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저녁 - 개정판 ㅣ 민음의 시 56
유하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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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침보다는 저녁이 좋다. 해질 무렵, '소멸과의 기나긴 싸움을 끝낸 노을'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을 걸으며'(25p) 나도 이 시인처럼 늙어가고 싶다. 지금까지 새로이 한 세상을 여는 새벽이나, 눈부신 아침과는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살아온 나로서는 저녁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저 마음이 설렌다.

이미 지나간 것은 왜 두고두고 우리 마음을 떨리게 하는 것일까. 추억이나 시간이나 하다못해 어느 하루까지 온전하게 시원하게 우리 곁을 떠나가 주지 않는다. 그러니 저녁만 되면 남은 안타까움을 붙잡고 헤맬 수밖에.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애써 추억하는 시인의 깊고깊은 시선에서 좀처럼 내눈이 떨어지지 않아 꽤나 애먹은 순간이 있었으니.

시집을 넘기다 보면 가끔 부제목이 딸린 시를 만날 때가 있다. 영화 제목이거나 가수 이름이거나 시인 이름이거나 혹은 다른 그 무엇이더라도 나는 그들이 부럽다. 그러한 시들은 사랑이 담겨 있는 상상력을 보는 기쁨을 내게 준다. 사랑이 없다면 절대로 그렇게 보여지지 않을 세상과 사람들. 시인이 불러준 그 사람들은 정작 시인의 사랑을 알고 있을까.

오래 전부터 세상은 우리를 안고 있었고 앞으로도 우리를 이끌어갈 것이다. 1993년 초판본을 구해 읽었을 때의 그 아련한 기억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어, 지금도 저물 무렵 까닭 모르게 쓸쓸할 때면 이 시집을 들춘다.
(y에서 옮김20010612)

[인상깊은구절]
탕진해 버린 세월
문득, 살아온 날의 상처가
돌이킬 수 없이 엎질러진 어둠처럼
허허롭게 만져질 때,
강은 어느새 저문 날의 끝에서
하늘의 목젖을 젖히며 새 살인 듯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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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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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세상을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방법 하나. 세상에 이로운 존재인가 해로운 존재인가 평가해 보는 일. 어떤 식으로든 이로운 방향으로 살자는 것이 내 생의 목표이자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한데.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내가 살아서는 검증 받을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소설은 무척 재미있었다. 읽는 내내 호기심을 가졌고 불편했고 부담스러웠는데 다 읽고 나니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세상은, 세상 사람들은,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살 만하고 좋은 사람 즉 이로운 사람도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소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도록 했다. 고마울 따름이다.


    소설을 다 읽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실존 인물에서 주인공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늦게 알았다. 2010년대에 맥도날드 할머니로 알려진 권하자. 2013년 사망. 소설은 2016년을 배경으로 삼았고 주인공 이름은 김윤자, 책은 2022년에 나왔다. 시간이 스르르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사람 하나가 이렇게 세상에서 사라져 갔구나. 하나의 존재가 떠난 뒤에 누군가 글로 남기는 이 작업은 세상에 이로울까 어쩔까. 자신이 자신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생을 일부는 사실로 일부는 허구로 만들어 남기는 일. 살아 남아서 글을 읽는 우리는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가치로? 누구를 위하여?


    왜 사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날이 잦다. 그냥 산다고, 그냥 사는 것이라고 답을 하면서도 시원하지가 않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서,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아서, 다른 이유를 만들어내어야 할 것 같아서. 권하자 혹은 김윤자는 생을 무엇으로 받아들인 것이었을까. 알 것도 같은데 모르겠다. 작가는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기대하였을까. 세상에는 똑같은 인간이 없듯이 똑같은 삶도 없다는 것을 안다.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남의 삶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한데. 이롭거나 혹은 해로운 영향은 어떻게 구별하지? 존재만으로 갖는 생명의 가치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행복했던 소설 읽기가 엄청 무거워졌다. 


    산문에 먼저 끌려 소설을 읽게 된 작가의 작품이다. 앞으로 더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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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20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21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스 럼피우스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60
    바버러 쿠니 지음, 우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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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되면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바다를 보면서 살겠다는 꿈, 그 꿈을 이루기 전까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꼭 한 가지 하겠다는 약속. 동화라고 해서 어린이들만 읽는 게 아니라는, 어른이 되어서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은 시간은 짧았으나 다시 펼쳐서 들여다 본 시간은 세 곱절이 넘게 들었다. 정녕 미스 럼피우스와 같은 할머니가 될 수 있다면......


