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하이쿠 ㅣ 하루하루
마쓰오 바쇼 외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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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는 5,7,5의 열일곱 음으로 이루어진 일본 고유의 정형시다.  일본말을 모르니 일본말의 구조도 몰라 이해를 못하는데 우리말 음절로 번역을 맞춰 놓은 것을 읽고 있으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형식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중 하나의 감각이 포함되어야 하고 자연계나 인간계의 현상을 담아 읊은 시라니. 단 17자로도 세상 한 면은 비춰 보일 수 있다는 것이겠다. 일본어가 아닌 우리 글자로 해 볼 수도 있겠지만.

계절이 계절이라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오는 시들에 집중했다. 지금 딱 와 닿는 다음의 한 편. 풀을 뽑아야 하는데 뽑을까 말까 변덕을 부리는 나를 안심시키는 내용이다. 찬바람이 더 불면 지난 여름 내내 왕성했던 풀들이 절로 말라 버릴 것을 알아서 굳이 뽑을까 어쩔까 하고 있는 중이라 보고 슬며시 웃는다. 하이쿠라는 시가 이렇게 일상을 다루고 있는 모양이다.  

 
즐겨 읽고 있는 일본 만화에서도 하이쿠의 맛을 보고 있다. 술 한 잔과 더불어 읊는 하이쿠 한 수. 우리에게도 음보를 맞춰야 하는 정형시가 있다. 시조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데 3장의 형식이라 하이쿠에 비하면 좀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까이 두고 멍 때릴 때 펼쳐 보면 또다른 멍때림의 차원으로 나를 안내해 줄 듯하다. 사계절 중 한 계절의 맛을 느끼는 게 새삼 좋아진다. (y에서 옮김20241003)

<이번 여름에 woojukaki님이 보내 주신 선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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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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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와 표지에 대한 호감으로 구한 책이다.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1장을 읽고 아주 마음에 들어서 몇 장까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18장이다. 그 뒤에는 만만치 않은 분량으로 번역가의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나는 이 글을 한번에 주루룩 읽은 게 아니라 한 장 한 장 끊어서, 다른 일도 하면서 마치 일일연속극처럼 나누어 보았다. 그렇다고 하루에 한 회씩만 본 건 아니었고. 


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들 중에 이 작품을 퍽 좋아했다고 한다. 쓰게 된 배경을 참고해 보니 당사자에게는 썩 유쾌한 처지에서 나온 작품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게다가 1차 세계대전이라는 험한 상황에 놓여 있기도 했다고 하고. 쓰고자 하는 갈망은 결국 다른 핑계나 변명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어떤 일에서든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할 일을 하는 사람은 해내고 마는 모양이니.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채리티. 작품 속 열여덟 살의 여자 주인공이다. 중심 사건은 단순하다. 시골에 살고 있는 여자 주인공이 도시에서 온 젊은 남자에게 반해서 사귄다는 것. 이 단순한 줄기를 작가는 엄청나게 천천히 그리고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 보인다. 그것도 여름 한 철이라는 시간 안에서.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먼 미국 땅, 백 년 전 어느 시골의 풍경 안에서 오래 머무는 느낌을 받았다. 채리티가 오가는 길을 내내 따라다니면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해 받으면서. 그래서 꽤 힘들었지만.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어떨 때 생길까. 새삼스럽게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짐작해 본다. 이런 인물이 이런 일을 겪었어요, 이런 생각을 했다는군요, 그러면서 쓰고 있는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한심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기어코 드러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것 같은, 못 살 것 같은 간절함으로?  표현의 본능이 그리하여 문학 본능 중 하나가 되었던 걸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그 마음으로 해내는 예술가들의 모든 활동을 봐도 그렇고.     


백 년 전 미국 사회가 여성에게 그토록 억압적이고 차별적이었다는 데에 좀 많이 놀랐다. 막연하게 평등했으리라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우리의 처지나 별 다를 바 없었던 모양이니. 사회의 분위기를 거스르는 주제를 담고 있는 글을 써 내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만 봐도 충분히 짐작이 되는데 이 작가가 그때 그랬다는 거고 그 작품이 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백 년이 지난 지금 기준으로는 '설마 이 정도로?' 싶기만 하건만.   


주제도 주제였지만 내가 이 작품에 더 빠져든 것은 낱낱의 문장들에 있었다. 어느 한 줄도 소홀히 넘길 수가 없었다. 넘겨지지도 않았고. 원작도 번역도 훌륭하다는 게 이런 글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지. (y에서 옮김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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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와 거짓말의 계절 ㅣ 도서위원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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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도 나와 있다, 거짓말. 거짓말을 왜 하게 되는 것일까, 거짓말을 들으면 왜 기분이 나빠질까, 거짓말인 줄 알게 되면 배신감을 느끼는 건 무엇 때문일까,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다 아는데 왜 거짓말을 하게 될까, 가끔 어떤 거짓말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거짓말로 물음을 만든다면 얼마나 이어 나갈 수 있을까. 하고 싶지만 안 하련다.


