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두근거리는 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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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뜻밖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날의 내 연애 과정을 돌아보게 되었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고, 그다지 슬퍼할 것도 쓸쓸할 것도 없는, 그래서 더욱 아쉬운 것.

 

작가는 현재 미혼인 것으로 보이나 사귀는 사람은 있는 것 같고, 다만 학생 시절에 친구들마냥 남학생과 사귀지 못한 것을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어렸을 때 남학생과 사귈 경우, 할 수 있는 많은 귀엽고 예쁜 짓들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나이 들어서도 내내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서 귀여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 그 시절에는 남들에게 친구들에게 보이기 위한 사랑을 하기도 하니까.

 

나는, 나는 어땠을까. 글을 한 편씩 읽을 때마다 관련되는 내 행동이 떠오르고 내가 하지 못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의외로 신선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게도 이런 면이?

 

재미삼아 나열해 보자. 내가 연애라는 것을 하는 동안 해 보고 싶었으나 해 보지 못한 것들에 무엇이 있었던가. 유원지에서 솜사탕 먹기,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고 같이 공부하기, 커플링이나 반쪽짜리 커플 목걸이 나눠 갖기, 잔디밭에 자리 깔고 도시락 먹기.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 보니 못해 본 것보다는 남들처럼 해 본 게 많다는 생각도 든다. 하기야 어린 시절의 나는 꽤나 영악했고 눈치도 빨랐고, 잔머리도 잘 굴렸으니까. 다만 내가 내 풀에 좋아서 해 본 것들이다 보니, 흐뭇하게 그리운 기억이 없다는 것, 그게 아주 많이 쓸쓸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이제, 두근거리지 않는 자신이 더 마음에 든다. 남자, 그 어린 존재에 무얼 그리 마음 잡힐 일 있을까 보냐고. 나는 그때 왜 그리 헛되이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까. 이 깨달음이 그다지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자각만으로는 큰 위로가 되지 않는 쓸쓸함.  (y에서 옮김201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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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갇히다 -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김성일 외 지음 / 구픽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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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SF 소설이 실려 있는 책을 신청해서 받았다. 책과 서점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글들인데 낯선 기획이 아니라고 여겼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분위기의 책을 읽은 적이 있고. 이런 종류의 소설집이 계속 나오고 있는 건 독자인 한 사람으로서 퍽 반가운 일이다. 작가들은 자꾸자꾸 쓰고 독자들은 자꾸자꾸 읽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은 분명히 높아지게 마련일 테니까.    


이번에는 읽기 전부터 내 멋대로의 계획을 세워 두었다. 세 가지 기준을 정해 놓고 8편의 작품을 줄로 세워 보겠다는 것. 순전히 내 편의를 위한 작품 줄세우기로, 나는 SF 소설 비평가도 아니고 작품의 우열을 평가할 만한 안목이나 능력이 없으므로 오로지 내 취향에 따른 것임을 먼저 밝혀 놓으려고 한다. 작품의 좋고 안 좋고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그럼에도 굳이 줄세우는 방식을 택한 내 태도가 불쾌하신 분께는 너그러운 용서를 구한다. 이렇게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탓이오니.) 


8편의 작품을 줄세운 내 기준은 세 가지다. 재미, 감동, 참신. 하나씩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 써 보고 순서대로 나열해 보겠다. 


1. 재미

나는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도 이것이다. 이 글, 재미가 있구나, 혹은 재미없구나. 재미있는 글은 단편소설일 경우 한달음에 읽게 된다. 읽는 중에는 남은 책장이 얼마 안 되어 곧 끝날 것만 같은 마음에 두근거리는 기분을, 다 읽고 나면 더 읽고 싶다는 아쉬움을 많이 느낀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나면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산 행복한 기분이 들고 재미가 없을 경우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쓰린 기분을 느끼고 만다.     


SF 소설의 경우 배경(특히 과학적 지식이나 원리)에 대한 설명이 글 안에 녹아 있지 않고 겉으로 장황하게 드러나 있으면 재미가 많이 없어진다.  


재미(읽는 몰입도)에 따른 작품 순서



1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2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3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4



이지연(역표절자들)



5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6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7



천선란(두 세계)



8



오승현(켠)



2. 감동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그래서 감동을 주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를 나는 많이 존경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 사람이 사람에게서 감동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주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로서 이보다 쉽고 진하게 행복을 나누는 활동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소설에서 얻는 감동의 양은 내가 바라는 이상향을 얼마나 잘 그려 내고 있나에 달려 있다. 소설이 있음직한 현실을 바탕으로 작가가 바라는 모습으로 나타내는 글의 장르라고 할 때 내 바람과 작가의 바람이 얼마나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작가가 그려 놓은 세상이 내가 바라는 세상과 가까워 보인다는 느낌을 받으면 내 바람이 엉뚱한 게 아니라는 것, 내 바람이 무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내 바람과 같은 바람을 갖고 있는 소설가가 있으니 외롭지 않다는 느낌마저 얻을 수 있어 더욱 좋다.


