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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청산가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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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기념으로 만난 식당 테이블에서 생일을 맞이한 당사자가 청산가리에 중독되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자살로 판명난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그때 참석했던 사람들이 다시 같은 식당 테이블에 모인다. 자살이 아니었다고 여기는 사람에 의해 모인 것인데. 모두가 범인 같고 모두가 범인이 아닌 것 같고.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고 그 사이 비밀도 밝혀진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누가 누구를 증오하는지, 왜 그러는지, 읽는 내 쪽에서는 작가가 이끌어 가는 대로 휘둘린다. 이 사람도 의심했다가 저 사람도 의심했다가.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기를 좋아하는 작가이니 이쯤에서는 이렇게 의심해 볼 수도 있지 않나? 그런 나의 모든 시도는 헛짓이었고 전혀 뜻밖의 결말을 얻는다. 앞에서 작가가 다 밝혀 놓은 요소들을 도무지 챙기지 못했던 과정의 독서는 이렇게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그래도 재미있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을지도. 나는 매번 속고 속아도 즐겁고 속이는 작가에게 감탄한다. 그래, 사랑 때문이겠지, 아니, 돈 때문인겠지? 돈이든 사랑이든 사람이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들에 여전히 놀라고 여전히 실망한다. 얼마나 흔하고 얼마나 지긋지긋한 이유란 말인가.


돈이 많은,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은 사는 데에 얼마만큼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까? 불안하기는 할까? 돈으로 다 해결될 텐데? 그럼에도 다치고 희생되기도 한다. 이럴 만큼 돈이 많은 적이 없으니 나로서는 영영 모를 일이고 소설로 영화로 기사로 짐작할 뿐. 이렇게 즐기는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입장에서 얻는 여유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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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무늬
황인숙 지음 / 샘터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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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작에 이 시인의 수필을 읽어 보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몰랐다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이만큼 빠져들 것을, 그녀의 삶에 그녀의 글에 그녀의 시각에 이만큼 빠져들 것을 왜 진작 읽지 못했을까. 읽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그녀의 고양이에 대한 사랑을 읽고 있으니 평소 싫어하던 고양이까지 좋아지려고 할 정도였다. 평범하고 무던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자꾸만 내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렇게 쓰기도 하는구나, 이런 글도 참 예쁘게 읽히는구나, 어쩌면 나도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섭섭한 순간들, 화나는 사람들, 속상한 일들을 작가의 흉내를 내면서 쓰다 보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 세상이 좀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한 발 내 앞으로 다가오고, 나 또한 한 발 앞으로 다가가고 그러면서 더욱 가까워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녀의 생각을 한 줄 한 줄 옮겨 적고 싶다. (y에서 옮김200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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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상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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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다시 가을로, 같은 인물들이 계절에 따라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담아 보여 주는 소설 시리즈다. 기본틀은 미스터리 추리. 사건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을 만큼 대단한 건 아닌데, 오히려 어른들 입장에서는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아주 은밀하고도 촘촘하게 엮어 놓고 있다. 내가 고등학생이라면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정신적 훈련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분량이 앞선 계절의 이야기에 비해 많았던 모양이다. 사소한 사건을 연달아 일어나는 것으로 배치하고, 두 주인공의 시점에서 번갈아 서술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지. 좀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중간에 덮을 만큼은 아니었다.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나의 호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시절을, 이미 지나간 나이 때의 인물을 설정하고 그들의 세계를 그려 보이는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며 무엇을 말해 주고자 하는 것일까.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삶의 본질은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가 하는 짐작이 든다. 어리다고 해서, 세상 이치에 둔감한 것은 아니라고, 삶에 대한 두려움이나 긴장감이 어른이 느끼는 정도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하는.

 

그러니 이 작가의 이 시리즈 소설을 읽을 때면 매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 나이에, 이 어린 나이에 이들은 이렇게 치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고 대응하면서 살아간다는 건가. 그에 비해 나는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지. 나도 한 번쯤은 소설 속 인물들 같은 추리력을 가져 보았으면, 아니 작가가 짜 놓은 구성력을 가져 보았으면 하면서 부러워하게 된다. 아닌가, 이 정도 되면 내 정신이 너무 복잡해졌다고 도로 하소연하게 될지 모르겠다.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다음 책을 봐야겠다. (y에서 옮김2017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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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5 소설 보다
서장원.이유리.정기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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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기에 안 좋은 계절이 언제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적어 본다. 다음 계절에 또 적을지도 모르겠지만. 


세 편의 글 중 나는 이유리의 [두정랜드]를 먼저 챙긴다. 애틋하고 안타깝다.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의 애환을 넘어 이 시대 모든 젊은이들의 삶을 헤아리게 된다. 내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데도, 심지어 놀이공원 비슷한 곳에는 가서 놀아 볼 마음조차 없으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탄하는 만큼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해서 암담해지는 기분만 든다. 소설은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각성하게 만드는데 이 일깨움이 고맙다. 


서장원의 [히데오]는 소재(왕따와 폭력)가 따끔해서 읽기 거북하였다. 안 읽을 수 없는 노릇, 모른 채 살아가서는 안 될 노릇이라는 게 매번 내 독서를 힘들게 만든다.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55p)'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작가의 말에 인정은 하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성향의 글이 아니라는 한계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점점 읽어야 할 글보다 읽고 싶은 글 쪽으로만 향하고 있는 중이라.


정기현의 작품은 내 취향이 영 아니어서 얼렁뚱땅 보다가 그쳤다. 인물에 대한 호감도가 생겨야 독서가 이어질 텐데, 그게 안 생기면 나는 읽기를 포기한다. 이럴 수도 있지, 하면서.


한창 젊은 나이에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글로 그려 보이는 작가들을 응원한다. 소설은 역사이자 시대의 증거가 된다는 것을 늘 믿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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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2020 12호 - Vol 12 :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12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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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주제는 '가족'이다. 좀 많이 평범하고 그래서 더 위대하기도 더 심난하기도 한 주제. 나는 기사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답 없는 물음만 떠올렸다.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안 들었고 오히려 가슴끝 혹은 목 아래가 답답해지는 것이  이건 무슨 마음일까 싶기만 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내게 가족은 어느 범위의 사람까지 해당될까. 나는 가족이라고 여기는데 그도 나처럼 나를 가족이라고 여겨줄까? 혹은 이 반대의 경우에는? 가족이라면 가족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이니까, 가족이라서, 더더욱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을 텐데, 이런 상황의 한계는 가족 내에서 서로서로 공유되고 있을까. 가족이라면서 더 싸우기도 하고 가족이라서 더 품어야 하는 각각의 문제 상황들, 이래서 가족이 철학적 고민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큼 답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쉽지 않을 것이니.

 

글들은 비교적 낯익었다. 주제 자체가 낯선 게 아니고 우리네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니 늘 떠올리는 내용들이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가족 관련 통계 자료 및 몇몇의 사례에서는 살짝 신선한 면을 느끼기는 했지만 대체로 심심하게 읽혔고 그래서 좀 지루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가족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하는 시대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자칫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이라는 관계, 가족이 곧 힘이자 삶이라고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되새겨보게 된다. 정녕 저마다의 문제이리라. 자신의 가족, 자신의 문제. 잘 지내는 게 분명히 좋은데, 모르는 게 아닌데, 남이 아니라 가족이라서 더 어려운 것이 아닐지. (y에서 옮김20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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