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더카머 - 시, 꿈, 돌, 숲, 빵, 이미지의 방
윤경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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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한 실내 공간을 지칭한다. 호기심을 북돋는 경이로운 사물들의 방이라 풀어 말할 수 있다.(12쪽)" 책 제목으로 쓰이기도 한 '분더카머'라는 말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낯선 외국말, 뭔가 있어 보이는 말, 그래도 쉽게 쓰게 되지는 않을 것 같은 말, 이렇게 낱말 하나로 이것과 이어진 세계까지 얻었다. 

 

분더카머라는 말을 자꾸만 되뇌는 동안 떠오른 다른 말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 제목이었다. 분더카머가 어떤 사물을 모아 놓은 방이라는 쪽에 가까운 반면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정신의 영역으로 채워져 있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구분하기는 했는데 이는 내 방식일 뿐이다. 나의 분더카머? 나의 '자기만의 방'? 겹칠 듯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작가들이 서랍이라는 말을 쓰는 걸 종종 보았다. 기억 속 서랍 따위로. 기억 안에 서랍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어떤 걸 뽑아서 또는 몇몇을 엮어서 글을 쓴다는 식으로 하는 말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나는 작가가 분더카머라는 말을 쓸 때마다 작가의 기억 속 서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럴 듯하군, 대상이 사물이든 기억이든 자신의 과거 어느 지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면 분더카머라고 하든 '자기만의 방'이라고 하든. 분더카머는 이만큼이나 강하게 독서 중인 내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말이었던 셈이다. 도무지 떨칠 수 없었으니까.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었다. 낯선 말이 계속 나왔고, 그게 외국어였고, 작가가 외국에서의 경험담을 들려 주는 내용으로 이어지는데 예술 용어와 수많은 작품까지 등장하면서 내 가엾은 배경지식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만연체로 이어지는 작가의 서술 방식도 쉽게 읽지 못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쉼표에서는 꼭 쉬었다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달라는 듯. 그만큼의 호흡을 기대한다는 듯. 또 작가가 자신이 어렸을 때의 일화를 말해 주는 대목에서는 묘한 친숙함에 다소 가까이 다가간 듯 싶다가도 금방 예술 속 세계로 바꿔 놓은 표현들에 홀로 부딪히며 물러서고 말았다. 일화는 일화, 예술은 예술. 내 일상의 한계로 인한 구분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섭섭하지는 않았다. 예술이 되지 못하는 일화라고 해서 소중하지 않다거나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나마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 예술 쪽으로의 한 발짝 정도?

 

책장은 넘겼으나, 읽기는 했으나, 다 읽은 듯 여겨지지 않는 이 난감한 기분이라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한 기분이라니. 내 의식의 분더카머 안에 '분더카머'라는 이 낱말만큼은 확실하게 담을 수 있었다는 이것 때문이려나? (y에서 옮김20220308)

 

그것은 넓고 낯선 여행지에서 신기루마냥 일시적으로 되찾은 너저분하나 따스한 내 좁은 방의 풍경이었고, 책 읽기라는 일생의 업이 야기하는 무거운 근심과, 그저 근심이라 한마디로 눌러 말할 수 없는 더 심각하고 부정적인 마음과 삶의 양상들과, 다 내버려두고 오로지 화사한 꾸밈 속에서만 지내고 싶은 더 실현하기 요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다투고 화해하는 내 두개골과 흉곽 내부의 해부도였고, 예술의 기원에 유년의 놀이도 있다는 경험적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장난감으로서의 작품이었다. - P10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불구자다. 어떤 기관이 취약해지는가. 어떤 기능이 멈추는가. 라멜리의 책 바퀴는 독서 중에 발생하는, 단지 다리만은 아닌 다른 상상적 신체 기관이나 정신적 활동으로 전이되는, 독자의 불구성에 대해 사유해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독자가 문학에, 인간이 언어에, 치러야 하는 공정한 값이기도 할 것이다. 기분 전환과 치유 대신 부분적 불능에 모종의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우리는 훨씬 치명적인 불구의 상태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생을 한순간이나마 연장하거나 구원받는지도 모른다. - P34

동어반복에 가장 격렬한 반감을 보인 비평가는 롤랑 바르트이다. 『오늘날의 신화』(1957))에서 바르트는 보수 우파 성향의 중산층과 소시민들이 구사하는 특유의 화법을 폭로하고 비판한다. 다른 삶의 발명 가능성과 세계의 변혁을 부정하고 그러한 희망과 실천을 제압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에게 이익과 기득권을 보장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보수 우파는 특정 계급이 전유해서 굳고 퍼졌을 뿐인 언어 사용법과 그것에 의한 세계 재현을 자연의 보편 원리로 승격시키려 한다. 현 체제를 초월적 자연으로 상정하고 합리화하는 언어, 그것이 바로 특정 이익 집단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신화이다. 커다란 악을 은폐하기 위해 마치 백신인 양 작은 악을 방패 삼아 미리 반성하고 고백하는 말, 노동의 산물인 사물들에서 역사성을 제거하는 말, 타자를 부정하고 동일자로 포섭하려는 말, 세계와 사태의 복잡성을 이분법적으로 축소하며 판관으로 나서는 양비론 등과 마찬가지로, 동어반복은 순수한 화법을 넘어 정치적 차원에서 권력자와 소시민 계급을 포함한 대중이 사회의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유포하고 체득하고 실행하는 수사법이다. - P99

