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계절
구효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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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간절하게 파묻히도록 하다니겨울은 겨울답게여름은 여름답게봄은 봄답게가을은 가을답게더할 수 없이 절절하게 그 계절을 느끼고 살게 한다지독하다. 지독해서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겠는데, 처음에는 지긋지긋했다가 나는 점점 좋아졌다.  계절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확실한 얼굴을 보여야지 싶으면서.

 

이 작가를 좋아하므로좋아해서 갖는 선입견도 있다이 소설집은 이 선입견이 소설을 읽는 나를 좋은 쪽으로 더 자극했다내가 모르고 있던 작가였다면 이만큼 몰입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이 작가니까이 작가가 쓴 글이니까이 작가가 이렇게 썼다면 이렇게 쓴 이유가 있을 테니까내가 그 이유를 금방 알아내기 힘들어도 분명히 이렇게 쓴 어떤 의도가 있을 테니까그 이유를 찾아내는 일은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일 테니까그러면서 읽었다그리고 역시 그러하였다.

 

이야기나 사건이나 인물의 감정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상황이인물이 처한 상황이그 상황을 바라보는 인물의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그 계절에 그 인물의 곁에 바짝 다가서 있는 느낌이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그런데 그런 눈으로 같이 바라보는 게 마냥 상쾌하지가 않다. 온몸이 자잘하게 떨리고 불만스럽고 될대로 되라는 기분이 제멋대로 든다. 작가가 의도했던 것일까. 세상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도 않는데, 한 번 더, 아니 몇 번씩이나 되새겨주는 것처럼, 거봐, 지치지? 힘들지? 포기하고 싶지? 그래도 포기가 안 되지?, 약올리는 것처럼.

 

다른 책에 비해 나로서는 오래 갖고 다니면서 읽은 책이다. 후루룩 넘겨버리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 더 읽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17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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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 견문록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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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다는 느낌, 이 느낌만 붙잡고도 책을 만들어낸다. 글과 그림과 만화까지 섞어서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의 귀여움을 놀랍도록 펼쳐 보이는 작가. 나는 왜 이런 귀여움을 못 느끼는가 살며시 한숨이 나오던 게 여러 번이다. 뭔지 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드는 거다. 다른 사람은 충분히 느끼는 감각을 나는 못 느낀다 싶으니까. 그게 아무리 하잘것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어쨌든 대단하다. 내가 가장 대단하다고 여긴 점은 관련 책을 찾아본 작가의 정성이다. 일본에는 이런 책도 있나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몇몇을 옮겨 본다. 일본어린이놀이 대도감, 에도 시대 어린이놀이 대사전, 실뜨기학, 전승놀이 사전, 멜론빵의 진실, 상쾌한 입김의 과학, 쇼와레트로 박물관, 부전나비 관찰사전, 철도 도시락학 강좌, 젓가락, 고양이 사전, 고양이 교과서, 생활의 말 신 어원사전, 도설 에도요리사전, 사전 화과자의 세계, 일본명과사전, 색이름 사전 507 등등. 어쩌면 우리에게도 비슷한 책들이 이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모르고 있을 뿐. 귀여움을 글로 옮기기 위해 이런 자료들을 다 찾아봤다니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다.

귀여운 것들은 사실 생존의 필수 요소는 아닐 것이다. 이왕이면 귀여운 게 보기도 좋고 마음도 놓일 테니 선택을 하는 때가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바로 이 귀엽다는 이유로 거부하기도 할 것이다. 귀여움은 자칫 가볍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이게 싫을 수도 있을 테니까. 나는 귀여운 것에 평균 이상으로 끌리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귀여운 그림, 귀여운 색깔, 귀여운 느낌 등등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귀여움의 세계가 내가 생각해 오던 것보다 엄청 넓어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주변의 물품들을 주의깊게 보게 되는 후유증이 생긴다. 이게 귀여운 건가, 얼마나 귀엽다고 할 수 있는가, 귀여워서 내가 지금 좋은가... 후훗, 한동안은 이렇게 묘한 기분에 시달릴 듯하다. (y에서 옮김20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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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선현경의 일일일락
황인숙 글, 선현경 그림 / 마음산책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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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무조건 산다. 그리고 무조건 호감으로 읽기 시작한다. 혹 마음에 안 든다 싶어도 무조건 이해해 주려는 마음으로 읽는다. 그러면 그러는 내내 행복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작가는 아마도 제한된 글의 분량 조건 때문에 할 말을 길게 풀어내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 같다. 분명히 좀더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도 서둘러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글들이 꽤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작가는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써 놓은 것인데, 내가 그 완결성을 알아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글의 완성도에 대한 내 편견. 어?, 이렇게 글이 끝난 것인가 의문하면서 넘기다 보니, 또 그런대로 여운의 맛이 있다. 나는 이 작가의 글을 비판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싶었으니까.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해 본 작가의 일상-고양이, 시인들과의 교제, 음식, 쇼핑, 여자들의 수다, 나이든 여자 솔로의 우아함과 서글픔,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이런저런 여행담, 그리고 친구 이야기.

