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놀고 싶은 날 숨은그림찾기 - 빨간고래와 떠나는 숨은그림 여행 40코스 ㅣ 혼자 놀고 싶은 날 미로찾기
박정아(빨간고래) 지음 / 조선앤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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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런 책이 나온다는 게, 누군가 이런 책을 만들고, 나처럼 이 책으로 혼자 노는 사람이 있다는 게, 뭔가 좀 이상하면서 반갑기도 하다. 정녕 이런 시대가 되었단 말인지. 충분히 누리면서도 의아하다. 내가 뭘 하나 싶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싶다가 이러면 어때서 싶기도 하고. 아무튼 재미있는 책이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숨은그림찾기의 방식과 다른 형태라 초반 좀 헤맸다. 내가 알고 있던 숨은 그림은 선과 선 사이에 숨겨져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냥 널려 있다. 배경으로 제시한 그림이 워낙 복잡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어서 널려 있다고 해도 이곳저곳에 있는 그림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모양이었다. 그만큼의 주의집중력이 필요하기는 했다. 


이렇게 찾는 그림도 숨은 그림인가 하면서 한 장 한 장 넘겨 보는데, 넘길수록 의외로 흥미로워졌다. 아마도 그림의 주제가 여행이었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갈 수 없는, 혹 가 본 적 있는, 아니면 언젠가 가 보고 싶은, 그런 곳들을 잔뜩 그려 놓았다. 경험해 본 장면은 경험한 대로, 아직 못 만난 기분은 살며시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구석구석 살피다 보니 숨어 있는 그림도 찾게 되고 답답해 있던 마음도 스르르 풀리는 것 같고. 


모두 40코스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난 현재 10코스를 방문했다. 한꺼번에 다 찾아 버리고 싶지 않아졌다. 아껴 놀고 싶다. (y에서 옮김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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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제2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ㅣ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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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시를 읽으면 기분이 서서히 좋아진다. 어디 먼 데 있는 환상도 아니고, 도무지 모를 의식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그게 아무리 지독하더라도 그것마저 포근하게 품는 마음과 무엇보다 나날의 생활이 다정한 말들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힘든 생을 마치는 생명을 다루고 있을 때마저도.


넓게 보면 지구에 인간만 사는 것도 아니고 인간과 더불어 살든 그저 저희들대로 살든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무수하고 인간은 한 종일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인 우리 존재는 서로에게 또 다른 대상을 향해 얼마나 나쁜 짓들을 많이 하고 사는 것인지. 저 살자고 하는 일만도 아니면서. 나는 시 한 편 한 편을 읽고 넘기면서 시인의 눈을 좇아 내 주위를 살핀다. 말랑말랑한 힘으로 살아가는 애틋한 목숨들이 도처에 가득하다. 


말랑말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쭉 곧고 단단하기보다 더 힘든 일이 말랑말랑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지난 날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알고 있다고 해서 아는 대로 될 수 있는 게 아님 또한 알고 있어서 일상은 고단하다. 고단해도 살고, 살아야 하고, 살 수밖에 없겠지만, 말랑말랑해지기를 바라면서.  


나온 지 시간이 꽤 된 시집인데, 유독 한 편의 시가 돋보인다. 괜히 '지장보살'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하필 오늘이 대통령 선거일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 것일까. (y에서 옮김20220309)




86-87



  [기호 108번]



국민들을 위한다면



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팔았으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일을 하셨어도



진정 국민들을 위하였다면



자신이 부족하였음을 느끼셨을 텐데



부족하여



미안하여



재산을 다 헌납하시거나



아무도 모르게 선행으로 다 쓰셨어야 옳았을 텐데



재산이 늘었다니요!



잘못 전달된 거겠지요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 재산을 늘린 분들이 계신다면



대통령님이시거나, 국회의원님이시거나, 검사님이시거나,



도지사님이시거나, 시의원님이시거나, 농협장님이시거나,



다 개새끼님들 아니십니까



국민들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말을 파신 분이나 



말을 파실 분은



중생들이 다 극락왕생할 때까지



성불하시지 않겠다는



기호 108번



지장보살님 꼭 한 번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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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 햇볕 쨍쨍한 날의 기적 ㅣ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46
샘 어셔 지음, 이상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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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책마다 자신이 새기고 싶은 메시지를 명쾌하게 담는다. 이 책에서 전하고 싶은 내용은 '바라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이다. 이걸 손자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햇볕 쨍쨍한 날, 지도와 망원경을 들고 모험을 떠나는 할아버지와 손자. 작가의 구상 과정을 짐작하는 게 대단히 흥미롭다. 


말로 하는 건 쉬운 일이다. 글로 전하는 건 말보다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해 볼 만하다. 그림과 글을 한데 묶어 전하는 것,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새삼스럽게 그림책 작가들이 겪을 수고로움을 생각한다. 여간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내가 못하는 분야라서 더더욱 대단하게 여겨진다.  


지도를 보고 모험을 떠난다는 생각, 지금이야 종이 지도보다 휴대폰 앱을 더 많이 쓰겠지만, 퍽 낭만적이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해적들과 보물을 나누고 즐겁게 여행을 한다는 내용은 또 얼마나 멋진가. 이 모든 길에 쨍쨍한 햇볕이 있었더란 말이지.


