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문학동네 시집 22
이윤학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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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읽으면 촌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정작 촌스러운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시들, 그래서 도시적인가 싶어 굳이 도시스러운 표현을 찾으려고 하면 또 숨어버리고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것들의 애달픈 목숨들이 시집 곳곳에서 떨고 있는 것만 같다. 강한 것보다는 약하고 여린 것들, 싸워 이기고 싶기보다는 보듬고 안아주면서 오로지 보살펴 주어야만 할 것 같은 숨어사는 것들의 작은 목소리를 대신하며.


시집 표지의 시인은 밝게 웃고 있는데 나는 시집을 읽으면서 세상의 여린 목숨들만 자꾸 생각했다. 강하고 힘센 것들은 시인이 노래할 수 있는 소재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의아해 하면서, 왜 이토록 아프고 지치고 슬픈 영혼들만 눈에 띄는 것일까 새삼스러워하면서. 시는 본질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위한 노래인 것일까 체념조차 하면서.

읽어 본다면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너무도 친숙한 우리 주위의 풍경들이 조금은 낯선 표정을 지으며 자리하고 있을 시편들을 통해 지금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으로부터 정말 새롭게도 고마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오락실이나, 약국이나, 쓰레기통이라고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인상깊은구절]

안 보이는 곳의 상처를
날개로 퍼낼 수 있다면

비둘기들은 이제
나뭇가지에 앉아
날갯죽지 속에
고개를 넣고 있다

수은등이,
나뭇가지 위의 거지들을 비추고 있다
거지들은 나무의 상처인 열매들처럼
제 몸으로 둥지를 틀고 있다
 

(y에서 옮김200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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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24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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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한 장면 한 장면에 주의하면서 본다. 와카코의 술을 사랑하는 눈빛에도, 술과 어울리는 맛있는 안주에도, 주인공이 되는 여러 종류의 술에도, 무엇보다 한 잔의 술에 하루의 피로를 씻고 새 날을 기대하는 와카코의 독백에도, 어느 하나 빠뜨리고 싶은 것이 없다. 절대로 과음하지 않는, 딱 마셔도 좋을 만큼만 마시고 즐기는, 혼자서도 충분히 세상의 중심이 되어 살 수 있다는, 작가가 자신을 투영하였을 와카코의 절제하는 자세가 부러울 따름이다. 만화라서 가능한가?


술을 잘 못 마시고, 맛있는 안주에 대한 호기심도 전혀 없는 나로서는 이 만화가 나올 때마다 사서 보는 내가 도로 신기하다. 지금보다 아주 나중에도 다시 꺼내 보아야지 하는 만화 시리즈다. 내 노년의 벗으로, 지금은 눈이 이만큼 밝을 때 좀 더 모아 두어야 하니.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와카코의 독백에도 작가의 철학이 보인다. 이제야 내가 발견한 것일까? 작가는 진작부터 말해 왔는데? 앞서 본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지금의 발견에만 주목한다. 이전 책을 꺼내어 있나 없나 확인하고 비교해 볼 생각도 없다. 그저 지금의 장면들, 지금의 감상에만 빠져든다. 지금 마시는 술 한잔이 충분하다는 듯이.


봐도 봐도 부러운 장면, 혼자 들어가서 호젓하게 술 한 잔과 안주 한 접시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남의 나라 현실. 이도저도 못하는 나는 이 만화로 달랜다. 이대로 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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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유희경 지음 / 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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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시집 서점이 신촌에 있다는 기사를 보고 찾아간 적이 있다. 약도를 보고 몇 바퀴를 돌면서 찾았는데 끝내 보이지 않았다. 곧 알아냈다. 혜화로 옮겼다는 것을. 이후 혜화동에 갔다가 지나가면서 2층에 있다는 이 서점을 봤다. 일정에 쫓겨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고, 언젠가는... 하는 기대감만 품었다. 서울에 살지 않는 나로서는 서점에 들러 보는 이 일마저도 계획과 실행에 상당한 준비가 있어야 하니까. 그런 와중에 코로나 19로 인해 내 서울 나들이는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는데. 마침내 이 책을 보았다. 이제는 더 가 보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만 했다. 한번은 가 보고 싶다. 가서 두 시간 정도 머물면서 놀면서 헤매고 싶다. 그러려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야 하고 또 지하철을 타야 하고 서점에서 머무르겠다고 다짐한 시간과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릴 시간을 합하면 아무래도 하루로는 어려울 것 같은데, 나는 이 여정을 위해 1박 2일 이상의 계획을 정녕 세워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이게 또 뭐라고 못하고 있는 걸까......


서점을 지키는 시인도 모르는 척 살그머니 지켜 보고 싶고, 이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도 고르고 싶고(사인은 꼭 안 받아도 괜찮음),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집 중 미처 갖지 못한 책을 찾아내어 카트에 담고 싶고, 그래서 다행히도 한아름이 넘으면 박스에 담아 택배로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내가 보낸 책 택배상자를 내가 받아 풀어 보고 싶다는... 그리고 한 권씩 꺼내어 나란히 줄 세워 놓고 골라서 보고 싶다는... 이런 바람들로.    


