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창비시선 476
이정록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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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 듯 싶었는데 쉽게 다가오지 않는 시들. 나를 경계하는 듯하다. 쉬운 마음으로 다가서지 말라고, 여기 이 시들은 가벼운 목숨을 가진 게 아니라고, 자칫 쉽게 대하다가는 은근히 혼이 날 수도 있다고, 시가 내뿜는 리듬들이 나를 밀었다가 당겼다가 한다. 그래, 시를 읽다 보면 이럴 때도 만나는 것이지.  


잔잔하면서도 깊은 아픔이 구절들 곳곳에서 느껴진다. 명랑하게 보였는가 싶었는데 무거운 운명을 달래고 또 감추려고 그랬는가 여겨졌다. 연약한 아이도 나이든 부모도 알지 못하는 순한 목숨들까지도 시인은 두루 어루만져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한데 시를 읽는 나는 힘을 보태지 못하고 물러 나온다. 힘겹다, 지친다, 안타까워서도 답답해서도. 어쩌면 시라는 장르에서는 시원한 기분을 얻을 수 없는 것일까.


시인에게서 구절 몇 개를 선물로 받아 옮긴다. 이 일만으로 나는 아주 조금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어떠랴, 이렇게 기대어 살아가는 거지.


내 우물 속 하늘은
당신이 높아질수록 깊어져요 - P17

시나브로 검게 잊힐 것 - P27

맹물같이 말간 시를 쓰는 분들이 좋다 - P42

후룩후룩 서러움으로 몸을 녹인다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된다 - P43

무엇이든 겉만 보고 가름하지 말거라
누구나 무지개는 가슴 안쪽에 둔단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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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많은 고양이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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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결말이 빨리 보이나 했다. 읽어야 할 장은 제법 남아 있는데 범인은 잡혔다고 하고 사건은 해결되었다고 하고 그러나 주인공 엘러리 퀸은 마냥 헤매고 있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일은 야구나 축구에만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고양이에게 왜 이런 시련을? 제목부터 범인을 지칭하는 이 말에 괜히 심술이 났다. 고양이가 뭘 어쨌다고? 나쁜 사람을 고양이에게 또는 동물에게 비유하는 일, 이것도 생각해 볼 문제겠다. 편견의 한 증상일 테지. 싫어하는 대상에 이입하는 것.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이 일 역시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바뀐 점일 테다. 


내내 두근거리면서 읽었다. 살인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사건 사이의 공통점은 찾아 내지 못하고 언제 누가 희생이 될지 모르면서 글만으로 짐작해야 하는 상황. 충분히 긴장했다. 이 작가의 작품들 중에 좀 특별하다 싶은 인상이 들 정도였다.(비교 분석은 하지 않을 테다, 할 수도 없겠고 그럴 시간에 작품 하나 더 보는 걸 하고 싶으니까. 읽고 잊고 또 읽고 잊어도 좋으니.)


명석함과 죄책감의 사이. 질투와 선망의 사이. 사람은 참 한심하기도 하고 위대하기도 한 존재인 듯. 각자가 따로 그러하기도 하고 한 사람 안에 두 면이 다 존재하기도 하고. 재미로 읽으면서도 나는 잠깐씩 깊이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용서해 줄 것은 아니나 이해는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해서라도.


다음 사건은 어떻게 일어날지 기대한다. (y에서 옮김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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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보니 괜찮아 - 달콤 쌉싸름한 어쿠스틱 싱글 라이프
다카기 나오코 지음 / artePOP(아르테팝)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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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는 일상을 재미있는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만화. 혼자 살기 때문에 자꾸만 게을러진다고 하면서 부지런해져 보려고 이 일 저 일을 도모하는 내용. 작가의 나이가 40이 넘은 것으로 나오는데, 그림에 보이는 모습이 어려 보여 귀엽게만 여겨진다.


책 안에 혼자 사는 일의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을 비교해 놓은 내용이 나온다.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다. 세상 사람 누구든 혼자 살거나 누군가와같이 살거나 할 테고, 혼자 있을 때는 같이 있고 싶어 하고, 같이 있을 때는 혼자 있고 싶어 하니 늘 자신이 가진 것의 좋은 점은 모르고 없는 것의 아쉬움을 찾는 형편이라고만 해 둘까.


