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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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보여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내 나이와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는 절대로 가 볼 수 없는 곳, 이전에도 앞으로도 내 힘으로는 겪을 수 없는 세상을 보여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러면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닌, 조금은, 아주 일부는 내 것과 닿아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더 빠져들 수 있으니까.

어쩌다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잡혔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첫 편을 읽었는데, 언젠가 다른 곳에서 읽었다는 느낌이 왔다. 그때도 괜찮은 글이구나 싶었던 것 같은데 작가 이름을 외우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제 외워야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목록에 당당히 그녀의 이름을 올려놓을 테다. 또 앞으로는 그녀 이름만 보면 즐거이 찾아 읽을 테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일, 그것도 가난한 사람의 서울살이,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졸업했거나 갓 취직을 했거나 취직을 못해 찾고 있거나, 내 한 몸 누일 방 한 칸 구하는 일,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가 금방 사그라들고 마는 감정의 굴곡들. 그런 일들. 글 속에서 내 지난 날이 슬금슬금 되살아났다. 쓸쓸했던 기억마저 달콤해지려고 했으니 이래서 글이 좋은 것인가 보다.

소설에서 방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젊어 울산에서 혼자 옥탑방에 살 때의 기억이 가장 새롭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으니. 그때 밤버스를 타고 가며 저 많은 불빛 속에 나만의 불빛이 없어 서글프고 낙담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우리집을 만들어준 남편이 고맙고 기특하다. (y에서 옮김200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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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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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설계에 문학상이 얼마나 있을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아는 이름도 모르는 이름도 보이고 꽤 되는구나 싶다. 이건 독자인 내 생각이고 작가들은 부족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한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부지런히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확 시들해졌고 이는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대한 내 호감도가 떨어진 탓이기도 할 테다. 한동안 못 본 기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의외로 만족스럽다. 


수장자가 누구인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실린 글들을 통해 소설이 쓰인 시기를 짐작해 보는 재미를 찾는다. 2022년 9월에 발간한 수상작품집이니 대략 2021년에서 2022년 사이의 소설 속 배경이겠다. 벌써 3-4년이 흘렀구나,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기간이었구나, 내가 충청도에 살았던 시절이구나... 소설보다 소설을 읽는 나를 먼저 생각한다. 이 또한 소설을 읽는 중요한 재미 중의 하나.


김애란의 '홈 파티'가 인상적이다. 다들 조금씩 갖고 사는 허영, 물질이든 정신이든 다른 사람보다 잘난 척하고 싶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은근하면서도 섬찟한 기분으로 들여다보았다. 지금의 내가 있었고 바라는 내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내게 없는 욕망도 있었고. 소설을 읽으면서 내 속의 바람직하지 않은 허물을 마주하거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이 나는 참 반갑다. 소설이 아니었으면 이런 기회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으랴. 김애란의 최신작에 다시 관심을 가져야겠다.


문지혁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읽는 내내 마음이 쓰렸다. 어떤 사고는 직접적으로 당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처럼. 강이나 바다 위에 세워진 다리를 건널 때마다 내 마음이 괜히 철렁 내려앉는 것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서울의 성수대교 붕괴 사건 때문이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나는 이 다리 아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탓일까? 이동을 위해 다리를 건너는 일 말고 관광지의 다리나 출렁다리 따위를 나는 전혀 걷지 않는다. 어떤 작은 재미도 없으니까. 나는 이런 하찮은 아픔을 소설로 쓰지 못하지만 소설가는 진실한 소설로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에도 관심을 가져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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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좋아! 토끼 베이커리 아르볼 상상나무 13
마츠오 리카코 지음, 김숙 옮김 / 아르볼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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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마다 예쁘다고 느끼는 그림의 유형은 다를 것이고 나는 동글동글한 느낌을 받는 그림을 좋아한다. 인물이든 동물이든 집이든 꽃이든. 모가 나지 않아서 동글동글한, 그래서 마음이 동글동글해지는.


토끼 다섯 마리가 이동식 차를 타고 다니면서 방문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런 상상, 소박한 듯 보여도 대단히 큰 꿈을 담고 있다. 자유로우며 창의적이고 그러면서 다른 이를 위하는 마음까지 고스란히 발휘하며 사는 삶. 토끼들이 요리해 내는 음식들이 맛있어 보이는 것도 참 좋다. 먹어 보고 싶을 만큼.