    이 책 덕분에 루핀이라는 꽃도 찾아 보았다. 어쩌면 우리집 마당에다 곧 심어 볼지도 모르겠다. 꽃씨부터 아니면, 모종이라도. 미스 럼피우스처럼 꽃씨를 널리널리 뿌리겠다는, 그리하여 나도 그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하겠다는 가당찮은 생각에서가 아니라 그저 꽃 보는 시간 안에서 나라도 평온하면 세상의 평온에 아주 작은 점처럼 기여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 책과 같은 그림동화책을 더 찾아서 보려고 한다. 여러 모로 단순해지면서 마음이 진정이 된다. 이참에 어른들이 읽어서 더욱 좋을 그림책 목록이라도 나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정도다. 나이 들수록 어린애가 된다고도 하였으니 갖고 있던 욕심을 줄여 가면서 처음 세상에 나왔을 무렵과 가까운 상태로 살게 되는 걸 꿈꿔 본다.  


    그림책 속의 이 장면을 따라서 그려 보고 싶었는데 밑그림 그리다가 포기했다. 때로는 포기도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바닷가 작은 집을 아무나 가질 수는 없을 테니까.  (y에서 옮김202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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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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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같은 때에 '조지 오웰'의 글이라. 이 책을 사 둔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안 읽고는 치울 수가 없어 의무감으로라도 읽으려고 마음먹고 잡은 책이다. 뭐라고 말하기 참 민망한 마음 절반, 이렇


    게라도 읽은 것이 다행이다 싶은 마음 절반, 내 마음이 그러하다.

    어떻게 된 것이 조지 오웰의 너무도 유명한 두 작품 '1984년'과 '동물농장'을 읽은 기억이 없다. 아마 안 읽었을 것이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읽은 것처럼 착각되는 작품, 아는 게 전혀 없으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한 작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내가 조지 오웰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익힌 게 없다는 것을.

    평생을 폐질환으로 시달리면서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잃지 않았던 사람, 무섭다는 생각도 좀 든다. 어쩌면 살아있는 게 그만큼 더 간절하고, 자신이 사는 세상에 그만큼 욕심이 더 생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이었으면 하는 바람, 조금 더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인간 세상에 대한 바람, 사회와 정치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작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몸이 아프고 덩달아 마음이 아픈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 혼자 생각해 본다.

    예전에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살기 고달플 때에, 누구나 힘들다고 말하던 시대에는, 함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함께 꾸던 꿈이 있었다. 같이 살아가자고, 기쁨도 아픔도 함께 나누자고, 그래야 한다고 말로 눈빛으로 어깨동무로 그리고 노래와 글로 서로서로 격려하던 시절. 그 때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아찔하다.

    세상이 달라진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내 마음도 그때로부터 많이 멀리 떠나왔고, 내 주위의 사람들도 그때의 그 상황에서는 많이 벗어났다. 이건 그때의 기억들이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때의 어떤 아픔들을 고스란히 느끼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더 지독한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부끄러워서 고개 돌리는 상처도 있고, 뻔뻔해져서 모른 척 하는 상처도 있고, 지쳐서 눈을 감아 버리는 상처도 있고, 여전히 아픈 사람들에게는 사라지지 않을 고통인데도.

    책만 읽는다고 내가 외면한 진실로부터 용서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책이라도 읽어야 내 마음이 조금 놓일 것 같은 것, 그 또한 비겁하고 구질구질한 변명의 하나로 남을지라도, 미안하지만 이것이라도 해야겠다 싶은 그것, 조지 오웰의 글은 이렇게 내게 반성하는 시간을 준다. (y에서 옮김20110512)



