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문학동네 시인선
최승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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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선물을 받았다. 출판사의 기획이, 책값이, 내게 선물해 주신 이의 마음이 모두 고맙다.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내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마음에 드는 시가 예전보다 잘 안 보이네 해도, 나는 아직 시를 찾고 읽는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의욕이자 능력이다.


1권부터 199권까지의 시집에서 작가의 말을 모아 놓은 책이다. 자칫 욕심을 낼 뻔했다. 이 출판사의 이 시집들을 몽땅 사 모아 보고 싶다는. 그래서 번호 순서대로 세워 놓고 보고 싶다는. 보면서 웃고 싶다는. 몇 권은 이미 갖고 있으니 아주 천천히, 남은 생을 걸고 모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만 했다. 곧 소유욕의 부질없음에 정신을 차렸지만.


시인이든 소설가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작가의 말’이 아니라 작품으로 내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작가의 말에 깊이 스며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여러 작가의 말을 한꺼번에 읽으니 구별이 된다. 내게 다가오는 말과 멀어지는 말, 건조한 말과 촉촉한 말로. 제일 좋았던 기분은 작가의 말만으로 시집을 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시인의 말들은 아프다. 시인이 먼저 아프고 읽는 나는 천천히 앓는다. 마치 일부러 아픔을 나누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 봐야 문자 속 세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적게라도, 마음에 금 하나 긋는 정도라도, 시로서 아픔을 전해 준다면 나는 계속 읽어 보려고 한다. 이만큼의 양심밖에 키우지 못해 미안하지만, 이 또한 내 몫일 테다. (y에서 옮김20231227)    



[woojukaki님 고마워요]



이제 이 밭 위에서의 넋두리도 길 위의 어느 이름 없는 돌멩이 밑에 놓아두고, 새로운 종이와 만년필을 챙겨 내일을 향해 다시 떠날 시간입니다.(장이지-연꽃의 입술) - P28

개판 같은 세상을 개판이라고 말하지 않은 미적 형식을 얻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안도현-북항) - P38

어떤 시간이 와도 시절을 탓하지 않고, 어떤 세상이 와도 공밥은 먹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윤제림-새의 얼굴) - P68

왜 이토록 삶을 기뻐하지 못했을까?

돌아갈 길이 끊긴 자리에 한사코 서 있는 모양이라니!(김형수-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 P152

말을 동경했습니다.

글을 말보다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살게 한 지표들은

실은 아름다운 느낌들이었습니다.(김향지-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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