작가의 앞선 책 <책과 열쇠의 거짓말>에 이어진 책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같고 사건의 배경이 되는 상황이 달라졌다. 인물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므로 기억력이 좋다면 읽으면서 추리할 때 도움이 되겠으나 다 잊어버린 나로서는 그저 새롭고 재미있게만 읽혔다. 이렇게나 똑똑하고 냉철한 고등학생들이라니, 아무리 소설 속이라지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실에서는? 못 볼 것만 같은 인물들이다. 


책갈피는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책갈피에만 초점을 맞추고 읽다 보니 거짓말에 유의하지 못하였다. 둘 다 제목으로 나란히 등장했는데 나는 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책갈피에만 치우졌을까? 독 때문이었을까? 거짓말이라고? 무슨 거짓말? 누가 어떤 거짓말을 했는데? 거짓말이 어떤 역할을 했지? 글을 거의 다 읽을 때까지도 거짓말보다는 책갈피에 매달렸다. 무서운 책갈피, 하찮은 책갈피, 놀라운 책갈피, 거짓말을 생산하는 책갈피. 


다 읽고 얼떨떨해졌다. 뭐지? 이 서늘한 기분은? 거짓말에 단순하게 반응해서는 안 되겠구나. 나는 또 얼마나 많은 혹은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완전한 거짓말이 아닌, 정보를 숨긴 거짓말, 정보의 아주 일부만 바꾼 거짓말, 정보의 일부를 부풀린 거짓말, 상대를 안심시키겠다는 의도적인 거짓말 등등등. 세상에 거짓말은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것을.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에 매번 놀란다. 고등학교와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 청소년기 때 겪는 성장통, 그리고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권위주의에 대한 경고 메시지까지. 일본과 우리의 교육 현실에 비슷한 점이 많다 보니 갈등의 양상도 비슷하게 펼쳐지는 면이 있다. 읽으면서 절실해지는 점도 비슷할 것 같고. 


재미있다. 읽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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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거짓말
나태주 지음 / 푸른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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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상대로 e북에는 시집이 딱이다. 휴대한다는 취지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 보기에도 한동안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 있기에도 무엇보다 색깔이라는 제한에 구애 받는 것 없이 깔끔하게 볼 수 있다. 휴대폰으로 시집의 시들을 사진으로 저장해 두고 틈 나면 보고 싶었던 내 욕심을 해결 받은 것 같다. e북으로 된 시집을 검색하고 있는 중인데 아직 갖고 싶은 게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시간이 걸리겠다.


이 시집의 시들은, 좀, 내 취향에서는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좀 더 비유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을 기대했는데 직설적인 편이다. 사랑이라는 게 돌려 말하는 쪽과 대놓고 바로 말하는 쪽 이렇게 두 방향의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볼 때, 나는 은근히 숨기고 돌려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어려워서 바로 못 알아먹어도 자꾸자꾸 생각해 보게 하는 흡인력을 발휘하는 사랑 쪽에.  


꽃 7가지로 세부 영역을 나눈 편집은 소박하면서도 귀엽게 보인다. 제목으로 쓰인 꽃과 그 안에 담긴 시들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까지는 살펴보지 않았다. 어떤 종류에 대해 좋아하는 것을 7가지 정도 들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정신으로서의 소유가 될 것 같다.


사랑에 대한 올곧은 표현을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권한다. (y에서 옮김201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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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다 1 - 헬로 스트레인저 ㅣ 길에서 만나다 1
쥬드 프라이데이 글.그림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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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릴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자주, 능숙하게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색채로 나타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좀더 즐거워질 텐데. 그림은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것보다 조금 더 간절한 나의 바람 중 하나다.

 

이 만화, 내 취향이다. 풍경 그림이 참 좋다. 서울의 어떤 곳(주로 길)을 사진으로 찍고 그 길을 다시 그림으로 보여 주고. 나는 이 장면들이 이야기의 구조나 대사보다 훨씬 좋았다. 책장을 넘기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고 싶을 만큼 잔잔하고 소박하고 아늑한 길들. 그 길을 찾아 나도 돌아다녀 보고 싶을 만큼.

 

웹툰이나 젊은 작가들의 책을 보면 그 안에서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읽게 된다. 아직은 정착하지 못한 아슬아슬한 단계, 여전히 헤매고 있다면서도 놓치지 않는 꿈, 좀 불안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애쓰고 안간힘을 보태는 일상들. 그 시간을 어렵지 않게 지나온 나로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그림을 좀 그려 보고 싶다는 소망 따위는 그들에게 사치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딸에게 이 만화책이 좋다는 말을 했더니, 요즘 좋은 웹툰이 아주 많아졌다고 한다.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한 편견 때문에 좋은 작품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 분야의 작가들이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출판 영역에서 넉넉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독자인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읽어주는 것으로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 기특하게 해 본다. (y에서 옮김20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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