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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축일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시장은 참 흥미로운 곳이다. 사람이 사는 데에 필요한 곳,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만들어지는 곳. 사람이 모이는 곳, 모여서 정보가 넘나드는 곳. 누가 어느 편인지 알고도 모르고도 속고 속이는 것이 가능한 곳. 물건만 사고 파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기능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니. 나는 참 모르고 있는 게 많구나.
이 소설로 중세 수도원에 대한 내 호감과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그 당시의 종교,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의 삶, 종교에 기대고 사는 사람들의 희망, 전쟁과 권력과 토지와 정보와 정적 숙청과 배신과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 수도원은 이 사이에서 일부를 담당한다. 죽고 사는 것이 신의 뜻으로 여겨졌던 시절이었으니 짐작이 된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가 그때와 달라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나는 늘 같다고 여기는 쪽이라.
책마다 일어나는 사건은 독립적인데 등장인물들은 이어지기도 하고 새로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가 인물을 창조해 내는 능력일 것이다. 대단하게 보인다. 악한이,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하도록 서술하는 힘도, 캐드펠 수사와 함께 하는 쪽의 사람들을 그럴 듯하게 나아가 호의적이 되도록 그려내는 힘도 뛰어나다. 억지로 끼어 맞춘 듯하여 괜한 심술로 시비를 걸어 보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없다. 내가 야무지게 빠져 있다는 뜻이다.
휴 베링어의 존재감이 점점 드러난다. 캐드펠 수사의 멋진 동료로 활약하려나 보다. 젊은이들의 사랑이 빠지지 않는 점도 자연스럽다. 이들을 도와주고 밀어주는 캐드펠의 의도도 칭찬하고 싶다. 캐드펠처럼 나이 60에 이르면 자신과 주변인의 삶을 돌아보는 일에 어느 정도 이상의 자신감과 지혜가 갖추어지는 모양인데, 나는 왜 이런가 하여 한탄만 한다.
살인이라는 죄가 무섭고 무거운 것이 피해자에게 속죄의 기회를 빼앗았다고 서술한 부분이 퍽 인상에 남는다. 죽기 전에 속죄를 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마음 속 창 하나가 열리는 기분이다. 다음 책도 기대가 많이 된다.
스스로 귀의하여 수도사의 길을 걸어온 지난 16년 동안 캐드펠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수도사가 되기 전 모험으로 가득 찬 인생에 대해서도 그랬다. 이제 쉰아홉이 된 그의 안에는 세상 경험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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