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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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같은 물음이라는 것, 이 책으로 또 확인한다. 나는 정치인이 아닌, 자유인인 이 작가, 글쓰는 사람인 유시민이 좋다. 다행이다, 이분이 작가로 돌아오셔서. 기다려도 좋을 분. 


문체는 거칠고 시원시원하다. 단호한 생각을 보이고 있으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 아량과 깊이가 내 마음에 든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바르다고 믿고 있느나 당신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고, 당신의 생각은 또 그대로 존중해 주고 싶다'고 말하는 자세.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나무라는 게 아니라 그대로 인정해 주겠다는 표현, 그러면서도 자신의 당당한 의견과 태도를 가지라고 당부하는 표현, 평소 섬세하고 다정한 표현을 좋아해 온 나로서는 의외의 호감이었지만. 


정치라는 게, 특히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라는 게 얼마나 지긋지긋한 것인지, 차라리 외면하고 말 정도로 둔감해 버린 영역이 되어 버렸는데, 외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정치 발전에서는 더 멀어지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정말 지긋지긋해서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이 되어 버렸는데. 그런 세상에 몸담고 있다가 다치고 깨졌던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니.(우리나라의 정치는 이대로 발전 중이라는 말, 지금은 비록 지긋지긋해 보여도, 어떤 식으로든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을 믿고 싶다.) 


이 책으로 내 나이와 내 삶과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끼리 공유하는 위로나 기쁨이라고나 할까. 깊이와 무게는 서로 같지 않더라도 함께 겪었을 아픔이나 분노나 희망이 느껴졌으니까. 


나도 나이 잘 들어가고 싶다. 일과 놀이, 사랑과 연대, 잊지 말고. 작가가 보여 줄 글, 계속 봐 가면서. (Y에서 옮김20130703)

일과 놀이가 인생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사랑과 연대라고 나는 믿는다. - P28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계속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이미 훌륭한 인생이다. 그대로 가면 된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고 느끼거나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직 충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더 훌륭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 P34

내가 돌 하나를 놓고 가면 다음 사람이 또 하나를 놓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민중이 역사의 강을 건너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징검다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 P36

세상은 제 갈 길을 가고,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자기 삶을 살 뿐이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소망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해 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이든 실패든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죄악과 비천함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악당이나 괴물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훌륭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이루든, ‘자기 결정권’ 또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 P37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 P56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 P89

만약 자식이 행복한 삶을 갈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꿈이나 희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자신의 소망을 자녀에게 투사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옳다고 믿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강제해서도 안 된다. 자녀들은 부모가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 P213

개인이 생존하는 데는 사회적 결속과 유대, 상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이기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과 쉽게 공감을 이루어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타인의 기쁨뿐만 아니라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대가 해고 노동자들의 고통과 죽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눈물이 나려 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임을 입증하는 생물학적 증거가 된다. - P248

진보주의를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라고 이해하면 그 차이를 비교적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진보는 서민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부자증세에 찬성하지만 보수는 반대한다. 진보는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와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내국인의 이익과 민족문화의 고유성을 중시한다. 진보는 동성애에 대해 너그럽지만 보수는 동성애를 혐오한다. 진보는 전쟁에 반대하고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부국강병을 좋아하고 외부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선호한다. 진보는 여성과 장애인등 소수자의 권익 보호를 매우 강조하지만 보수는 덜 그렇다. 진보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보수는 개인과 가족의 책임을 중시한다. - P254

