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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ㅣ 창비시선 476
이정록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쉽게 읽히는 듯 싶었는데 쉽게 다가오지 않는 시들. 나를 경계하는 듯하다. 쉬운 마음으로 다가서지 말라고, 여기 이 시들은 가벼운 목숨을 가진 게 아니라고, 자칫 쉽게 대하다가는 은근히 혼이 날 수도 있다고, 시가 내뿜는 리듬들이 나를 밀었다가 당겼다가 한다. 그래, 시를 읽다 보면 이럴 때도 만나는 것이지.
잔잔하면서도 깊은 아픔이 구절들 곳곳에서 느껴진다. 명랑하게 보였는가 싶었는데 무거운 운명을 달래고 또 감추려고 그랬는가 여겨졌다. 연약한 아이도 나이든 부모도 알지 못하는 순한 목숨들까지도 시인은 두루 어루만져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한데 시를 읽는 나는 힘을 보태지 못하고 물러 나온다. 힘겹다, 지친다, 안타까워서도 답답해서도. 어쩌면 시라는 장르에서는 시원한 기분을 얻을 수 없는 것일까.
시인에게서 구절 몇 개를 선물로 받아 옮긴다. 이 일만으로 나는 아주 조금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어떠랴, 이렇게 기대어 살아가는 거지.
내 우물 속 하늘은 당신이 높아질수록 깊어져요 - P17
맹물같이 말간 시를 쓰는 분들이 좋다 - P42
후룩후룩 서러움으로 몸을 녹인다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된다 - P43
무엇이든 겉만 보고 가름하지 말거라 누구나 무지개는 가슴 안쪽에 둔단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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