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봄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4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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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서전 같은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 속 인물인 셀리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인 모양인데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는 모르겠다. 굳이 그걸 확인하자는 의도가 없이 읽어도 좋았고 글 자체만으로도 작가의 혼란스러웠을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독자로서 이러면 된 거지.

 

소설가는, 소설가 중에 어떤 소설가들은 운명처럼 소설을 쓸 자질을 받고 태어나나 보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게 재미있다고 여기는 사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지어 낼 줄 아는 사람, 이야기를 짓는 게 억지로 해내는 일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술술 풀려 나온다고 여기는 사람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이야기만 만들어 내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 속 셀리아처럼, 그리하여 결국은 이 작가처럼.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나 행동을 글로 묘사하는 것도 큰 재주일 것이다. 나는 이게 참 쉽지 않던데, 관찰 자체가 서투르고 기억력마저 떨어지다 보니 얼마 전에 본 사람을 떠올리는 것도 안 되곤 하는데, 이런 일을 잘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해 보인다. 내가 못하니까 이런 내용을 묘사하는 글에 더 쉽게 빠져드는 것도 있을 것 같고. 사람을 탐구하는 일만큼 새로우면서 끝이 없을 일도 없겠다.

 

주어진 소명을 잘 받아들이고 주어진 능력을 잘 발휘하면서 살아간다면 본인에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이 작가가 자신의 능력을 잘 키워서 글로 써 준 덕분에 재미있게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 될 것이다. 젊어서 한때 불행한 일을 겪기는 했겠지만 그 또한 잘 이겨내었을 것이고, 사람 사는 모습이라는 게 이쯤 되면 다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게 되는 것일 테지. 

 

사람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 이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나는 지금도 내가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을 느끼곤 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말해 무엇하랴. 안다고 했던 것도 아는 게 아닐 수도 있고, 이해한다고 여겼던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이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라 도리어 더 살만한 세상인가 싶기도 하고. 모르겠다. 모를 게 사람 마음이고 사람 일이구나. (y에서 옮김20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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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3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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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행복이라는 게 거창하고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온다고 들었다. 별다른 걱정이 없는 것도 행복일 수 있고, 어제와 오늘이 같은 것도 행복일 수 있고,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예측만으로도 행복으로 느껴야 하리라는 것. 나도 그런 나이에 이른 것일까,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작가의 책을 어지간히 읽은 셈이다. 작가의 성향에도 익숙해졌고 가치관에도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이라 특별히 색다른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그래도 읽는 내내 좋았다. 이렇게 작은 순간을, 이렇게 사소한 기억을, 이렇게 평범한 고마움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니. 나는 내 생에 거만했다는 반성이 저절로 일었다.


수없이 되풀이해 보는 일이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고마움을 느끼고 행복을 느껴야 할 순간들은 참으로 많다. 지금 아프지 않은 것,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다는 것, 이 책 다음에 읽을 책이 있다는 것, 읽고 싶은 책을 살 돈이 있다는 것, 점심 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해도 괜찮다는 것, 가족이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현재로서는 지진이 나서 국가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네팔을 떠올리기만 해도 내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보편적인 공감대 형성에서 벗어나 있는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내 한계로서의 다행스러움으로)


그리고 이 마음의 여유를 내 밖으로 돌려서 살펴야 할 것이다. 작은 실천이라도, 작은 마음씀씀이라도, 내 삶에 주어진 고마운 여운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받은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y에서 옮김201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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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2 - 그녀는 카페오레 꿈을 꾼다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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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니까 재미있는 갈등 구조가 되는데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해를 하고 갈등을 겪는 일이 현실에는 많이 있다.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다 알아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덜 안다고 오해가 안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사건에서 위험한 사고까지 더러 겪다 보니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더 든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모르면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 


화자 아오야마는 탈레랑 커피점의 바리스타인 미호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놓고 이 호감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2권에서는 미호시의 자매인 미소라가 등장한다.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이 서로 간의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과 더불어 절묘하게 이어진다. 커피에 대한 여러 종류의 정보들은 덤으로 주어지고 있고. 이런 저런 커피들을 이야기를 따라 다니면서 얼마나 자주 마신 느낌인지. 


