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보여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내 나이와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는 절대로 가 볼 수 없는 곳, 이전에도 앞으로도 내 힘으로는 겪을 수 없는 세상을 보여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러면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닌, 조금은, 아주 일부는 내 것과 닿아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더 빠져들 수 있으니까.어쩌다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잡혔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첫 편을 읽었는데, 언젠가 다른 곳에서 읽었다는 느낌이 왔다. 그때도 괜찮은 글이구나 싶었던 것 같은데 작가 이름을 외우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제 외워야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목록에 당당히 그녀의 이름을 올려놓을 테다. 또 앞으로는 그녀 이름만 보면 즐거이 찾아 읽을 테다.서울에서 살아가는 일, 그것도 가난한 사람의 서울살이,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졸업했거나 갓 취직을 했거나 취직을 못해 찾고 있거나, 내 한 몸 누일 방 한 칸 구하는 일,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가 금방 사그라들고 마는 감정의 굴곡들. 그런 일들. 글 속에서 내 지난 날이 슬금슬금 되살아났다. 쓸쓸했던 기억마저 달콤해지려고 했으니 이래서 글이 좋은 것인가 보다. 소설에서 방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젊어 울산에서 혼자 옥탑방에 살 때의 기억이 가장 새롭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으니. 그때 밤버스를 타고 가며 저 많은 불빛 속에 나만의 불빛이 없어 서글프고 낙담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지금 우리집을 만들어준 남편이 고맙고 기특하다. (y에서 옮김2007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