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 김용택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555
김용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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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순간순간의 장면을 시의 구절로 바꿔 부를 수 있기를. 시인이 쓴 시의 문장을 불러 내어도 좋고 시인의 도움으로 내가 써 본 시라면 더욱 좋고. 시집을 펼칠 때마다 바라는 마음이다. 선물처럼 행운처럼 축복처럼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내 마음. 2022년 나의 첫 리뷰 대상은, 이렇게 선물이 된 이 시집이다.


책은 지난 여름에 나왔는데 읽고 보니 겨울이 깊다. 다른 계절이 흐르고 있음에도 유독 겨울 자리에서 자꾸만 눈이, 마음이, 손이 멈춘다. 내가 이 시집을 읽는 시간과 시인이 시를 쓴 시간이 모르는 바람, 아는 바람과 섞이면서 더 깊어진다. 더 고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또 맑아지고 분별력을 얻고 쨍한 추위에도 마음을 연다. 그렇지, 세상의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으니. 


그리 두껍지 않은 시집, 몇 차례를 앞에서 뒤로도 읽고 뒤에서 앞으로도 읽고 아무 쪽이나 펼쳐 읽는다. 그러다가 마음을 한데 모아 골라낸 구절을 한 줄씩 타이핑을 한다. 뽑혀 나온 문장이 시 안에서 살아나 내게로 온다. 이렇게 많아지면 좀 곤란한데, 좀 많이 벅찬데, 좀 많이 행복해지는데…


쉽게 읽히는 시들이다. 쉽게 읽혀도 쉽게 넘기지 못하는 시들이다. 매일 보고도 몰랐던 풍경과 매일 읊어도 무심했던 일상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받고 사는 이 자체로 은혜로운 일임을 나직하게 들려 준다. 작고 약해 보이는 것들로부터 크고 강한 힘을 얻을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에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내가 삶에 대해 갖는 태도의 한 면일 것이다.   (y에서 옮김20220101)

당신이
처음입니다 - P7

생각을 다 모아봐도, 내 어디인지 모른다는 그게,
좋다 - P9

나비는 얼마나 먼 데서 달려오다가 날개를 달고 날아올랐을까요 - P11

별들은 하늘에서, 어느 날은 다르고 어느 날은 또 다르다 나는 그 다른 날들의 별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추억해내 행복해하고, - P13

아기 나무는 일 년 동안 아름다운 외줄기다 - P21

세상에 무슨 일로 저렇게 마을이 일일이 하나하나가 다 가을이란 말인가 - P25

나는 남이 이루어놓은 나의 어둠을 이따금 바라본다 - P34

오늘이 이렇게 난생처음인데 - P38

모든 것은
제때다
해가 그렇고, 달이 그렇고
방금 지나간 바람이,
지금 온 사랑이 그렇다
그럼으로 다 그렇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살아오면서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던가 - P45

오래된 길들은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알고 있다 - P52

누구도 불행하게 하지 않을 마른 낙엽 같은 슬픔
누구를 미워한 적이 없었을 것 같은 새들의 얼굴에 고요
누구의 행복도 깔보지 않았을, 강물을 건너가는 한 줄기 바람
한 번쯤은 강물의 끝까지 따라가봤을 저 무료한 강가의 검은 바위들 - P59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아무런 것이 될 때
그때 기쁘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갈 때 편안하다 - P64

나는 강에서 오는 바람을 좋아한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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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땅 캐드펠 수사 시리즈 17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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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이 The Potter's Field로 되어 있다. 책을 다 읽고도 이 제목과 내용과의 연관성을 알아내지 못하여 찾아보았다.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 도공의 땅이 욕망의 땅이 된 이유는? 성경에 '도공의 밭'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욕망이라는 단어에 붙잡혀 끝까지 땅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관련시켜 읽었는데 살짝 속은 느낌? 어차피 두루두루 잘 속는 나로서는 딱히 변명할 것이 없기는 하지만.


도공의 땅이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는 했다. 도공이 어여쁜 아내와 살았던 땅, 그러나 도공은 아내를 버리고 수사가 되어 수도원으로 들어갔지. 이후 남편으로부터 버려진 아내는 사라져버렸고 그 땅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이 여자는 누구인가? 도공의 아내인가, 또다른 여자인가. 


죽은 사람의 신원을 밝히는 일은 그 사람이 살았던 삶의 궤적을 모두 찾아내는 일과도 같다는 말이 생각났다. 어떻게 왜 죽었는가 하는 점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점과 같은 맥락에서 헤아려야 한다는 것.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살아왔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것의 뜻도 알겠다. 나는 범인보다 이 점에 더 유의하며 이 소설을 읽은 셈이다. 여기에다가 제목에 나와 있는 욕망까지 얹어서. 풀 수도 없을 문제를 나 혼자 만들어놓고서. 


