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4 소설 보다
성혜령.이주혜.이희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호는 읽으면서 몽롱해졌다. 세 편 모두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배경이, 인물이, 주제가 읽는 내 정신을 살짝 흐려지도록 작용했다. 그다지 유쾌한 느낌은 아니다. 세상을 버틸 힘을 몽롱함에서 찾으라는 듯이 여겨졌으니까.

현실이 고달프면 저절로 환상을 찾게 되는 것일까? 그럴 수도. 현실이 시시해서 환상에 빠져 들면 좋으련만. 살기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어지는 곳이라면 막상 가도 마음 편하게 적응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요즘 읽는 요즘 소설들에서 익숙하게 만나게 되는 절망들, 절망의 조각들, 절망의 아우성들. 나는 어쩐지 살아 있는 것에 미안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누구를 향한 미안함일까?

이주혜의 '여름 손님입니까'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이 겨울에 여름의 분위기에 시달렸다. 생생했다. 일본의 온천지 한 곳을 주인공을 따라 다녀온 느낌도 들었는데 고달팠고 쓸쓸했다. 어떤 기억은 우리를 살게도 하지만 못 살게도 만들 수 있다. 나는 나의 못나고 못된 자질에 새삼 놀랐고 이제는 억누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소설은 자주 나를 이런 방식으로 깨우친다. 깨닫는다고 늘 마음에 드는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희주의 '최애의 아이'는 읽고 난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바람직하지 않아, 중얼거렸다. 소설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아주 그럴 듯하게 그려 보임으로써 바람직한 현실을 만들도록 이끌기도 한다. 제발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계속 읽을 수 있기를. (y에서 옮김202501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항 문학동네 시인선 20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가 쉽다는 게 아니라 쉽게 읽히는 시가 있다. 내 마음, 내 눈이다. 시는 어려운데 쉽게 읽히는 시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쉬워 보이는데 쉽게 읽히지 않는 시도 있다. 이런 때가 약오른다. 한번 보고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이게 또 좋은 건지 아닌지도 함부로 말 못하겠다. 한번만 봐도 좋은 시가 있고 여러 번 봐야 좋은 시도 있게 마련이니.

이번 시집은 쉽지 않다. 이제까지 이 작가의 시들을 쉽게 읽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래서 편하게 넘기자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 편 한 편, 한 줄 한 줄, 줄다리기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대부분 내 쪽에서 끌려 가며 쓰러지다가 끝났다. 옮겨 적지도 못했다. 얼마나 더 찾아 보아야 할까.

무엇보다 시인의 호흡이 길어졌다. 게다가 해설의 제목에도 있다시피 은유로 울타리를 세워 놓은 탓에 들어서도 들어선 줄 모른 채로 떠다녔다. 하지만 좋은 느낌만은 유지하게 된다. 한 줄 읽고 모호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괜찮은데? 빨려 들어가는 느낌인데? 나도 이 말 안에 잠기고 싶은데? 아프고 화나고 부질없어지는데? 거듭 끄덕였다.

울고 싶을 때 읽으면 더 잘 울 수 있게 될 것 같다. (y에서 옮김20240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나무 아래의 죽음 캐드펠 수사 시리즈 13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편이 죽고 아이는 유산하고 물려받은 집을 수도원에 기부한 젊은 여인. 대신 매년 위니프리드 성녀의 축일에 그 집에 자라고 있는 장미나무에서 피어난 장미 한 송이를 받기로 계약을 했는데. 참 낭만적인 계약이라고 생각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잃은 것을 보완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 


장미를 전해 주던 젊은 수사가 이 장미나무 아래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왜, 어떻게 죽었을까? 누가 죽였을까? 장미를 받아온 젊은 여인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캐드펠과 휴는 뜻을 모아 발견하고 추리하며 해결한다. 라둘푸스 수도원장이 캐드펠을 완전히 믿고 맡긴다는 설정은 얼마나 안심되는 일인지.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지만.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하니 당연히 그 시절 그곳에 살았을 사람들의 삶을 추측하게 된다. 흥미롭다. 1140년대에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찾아보니 1142년은 김부식이 삼국사기 편찬을 시작한 해라고 한다. 1135년에 묘청의 난이 있었고. 우리나라도 내전 중인 잉글랜드만큼이나 어수선한 시절이었겠다. 권력자들이야 제 권력 갖겠다고 싸우고 있었겠지만 권력에서 멀리 있는 평민들의 삶은, 또 남편을 잃은 여인들의 삶은 어떠하였을까? 이번 소설은 이런 평범한 의문에 대해서도 짚어 보게 해준다.


