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왕 - 정보라 소설집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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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마음에 드는 느낌 1/3, 거슬리는 부분 2/3. 대략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름은 익숙한 편이지만 작품에 대해서는 호감도가 늘지 않는다. 어느 지점에서 내 읽기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부분에서. 좀 쉽고 간편하게 죽이는 듯 보이고, 이렇게 죽이는 장면에 대한 내 상상이 유쾌하지 않다. 굳이 안 읽고 싶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런 마음이라.


첫 작품인 '높은 탑에 공주와'는 신선했다. 그래, 이렇게 전개시킬 수도 있구나, 이 공주의 말과 태도는 마음에 드는구나.' 이어지는 글들은 점차로 멀어졌다. 마지막 작품으로 뱀파이어를 소재로 삼은 글은 가장 멀어지고 말았고. 남자와 여자의 각 입장을 살피기 이전의 취향 문제로 여겨진다. 남자라고 해서, 여자라고 해서 어쩌고저쩌고 한다는 한계는 소설로 읽을 때 특히나 유쾌하지 않다. 난 이 점에서 매우 고루한 편이다. 인간성 자체를 한탄하는 쪽이 낫다고 본다. 


소설의 배경을 우리와 다른 문화에서 끌어 왔다. 환상적이라거나 낭만적이라거나 동화처럼 읽을 수 있다고 하겠지만 다소 가볍게 여겨지기도 한다. 어차피 남의 이야기라는 식으로 들려서. 그러면서 음침한 분위기가 자주 등장한다. 마치 내 동화적 상상의 천진난만한 세계를 비웃기나 하는 것처럼. 공주, 기사, 용, 유령, 왕비, 성, ... 내가 죽음을 당하기 전에 먼저 죽이기.    


작가의 의도에서 좀 떨어져 나와 읽은 느낌이다. 이만큼의 거리감이 내 한계가 되겠다. (y에서 옮김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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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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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여자와 남자 둘밖에 없는데,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어찌 이리 할 말도 많을까. 여자끼리도 비슷한 것 같으면서 다르고, 남자에 대한 태도 역시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어쩌면 우리가 이것부터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자여서 같거나 남자여서 다른 게 아니라 남녀를 불문하고 그저 각 개인에 따라 같은 성향이거나 다른 성향이거나.  


그럼에도 이런 책을 만나면 반갑고 친숙하다.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내용에 아주 공감하는 남자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내놓고 말하기 쑥스러워서 그렇지. 그런 자신을 여성적이라고 간주할까? 내가 내 속의 일반적인 남성적 특징을 느낄 때면 문득 깨닫는 것처럼.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수록 솔직하고 대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본인이어서 그런가, 일본인 작가라서 내 이해의 폭이 넓은 건가, 이 또한 나의 편견인가, 우리나라의 여성 작가가 이런 내용으로 말했다면 느낌이 비슷했을까 다소 당황스러웠을까, 이러한 차이를 인정한다. 나는 분명히 편견을 갖고 있기는 하니까 말이다.  


만화인줄 알았는데 산문이 주를 이룬다. 만화는 각 주제별로 덧붙어 있다. 글보다는 만화 쪽이 담백해서 더 마음에 남는다. 계속 읽어도 좋겠다.  (y에서 옮김201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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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픈 구두는 신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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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같은 에세이인데 어떤 글은 내 마음에 산뜻하게 들고 어떤 글은 짜증날 정도로 지겹고 지루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이번 참에 홀로 따져 보려 한다. 내가 어떤 부분을 좋아하고 어떤 부분에 질려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찾은 바는 바로 거리감이다. 작가 자신과 자신이 쓴 글과의 거리감.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글이 좋다. 이 거리감이 통 느껴지지 않는, 작가와 글이 혼연일체가 된 듯한 글에 나는 많은 부담을 느꼈다. 계속 읽어 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처음에는 솔직하다는 느낌에 호감을 갖기는 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의 속사정을 알고 싶지는 않아. 이렇게 자신을 다 내보이는 게 정말 괜찮은 걸까? 요즘 같이 스스로 내놓은 정보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목 잡히는 세상에. 내가 내 사정을 내놓는 것도 아닌데, 남의 이야기를 읽고만 있는데도 나는 움츠러들곤 했다. 이만큼은 아니야, 이건 내 안의 영역을 내 허락도 없이 침범당하는 기분이야, 더는 읽고 싶지 않아...... 그래서 유행하는 에세이집에서는 고개를 딱 돌리고 있는데 이 작가의 글은 그렇지가 않더라는 말이다. 


이 작가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사소한 일상의 경험과 생각들을 펼쳐 보인다. 그런데 정말 은근히 자신을 보였다가 숨겼다가 한다. 글을 통해 알게 된 작가의 삶과 생각만으로 작가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정도이다. 작가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일을 잘하고 못하는지, 어떤 생각에 동의하고 반대하는지,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나무라는지 등등. 시시콜콜 다 털어 놓는 게 아님에도 알 만큼은 알겠고 모르는 부분은 또 궁금함으로 남겨져 있어서 좋다. 


일기에 대해 또 생각해 본다. 일기는, 정말 누구 읽으라고 쓰는 글일까? 일기와 에세이가 구별되지 않는 글,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일 텐데. 


