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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 茶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0
라오서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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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되고 명작이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수긍이 간다는 게 바로 이런 책을 봤을 때의 느낌이다. 아무렴, 내 생각과 판단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안심하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중국,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의 긴 시간을 배경으로 총 3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막에 해당하는 내용의 분량이 많지 않고 전체적으로 봐도 많지 않아서 읽는 데에 드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내용이 무겁다. 무겁고 깊어서 3막을 다 읽고 나면 한 생을 다 보낸 느낌마저 갖게 된다. 그것도 한숨 가득한 고단한 생.


20세기 초라면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제국주의 침탈로 수난을 받던 시대다. 마냥 남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 이유다. 약한 이들을 잡아 먹는 조금 강한 이들과 조금 강한 이들을 이용해서 좀더 쉽게 약한 이들을 잡아 먹는 더 강한 이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의 이야기. 나는, 우리는, 왜 이렇게 약해서 이토록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한탄하면서도 또 꿋꿋이 살아가는 이야기. 정작 작가는 끝내 그렇게 살아내지 못하고 말았지만.     


중국에는 이런 찻집이 오래 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서양의 카페처럼 사람들에게 숨쉴 공간을 제공했던 모양인데 모르고 있었던 배경이라 읽는 내내 신선했다. 찻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사연을 볼 때는 기가 막히고 안타깝고 서럽고 울화통이 터지기도 했지만. 어떻게 사람 사는 모습들이 거기나 여기나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인지. 이래서야 인류 역사가 진화하고 있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고. 그래서 작품은 또 더 진한 감동을 던지면서 고전으로 남게 되는 것이겠지. 인간 본성의 보편적인 한계에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갖고 싶어하는 이들의 바람으로서. 


이 극본대로의 연극을 보고도 싶고 우리 형편에 맞게 각색된 작품으로 제작된 연극을 봤으면 싶기도 하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직업에 해당하는 이름 외에 달리 고칠 대사가 없어 보일 정도다. 이 또한 바람직한 모습은 절대 아니련만. (y에서 옮김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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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호텔
김지안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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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른으로 이 그림책을 보고 쓴다. 첫말은 부럽다. 동화나 그림책이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을 나타내는 데에 좋은 장치가 된다는 것을 바로 알겠다. 아무렴, 세상이 이럴 수만 있다면.

사는 곳에 사계절이 있고 이 중에 세 계절에 열심히 일을 한다. 마음도 맞고 재주도 고르게 나눠 갖고 있는 이들끼리 모여 협업으로 돈을 번다. 배경은 여러 모로 충분하다. 햇볕도 빗물도 식물까지도. 이 책에서는 튤립을 키워 호텔로 만든다는 설정인데 튤립 꽃 하나하나가 호텔의 룸이 된다. 꿀벌들은 또 얼마나 일들을 잘하는지, 왜 도와주는지 모르겠지만. 동화니까, 아무렴.

튤립이 지고 계절이 바뀌면 호텔 손님들은 일을 하러 떠난다. 지난 세 계절 동안 열심히 일한 멧밭쥐 다섯 마리는 이제 연꽃 여행사를 찾아 간다. 아마도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나 보다. 그곳에서 또 자신들만의 한 계절을 보내는 것일 테지. 삶이란 일만 할 수도 여행만 다닐 수도 없는 것일 테니 이렇게 조화로운 모습이 부러울 따름이다. 

유아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있다. 아이와 같이 이 그림책을 보는 보호자는 아이에게 어떤 질문이나 제안을 하게 될까? 나라면? 튤립을 키워 보자?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니? 호텔에 놀러 가 볼까? 호텔에 가면 무엇을 먹고 싶니?... 이 책에 나오는 그림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니? 등등등. 이런 물음들은 체면을 차린 입장에서 나오는 것들이고.

나는 자꾸만 음흉해지려고 한다. 일은 조금만 하고 많이 노는 생을 갖고 싶지 않니? 지금의 내 나이에 자연스러운 욕망이려나? 어쨌든 부럽다는 말이다.(y에서 옮김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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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축일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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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참 흥미로운 곳이다. 사람이 사는 데에 필요한 곳,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만들어지는 곳. 사람이 모이는 곳, 모여서 정보가 넘나드는 곳. 누가 어느 편인지 알고도 모르고도 속고 속이는 것이 가능한 곳. 물건만 사고 파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기능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니. 나는 참 모르고 있는 게 많구나. 


이 소설로 중세 수도원에 대한 내 호감과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그 당시의 종교,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의 삶, 종교에 기대고 사는 사람들의 희망, 전쟁과 권력과 토지와 정보와 정적 숙청과 배신과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 수도원은 이 사이에서 일부를 담당한다. 죽고 사는 것이 신의 뜻으로 여겨졌던 시절이었으니 짐작이 된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가 그때와 달라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나는 늘 같다고 여기는 쪽이라.


책마다 일어나는 사건은 독립적인데 등장인물들은 이어지기도 하고 새로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가 인물을 창조해 내는 능력일 것이다. 대단하게 보인다. 악한이,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하도록 서술하는 힘도, 캐드펠 수사와 함께 하는 쪽의 사람들을 그럴 듯하게 나아가 호의적이 되도록 그려내는 힘도 뛰어나다. 억지로 끼어 맞춘 듯하여 괜한 심술로 시비를 걸어 보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없다. 내가 야무지게 빠져 있다는 뜻이다. 