SF 소설은 현실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모습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는 볼 수도, 체험할 수도 없는 환경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그렇지만 다루는 내용이나 주제는 우리네 현실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상상과 현실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섞이고 넘나드는 가운데에서도 삶의 진실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러니 바라는 마음은 더욱더 간절할 수밖에. 현실이 고달프다고 느끼는 강도가 셀수록 상상의 세상에서 끌어당기는 빛은 더 환하더란 말이지. 빛에 대한 기억이 남루한 현실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정도로.      



감동(내가 바라는 이상향과의 일치도)에 따른 작품 순서



1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2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3



이지연(역표절자들)



4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5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6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7



오승현(켠)



8



천선란(두 세계)




3. 참신


SF 소설이라면 뭔가 새로울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소설을 읽는 중에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이 자꾸 떠오르면 그만 내려놓게 된다. 물론 본 듯한 것임에도 다루는 방식이 새로우면 당연히 그 작가의 솜씨에 반한다. 이게 중요하다. 시간 여행이든 외계인과의 만남이든 다른 차원에서의 사건이든 알만한 내용이지만 이들이 어떻게 내게로 새롭게 와 닿는가 하는 것.   



참신(지겹지 않은 새로움)에 따른 작품 순서



1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2



이지연(역표절자들)



3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4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5



천선란(두 세계)



6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7



오승현(켠)



8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4. 장점


8편의 글을 20자 이내로 요약해 보았다. 앞서 세 가지 기준으로 내 멋대로의 줄을 세워 보기는 했지만 각각의 글은 각각의 장점을 갖고 있고 이를 간단히 말하는 게 나름 흥미로웠다. 단점은 굳이 들먹일 필요를 못 느낀다.  


[20자로 요약한 장점]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 짧은 분량이 품고 있는 길고 낭만적인 서사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 사람을 책으로 만들어 버린 혹독한 발상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 누구나 품고 있을 길모퉁이 서점 하나

오승현(켠) -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말겠다는 태도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 어떤 첨단 시대에도 중요한 건 자유의지

이지연(역표절자들) - 표절과 창조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경험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책만 있다면 괜찮아 

천선란(두 세계) - 여기가 아닌 그곳으로의 위험한 선택


5. 권하고 싶은 사람

오랜 시간 해 왔던 일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이 글을 읽었으면 싶은 사람을 탐색해 보는 일. 좋은 것은 나누면 두 배 이상으로 좋아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작품을 두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은 그 대상에 대한 내 관심의 양과 호감도를 대신 보여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이 아직도 즐겁다. 막상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생각만으로도.


[권하고 싶은 사람]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 신화의 가치와 참된 역할에 대해 새삼 확인하고 싶은 사람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 남자와 여자 사이의 풋풋하고도 기묘한 사랑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 위로가 될 공간이 한 곳쯤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 

오승현(켠) - 도저히 포기가 안 되는 대상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인류의 기억을 다 모은 바벨탑이 전하는 메시지가 궁금한 사람

이지연(역표절자들) - 자신이 자신의 기억을 못 믿는 상황이 꽤 흥미롭다고 여기는 사람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 책과 서점이 누군가의 생을 구할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 사람

천선란(두 세계) -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을 끝내 받아들이겠다고 각오한 사람


6. 그리고

따뜻한 SF 소설을 읽고 싶다. 따뜻한 SF 소설은 없을까. 나만 이런 따뜻한 SF 소설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못 찾았고 못 읽은 것일까.


마지막으로 나만의 세 기준에 따라 점수를 종합했을 때 가장 좋다고 여겼던 작품은 이경희의 ‘바벨의 도서관’이라고 남겨 놓는다.(y에서 옮김20210222)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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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ㅣ 난다시편 9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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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 실린 첫 시 '공항에서'가 마음에 들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후 읽은 시들은 '공항에서'에 가려 나를 울리지 못했다. 나는 시집 전체에 푹 빠져 들겠다고 작정하고 들어섰다가 '공항에서' 한 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좋다. 한 권의 시집 안에서 단 한 편이라도 제대로 만나는 일이 어디 흔했던가. 나는 먼먼 공항으로 시인을 만나러 간다.


실제로 내가 공항에 갈 일은 없다, 아직까지는. 어디로 떠날 일도 없고 누군가를 배웅하거나 마중할 일도 없다. 비행기는 비행기, 나는 나, 우리는 서로 아득하기만 한데, 이 시인 덕분에 공항으로 간다. 내 기억 속의 공항들, 어느어느 곳들, 실제와 상상이 섞이고 뒤집혀서 내가 그려보는 공항은 나만의 공항이 된다. 공항을 상상하는 일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듯하다,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싶을 정도다.