나와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들의 복지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자발성, 이 모두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재능이며 본능이다. 이런 이타적 본성,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연대는 일, 놀이, 사랑과 더불어 삶을 의미 있고 존엄하고 품격 있게 만드는 제4원소이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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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속의 고양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수경 엮음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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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은 느낌? 이게 무섭다거나 으스스한 정도는 아닌데 약간 거북한 느낌? 비둘기들 속에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비둘기들은 고양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설정하고 짐작하는 느낌. 이 소설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스무 권의 전집 안에서 막연하게 고른 책이다. 재미있다. 초반에는 영화 같은 속도로 전개되었다. 비슷한 분위기로 미션 임파시블이 떠올랐다. 사건이 일어나고 곧 톰 크루즈가 나타날 것만 같은. 주인공인 줄 알았던 인물들이 죽어버리고, 중요하게 취급된 물건은 행방을 모르겠고, 뜬금없는 곳에서 살인 사건은 일어나고. 행동으로 해결하는 톰 크루즈 대신에 푸아르 탐정이 등장했을 때는 어찌나 놀라고 반가웠던지. 그때까지 조마조마했던 내 마음은 바로 안심이 되었다. 이제 해결되지 못할 일은 없구나 싶어서. 소설인줄 알면서 나는 번번이 이렇게 두근거린다. 


범인의 술수와 탐정의 해결책은 결국 통하는 길일 것이다. 어떤 목적으로 머리를 쓰느냐 그게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이겠지. 학교에서 추리 소설을 쓰게 하는 과정이 있는 나라도 있다는데, 논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르치는 방법으로는 꽤 근사하고 재미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짧은 추리소설을 쓰고 발표하는 수업, 그럴 듯한데, 내게는 이제 기회가 없네.


이제 다음으로는 몇 번을 골라 볼까? (y에서 옮김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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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과 교류의 문명사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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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와 낯선 곳에서 만나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저 사람은 나보다 힘이 셀까, 약할까. 저 사람은 나를 해칠까, 봐줄까. 내가 이렇게 생각하듯 저 사람도 이렇게 생각할까. 저 사람이 힘이 세면 내 것을 주어 달래고, 내가 힘이 더 세면 저 사람으로부터 뭔가를 받아서 경계를 늦추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온 것일까. 이게 만남과 투쟁과 교류의 역사였던 것일까. 만나서 눈치 보고 싸우고 얻고 물러나는 되풀이. 


역사가 꼭 이렇게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어찌 그리 만나면 싸우는가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식의 결론에도 이르게 된다. '신뢰'라는 감정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수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목숨에 대한 보장은 주어져야 생기는 감정일 테니. 


재미있게 읽었고 유익한 부분을 발췌했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아주 흐뭇해진다. 꽤 많은 지식을 내 머리 속에 담아 둔 것 같고, 이 지식이 앞으로의 생활 곳곳에서 쓰일 것만 같다.(사실은 거의 다 잊게 되겠지만) 가끔은 잘난 척 하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y에서 옮김20150824)

인간이 지구 환경을 변화시켜가는 현상을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까?


두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다른 모든 생물종에 심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의 암세포와 같은 면이 있다. 그렇다면 지구의 자연환경이 건강한 상태를 회복하도록 인간이 자리를 비켜주어야 마땅하리라.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지구가 수많은 생물의 기계적 생멸만 거듭하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문화가 연결되어 ‘의식’과 ‘정신’이 결부된 멋진 별로 탈바꿈한 것이 인간의 공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27

여기에서 한 가지 고려할 일이 있다. 농경 사회로의 이행이 반드시 개선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석기시대 사냥꾼들은 신석기시대 이후 농경민들보다 대체로 더 잘 먹고 더 건강하게 살며,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시간도 더 적게 들어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실제 구석기인의 유골과 신석기인의 유골을 비교하면 평균적으로 구석기인의 키가 더 크고, 건강 상태도 좋았음을 알 수 있다. - P36

농경의 시작은 결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획득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농경이 ‘발명’됐고, 한 지역에서 이루어진 방식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과거의 설명은 이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주 장기간에 걸친 유연한 과정이었고, 여러 현상이 복잡하게 얽힌 다면적인 현상으로 이해된다. 즉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기술과 문화가 오랜 기간 조정되고 발전하며 서서히 형성된 결과다. 결국 신석기 농업혁명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정확하게 됐다. 그러나 그 결과가 실로 혁명적이라는 점은 여전히 타당하다. 인간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고, 역사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 들어갔다. 인류는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내부적으로는 통제와 억압, 불평등이 심화됐다. 그것이 꼭 행복으로 향한 길이었는가는 별개의 물음이다. - P42

