은 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이럴 수도 있는 거지.


책에도 나오지만 경기장에서 술 한 잔 해 보는 일, 나의 사소한 로망 중 하나인데. 야구장도 좋고 배구장도 좋고 테니스장도 좋은데, 사는 곳이 시골이라 경기장에 갈 수가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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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한승원 지음 / 김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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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실제 살았던 사람이란다. 한승원의 글로 읽으니 인물의 삶이 더 잘 살아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상태였고, '차'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니, 내게 이 글은 그저 새로운 영역이었다. 이렇게 살아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 이런 사람에 대해 수많은 조사를 하고 그를 소설로 만든 작가도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정약용과 김정희를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 우리의 역사 속에 이런 시대와 이런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 


소설 속 글귀를 타이핑하면서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내 속에 떠오르는 말이 없구나. 그런데 글이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내 속에 글이 머물다 보면 내 말도 생겨나겠지. 또 굳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떠리. 머물고 있는 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한 것을.  (y에서 옮김20120418)

달빛 비친 산이 그림자를 만들고,
대나무나 꽃이 그림자를 만든다.
세상보다는 세상의 그림자가 더 아름답다.
그림자에게는 거짓이 없다.
꽃보다 꽃의 그림자가, 대보다 대 그림작가 더 아름다워.
그림자는 숲 뒤편에 있고, 대나무가 디디고 선 땅 아래에 있고,
강물에 있고, 네 마음 속에 있지.
그림자 속에 달이 있다.
달이 부처님이라면 중생은 그림자 아니냐?
부처님의 그림자는 중생들 속에 있고, 중생들의 그림자는 부처님 속에 있다.
부처님을 알려면 중생을 알아야 하고, 중생을 알려면 부처님을 알아야 한다.
세상 살아가는 참 이치를 제대로 그리려면 세상의 그림자를 잘 그려야 한다.
그림자를 그리면 달은 그 위에 둥두렷이 떠오르게 되어 있다. - P143

‘엉뚱한 데에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초의는 할아버지 몰래 읽은 노자와 장자에서 엉뚱하다는 말의 해답을 얻어냈다. 잘 가는 자는 자국을 남기지 않고, 잘 묶는 자는 밧줄 없이도 놓여나지 못하게 묶고, 잘 잠그는 자는 빗장 없이도 잘 잠근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 세상을 올곧게 나아가게 하는 그윽한[玄] 힘이다. 말하자면 도道라는 것이다. 엉뚱한 표현이라는 것은 그윽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 P144

사람은 모름지기 두 개의 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는 거울(龜鑑)이고, 다른 하나는 숫돌(他山之石)이다. 거울은 올곧은 일을 하는 성인의 삶인데 거기에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살아가야 한다. 숫돌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행실이다. 그것은 다른 산에서 나는 우둘투둘한 돌일지라도 내 심신의 성정을 벼리는 데 숫돌로 쓰면 된다. - P160

사람이 누구인가를 오매불망 진실로 사모하면 그를 닮게 됩니다. 선비도 그렇습니다. 한 선지자를 진실로 사숙하게 되면 그의 모든 것을 닮게 됩니다. 학식이나 인자함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나...... 심지어는 표정이나 행동까지도요. 좋은 그림은 좋은 시이고, 좋은 시나 그림은 그 사람의 마음의 표상이고 그윽한 그림자입니다. - P172

사람이 글을 읽는 것, 글씨를 쓰는 것, 시를 짓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귀를 타고 길을 가는 것하고 같습니다. 길을 가는 목적은 나귀를 타고 흔들거리며 가는 데에 있지 않고 지나쳐 가는 풍광을 음미하고 목적지에 이르는 데에 있습니다. 글 읽고 글씨 쓰고 시 짓고 그림 그리는 그것들의 등뒤 쪽에 사람이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향기로운 사람, 모나지 않고 동그라미같이 원만한 사람...... 그렇다고 두루뭉수리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자는 서로 화합하면서도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소인은 개성을 지니지 못한 채 부화뇌동합니다. - P173

사람에게서 문장이 나오는 것은 풀이나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 심는 자는 나무를 심을 때 뿌리를 북돋아 주고 줄기를 안정시켜 주면 됩니다. 얼마 지나면 진액이 올라서 가지와 잎이 퍼지고 꽃이 핍니다. 꽃은 밖으로부터 가져오지 못합니다. 성실한 뜻과 바른 마음으로써 뿌리를 북돋우고, 독행 수신으로써 줄기를 안정시키고, 경전과 예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진액을 빨아올리고, 널리 듣고 아름다움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잎과 가지를 퍼지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장 쓰는 도리입니다. 문장은 밖으로부터 가져오지 못합니다. - P177

세상은 낡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은 나이 들어 낡아가고 있으면서 늙어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늙어감은 금강석처럼 찬란하고 향기로운 무게를 더하면서 견고해지고 새로워지는 일이고 값진 일이지만, 낡아가고 있는 것은 썩어 소멸해 가는 것이고 미망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냄새나고 추한 것이었다. - P201

