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지음 / 스위밍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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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SF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남의 마음이나 생각을 읽는 초능력자들을 더러 보여 주곤 하던데 그걸 과연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가시지 않을까? 남의 마음속 소리들이 막 들린다면. 마구 들리는 게 아니라 듣겠다고 작정하고 듣는다면 그건 또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리 불가능한 조건에 빠져 있는 것인지. 

최근에 좋아하게 된 작가. 다섯 편의 소설. 참 멋진 글이다. 남의 마음이든 내 마음이든 좋은 쪽이든 불편한 쪽이든 이렇게 꼼꼼하고 세밀하게 표현해 놓은 글이라니. 무서운 듯하면서도 마음에 든다. 상대를 너무 잘 알게 된다 싶으면 약간 두려운 기분이 되는 것처럼. 작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고 내가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깊어질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나처럼 얕게 껍데기만 보는 입장에서는 여간 발전된 상태가 아닐 것이므로. 

친구 관계는 어떤 모습인지, 친구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나는 누구에게 친구로 여겨지는지, 친구를 얼마나 믿는지, 친구가 왜 필요한지... 친구 사이에도 연인 사이만큼이나 복잡한 감정 교류가 있게 마련이고, 친구와 연인 관계가 서로 얽히기라도 하면 이 복잡함은 더 깊어지고 어지러워지기도 한다. 자칫 어느 한 쪽이나 양쪽 모두 깨어질 만큼. 소유욕이든 독점욕이든 사랑이든 질투든. 사람의 본성과 관련된 문제인 것일까. 혼자 살기 어려워서 함께 살려고 하다 보니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으면서 맞게 되는 갈등 관계로.

다섯 편의 소설은 인물들끼리 이어져 있고 각각의 주인공이 제 마음과 남의 마음을 함께 읽는다. 읽고 추측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슬퍼한다. 어느 하나 맞고 틀리고는 없고 다 다른 것은 분명하며 관계는 좋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누구 하나 버릴 인물이 없는 이야기 다섯 편. 그래서 만인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약오르게도.  (y에서 옮김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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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열정
조은 지음, 정경자 사진 / 마음산책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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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사 놓고 미처 못 읽은 책이 책장 몇 칸에 꽂혀 있다. 금방금방 나오는 새 책을 사 보는 재미에 밀린 책들이다. 버리지도 못하고 안 읽겠노라고 포기하지도 못한 내 애틋한 책들 중의 한 권. 이제서야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시인인 작가의 산문집. 시인의 산문집과 소설가의 산문집은 좀 다른 맛을 풍긴다. 나는 둘 다 좋아하는 편이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한쪽으로 쏠린다면 그만큼 모자란 세상에 사는 것 같아 섭섭할 것 같기에. 내가 받는 대체로의 인상을 줄여 말하자면, 시인의 산문 속 시인의 삶이 소설가의 그것에 비해 좀 더 우아한 듯하면서도 좀 더 고달프게 보인다는 것. 어쩌면 우아함의 뒷면에 고달픔이 있는 것일까.  


작가의 옛 기억은 퍽 우울하게 그려진다. 예민한 성격이 한층 더 깊은 우울로 만들어냈을지도. 그래서 시인의 숙명을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예술가들 중에 이와 비슷한 숙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평범하기만 해서는 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영역을 만나게 되려면. 


비슷한 주제의 산문이라도 내 마음에 애절하게 들어 오는 글이 있고 쉽게 벗어나는 글이 있다.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글을 읽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어떤 우울은 공감에 위로에 격려까지 보태고 싶은데 또 어떤 우울은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다. 작가가 자신의 우울을 마주하는 마음가짐, 우울한 기분을 견디고 이겨 내는 태도, 우울한 삶에 던지는 핑계나 변명의 유무, 이런 것들이 내 정서와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일 테지. 


다행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떠나 보내지 못한 책을 좋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우울했어도 끝내 우울로만 남지 않는 내 독후감. 이 또한 살기 위한 안간힘의 다른 분위기인 것일 테니. 시인의 시를 찾으러 가 보아야겠다. (y에서 옮김20220310)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절반 이상의 책이 팔리지 않고, 팔린 책의 절반 이상이 읽히지 않고, 읽힌 책의 절반 이상이 사람들의 의식에 남아 있지 않고, 인간의 의식을 뒤흔들었던 내용의 절반 이상이 그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의 글을 언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들 어떠랴. 과거에 먹었던 좋은 음식들을 내가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음식물을 통해 이렇게 나의 몸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책도 그와 같다. 그래서 나는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가족이나 연인에게도 먹이고 싶은 사람의 마음으로 쓰여져 이 땅에서 책의 형식을 갖는 글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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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깨물다 ㅣ 시작시인선 293
이원규 지음 / 천년의시작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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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들이다. 좀 고달프고 좀 누추하고 좀 서럽기도 한 생의 이야기를 노래로 바꾸어 놓았다. 읽는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서도 정겹다. 모른 척 고개 돌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 내 마음이 그러하고, 그럼에도 마음 따뜻하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있어서 또 그러하다. 

