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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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하게 되는 생각인데, 어떻게 이런 소재를 붙잡을 수 있을까 하는 것. 정말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순간들, 특별히 기억할 만한 사건이 없어 맹숨맹숭하게 흘러 넘기는 순간들을 그림으로 잡아 놓고 있다. 그리고는 머물게 한다. 쉬이 놓쳐 버린 소중한 삶의 순간들 안으로 불러 들여서.

 

내가 차를 좋아했던가? 혹 지금은 차를 좋아하나? 커피든 홍차든 녹차든 쥬스든. 흠, 일상적으로 마시기는 하는 것 같은데 막상 좋아한다고 하는 느낌은 없다. 한때 나도 차를 마시는 우아한 습관 정도 가져보리라 시도도 해 보았지만 실패했고, 믹스 커피 대신에 커피콩도 갈아서 원두커피로 마셔 보고도 있지만 그것도 귀찮다 싶고. 게다가 디저트라니(나는 디저트를 거의 먹지 않는 쪽이다, 이유는 이미 배가 부르니까).

 

그럼에도 차를 마시는 시간은, 이런 시간에 대해서만큼은 욕심이 난다. 여유롭다. 잠시 생각을 내려 놓고 주위를, 자신을 살피는 여유가 좋다. 다른 사람들을 살펴 보는 재미도 은근하고, 내가 나를 돌아보는 관심도 기특해진다. 지금 나는 어느 만큼 와 있나, 앞으로 어디로 가려고 하나, 조심해야 할 것과 부추겨야 할 것들을 짚어 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데도 잘 만들지 못하는 시간, 나는 오늘 나에게 이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뭘 마시지? 흠, 딱히 마시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 어려움, 그래서 번번이 포기하고 말았거늘. (y에서 옮김2017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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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필로소퍼 2025 32호 - Vol 32 : 나는 연결되었다. 고로 존재한다 ㅣ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32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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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잡지를 언제까지 구해 읽게 될까. 이번 호까지만 보고 그만둘까? 계속 읽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안겨 주나? 사소한 허영? 그럴 듯한 지적 변명? 보잘 것 없는 명분? 잡지를 읽는 마음이 늘 스산하다. 품격 있는 글에 비해 내 처지나 내 주변의 상황이 나아지지 못한 채로 민망하기만 하여. 그래도 다음 호를 구해 놓았으니 그 책까지는 봐야겠다.


    이번 호의 주제는 연결이다. 나-너-우리. 글쎄? 회의적이 된다. 우리가 정말 연결되어 있다고? 요즘 들어 점점 더 부정적으로 보이는 세상이다. 과연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우리 세상은, 우리 지구는, 우리 인간은? 물음만 떠올려도 답답해진다. 이럴 바에는 우리 모두 각자의 섬으로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일이겠지. 서로 믿어야 하고 서로 격려해야 하고 서로 이해해야 하고 서로 도와야 하고 서로 받아주어야 하는 일이겠지. 아득하고 또 아득하더라도, 우리 세대에 안 된다면 다음 세대에 기대서라도. 길지 않은 글을 한 편씩 읽으면서 나는 혼자 무너지고 있는 마음을 잡아 세운다. 내가 뭐라고 싶다가도 나라도 제대로 해 보는 거지 하는 마음을. 


    읽는 재미는? 글쎄, 이번 호는 별로다. 그럼에도 어느 한 편 소홀하게 넘기지 못하겠다. 의무든 성의든 책값 때문이든 나는 읽고 생각하고 금방 잊는다. 어느 한 동작의 태도라도 읽기 전과 다르게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간절해지는 세상이다.




    오늘날 인터넷의 문제는 너무 깊이 연결되어서가 아니라 악의적인 소수의 영향력이 너무 부풀려졌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인간이 겪는 거의 모든 갈등이 그렇듯 말이다. - P12

    진정한 연결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또는 새로운 경험과 한 번에 하나씩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보다 먼저 존재한,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주변의 모든 것과 이어진다는 의미다. - P16

    사랑과 죽음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우리가 필멸의 존재임을, 그러나 결코 혼자가 아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분노, 폭력, 혐오의 본질과 뿌리를 연구하는 것은 아마도 조금 더 현명해지기 위해서다. 이 세상을 풍부하고 온당하게 성찰하는 것은 여러 다양한 생각과 가능성과 목소리를 포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유익할 목적과 행동을 최선을 다해 좇기 위해서다. - P32

    연민이 "네 마음 이해해"라고 말하고, 공감이 "너와 같은 마음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동정은 "실컷 울어. 나 어디 안 가니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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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리시아의 여정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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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같으면 그러하지 않았을, 나 같아도 그러했을, 수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순간들에 내린 결정과 행동의 소용돌이. 펠리시아가 끌고 가는 소설 속 여정은 내내 나를 어지럽히고 괴롭히고 안달나게 했다. 그럼에도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건 순전히 작가의 글이 품고 있는 매력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 책을 이토록 천천히 끈질기게 읽어낸 이유를 모르겠다.


    예전에 한창 열심히 본 미국 범죄수사 드라마인 크리미널마인드의 장면들이 소설의 장면과 겹치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드라마의 배경은 미국이고 소설의 배경은 영국이며, 비슷한 범죄나 위험한 일은 세상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인데,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볼 수 있을 만한 일이라 더 마음을 놓을 수 없었으리라. 저러면 안 되는데, 저래서는 안 되는데, 온통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읊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뒤따라가는 펠리시아의 여정. 이런 여행, 내가 참 싫어하는 건데. 이렇게 하여 펠리시아라는 이름은 이제 나에게 특별한 고유명사로 기억될 것 같다.