선물의 메타포, 그러나 메타포야말로 선물, 한 마디 말에서 다른 한 마디 말로 옮아가는 우편물 그 자체, 포장과 우표를 무한히 갱신하며. 메타포를, 다른 말로 옮긴 말을, 다른 곳의 다른 사람에게 그것과 닮은 다른 말로 옮기는 사람이다. 스스로 메타포를 밀봉한 유리병이 되어 시간과 공간 멀리 헤엄쳐 떠나는 사람이다. 주의 깊은 사람은, 시인은, 번역인은. 손과 심장의 사람은. - P155

욕망을 피하는 법은 간단하다. 잊으면 된다. 모르면 된다. 마음은 고요히 날개 접은 새가 된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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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이어달리기 - 마스다 미리 그림에세이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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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은 따지지도 않고 사서 본다. 딱히 특별한 게 없다는 점, 바로 그 진한 평범함이 좋아서 계속 보고 있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어째 살짝 거부감 혹은 지루함 같은 것이 생겼다. 정도를 넘어 섰나, 내가 너무 많이 다가갔나, 이번만큼은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글 때문이다. 나는 이 작가의 만화를 좋아한다. 단순하고 간결하고 심심한 듯하면서도 속뜻은 깊이 품고 있는 장면들. 나른하고 따분한 일상마저 새 마음으로 되짚어 보게 하는 그림 옆의 대사들이 좋았다. 이걸 오로지 글로만 써 놓은 책이니, 이래서야 새로움이 안 보인다. 게다가 앞서 만화에서 이미 본 듯한 에피소드들도 제법 겹치는 느낌이다. 그렇겠지,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메모를 해야 할 테고 그 메모가 다시 그림이 되고 글이 된 것일 테니. 그런데 같은 내용을 겹쳐 쓰고 있다면, 아니 꼭 그렇게 하지는 않았더라도 이미 본 듯한 느낌을 거듭 받게 된다면, 이건 독자로서 좀 서운해지는 대목이다. 계속 보고 싶어지는 이유로는 적당하지 않으니까.

 

한 사람의 작품을 시간을 두고 계속 보게 된다는 건 작가가 그려내는 작품 속 세상에 대한 매력도 있겠지만 작가 자체에 대해서도 짙은 호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게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한 즐거움을 주는 일인지, 한번이라도 겪어 본 이라면 알 일이다. 더구나 서로끼리는 잘 모르는, 작가와 독자 사이라면 더더욱 신기한 인연이 되는 셈.

 

이쯤 해서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해 또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 들어 자신의 신변잡기에 대해 쓴 에세이 형태의 글이 아주 많이 발표되고는 있지. 책으로도 넘쳐나는 것 같고. 에세이라는 게 또는 산문이라는 게 어떤 특징의 글인지에 대해 배웠던 오래 전 시간이 떠오른다. 작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 그래서 일기도 이 속에 포함된다. 일기, 일기라, 그러고 보니 일기 같은 글들도 인터넷 공간에서 많이 보인다. 에세이스트라는 표현도.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가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작품들에 대해 요즘 들어 특히 인색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분명히 후하게 대접해 주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글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어느 한 때에는.

 

뭘까, 이 피로감은. 이른바 TMI 같은 건가? 더 이상 당신의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감정은 알고 싶지 않아요, 같은 마음? 너무 넘쳐 흐른다 싶기는 했지. 적당하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경계인가. 한 발 더 나가고 들어오고 차이로 작품이 되기도 하고 쓰레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

 

감질나게 담겨 있는 그림만큼은 여전히 좋았다. (y에서 옮김202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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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6
토마스 만 저자, 홍성광 역자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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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을 읽을 때에 내가 갖는 흥미 중 큰 하나는 배경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이야기인가 하는 것.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배경이 되는 사회를 읽고 역사를 읽고 문화를 읽는다. 사람 사는 내용은 덤이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므로. 


이 소설, 독일의 뤼베크가 배경이다. 지도에서 찾아본다. 덴마크와 가까운 북부 독일 지방이다. 독일에서 이 책은 1901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민음사에서는 2001년에 내놓은 책이고. 번역문에서 느낀 약간의 답답함이 이 시간의 차이 때문인 것인가, 끝내 답을 모를 의문을 가졌다. 