휴 베링어의 존재감이 점점 드러난다. 캐드펠 수사의 멋진 동료로 활약하려나 보다. 젊은이들의 사랑이 빠지지 않는 점도 자연스럽다. 이들을 도와주고 밀어주는 캐드펠의 의도도 칭찬하고 싶다. 캐드펠처럼 나이 60에 이르면 자신과 주변인의 삶을 돌아보는 일에 어느 정도 이상의 자신감과 지혜가 갖추어지는 모양인데, 나는 왜 이런가 하여 한탄만 한다.


살인이라는 죄가 무섭고 무거운 것이 피해자에게 속죄의 기회를 빼앗았다고 서술한 부분이 퍽 인상에 남는다. 죽기 전에 속죄를 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마음 속 창 하나가 열리는 기분이다. 다음 책도 기대가 많이 된다.

스스로 귀의하여 수도사의 길을 걸어온 지난 16년 동안 캐드펠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수도사가 되기 전 모험으로 가득 찬 인생에 대해서도 그랬다. 이제 쉰아홉이 된 그의 안에는 세상 경험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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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8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18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이사르 2 - 5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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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매력이 마구 솟아나는 내용이다. 다 알고 있는 사실마저 새롭게 읽힌다. 진정 전쟁 분야에서는 천재였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다. 


오로지 전쟁만이 삶의 수단인 시대가 있었다. 땅을 빼앗고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만이 재산을 얻는 유일한 방법인 시대, 그런 전쟁에서도 영웅이 되어 살아남거나 희생자가 되어 죽는 길밖에 없었던 시대, 참 지긋지 긋한 시대.(지금이라고 그리 달라진 건 아니겠지만, 아니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카이사르는 기원전 로마에서 그런 전쟁을 잘 해 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재능이라고 했다. 게다가 혈통까지 갖춘 사람이라고. 마리우스나 술라는 각기 하나밖에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을 카이사르는 둘다 가진 사람이라고. 그런가 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에 어쩌자고 자꾸 카이사르 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 내 마음을 따라잡으면서 여러 번 당황했다. 전쟁 싫은데, 이런 내용 싫은데, 그런데 나는 왜 카이사르를 응원하고 있는 것인가. 3권에 들어서면 지금보다 더 빠져들 것만 같다.


영웅을 대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그가 살아 있을 때, 영웅을 존경하는 쪽과 질투로 미워하는 쪽. 어쩐지 두 입장 다 이해가 된다. 좋아하고 따르는 대상이라면 그의 위대함에 빠져들어 찬양하게 될 것이고, 경쟁심이나 시기심 때문에 두고 볼 수 없겠다 싶으면 엄청 비난하게 될 것이고. 이번 권에서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업적을 두고 원로원 내 보니파를 비롯한 반대쪽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견제를 보았다. 폼페이우스까지 카이사르와 대결하게 되었으니, 권력이 가진 속성의 어떤 점들은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3권에서는 건너게 되는 그 과정을 읽게 될 것이다. 카이사르는 어떻게 이겨 나갈 것인지, 그리고 브루투스는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다시 확인하게 되겠다. 신기하다, 다 알고 있어도 이렇게 재미있으니. (y에서 옮김20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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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문학동네 시인선
최승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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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선물을 받았다. 출판사의 기획이, 책값이, 내게 선물해 주신 이의 마음이 모두 고맙다.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내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마음에 드는 시가 예전보다 잘 안 보이네 해도, 나는 아직 시를 찾고 읽는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의욕이자 능력이다.


1권부터 199권까지의 시집에서 작가의 말을 모아 놓은 책이다. 자칫 욕심을 낼 뻔했다. 이 출판사의 이 시집들을 몽땅 사 모아 보고 싶다는. 그래서 번호 순서대로 세워 놓고 보고 싶다는. 보면서 웃고 싶다는. 몇 권은 이미 갖고 있으니 아주 천천히, 남은 생을 걸고 모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만 했다. 곧 소유욕의 부질없음에 정신을 차렸지만.


시인이든 소설가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작가의 말’이 아니라 작품으로 내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작가의 말에 깊이 스며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여러 작가의 말을 한꺼번에 읽으니 구별이 된다. 내게 다가오는 말과 멀어지는 말, 건조한 말과 촉촉한 말로. 제일 좋았던 기분은 작가의 말만으로 시집을 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시인의 말들은 아프다. 시인이 먼저 아프고 읽는 나는 천천히 앓는다. 마치 일부러 아픔을 나누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 봐야 문자 속 세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적게라도, 마음에 금 하나 긋는 정도라도, 시로서 아픔을 전해 준다면 나는 계속 읽어 보려고 한다. 이만큼의 양심밖에 키우지 못해 미안하지만, 이 또한 내 몫일 테다. (y에서 옮김20231227)    



[woojukaki님 고마워요]



이제 이 밭 위에서의 넋두리도 길 위의 어느 이름 없는 돌멩이 밑에 놓아두고, 새로운 종이와 만년필을 챙겨 내일을 향해 다시 떠날 시간입니다.(장이지-연꽃의 입술) - P28

개판 같은 세상을 개판이라고 말하지 않은 미적 형식을 얻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안도현-북항) - P38

어떤 시간이 와도 시절을 탓하지 않고, 어떤 세상이 와도 공밥은 먹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윤제림-새의 얼굴) - P68

왜 이토록 삶을 기뻐하지 못했을까?

돌아갈 길이 끊긴 자리에 한사코 서 있는 모양이라니!(김형수-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 P152

말을 동경했습니다.

글을 말보다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살게 한 지표들은

실은 아름다운 느낌들이었습니다.(김향지-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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