 

작가가 남편의 고향 사람이란다. 시에도 경북 방언, 특히 문경의 지방말이 꽤 나온다. 함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은데, 이 지방말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썩 반갑고 다정하게 다가올 것 같다. 지방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글쎄 낯설 것도 같고 어떤 대목은 외국 시 번역문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방말에는 뜻만으로는 모자란, 이를테면 뉘앙스라는 걸 품고 있게 마련인데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또 커다란 차이를 낳기도 한다. 남편이 평소에 쓰는 말들로 익혀 둔 표현들을 시어로 만나 보니 특별한 멋이 있다. 사투리의 소중한 역할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재미들보다 아프다는 느낌을 더 자주 더 많이 느끼게 한다. 아직은 살맛 나는 세상이 못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서 저마다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날이 과연 있겠는가 싶기는 한데, 그래도 나날이 심해져만 가는 듯이 보이는 세상을 향한 불평불만의 어느 한 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좀더 억울한 사람들 편에서, 좀더 고달픈 사람들 편에서, 좀더 말없이 참고 사는 사람들 편에서,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것에 더 많이 고마워하는 사람들 편에서 내보이는, 길지도 않은 짧은 노래들이 읽는 마음에 걸려 떨린다. 여기 이렇게 살고 있노라고, 외치지 않고 있음에도 생생하게 들리는 노래로 만든 시인의 목소리가.    

 

비유나 상징으로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는 편이 아니어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대신 마냥 아름답고 마냥 순수하기만 한 세상을 보이는 게 아니어서 읽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픈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하는데, 이마저도 내가 비겁한 사람이 되고 마는 형편이라면 변명 없이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 이기심의 그릇을 깨 나가려는 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 이 시집은 스스로를 들끓게 해 준다. 

 

가을이 오고 있다. 지리산에는 이미 가을이 한창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올 가을이 조금은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1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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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의 잭 ㅣ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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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작품 중 안 읽은 책인 것 같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아무래도 뭔가 기억 속에서 겹치고 있었다. 본 듯 아닌 듯. 스키와 관련된 내용을 본 것 같은데, 명확하지가 않네 하면서. 집에 같은 책이 없는 걸로 봐서 봤다면 빌려 봤다는 것일 테고, 리뷰가 남지 않은 걸 보면 안 읽은 것일 수도 있고, 아~~~ 그냥 읽고 말자, 이왕 산 책이니, 읽는 내내 갈등했던 책.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었던 책.(끝까지 읽어도 책의 기억을 불러들이지 못해 그만 잘 읽었다고 결론 내려놓고.)


이 리뷰를 쓰기 직전에 검색을 해 봤다. 내가 본 것은 '질풍론도'라는 작품이었더라는 것. 배경이 겨울 스키장이었으니, 내 기억력이 이만큼이나마 살아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뭘 또 굳이 두 번씩 읽을 만큼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으니. 그랬더라면 많이 안타까울 뻔했을 것이다, 이 시간에 다른 책을 읽을 걸 하면서.


권력자들의 음모가 질릴 정도다. 사람 몇몇만 모이면 이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기라도 한 것인지. 좀더 이익을 챙길 쪽으로, 내 욕심 챙길 쪽으로 서로서로 궁리해서 도모하는 현상. 그게 회사든 학교든 나라든 국제 사회든. 하기야 우주 개방이 된다면 우주 사회라고 달라질 게 있을까 싶은 한탄도 들고.


우리 인간에게 생존 본능을 넘어서는 욕심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인류의 시작부터? 정착하면서 사유재산을 갖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쌓아 놓고 죽을 때까지 풍요롭게 쓰고 싶다는 그 자각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때문에 문화가 시작되기는 했겠지만 문화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 살자고 남 죽이는 방편을 마련하다 이루어놓은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참내, 소설 한 편 읽다가 도저히 안 보고 안 들을 수 없는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연결시키다 보니 한심한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이러려고 내가 소설을 읽는 건 아닌데.ㅋㅋ) 


그래도 올바른 사람은 있다, 있을 것이다,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리에 어긋나는 욕심 따위는 내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을 도리에 맞게 해내는 사람들, 언제나 어디에나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름 남기지 않는 백성들로서. 그렇지 않고서야 이 속 터지는 세상을 버틸 방법이 없다. (y에서 옮김2017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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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 코코
정미진 글, 안녕달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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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잠을 잘 못 자는 상황에 이르고, 왜 잠을 잘 못 자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고, 그래서 불면증에 시달린다 싶고, 혼자서는 해결을 못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하는 어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면? 이 책을 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타고 떠났다가 더 잠 못 드는 상황에 놓인다면? 그래도 괜한 걱정과 억지 생각으로 신경을 끓이는 것보다 이 책 속의 상상으로 빠져 드는 게 좀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책 속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맞기는 했나 보다.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분량이 꽤 되는데 싶었으니까. 글자의 크기도 작은 편이었고 내용도 길었고. 아무리 어른이 읽어 준다고 해도 아이가 들으면서 집중할 만큼의 수준을 넘고 있는 게 아닌가 했고. 내가 잘못 알고 있어서 그렇지 어린이 중에서도 충분히 읽어 내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어른이, 잠 못 드는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래서 수면제 대신에 이 책을 펼쳐 본다면 혹시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기분......


낮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밤잠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잘 자는 사람은 그 자체로 복을 누리는 것이라 그저 부럽다. 자고 싶어도 잠이 들지 않아 괴로워해 본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상상은 도리어 잠을 방해한다고도 했으니 함부로 상상의 세계로 가 보라고 말해서도 안 되는 것일 테고. 


그래도 오늘 밤에는 이 책을 본 뒤 내 잠의 세계와 이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글도 그림도 아늑하고 호젓해서 그 안에 머물다 보면 어지러운 생각의 뒤끝이 사라질지 모르니까. 아직도 종종 쫓기는 꿈을 꾸다가 고단해 하는 잠 속의 내 풍경이 차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y에서 옮김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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