소설의 구성 면에서 이런 혼합적인 방법이 내게는 퍽 매력적이다. 관심이 생기는 소재 하나와 이를 바탕으로 이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커피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인간들의 심리나 욕망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나의 독서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살면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게 좋은데 이번 호에서는 생긴다. 풀어 나가는 방식이 딱 소설스러워서 흥미는 좀 떨어졌다. 그래도 미호시와 아오야마가 밀고 당기는 추리 과정은 재미있다. 미호시가 커피를 갈면서 궁리를 한다는 설정도 귀엽고.


젊은 남녀의 발랄한 이야기, 아직 4권이 남아 있고 무슨 일이 더 생길지 기대가 된다. 교토도 지금은 한창 뜨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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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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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익숙한 소재와 주제와 인물과 배경과 사건과 구성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아주 새롭다는 뜻이 아니라는 말. 제목의 '하쿠다'라는 말에 이끌려 빌려 본 책인데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고달픈 현실을 달래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을 테니까. 딱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괜찮았으면 싶은 마음을 위하여. 


다만 내게는 작가가 담아서 내보이려는 의도가 좀 넘치는 듯 느껴졌다. 책 한 권에 다 담으려는 성급한 면, 즉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흔한 문제점을 좀 많이 담으려고 했다고 해야 하나. 구성면에서 아쉬웠다. 사진관을 운영하는(운영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각각의 에피소드로 만들었더라면. 어수선하게 섞여 있는 것처럼 보여 선택과 집중의 묘미가 부족했다는 느낌이었다. 


읽는 재미는 괜찮았다. 각각의 인물들이 고유한 사정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살아가려는 의지에도 응원하게 되었다. 응원이 정작 당사자에게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말로 마음으로 하는 응원은 도무지 힘이 못되는 시절인 것만 같아서.   


재능을 갖고 의지를 갖고 기다리고 있으면 좋은 인연과 좋은 날은 기어이 오게 되는 걸까. 소설이라서 희망을 품게 되지만 그만큼 현실은 아득하기만 하다. 사진관 운영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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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2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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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게 날마다 반복되고 있는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이 잊고 사는 날들. 잊어도 잊혀져도 부담스럽지 않을 그 평온과 안락과 여유가 바로 행복일 것이다. 작고 일상적인 행복. 이 만화 속 일상처럼.


그래서 같은 주제, 같은 그림인데도 질리지 않는 것이 아닐지. 어제 밥 먹고 오늘 또 밥 먹는 일처럼, 어제 자고 오늘 또 자는 달콤한 쉼처럼, 어제 만나 투닥거리고 잠시 잊었다가 오늘 만나 또 투닥거려도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알아 마음 놓는 좋은 사람처럼,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더 고마운 일상과 행복.


우리 사는 일에 가슴 터질 듯한 벅찬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일생에 만남 몇 번, 사건 몇 번 정도여야지,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매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런 우연이 반복되기라도 한다면 못 살 것 같다. 말 그대로 가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일, 현실은 좀 시시하고 따분하고 그날이 그날 같고 저에게는 기막힐 일이라도 남이 보기에는 그다지 큰 일이지 않을 그런 일들의 연속선에서 이루어지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을 평범의 일상. 그러니 그러한 일상을 의식적으로 짚어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축복된 삶이리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만화는 앞서 읽은 책의 느낌 그대로 단순하고 경쾌하다. 제목만큼이나 평범하다. 그래서 보고 있기가 좋다. 치에코도 사쿠짱도 참으로 평범한 인물들이고.


먹는 것에 꽤나 큰 기쁨을 드러내고 있는 만화다. 그렇지, 산다는 것이 결국에는 하루 3번 밥 먹는 일일 테니까. 지금 내가 차를 마시면서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내게 주어진 모든 조건, 내 일상에 고마움의 뜻을 남긴다. (y에서 옮김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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