유럽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사람의 입맛은 그토록 간사한 것인가, 이제 유럽의 소비자들은 단순히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부드러운 고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블링이 있는 꽃등심처럼 고기 사이사이에 지방이 들어가도록 하는 게 좋다. 그런 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일단 소들을 목초로 사육하다가 적당한 때부터 곡물을 먹여서 지방질이 늘어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때마침 미국 중서부 지방에서는 옥수수 재배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옥수수가 남아돌아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옥수수를 소에게 먹이고 질 좋은 고기를 생산하여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 팔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쪽에서는 당장 사람이 먹을 식량이 부족한데 다른 곳에서는 엄청난 양의 곡물을 소에게 먹이는 기묘하고도 불합리한 일이 벌어졌다. - P53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이렇게 수출되는 고급 포도주는 오래된 포도주가 아니라 바로 그해에 만든 술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포도주 품질이 개선되는 게 아니라 대개 시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아진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대부분의 백포도주 혹은 중급 이하 적포도주는 적정 시기가 지나면 오히려 품질이 떨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품질이 개선되는 것은 일부 고급 적포도주에만 한정된 이야기이며, 그나마 포도주를 병에 담가 보관한 이후의 일이다. - P113

20세기 후반부터 포도주의 생산과 소비는 이전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변화의 바람의 근원에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해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칠레 등 이른바 ‘신대륙 와인’이 있다. 이 지역들은 새로운 소비층의 요구에 맞추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되 기계화와 생화학 발전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포도주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산지’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포도 품종을 내세우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 방식이 극단화되면 미래의 포도주는 공장에서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예컨대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포도를 땅값과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대량 생산한 다음 그 즙을 공장에 가지고 와서 정확한 효소를 집어넣어 발효시킴으로써 부르고뉴의 명품 포도주를 거의 그대로 복제할 수 있다. 코르크 마개가 점점 귀해지므로 거의 같은 효과를 내는 플라스틱 마개를 쓰고, 참나무통이 비싸므로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를 쓰되 그 안에 참나무 조각들을 집어넣어서 유사한 효과를 내는 식으로 변화가 진행 중이다. - P119

왜 정치권력이 성유물의 수집에 그토록 열심이었을까? 과거에 통치의 정당성은 종교적 성스러움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대 초 유럽의 군주들이 가진 힘의 근원은 종교와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프랑스 국왕은 왜 국왕인가? 어떤 근거로 그가 프랑스 사람들을 통치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국왕이 신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나라 백성들을 다스리게 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다. 프랑스 국왕은 대관식을 할 때 랭스대성당에서 도유식을 하는데 이때 왕의 몸에 바르는 기름은 성령의 비둘기가 직접 천국에서 받아가지고 왔다고 설명했다. 국왕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잘 지키기 위해 정치권력을 부여받은 하느님의 지상 대리인인 셈이다. - P136

우리는 바이킹을 전사, 해적, 모험가 등의 이미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보다 낭만적인 측면은 떨어지지만 사실 이들은 상인으로서 더 큰 의미를 띤다. 아니, 그보다는 상업 행위와 약탈 행위를 동시에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우리 생각에는 교역과 약탈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개의 행위지만, 과거에는 그 두 종류의 행위가 언제든지 병립 가능한 일이었다. 낯선 지역에 들어간다는 것은 언제 공격당해서 생명을 잃거나 상품을 빼앗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무장을 튼튼히 해야 했다. 그런데 이것은 정반대로 말할 수도 있다. 낯선 곳에서 내가 약탈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상대의 무력이 아주 약할 경우 언제든지 약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무력행사가 실익이 없을 경우에는 물론 적절한 교환 행위를 통해 서로 만족스러운 이익을 얻으면 된다. 이처럼 교역과 약탈은 사정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대처하는 두 가지 양식일 뿐이다. - P178