내가 지금 시를 읽고 지내는 마음만큼만, 다른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시집을 모으는 일에는 정성을 들이는 만큼만, 시로 내 삶의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같이 지내겠다는 바람만큼만.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본 것이지만 위트 앤 시니컬에 가서 꼭 구해 오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y에서 옮김202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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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5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27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를 울렸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05
이윤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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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어떤 삶은 참 수월해 보일 때가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의 삶은 더할 수 없이 고단해 보일 때가 있다. 당사자의 실제 상황은 모르는 채로 그렇게 보이는 내 눈, 그건 곧 내 삶의 상황인 것일까.


이 시집, '처절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말이 이 말이었다. 다 같이 주어진 목숨일 텐데, 누군가에게는 살아 있는 일 그 자체가 힘든 고통의 시간으로 읽혔고, 그러면서도 견디고 나아가는 애절한 의지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나는 이런 취향의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남의 것에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남의 이야기, 남의 사연, 남의 눈물에 내가 눈물을 흘리는 건 뭘까. 나의 무엇이 서럽고 안타까워 남의 것에 우는 걸까. 울다가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싶어 피시식 쓴웃음 떠올리게 되는 그 쑥스러운 외면, 부끄러운 눈물은 누구에게 들키기 싫은 것일까. 이 시집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눈물 글썽이고 싶었으나 끝내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도 몇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다. 외면하고 싶은 누추한 삶의 이야기 사이사이, 내 눈에 반짝거리는 구절 몇 편 찾았다. 마치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 사이에 스치는 옛님의 기억을 떠올려 만난 것처럼. 아직은 의식의 한 켠에 싱싱하게 살아 있는 내 영혼의 젊은 얼굴을 만난 것처럼.  (y에서 옮김20131019)

그대가 남긴 유일한 연인이 되어
보리수 꽃과 열매가 모두
웃음에 닿도록 하리라 - P12

꽃잎이 모으고 있던 봄빛들이 - P22

모든 날들이 부서지는 날들이었다 - P42

네가 없음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들
생기를 잃어가더니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더라 - P68

네 생각이 내 생각과 같을 것 같아
망설이던 순간들이 있었지 - P88

내가 당신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당신이 내 곁을 떠도는 영혼이었듯이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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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참새 캐드펠 수사 시리즈 7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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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의 활약담을 보고 있자니 자꾸 수도원이라는 곳이 궁금해진다. 그곳은 어떤 곳이기에 당시 그런그런 사회적 역할들을 모두 담당하고 있었던가. 수도원이라는 장소의 특수성, 수도원에서 살고 있는 수사들의 각기 다른 임무들, 쫓기든 밀리든 숨든 수도원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가여운 영혼들. 나는 수도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자료를 찾아 보겠다는 데까지 이른다.


살인자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던 젊은이가 수도원으로 간신히 들어온다. 그리고 범죄가 밝혀질 때까지의 40일 간을 보장받는다. 수도원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된다. 그동안 진짜 범인을 잡든지, 못 잡으면 이 젊은이가 잡혀 가든지 하는 상황이다. 캐드펠은 젊은이를 믿는다,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캐드펠의 시선을 따라 나도 믿는다, 이런 젊은이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나 젊은이는 어떻게 혐의에서 벗어날 것인가, 책 한 권의 기나긴 여정이 남아 있고 나는 두근거린다. 이번 독서는 쉽지 않겠군.


젊은이가 저질렀다는 살인은 없었다. 알고 보니 도둑을 맞았을 뿐이고 젊은이는 다시 도둑의 혐의를 받는다. 그리고 진짜 살인이 일어난다. 수도원에 있기만 했던 젊은이가 다시 위험해진다. 살인이 일어났을 시간에 젊은이는 수도원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해결하게 될 것인가, 왜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 기어이 나가는가 말이다. 답답하고 안타깝고 무모하고 나는 소설이라도 흥분한다. 그놈의 사랑이 무엇인지. 제 목숨이 지독한 위험에 처해도 사랑은 지키고 싶은 모양이다. 현실에서도 그러할까? 괜히 현실을 탓한다, 그럴 일은 없지 않느냐고.  


사건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범인도 다른 쪽에서 찾아야 할 상황에 이른다. 캐드펠 수사는 휴 베링어 행정 장관과 지혜를 모아 추리력을 발휘하고 해결 방향으로 사건을 이끌어 간다.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이끌어 간 것인지 애매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젊은이의 애달픈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의 인물 창조 능력에 거듭 감탄한다. 아마 이 시리즈를 읽는 내내 나는 감탄할 것만 같다. 평범해 보이던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진다는 것, 범인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이 범인의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 상식보다는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에 빠져 가족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잃기도 한다는 것. 1140년에도 사람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았을까? 이야기로 꾸며낸 소설이지만 나는 작가의 상상력에 깊이 빠져든다. 


몰랐던 먼먼 곳의 세상 이야기를 읽는 요즘, 즐거운 독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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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5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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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7 15: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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