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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ㅣ 창비시선 501
도종환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평점 :
날은 뜨겁고 폭염주의보에 시달리고 있지만 어둡다, 어둡기만 하다. 꽃도 피고 나무도 푸르기만 한데 우리가 사는 세상만 어둡다. 어두운 줄도 모르고 어둡게 사는 이들, 나는 다른 사람을 나무랄 수가 없다.
이 시인의 시를 오랜만에 읽는다. 한동안 안 읽었다가 읽으니 아주 새로운 기분이 든다. 게다가 시간이 꽤 흘렀다. 시인이 젊은 날에 쓴 시와 한창 활동을 하고 있을 때의 시와 이번 시집의 글이 조금조금 다르게 보인다. 세월이 시들 사이로 흐르고 있는 듯하다. 아마 내 세월도 같이 흐르고 있으리라.
시인은 국어교사였고 아내를 여의었고 전교조 활동을 했고 이후 정치를 했다. 생의 이력이 이번 시집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시를 읽는 데에 이런 사실이 도움이 되다가 방해가 되기도 했다. 같이 읽어야 한다. 글도 사람도 세상도 하나로만 존재할 수는 없으니.
눈길이 두 차례 이상 머무는 구절을 옮겨 보았다. 내 젊은 이상의 조각들이 문득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부질없는 일인 것만 같은데도. (y에서 옮김20240722)
의롭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인생을 흠모하게 된 것 - P11
조용히 지워지는 시간 속에 내가 지워질 수 있도록 놓아두리라 - P15
설렘 속에 꽃이 피었다 슬픔 속에 그 꽃이 지는 동안 한 생애가 흘러갈 것이다 - P20
좋은 날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 믿게 하던 젊은 날은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거기까지였지만 - P22
하루 종일 두뼘 아래 놓인 활자들만 톡톡 쪼다 하늘을 잃어버린 새가 되어 살았습니다 - P27
종자보다 중요한 게 흙의 힘이라는 주막집 안주인 말은 의미가 깊고 크다 - P33
제 계절을 안다는 것 그게 천명을 안다는 것이지요 - P48
생각해보니 사려 깊을 때는 낮아질 때였습니다 강할 때는 겸허해질 때였습니다 - P51
나는 나무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 P61
노여움이 커지는 건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 서운한 게 많다는 건 너그러움이 줄고 있다는 것 분노가 자주 튀어나오는 건 두려움이 많아졌다는 것 - P80
사람은 다 알지 못할 때가 좋습니다 - P83
사월에서 오월로 넘어가는 바람 좋은 날 - P96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생의 겨울에도 아름답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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