쉽게 얻는 보물은 없고, 쉽게 얻는 건 보물도 아니고, 힘들게 찾은 보물도 혼자 차지할 게 아니라 여럿이 함께 나누어야 더 귀한 보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 다정한 그림책에서 또 확인한다.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고 저절로 착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y에서 옮김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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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땀 ㅣ 소설향 앤솔러지 1
김화진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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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작가의 이름을 보고 고른 책이다. 받고 보니 '색과 향'에 관한 여섯 편의 소설 모음집이라고 나와 있다. 편집자들의 이런 기획, 읽는 쪽에서는 흥미가 생긴다. 이 흥미가 꼭 읽는 만족도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 대한 나의 호감도는 실린 순서대로였다. 편집자들이 어떤 점을 고려하여 글 순서를 정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뒤쪽으로 넘어갈수록 나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편집자의 선정 순서와 내 취향이 비슷하다는 뜻으로 보면 너무 자의적인가? 


6명의 여성 소설가. 이것도 의도였을까? 편견이겠으나 나는 남자 작가와 여자 작가의 글에 다른 시선을 보낸다. 여자 작가가 남성 화자를 내세워도 남자 작가가 여성 화자를 내세워도 나는 작가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 소설가 이전에 각각 남자로 여자로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자화상 중 하나로. 둘 다 고단하다 하여도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그리고 나는 여성 독자일 수밖에 없고.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인물을 만나는 일에 큰 가치를 둔다. 나와 다른 나이, 나와 다른 처지, 나와 다른 성격, 나와 다른 우주... 내 안의 낯선 나를 만나는 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이다. 


소설은 대체로 우중충한 분위기였고 나른했고 하루하루가 고단했다. 지금의 나보다 한참 젊은데도 아무도, 전혀 부럽지 않았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도 지금의 이들처럼 그러했을까? 절망이 근처에서 맴돌고 있는 시절이었을까? 나는 속 편하게 다 잊어버리고 만 것일까? 가끔 지나간 시절의 내 어린 독후감을 들춰 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기획은 현재 이 책 한 권만 나와 있다. 더 나오겠다는 것이겠지? 주제도 작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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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다행한
천양희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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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빛나게 살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시를 쓴다(133쪽)'고 시인은 말한다. 나도 '빛나게 살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시를 읽는다고 말하련다. 이 시집 속 어느 한 편 허투루 읽지 않도록, 세심하고 다정하며 쓸쓸하기도 한 시심 가득 담아 놓은 시들 뒤편에 시인은 자신의 산문까지 실어 놓았다. 왜 시를 쓰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면서, 자신이 그리고 있는 시인의 마음을 받아 안아 줄 독자를 기대하면서.   


아무 쪽이나 펼쳐도 좋은 시집을 오랜만에 본다. 마음에 콕 와 닿는 구절들을 옮겨 보겠노라 내내 연필을 들고 있었지만 끝내 아무 곳에도 줄을 긋지 못했다. 그으려면, 옮기려면, 결국 시집 한 권을 통째로 긋고 옮겨야 할 듯해서였다. 시집 제목처럼 '지독히 다행한' 만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시집에는 유달리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산도 물도 길도 모두 바람 아래 있는 듯하다. 덕분에 '바람아래해변(46-47쪽)'이라는 시를 다른 시들보다 더 들여다보게 된다.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좋아서, 이 시간을 만들어주는 시가 좋아서, 이 좋은 시를 만나게 해 준 시인이 좋아서, 나는 또 하염없어진다.    


그리고 또 한 편 더. '의외의 대답(94-95쪽)'이라는 시. 의외의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시인의 마음이 와 닿는다. 이렇게 살았을 것이라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이라고 믿는 데에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는다. 짧은 시 한 편으로도 사람을 온전히 믿을 수 있겠다는 경험을 자주 겪는 건 아니다. 횡재한 기분이다.  


무엇보다 어렵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설사 시인이 어려운 마음을 담았다고 해도, 그래서 어렵게 읽어 주기를 바랐다고 해도, 나는 쉽게 읽고는 깊이 빠졌다가 오래 머물렀다. 달리 방법이 없기도 했고. (y에서 옮김20210717)


두 편을 천천히 옮겨 본다.



46-47

- 바람아래해변



물을 좋아하는 너와



바람을 좋아하는 내가



물처럼 살 수 없고



바람처럼 가벼울 수 없을 때



 



너보다 더 낮은 곳에 물이 있고



나보다 더 높은 곳에 바람이 있다는 걸



바람아래해변에 가서야 겨우 알았다



 



바람은 해변 아래서만 불고



물은 해변 아래서만 흘렀다



 



어떤 이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물이라 하고



누구는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것이 바람이라 하지만



 



바람아래해변에선



모든 것이 바람 아래라는 것을



바람아래해변이 말해준다



 



바람이 불지 않고는



어떤 생각도 밀물처럼 밀려오지 않고



바람 없이는



어떤 후회도 썰물처럼 빠져나가지 않는



 



바람아래해변에서



 



바람을 맞고도



너와 나는 물처럼 하염없다



 



94-95



- 의외의 대답



내가 세상에 와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말보다 침묵으로 말하겠다



강변에 나가 앉아



물새야 왜 우느냐 물어보았던 것



나는 왜 생겨났나 생각해보았던 것



 



내가 세상에 와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흘러가는 말로 다시 말하겠다



강가에 서서



그냥 미소 짓고 답하지 않는 노을을 오래 바라보았던 것



나는 왜 사나 알아보았던 것



 



내가 세상에 와



제일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거듭 묻는다면



사람의 말로 거듭 말하겠다



무릎 꿇고 앉아



남의 고통 앞에 '우리'라는 말은 쓰지 않았던 것



나는 왜 사람인가 물어보았던 것



 



내가 세상에 와



끝까지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끝까지 묻는다면



마지막 남은 나의 말로 끝까지 말하겠다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 살려주고 떠나는 것



다시는 몸 받지 않겠다며



나를 잃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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