하루에 하나씩만 즐거움을 글로 적을 수 있다면 그 삶은 너무나 행복한 것이리라 싶다. 곁들여 보여주는 선현경의 그림도 정답고,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은 소소한 기쁨이 예쁘다. 내 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인데, 느끼고 생각하는 게 다르고 차이가 날 뿐인 것 같다. 나도 행복하고 기쁜 하루하루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매일 기쁜 일 하나씩 구해서 글로 써 나갈 수만 있다면.. (y에서 옮김200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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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찐빵 - 겨울 아이세움 그림책
문채빈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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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보는 재미가 조금씩 늘어난다. 이미 본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자꾸 늘어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동화 속 천진난만함을 배워 보겠다거나 누려 보겠다는 기특한 의도가 아니라 그저 예쁘고 귀엽고 맛있어 보이는 그림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장면에 머물고 있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이 정도의 바람은 충분히 이루어도 될 것 같으니.

생쥐 형제 일곱 마리가 주인공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으로 4권이 나와 있고 이 책은 겨울 배경이다. 계절별로 생쥐 형제들이 만들어 내는 요리가 다르며 이 책에 나오는 요리는 찐빵이다. 따끈따끈한 찐빵이라니. 생각만 해도 따스해지는 기분이다. 현실의 나는 찐빵을 거의 먹지 않고 있지만.

얼음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고 싶었지만 실패한 생쥐 형제들. 마을 친구들과 힘을 합쳐 찐빵을 만든다는 줄거리. 만들어 놓은 찐빵에 도레미파솔라시의 첫음으로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이 상상력 무척 귀엽다. 아이들도 알아 줄까? 당연히 알아 주겠지?

평화롭고 활기찬 그림책 속 마을 풍경이다. 부럽다. (y에서 옮김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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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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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보여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내 나이와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는 절대로 가 볼 수 없는 곳, 이전에도 앞으로도 내 힘으로는 겪을 수 없는 세상을 보여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러면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닌, 조금은, 아주 일부는 내 것과 닿아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더 빠져들 수 있으니까.

어쩌다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잡혔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첫 편을 읽었는데, 언젠가 다른 곳에서 읽었다는 느낌이 왔다. 그때도 괜찮은 글이구나 싶었던 것 같은데 작가 이름을 외우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제 외워야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목록에 당당히 그녀의 이름을 올려놓을 테다. 또 앞으로는 그녀 이름만 보면 즐거이 찾아 읽을 테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일, 그것도 가난한 사람의 서울살이,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졸업했거나 갓 취직을 했거나 취직을 못해 찾고 있거나, 내 한 몸 누일 방 한 칸 구하는 일,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가 금방 사그라들고 마는 감정의 굴곡들. 그런 일들. 글 속에서 내 지난 날이 슬금슬금 되살아났다. 쓸쓸했던 기억마저 달콤해지려고 했으니 이래서 글이 좋은 것인가 보다.

소설에서 방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젊어 울산에서 혼자 옥탑방에 살 때의 기억이 가장 새롭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으니. 그때 밤버스를 타고 가며 저 많은 불빛 속에 나만의 불빛이 없어 서글프고 낙담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우리집을 만들어준 남편이 고맙고 기특하다. (y에서 옮김200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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