내가 어설프게 추리한 방향과는 아주 엉뚱하게 사건은 해결되었고 나는 또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이 문제를 이렇게 다뤘다고? 여자의 삶, 혹은 여자의 존재는 오로지 남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에 대하여. 작가는 1910년대에 이 소설을 썼고 소설의 배경은 그보다 천 년쯤 전이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자는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하지 못하는 것인가? 남편이-남자가 버리거나 죽으면 여자의 인생은 중단되는가? 남편이-남자가 사고를 치고 잘못을 저질렀는데 아내가-여자가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한가? 반대의 경우는 성립되는가? 글쎄, 내가 세상 사람들의 삶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니 무엇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재미있게 읽고 있다. 재미만 있는 게 아니어서 더 만족한다. 추리소설에서 인간의 본성을 읽는 일이 내게는 더없이 유익하다. 직접 경험으로 좀처럼 얻을 수 없는 능력이니. 남아 있는 책도 아까워하면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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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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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제목 그대로다.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유쾌했다. 앞서 읽은 <미스터 모노레일>보다 이 책이 내게는 더 좋았다. 이게 내 취향인가 보다. 작가의 허구보다 작가의 진실에 더 이끌리는 점. 덕분에 모르고 있었던 작가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커트 보네거트, 레이몬드 카버, 스콧 슈만. 내 의식의 영역 한 부분이 넓어지고 있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유머도 구사하고 풍자도 하고. 일반적으로 나이 사십이 넘으면 하기 힘든 일을 여전히 품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말로는 '젊은 작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쉽지 않을 텐데, 쉽지 않다고 하면서도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작가의 삶이 그래서 내게 더 절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내 딸처럼 아직 아무 것도 잡은 게 없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런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라기보다는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단다 하는 관점. 어쩌면 요즘의 젊은이들은 이십대에서 젊음이 그치는 게 아니라 사십까지 젊음을 이어가야 할지 모르는 수명 긴 세대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우리보다는 훨씬 오랜 기간을 젊음 속에서 부대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조차도 아직 늙었다는 기분은 아닌데 사십은 얼마나 창창하랴.

 

진지한 것도 좋고 진중한 것도 좋겠지만 유머에 나는 더 끌린다.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다.  (y에서 옮김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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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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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의 경계를 확인하거나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절이다. 어린 한때는, 사람이란 다른 이와 같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엄청 강요받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혼자와 같이의 균형에 대해 더 생각해 보라고 한 듯 싶어졌고 나도 내 몫을 챙겨 보게 된 것 같고.

작가의 초기 작품에 해당될 듯한 장편소설이다. 2011년에 출간되었다는데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에 이런 분위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때는 못 읽고 이제야 읽어 보는데 나는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을 이런 방식으로 확인한다. 내가 소설에서 얻는 장점 중 하나. 새로 살고 거듭 살기. 이 작가의 글을 늦게나마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젊은 남자 둘, 젊은 여자 하나. 동행은 동행이되 가까이 하기에는 좀 먼 거리. 쉬운 마음으로 읽게 된다. 아무도 미워할 수 없고 그렇다고 좋아하게 되지도 않는데 각각의 인물에 정을 느낄 정도는 되는 읽기. 등장인물 모두에게 이만큼씩의 애정을 갖기도 쉽지 않기에. 함께 여자의 집을 찾으러 나섰다가 마침내 헤어진 후 셋은 각자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을까? 돌아간 집은 기대했던 집이 맞았을까? 다시 길을 나서게 되는 건 아닐까? 젊음이란 게 대체로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마련이라 어떤 식으로든 마음 잡기가 쉽지 않더란 말이지.  

마음이 넓은 부자, 돈이 많은 부자, 능력이 뛰어난 부자, 나눌 줄 아는 부자...... 세상에 부자는 참으로 많을 텐데, 부자는 스스로가 부자인 줄 몰라 부자로 살 줄 모르고. 늘 가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만을 바라면서 가난하게 살고. 나는 부유함과 가난함 사이에서 맴돈다. 넉넉했다가 모자랐다가......

소통은 삶에 중요하고 필요하다. 아는데도 잘 해내지 못하는 데에서 문제가 생긴다. 너보다 내가 더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자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내 안의 나와 충돌하는 경우를 맞기도 하면서. 살려고 하는 게 소통이라는 것만 인식해도,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방법을 구해야 한다는 것만 인정해도 우리네 삶이 많이 나아질 것만 같은데. 

구름다리를 볼 때마다 작품 속 그녀의 집이 근처에 있는 것은 아닐지 확인해 보고 싶을 것 같다.  (y에서 옮김20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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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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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할까, 일을 안 하는 것이 행복할까.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얼마만큼 하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 될까. 일만 하고 살 수도 없고 일을 안 하고 살 수도 없고.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일을 안 해도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고 밥만 먹고 살 수는 또 없는 건 아닌가? 밥 먹을 만큼만 일할 수 있다면 괜찮은가? 정해진 답이 없는 이 물음은 하염없이 길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여기서 그친다. 대충 내가 감당할 만큼의 일에 대해서는 잡히는 기분이라서. 이 소설집으로는 가늠이 되는 정도라서.

글은 슬펐고 소설 속 젊은 인물들은 마냥 서글프게만 보였다. 어느 한 사람 명랑하게 일하고 있지 않았다. 작가의 기분 탓일까, 고단한 시대의 형편 탓일까, 인간 세상의 불합리 탓일까. 제목과 달리 일에서의 기쁨은 맛 볼 새도 없이 일로 인한 슬픔만 주르륵 흐르는 풍경이 배경이었다.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해 보았지만, 삶은 어느 누구도 같은 모양 같은 무게로 겪는 게 아니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직장 생활에 대해 짐작할 수가 없다. 어렸던 그때도 나이든 지금도 한적한 여기에서도 분주한 그곳에서도. 그렇다고 하면 그러려니 여길 뿐, 일에서 얻는 기쁨과 슬픔은 각자만의 몫이다. 비교가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이 책으로 작가로부터 깊고 인상적인 호감을 받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금방이라도 더 읽고 싶다는 느낌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내겠다도 아니다. 망설여지는 호기심, 더 읽어 보는 게 낫겠다로 마무리한다. (y에서 옮김202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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