작가가 이 시리즈를 통해 보여주는 여인들의 모습이 참 매력적이다. 요즘에도 보기 드물 것만 같을 정도로 굳건하다. 아름다우면서 심지가 곧은 여인상이라,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라면 소설에서라도 창조해 내는 것이 바람직한 노릇일 테지. 이번 책에 등장한 여주인공인 주디스 역시 흔들리지 않는 주체적인 성격을 발휘한다. 정말 그랬을까 되묻고 싶을 정도로. 


내가 읽는 속도에 따라 시간도 흐른다. 소설 속 시간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간도 속절없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보다 : 가을 2024 소설 보다
권희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글이 많지도 않은 세 편이었지만, 읽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아쉬워서, 뭔가 좀 섭섭해서. 이런 마음일 때도 책장이 덜 넘어가는구나, 화르륵 넘겨 버리지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구나 여긴다.

전체적으로 심심했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싱거웠고 절절하지 않아서 무난했다. 자칫 읽어도 안 읽어도 그만이구나 싶은. 세 번째로 실린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나를 건져 주었다. 느리고 무료하고 밋밋했던 읽기에 반짝 불빛 한 줄기 비춰 주는 이가 있는 것처럼. 드러내 놓지 않고 가까이에 슬픔 몇 조각을 거느리고 있는 인물을 만난 기분이다. 잠시였지만 또 슬픔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둘은 앞으로 괜찮아질까? 같이 슬퍼할까, 같이 나아질까? 아니면 따로 흩어지고 말까?

 삶이 가볍게 여겨져서 하찮아질 때가 생긴다. 좋지 않은 현상이다. 이럴 때 글을 읽으면 글도 하찮아진다. 글 쪽에서는, 작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독자인 내 처지를 몰랐을 테니까. 지독하게 하찮고 실망스러운 생을 깨우쳐 줄 글 한 편을 기대할 만큼의 의욕만 남아서 슬프기 짝이 없다.  (y에서 옮김202412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창비시선 501
도종환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은 뜨겁고 폭염주의보에 시달리고 있지만 어둡다, 어둡기만 하다. 꽃도 피고 나무도 푸르기만 한데 우리가 사는 세상만 어둡다. 어두운 줄도 모르고 어둡게 사는 이들, 나는 다른 사람을 나무랄 수가 없다.

이 시인의 시를 오랜만에 읽는다. 한동안 안 읽었다가 읽으니 아주 새로운 기분이 든다. 게다가 시간이 꽤 흘렀다. 시인이 젊은 날에 쓴 시와 한창 활동을 하고 있을 때의 시와 이번 시집의 글이 조금조금 다르게 보인다. 세월이 시들 사이로 흐르고 있는 듯하다. 아마 내 세월도 같이 흐르고 있으리라. 

시인은 국어교사였고 아내를 여의었고 전교조 활동을 했고 이후 정치를 했다. 생의 이력이 이번 시집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시를 읽는 데에 이런 사실이 도움이 되다가 방해가 되기도 했다. 같이 읽어야 한다. 글도 사람도 세상도 하나로만 존재할 수는 없으니. 

눈길이 두 차례 이상 머무는 구절을 옮겨 보았다. 내 젊은 이상의 조각들이 문득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부질없는 일인 것만 같은데도. (y에서 옮김20240722)

의롭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인생을 흠모하게 된 것 - P11

조용히 지워지는 시간 속에
내가 지워질 수 있도록 놓아두리라 - P15

타인이 지옥이지 않게 하소서 - P17

여전히 푸르게 다시 살아가는 것 - P18

설렘 속에 꽃이 피었다
슬픔 속에 그 꽃이 지는 동안
한 생애가 흘러갈 것이다 - P20

좋은 날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 믿게 하던
젊은 날은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거기까지였지만 - P22

하루 종일 두뼘 아래 놓인 활자들만 톡톡 쪼다
하늘을 잃어버린 새가 되어 살았습니다 - P27

종자보다 중요한 게 흙의 힘이라는
주막집 안주인 말은 의미가 깊고 크다 - P33

제 계절을 안다는 것
그게 천명을 안다는 것이지요 - P48

생각해보니 사려 깊을 때는 낮아질 때였습니다
강할 때는 겸허해질 때였습니다 - P51

나는 나무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 P61

노여움이 커지는 건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
서운한 게 많다는 건 너그러움이 줄고 있다는 것
분노가 자주 튀어나오는 건 두려움이 많아졌다는 것 - P80

사람은 다 알지 못할 때가 좋습니다 - P83

사월에서 오월로 넘어가는
바람 좋은 날 - P96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생의 겨울에도 아름답다 - P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