좋은 산문은 부담없는 독서 시간을 갖게 해 준다. 나아가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도 해 준다. 작가의 글을 통해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삶이 한 뼘쯤 늘어나고 깊어지는 느낌, 금방 다시 오그라들고 만다고 해도, 글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잠시 여유로웠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도 듬뿍 느끼면서. 


몹시도 답답하고 막혀 있는 시절, 이른바 작가들도 참 난감한 시절이겠다. (y에서 옮김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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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배운다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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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온 시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경험만큼의 지혜가 있게 마련이다. 노인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도 그런 뜻에서 나온 것일 텐데. 사랑이라는 감정도 비슷하게 적용될 것 같다.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젊은 사랑을 젊은이들만큼 간절하게 여기지 않는 것도. 로라의 나이든 친구 존처럼 충고를 해 주는 사람의 말은 듣는 게 좋은데.


사랑, 그래, 배워야지. 주는 법도 받는 법도. 이걸 잘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대체로 문제를 만들곤 하더란 말이지. 작고 사소한 문제라면 그렇게저렇게 넘겨 갈 수도 있는데 어떤 이의 어떤 문제는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에게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그 사회의 뿌리부터 흔들어 버리곤 하기도 하니. 못 배운 사랑 때문에 불행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는 일 또한 얼마나 불행해지는 일인지 모르겠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명확하지 않지만 그다지 구별해야 할 필요성은 못 느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책임을 느낀다고 했는데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는 마음의 시달림이 더 강하게 와 닿았으니까. 그런 과정을 추리의 기법으로 읽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겠고. 나는 추리 대신에 철학으로 읽었다.  


1부의 로라와 2부의 셜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었다. 이 작품이 정녕 이 작가의 작품이란 말인가 의심하면서 읽었다. 마침내 3부, 사건을 뛰어넘는 전개에 이르러 감탄했다. 이렇게 펼쳐 나가려고 그렇게 암담하고 지루하게 끌었던 것이구나 싶었다. 루엘린을 통해 보여 주는 종교적인 서술 부분에서는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했지만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를 다루는 태도에 대해서) 특히 그를 중심으로 로라와 셜리의 삶을 요약하는 대목은 명쾌하기도 했고.


사랑,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삶, 어떻게 사는 것일까'만큼이나 답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 다르니까. 다 다르고 다 답이고. 내 답이 네 답이 되지는 못하고 네 답 또한 내 답이 될 수 없다는 그것 하나만 맞는 것 같고. 그러니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고 해도 강요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부모가 자식에게든 연인이 연인에게든 형제자매 사이라고 해도.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는 것만이 힌트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배울 수 있는 사랑은 그것밖에 없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 보게 되는데. 이 작가는 이제 나를 이런 경지로 이끌어 가는구나. 잘 읽었다.  (y에서 옮김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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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골트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 정영목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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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남의 이야기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란, 호기심이란 뭘까? 남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남일처럼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기막힌 사연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너나 나나 다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를 끌어안게 되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서로서로 싸우지 않게 될 때까지? 그래,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소설에 그런 힘이 담겨 있다면 정말 좋겠다.


루시 골트. 한 여자 어린이가 노인이 될 때까지의 삶의 여정을 담고 있다. 여정이라니, 이것도 여정이라고 할 수 있나. 태어난 집에서 끝내 벗어나지 않고 오로지 기다리기만 한 삶인데. 그 기다림마저 절반은 무너지고 말았던 삶인데. 자신에 대한 아무런 의욕도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고, 그저 버티고 견디며 기다리기만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나. 소설을 보면 이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살았다는 사람의 사연을 드물게나마 들어 본 적도 있는 것 같고.


살면서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아주 강렬하게 바라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내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은 일들은 남들에게도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그건 사람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나 무수한 사건사고들, 불행들, 우연이든 아니든, 그 때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겪게 되는, 그로 인해 남은 생이 송두리째 뒤틀려버리고 마는, 사건의 당사자 한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인들 모두에게 안타깝기 그지없는 영향을 주고 마는 그런 일들.        


소설에는 슬픈 사람들만 나온다. 슬프게 된 배경을 굳이 따져 보자면 잉글랜드와 얽힌 아일랜드의 불행한 역사가 있다. 여기에 개인의 삶이 온전히 개인의 영역으로만 잴 수 없는 근거가 있다. 언제 어느 땅에서 태어나는가 하는 것, 가까이 우리네 처지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사람, 남북 분단 시기에 태어난 사람, 남쪽에서 혹은 북쪽에서 태어난 사람......


루시 골트는 다정한 부모님 아래 태어났으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가 심한 갈등을 겪던 1921년을 보내야 했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시기를 지내야 했다. 누구나 루시 골트처럼 되지는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루시 골트처럼 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루시 골트는 그렇게 한결같이 한 지점에 멈춘 채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살아 버텨내었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살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격렬한 의지로,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니 남의 생에는 함부로 참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남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제 각각의 간절함과 열렬함과 숭고함이 있음을 알겠다. 행운이나 행복은 그 다음에 오는 것들임. 루시 골트와 호라한의 평생을 지배했던 죄책감이, 온전히 그들의 잘못만으로 생긴 게 아니어서, 그들의 한을 생각하니 가엾어서 못 견디겠다. 책이라도 어루만져야겠다. (y에서 옮김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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