사람 사는 모습 정말 별 것 없을 텐데, 우리는 날마다 무엇을 꿈꾸곤 하는 것일까. 어제와 달랐으면 싶은 오늘이나 오늘과 달랐으면 하는 내일이 그리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그날이 그날로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스스로는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 가고, 그러다 어느 순간 시간이 확 흘러 있음을 깨닫게 되곤 한다. 잊혀진 일은 잊혀진 대로, 기억에 남아 있는 일은 기억하면서 하루하루를 아깝지 않게 보내고 싶은 마음, 이게 소중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겠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에게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이 나온다. 곧 작가의 연애 이야기도 읽어 볼 수 있게 될까, 기대를 하게 된다.  (y에서 옮김201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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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궤도 2 - 하얀 비행기 신의 궤도 2
배명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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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나? 나로서는 있거나 말거나이지만. 있다는 것도 없다는 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세상이라고 하니,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이익을 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이고 보니, 신에 대한 상상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믿으면 믿어서 속게 되고, 속아서라도 행복해진다니 마냥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억지로라도 믿지 않아도 되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내 처지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작가의 상상력이 십오만 년을 넘어서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만큼 필요했던 것이다. 지구가, 태양계가, 우주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길 정도의 시간이라면 적어도 그 정도는 있었어야 했을 것 같다는 인정. 길어야 인간 수명 100년의 시대에, 내가 죽고 나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지 관계없다고 여기는 시대에, 살아도 살아도 끝이 없는 세상을 맞이한다면 그까짓 십오만 년 정도야 상상으로나마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소설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비행기였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비행기를 데리고 우주 저 멀리로 나갔다. 태양 에너지를 받아 조종사가 없어도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기들을 데리고. 물론 무인비행기를 모두 조종하는 사람이 한 명 이상 있어야 했지만. 가축비행기라니, 초반에 의아했던 점이 읽어 나가면서 이해가 되었다. 사람은 참 별 걸 다 기르는 종족인 셈이다. 실제로도 상상으로도.


이 소설을 쓰기까지 이렇게저렇게 모은 자료에 대해 작가가 남긴 말도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의 실패 사례가 누군가에게는 이런 방식으로도 도움이 되는구나, 어쩌면 우리 인간이 아주 머리가 나쁜 생명체로 멸망하지는 않겠구나, 떠들썩한 어리석은 사람보다 조용하면서 현명한 사람이 세상에는 조금 더 많은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소설을 통해 기대를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독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은 있는 것일까? 있어도 내가 만날 일은 없겠지?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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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은 죽었다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희재 옮김 / 검은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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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희생자를 미리 밝혀 놓은 소설이라니. 킹은 죽을 것이고, 어떻게 죽을지, 누가 왜 죽였을지를 알아내는 게 읽기의 목적이 되는 셈인데. 심지어 킹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나서고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이는데도 사건은 일어나고 만다. 그걸 탐정인 퀸 부자가 끝까지 파헤쳐 해결을 보는 이야기다. 

영화 같다. 이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해 본 생각이다. 범죄수사첩보영화. 이번 작품의 배경은 라이츠빌과 벤디고 섬. 두 공간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소설가는 이리저리 엮어가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인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둘 이상의 요소를 인과 관계로 엮어 내는 사람. 어쨌든 독자로서는 납득할 수 있어야 하니까. 왜 그랬는지, 무엇보다 왜 죽였는지. 

세상에 부자는 많을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부자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돈을 쓰고 사는지 작가들은 어떻게 취재해서 알아내는 것일까? 어디까지 소설(영화 혹은 드라마까지)이고 어디부터 현실일까?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나는 이런 게 좀 궁금하다. 그래서 소설로 보여지는 세상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와는 너무도 먼 세상의 이야기라서.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라서.  

이 작가의 책을 더 읽고 싶은데, 무엇이 남아 있나? (y에서 옮김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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