벽이란 바람벽만 벽이 아니다. 나를 막아선 세상은 모두 벽이다. 나의 참을 참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모든 것들은 다 벽이다. 사람도 벽이고, 짐승도 벽이다. 부처도 벽이고 조사도 벽이고 중생도 벽이다. 우주의 시공 모두가 벽이다. - P271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상을 분석하고 따지고 가리고 우열을 매기고 순서를 정한다. 그러한 순서 정하기는 화합하는 총체성의 우주를 놓칠 뿐만 아니라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논리는 논리를 낳고 그 논리는 다시 다른 논리를 낳는다. 결국 논리의 숲이 이루어진다. 울창한 논리의 숲은 진리를 보이지 않게 가린다. 그 숲 앞에 선 자들은 진리를 찾기 위해 길을 따지고 가리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가리는 일은 다툼을 만들고, 다툼은 자기 논에 물대기식으로 논리를 이끌어 간다. - P333

산은 산, 물은 물이 그것이다.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라는 인식은, 산이 산 아니고 물이 물 아닌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점에서 활인검이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 머물러 있을 때, 자기를 죽이는 칼이 된다. 살리는 칼이 되려면 ‘산은 산 아니고 물은 물 아니다’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거기 머물러 있으면 자기를 죽이는 살인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살리려면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다’가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또 거기 머물러 있으면 자기를 죽이는 살인검이 된다. 그것을 살리려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가 나타나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화두 속에는 살인검과 활인검이 다 들어 있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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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89
이재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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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릴 때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남은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나로서는 시골도 도시도 아닌 소도시에서 자란 탓에 어릴 때의 추억이란 게 참 없는 편이다. 고작해야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운동장이나, 집 앞의 길에서 놀았던 게 전부이니까. 때문에 시골아이들처럼 풀이나 꽃이나 나무나 벌레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고 자랐고, 그렇다고 도시의 아이들처럼 문화의 혜택을 누렸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점을 생각한다면 나의 어린 시절은 정신적으로 참 가난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사람을 부러워하는 편이다. 들꽃이름이나 나무이름을 잘 아는 친구들, 동네 냇가에서 놀면서 저절로 헤엄을 배웠다는 친구들, 곡식들이 어떻게 익어가고 과일이 어떻게 열리는지 아는 친구들, 물과 산과 언덕을 친구로 삼고 있는 친구들이 자라면서도 참 부러웠던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오로지 학교에서 배우는 책을 통해, 기껏 책 속의 사진을 통해서만 보고 외워야 했으므로, 나에게 있어 시골은 또다른 별나라였다.

크면서 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을 고향으로 둔 시인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그들은 어찌 그리 끝도 없이 고향을 노래할 수 있는지, 나는 부러움 반 시기하는 마음 반으로 시골노래들을 넘기곤 했다. 완전히, 내 마음 깊은 곳까지는 도저히 와 닿아주지 않은 채 떠나버리는 싯구들이었다. 얼마나 오래 안타까워하면서 살아왔는지.

이재무의 이 시집에도 시인의 시골 고향이 가득 담겨 있다. 아직도 내게는 글자로만 왔다가 부딪힐 뿐, 실체로 잡히지는 않는 무수한 시골살림살이 시어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 이런 류의 시집을 읽을 때와는 내가 좀 달라진 것 같다. 그 때만큼 낯설지가 않다. 시골에서 산 지 3년이 되어 가면서 나도 모르게 시골을 익혀 가고 있나 보다. '텃밭 가득 달빛 푸른 푸성귀들'(40p)이나 '등허리엔 소똥 같은 땀방울 흘러내려/ 내를 이룬다 숨이 차'(57p) 하는 모습이나 '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 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 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 아부지의 등허리'(72p)가 이토록 가깝게 여겨진 적이 없었으므로.

시를 짓는 일이나 시를 읽는 일이나 거기서 거기일까. 아니면 시를 잘 쓰지 못하는 대신에 시를 열심히 읽고 살 수 있도록 베풀어주신 은혜를 제대로 입은 것일까. 이 시집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또 어찌 나의 이러한 변화를 깨달을 수 있었으랴. 하여 시골을 고향으로 두지 못했던 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으니 너무 속상해 할 일은 아니겠으나, 이제라도 시골의 삶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니, 무엇보다 이 시집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으니, 나는 또 이 시집에 고마움을 가져야겠다. (y에서 옮김20010805)

[인상깊은구절]
강 복판 속을
산맥처럼 우뚝 서서
달리는 물줄기를 보고 있으면
덩달아 마음이 급해지면서
어디든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금세 마음은 변덕을 부려
갓 걸음 배우는 아이처럼
서툴게 걷고 있는
여리고 부드러운 물살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마음이
고구마순처럼 유순해지며
소홀했던 소중한 작은 약속들
수면 가득 떠올라온다
역사 이래 계절의 꽃 피워온 것은
강기슭에 볼 비비며 걷는
작은 물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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