시간적 배경은 겨울. 눈이 쌓여 있어도 전혀 추워 보이지 않는다. 같이 눈썰매라도 타고 싶을 만큼 포근하다. 눈밭에서 혹은 얼음판 위에서 즐겁게 놀고 난 후 토끼들이 만들어 주는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 더없이 행복할 테다. 이 책을 보는 동안 나는 내 나이를 잊는다. 이게 어때서? (y에서 옮김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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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창고로 가는 길 - 박물관 기행 산문
신현림 글, 사진 / 마음산책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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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세 가지 바램. 떠나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내 이 바램 세 가지를 너무나 잘 녹여 놓은 이 책. 나는 작가를 부러워했다가 곧 시기질투하기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세상과 자연을 보는 눈, 그 마음을 글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 게다가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힘까지.

어느 쪽부터 시작하더라도 상관이 없으며, 어느 박물관을 먼저 가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자유로움 속에서 마음껏 펼쳐져 있는 작가의 상상력. 언젠가부터 잊고 살아온 듯 싶은 우리의 옛 그림자와 시간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서 따뜻한 사랑과 관심의 눈으로 쓰다듬는 작가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들.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읽고 또 보면서 나는 작가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렇게 쉽게 내가 누려도 되는가 싶었던 것이다. 이 글들을 쓰기 위해 전국을 떠돌면서 작가는 얼마나 고생했을 것인가. 게다가 글은 또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 정신은 얼마나 건강한가. 곳곳에 배여 있는 삶에 대한 작가의 겸손하면서도 치열한 정신이 나를 내내 감동시켰다.

정말 나도 떠나고 싶다. 그리고 써 보고 싶다. 이 작가와 같은 수준의 멋있는 글을 쓰지 못한들 어떠랴. 내게 보이는 것, 내가 느끼는 것, 내가 깨달은 것들을 순서없이 마구 써내려갈 수만 있다면, 그런 여건만 마련된다면 나도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 행복한 이 작가처럼. (y에서 옮김20010523)

최근에 선물받은 책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
제목이 너무 좋다. 나는 여전히 줄을 치면서 책을 보는데 이 책에 줄친 부분이 뒤로 갈수록 줄어든 아쉬움은 있으나, 앎에 대한 열정을 부추기는 대목 하나 다시 읽는다.

나는 벌컥벌컥 술장을 비우듯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어냈고 책의 나라와 대륙을 모두 섭렵했으며, 아무리 읽어도 늘 책에 허기져 있었다. 엘리자베스시대의 극작가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러시아 소설가들, 초현실주의 시인들, 나는 두뇌에 불이라도 붙은 듯 책을 읽지 않으면 목숨이 꺼지기라도 할 듯,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다. 한 작품은 다음 작품으로 이어졌고, 하나의 사상은 다른 사상으로 이어졌고, 세상사에 대한 생각은 다달이 바뀌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작가라면, 온통 알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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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련
미셸 뷔시 지음, 최성웅 옮김 / 달콤한책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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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꾸려 놓은 상상력과 독자가 풀어나가는 상상력의 경계. 인생이라는 게 단순하게 표현하면 게임일 수 있고, 무겁게 말한다면 경쟁이 되는 것일 텐데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벅찬 생애이겠다. 단순한 게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은 내 것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그런 대로 받아들일 만하겠지만. 


올해 읽은 소설 가운데 나의 다섯 손가락 안에 넣어둘 책이다. 이후로 읽을 소설을 비교하는 기준으로 삼아도 좋을 만큼. 썩 좋은 글이었다. 화가 '모네'에 대한 막연한 나의 호감을 바탕으로 추리와 심리와 애증과 갈등을 멋지게 보여 준 소설. 읽는 중간에도 다른 책에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나를 집중시켰고 끝까지 읽어야만 알 수 있도록 결말을 장치해 놓고 조바심을 갖게 한 소설. 차마 다음 페이지에 미리 눈돌리지 말도록,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게 하는 소설. 삶이 이럴 수도 있다니. 


사랑과 집착은 또 어떻게 구별지어 판단해야 할까.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나에게 집착하는 것. 또는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내가 집착하는 것. 그 사이에 떠도는 행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은 흘러갈 테고, 나이는 먹을 테고, 생이 다하는 때에 이르면 회한도 있을 텐데, 그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한 사람과 사랑에 보낸 날들에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에 가 보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도 있었는데, 비록 소설이었지만 너무도 생생한 사실감에 꿈마저 머뭇거려진다. 스테파니가, 자크가, 로랑스가, 넵튠이 그곳에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들을 보는 게 많이 힘들 것 같다. 하나의 생은 각자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하면서도 안타까운 것일 수 있겠다.  (y에서 옮김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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