댐피어의 시대는 해적의 초기 전성기였다. 유럽의 해외 팽창이 절정에 이르면서 해적 역시 함께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우리말로 해적이라고 하면 완벽한 무법자로서 상대가 누구인지 가리지 않고 약탈하는 ‘날강도’를 연상할 것이다. 그런데 유럽 해적의 변천 경과를 보면 초기의 해적은 국가를 대리하여 적을 공격하는 무장 세력이었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대적해야 하는 상대를 민간업자가 공격해서 그 자신은 이익을 얻고 국가로서는 적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댐피어가 바로 그런 성격의 해적이었다. 그러나 다음 시기가 되면 해적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국이든 적국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배를 공격하는 완전한 무법자로 변한다. - P212

18세기는 또한 과학의 시대였다. 태평양이나 인도양 남쪽 바다는 아직 완전하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으므로 이곳을 과학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각국에서는 과학이 국력과 직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던 때였다. 따라서 새로운 바다로 항해해가서 그곳을 소상히 관찰하는 것은 차후에 그 지역을 지배·정복하는 전 단계였다. 정치·군사적 지배와 과학적 ‘지배’는 병행하여 이루어졌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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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죽음이 오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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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상상이지만, 이 상상이 너무도 그럴 듯해서, 작가의 글솜씨에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있어서 나는 그만 실제의 이야기처럼 느끼고 만다. 아니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면서도 또 스스럼없이 믿게 되는 그런 이야기. 


BC4000년 나일 강가 배경. 부유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 그때 그 시절에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지는 모르는 일이고, 이 작가처럼 지금까지 남아 전해지는 자료들로 추측할 수밖에 없을 텐데, 참 멋지게도 상상해서 지어냈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들 모습과 이렇게도 닮아 있는 것인지. 그것도 이집트 사람들 이야기라는데, 영국 작가가 100년 전에 쓴 이야기라는데, 우리의 도시 어느 집에서 일어난 이야기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그런 이야기.  


추리 소설이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조건을 품고 있는 갈래이니 마땅히 사람 마음에 대해 궁리하게 되는 건데 이렇게 연달아 범죄를 저지르는 글을 읽으면서 흥미를 느끼고 있는 내가 도로 낯설어진다. 내 안의 어떤 점이 질리지도 않고 이렇게 계속 빠져들어 있게 하는 것인가 하고. 현실을 모른 척 하고 싶은 마음도 좀 있고, 기어이 잡히고 말 범인의 행적을 따라다니는 재미도 좀 느끼고 있고, 이 시리즈 20권을 기어코 끝내고 싶다는 의지도 좀 있고 그런 것일 텐데. 


이 소설에는 의아한 점이 남는다. 레니센브의 마지막 선택이 납득되지 않는다. 번역 과정에서 내용의 일부를 빠뜨리기나 한 것처럼 비어 있는 곳이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명쾌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을 그렇게 미적거렸나 싶어서. 사람의 영혼이라는 게 이토록 명쾌할 수 없기도 하고.  (y에서 옮김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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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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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소재로 꾸민 소설집이다. 음악이라고 해서 본격적인 음악 관련 이야기는 아니고, 도구로 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재미있다. 이 작가의 상상력은 읽고 싶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현 시대의 씁쓸한 정경도 담겨 있다. 음악이 우리네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음악이라도 있어 살만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여백을 느끼게 하는 소설들. 고단한 인생의 날들에 이만큼이라도 위로가 되어 줄 무언가는 있어야 하니까. 


실린 글 중에 특히 내 마음에 든 글은 '유리방패'와 '엇박자 D'다. 다른 글에 비해 더 애처로워서 마음에 잡혔는지도 모르겠다. 예정대로 펼쳐지지 않는 삶, 노력한다고 해서 대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닌 삶, 남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만 해서는 도대체 얻을 것이 없게 되고 만 시대적 상황 안에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모범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을 비틀고 튕기면서 낄낄거리는 모습들. 


재미는 있어도 답답함은 남고, 이 답답함마저 품을 수밖에는 없겠으나 이 또한 현재 우리 삶을 반영하는 것일 터이므로 받아들이기는 한다. 작가의 세상에 대한 애정도 그렇게 유지되는 것이겠지. 그리고 작품이 남는 것일 테고. 내게는 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야겠다.(y에서 옮김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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