    소설 문체는 줄곧 현재형으로 이어진다. 갑작스럽고 커다란 충격을 주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게 아닌데도 긴장감이 떠나지 않는다. 뭔 일이 생길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게다가 얼마나 정밀하고 촘촘하게 인물들의 행동을 그려 놓았던지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거리를, 집을, 카페를, 자동차 안을... 등등. 아니,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순간들로 찍히고 기억으로 남는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어느 한 대목도 허술하지 않게.  


    힐디치가 펠리시아에게 늘어 놓는 거짓말은 참으로 감탄스럽다. 이만한 거짓말이라면, 이렇게성실하고 치밀한 거짓말이라면, 그리고 행동마저 그러하다면, 이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는 괜찮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해지는데. 살면서 정녕 힐디치 같은 사람만큼은 만나지 말아야 하는 건데,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게 굴면서 나쁜 속을 감추는 힐디치들이 우리 주변에 또 얼마나 많이 흩어져 있을 것인지. 


    사람은 정말 착할까? 아니면 잠깐만 착했다가 다시 착하지 않은 쪽으로 돌아서서 오래 머무는 것일까? 좋은 소설을 읽었는데 읽은 마음의 뒤는 내내 어지럽기만 하구나. (y에서 옮김2021070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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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42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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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시를 읽는다. 따스한 봄볕처럼 시도 따스한 온기로 마냥 다가와 준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시는 늘 봄이 아니다. 아니, 내가 봄을 못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전히 춥고 시리다. 막 보낸, 추운 겨울에 시달렸던 기억에서 못 벗어난 듯. 


    온전한 한 편 대신 여러 구절을 옮겼다. 옮기면서 잠깐씩 머물렀다. 내가 스쳐 지나가는 구절과 기어이 머무는 구절을 구분하면서 새삼 보았다. 나는 많이 살고 싶어하는구나. 나는 제대로 살고 싶어하는구나. 나는 정녕 괜찮아지고 싶어하는구나. 그게 어떤 모습인지는 제대로 말도 할 수 없으면서. 


    그래도 아닌 건 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나 이렇게 바꾸면 안 된다는 것이나. 다행이다. 아닌 게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나서서 누군가를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나서서 누군가를 해치지는 않을 것임을, 이 조그마한 소원을 품는 일마저 힘에 겨운 시절이다.   


    시집 안에 가까이 들어선 죽음의 소식들이 낯설지 않다. 무섭지도 않다. 그래, 그러려니, 익숙하고도 안타까운 목숨은 언제나 내 삶을 긴장시킨다. 그러니 고마운 마음으로 확인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 시집은 많이 고달팠다.  (y에서 옮김20210408)

    차에 시동을 끄고 자판기 앞에 서면
    살고 싶어진다 - P14

    이 거리에서 이런저런 생들은
    지구의 가장자리로 이미 충분하다 - P15

    늙고 좋은 놈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젊었을 때만 좋았다 - P17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당신은 모르지
    내일에도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는지 - P39

    가끔 기도는 할게. 그대의 슬픈 내력이 그대의 생을 엄습하지 않기를. 나보다 그대가 덜 불운하기를, 그대 기록 속에 내가 없기를. - P41

    이제 내 삶을 뒤흔들지 않은 것들에게 붙여줄 이름이 없다. 내게 와서 나를 흔들지 않은 것들은 모두 무명이다. 나를 흔들지 않은 것들을 위해선 노래하지 않겠다. 적어도 이 생엔. - P71

    당신은 이 숲 어딘가에서
    저 사선으로 내리꽂는 차가운 빗살무늬로 서 있겠지요.
    빗금처럼 서 있겠지요. - P81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바람, 너무 많은 빗물
    이런 게 다 우리를 힘들게 했지 - P89

    눈물이란 그런 것이다
    무한 속으로 사라지는 한 컷
    누구나 흘리는
    대책 없는 생의 밀도 - P102

    그대 살아 있으라 죽지 말고 살아 있으라
    피라도 살아 있으라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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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간식은 뭐로 하지 - 달달해서 좋은 만남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반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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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에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고민이 이런 일이라면 고민 자체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밥도 아니고 주식도 아니고 간식이 고민이라면. 세상사 온갖 어려움이나 고난을 피해 달달하고 맛있는 간식을 찾아 다닐 수만 있다면 나도 기꺼이 이 대열에 끼고 싶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작가가 쓴 산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귀여운 그림들이 살짝 곁들여져 있다. 오로지 간식에 대해서만 궁리하며 이리저리 찾아서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는 글들이다. 지극히 가볍고 사소하게 여겨지는데도 글에서 생활에서 매력을 느낀다. 진지하게 따라 해 보고 싶을 만큼. 간식을 거의 먹지 않는 나로서도.

    어쩌다 아주 가끔 달달한 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애써 찾아 나서는 일은 없는데, 작가는 자신이 써야 할 글과 그려야 할 그림을 위해서라도 나가서 먹고 있는 모양이다. 먹고 쓰고 그리고 발표하고 책으로 만들고 다시 먹으러 나가고. 삶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독자인 나도 있고. 누군가의 먹는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지는. 

    괜히 간식 하나를 챙겨 먹을까 하다가도 뭘 먹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간식도 자주 먹는 사람이라야 맛있는 것을 골라 먹게 되나 보다. (y에서 옮김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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