토마스 만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들어 보았고, 작가의 작품은 이 책으로 처음 읽었고, 아직 머뭇거려진다. 2권까지 읽고 나면 다른 책도 더 보고 싶어질까 그만둘까 결졍을 하게 되겠지. 


염상섭의 삼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소설이다. 대를 잇는 이야기라면 비슷한 구성이 될 수밖에 없을 테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의 이야기. 이들이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장사로 돈을 많이 번 부유한 가족 이야기라면 부를 유지하거나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사건사고도 많이 생길 것이고. 긴 이야기의 소재로는 퍽 적절하다. 이들의 사연을 세세하게 채우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 될 것이니 독자는 그들이 들려주는 개개인의 사정을 재미있게 읽으면 되고.


1권이 끝나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3대 째가 되는 아들 토마스와 딸 토니에게로 완전히 넘어 왔다. 토마스는 아들을 낳았고 토니는 두 번의 이혼을 했다. 나는 이들의 사연보다 1860년대 독일의 사정이 더 궁금하다. 너무 몰라서 토마스와 토니의 이야기보다 이 시기의 독일 역사를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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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 1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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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 2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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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1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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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2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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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란 - 오정희 짦은 소설집
오정희 지음 / 시공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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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퍽 수월하다. 한 편 한 편의 분량이 짧은 소설들이니까. 그러나 읽고 나서 금방 잊어버리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도 되는 글들이 아니다. 읽은 글이 다음 글을 부르고 다음 글이 앞에 읽은 글과 이어진다는 것을 곧 느낀다. 아주 상쾌하거나 경쾌한 느낌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보다는 반대쪽의 감정들이 줄지어 일어난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불쾌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가 다시 약간 두근거렸다가, 나 자신을 돌아보든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든 대상을 향하는 마음이 비슷해진다. 우리들, 이대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하기야 요즘 시절에는 이만큼의 보통의 삶도 쉽지 않다고들 하지만. 소설 속 화자들의 나이를 지나온 내 입장에서는 소설 속에서 보이는 생활 모습들이, 이만큼의 삶이 보통 정도는 되리라 여기고 있지만, 누군가 아니라고 하면 또 아닌 것이니까. 그래서 삶은 결국 개별적인 것이고 누구도 같은 모양으로 꾸려 갈 수 없는 것이며 내 삶과 남의 삶을 비교도 평가도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책 속 작품 몇몇은 기억에 남아 있다. 교과서에 실려 있던 작품(소음공해, 돼지꿈)도 있고 어딘가에서 인연을 맺어 읽었던 것이리라. 그때 받았던 인상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아직도 여전히 좋아서, 좋은 글이란 이런 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각자 짚어 보면서도 서로를 아우르는, 아우르며 살아갈 방향을 가늠해 보는, 비록 짧은 편편의 글들이지만 작으나마 삶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도록 해 주는 글들. 크고 긴 것들에게만 위대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까지도.  


자녀를 다 키운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독자로서, 글쓴이의 의도를 내내 궁리해 본다. 온전히 내 것으로 돌아와 고이는 크고 작은 문제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 사이, 이웃 사이, 손님과 주인 사이 등등에서 빚어지는 생활의 온갖 조각들. 늘 그래왔듯이 답은 없고, 더 좋은 쪽으로 더 행복한 쪽으로 더 함께 하는 쪽으로 머리를 기울일 수밖에 없겠다.


사소함에서 보석 같은 반짝임을 찾아 얻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y에서 옮김20220905)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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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4 - 완결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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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씨와 사쿠짱은 꽤 괜찮은 부부 모델이다. 이렇게 온화하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면서 함께 살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지, 만화라서 가능한 것인지, 내가 잘 몰라서 그럴 뿐 많은 부부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가볍게 해 본다. 실제의 삶에서는 이 만화 속 부부보다 훨씬 속좁고 철없는 두 사람이 아웅다웅 투닥거리며 사는 날이 많아 보이니까.(남들 말할 것도 없이 나의 경우부터)


예쁜 모습 보여 주고 있어서 좋다. 둘이서 맛있는 것 찾아 먹으러 다니고 기념품도 사고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는 모습을 단순한 그림으로 보고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가 바라는 게 그리 크고 위대한 게 아닌데, 이런 책을 보고 있으면 알게 된다. 크지 않다고 생각했던 욕심조차 마냥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해 주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을 나 또한 주저 없이 함께 하는 것까지.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으면 이렇게 되려나. 또 그게 일시적인 게 아니라 오래오래 지속되려면 서로서로 얼마나 마음 써야 할 것인지.


작가의 이름을 보고, 보는 만화다. (y에서 옮김20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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