    81-83


    내가 나의 모든 배경 정보를 여기에 밝혀놓은 까닭은, 한 작가의 초기 발전 과정을 어느 정도 알지 못하고는 그 작가를 지배하고 있는 문학 동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학적 주제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의해 결정된다. 적어도 우리 자신의 시대처럼 격동적이고 혁명적인 시대에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작가가 글을 쓰려고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는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정서적 태도를 획득하게 된다. 자신의 기질을 길들이고, 미숙한 단계나 어떤 왜곡된 방법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를 훈련시키는 것이 명백히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만약 작가가 자신의 초기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면, 그 작가는 글을 쓰고자 하는 자신의 충동 자체를 죽이는 꼴이 될 것이다.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요구를 제외해 놓고, 나는 글, 특히 산문을 쓰는 데에는 네 가지의 큰 동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네 가지 동기는 모든 작가들에게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또 동일 작가에서도 그가 살고 있는 환경에 따라 때때로 다를 수 있다. 그 네 가지 동기란 다음과 같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놀렸던 사람들에게 보복하려는 욕망이다. 이것이 작가에게 큰 동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작가들은 이런 특징적 욕망을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 법률가, 군인, 성공한 사업가들, 간단히 말해 인류의 꼭대기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상류층 인간들과 공유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지나칠 정도로는 이기적이지 않다. 대략 서른 살이 넘으면,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을 포기하고-실제 많은 경우에 이들은 개인적 야심을 거의 포기한다-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거나 아니면 단조롭고 일상적인 일에 짓눌려 산다. 그러나 또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려고 결심하는 소수의 재능 있고 의지가 굳은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작가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들은 저널리스트들보다 돈에는 관심이 적지만 대체로 허영심이 더 강하고 더 자기 중심적이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혹은 말과 그것들의 적절한 배열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하나의 소리가 또 다른 소리에 미치는 영향, 다시 말해 괜찮은 산문의 견고함이나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아는 즐거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값지다고 느껴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고자 하는 욕망, 미학적 동기는 많은 작가들에게 주된 것은 아니지만 팸플릿 지은이나 교과서 집필자조차도 공리적 목적을 넘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단어와 관용어법을 가질 수 있다. 혹은 활자체, 여백의 폭 등에 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일 수 있다. 철도시간 안내 책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책이라면, 어떤 책도 미학적 고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욕망, 진실한 사실을 발견해서 후손들을 위해 그것들을 보존하려는 욕망이다.


    (4) 정치적 목적


    가능한 한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고자 하는 욕망, 다시 말해 성취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그런 종류의 사회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이다. 다시 한 번 말아지만, 어떠한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이 정치와 관계가 없다고 하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이다.

    모든 작가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이런 주제의 글을 쓴다. 그것은 작가가 어떤 쪽으로 글을 쓸 것인지, 또 어떤 방식을 따를 것인지의 문제이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더 많이 의식하면 할수록 미학적이고 지적인 자신의 성실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정치적으로 더 많이 행동할 기회를 갖게 된다. - P86

    내가 할 일은 내가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고 있는, 본질적으로 대중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 P87

    많은 소설비평이 아마추어 비평가에 의해 행해진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경험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재능은 있지만 지루한 전문가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다. - P100

    문학의 가치를 느끼고 문학이 인간 역사의 발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그것이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강요되든지, 내부로부터 우리에게 부과되든지 간에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저항할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P109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감정 상태를 알기 위해서 가끔 어떤 분명한 사건을 목격할 필요가 있다. - P208

    분명히 모든 스포츠는 민족주의의 발생과 관계가 깊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큰 동력장치로 규정하고 모든 것을 경쟁의식의 관점으로 보는 현대인들의 광적인 습관과 관계가 있다. 또한 조직화된 경기는 보통사람들이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다시 말해 제한되어 있는 삶의 방식 때문에 창조적 노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은 도시 지역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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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박공의 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2
    너대니얼 호손 지음, 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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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공이라는 지붕의 형태를 알게 되었다는 게 참 좋다. 그림으로도 사진으로도 근사해 보이는 구조다. 이렇게 생긴 지붕의 비교적 거대한 건물에서 있었던 역사, 인물들의 삶과 죽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인연 혹은 악연. 그래서 일곱 박공의 집을 주인공의 하나라고 하는 뜻도 알겠다. 세상에는 이런 식의 주인공과 같은 건물들이 더러 있으니까.


    작가 이름이 낯익고,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끼친 바가 컸다는 게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였다. 글쎄, 환상 혹은 추리 기법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모르겠고(내 독서력의 부족 탓),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묘사만큼은 확실히 닮아 있다. 두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미국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메리카 땅. 유럽에서 찾아간 사람들이 빼앗다시피 점령한 땅. 먼저 점령하고 나중에 점령하고 그러면서 죽고 죽이고. 오랜 시간이 저마다의 원한이 겹치는 채로 흘러 갔던 듯하다. 누군가는 살아남았고 살아서 영광을 되찾거나 새로 얻었고. 미국이라는 나라, 역사를 제대로 더 알면 소설도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에 비해 그들의 역사를 알고 싶다는 바람이 영 일어나지 않으니 이건 이것대로 섭섭할 일이다.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의 기본 줄기는 복잡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단순하고 분명하다. 작가의 표현만 지극히 장황할 따름이다. 일곱 박공의 집, 이 집의 구석구석을 작가를 따라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그것도 영 유쾌하지 않게. 그러니 피비와 홀그레이브의 만남마저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다. 그게 또 낭만의 사랑이라고 해도.        


    문장 하나하나를 읽는 것,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데에 인내심과 주의력이 필요하다. 나는 여러 번 뭉개지는 경험을 했다. 다 읽고 나니 대견해진 기분까지 절로 들었고.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번역. 이게 읽는 데에 가장 큰 방해가 되었다. (y에서 옮김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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