어느 새 시인이 우리를 떠나간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누군가는 먼저 가고 누군가는 남는다. 먼저 간 이들이 시를 남겨 놓았다면 남은 쪽은 훨씬 덜 서운하겠다, 내 입장에서는.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 남겨 놓은 작품을 모은 것이라 시인 자신은 모르는 시집인 셈이다. 이 사실을 잊을 수가 없는 채로 읽다 보니 시에 깃들여 있는 죽음의 이미지를 놓칠 수가 없다. 시인은 알고 있었을까? 자신에게 다가올 마지막 상황을. 


더 이상 모을 수도 쌓아 놓을 수도 없을 이 시인의 책들 위에 이 시집도 얹는다. 나보다 먼저 간 이여, 나보다 멀리 가 있기를.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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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 - 마스다 미리 에세이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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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어떻게 지냈을까.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누구와 어떻게 놀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보냈을까.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시절에 써 놓은 기록물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겠다. 일기나 사진첩 같은. 이 작가에게는 이것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글을 써 낼 수는 없었을 것만 같다. 기억만으로 살아날 에피소드들이 아니란 말이지. 


작가는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 내고 그녀의 말을 들어 주는 형식의 글을 보여 준다. 그리고 함께 나타나는 아기자기하고 다정한 그림들. 순식간에 나도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나도 어린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린 나와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러나 내게는 없다. 일기가, 그림일기든 글일기든, 수첩조차 없다. 그 시절에는 열심히 기록하는 축에 속했는데 일정 기간마다 다 처분했다. 지나간 시절에 미련 따위는 없다면서.


갖고 있었다면, 품고 다녔다면, 나도 작가처럼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볼 수 있을까? 시점을 바꿔 보자. 지금부터 일기를 쓰는 것이다. 커다란 글씨로 띄엄띄엄, 지금의 내 나이에 일어나고 겪는 일들을 요모조모 적어 보는 어른의 일기. 이번에는 버리지 말고 모아 본다. 모아 두면, 그리고 내가 더 나이가 들면, 아주 나이가 많이 들어서 살아 있다면, 그때 꺼내어 조금 젊은 나와 만나볼 수 있을까? 그 만남은 괜찮을까? 오늘 좀더 궁리해 봐야겠다. 해 볼 만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일이겠다 싶기도 하고.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이들의 일기는 잘 보관하고 있다. 정작 아이들이 알고 있는지 그걸 모르겠지만. 과거에 매달리는 게 자칫 미련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과거를 아끼는 어떤 태도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더 충실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나가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기획이 멋있었다. (y에서 옮김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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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로즈 트러메인 지음,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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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이민자다. 하루만에 돌아올 수 있나, 일주일 혹은 한 달만에 돌아오게 되나, 아니면 일 년 이상 걸리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집을 떠나서 일터로 갈 수도 있고 일을 찾으러 갈 수도 있고 일을 하기 위한 재충전의 기회를 마련하러 나갈 수도 있고 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나서 볼 수도 있고. 집을 나서서 동네를 잠깐 돌아볼 수도 있고 차를 타고 조금 멀리 나갈 수도 있고 아주 멀리 나갈 수도 있으며 비행기나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일도 마찬가지. 어쩌면 여행과 이민은 돌아오는 마음의 무게로 구별할 수 있는 건 아닐지.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 쉽게 돌아올 수 있나 없나로.


글은 제목부터 고단한 느낌을 자아낸다. 집으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하면서. 동유럽의 어느 나라, 어느 작은 마을에 살던 남자가, 아내와 일자리를 잃은 남자가, 어머니와 딸을 고향에 두고 영국으로 와서 돈을 번다는 이야기. 영국으로 오는 버스에서부터 사연이 시작되는 이야기. 내 취향이 아닌, 피하고 싶은, 모른 척 하고 싶은, 읽는 마음이 힘들어서 외면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세상 모든 삶의 이야기. 몇 날을 아주 열심히 읽었다. 그동안 안 읽으려고 했던 의도를 반성하기라도 한 듯이. 


주인공 남자 레브는 내 마음에 들었다가 안 들었다가 했다. 평범한 사람이었고 평범하게 어리석었다. 일을 할 때는 열심히 일하다가도 엉망진창일 때는 또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그렇게 했으면 싶은 상황에 열심히 임하는 태도에는 한껏 응원을 보내다가도 그러지 말았으면 싶은 일을 저지르는 모습에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어 무시하게 되고 마는. 작가의 인물 구현에 내가 흠뻑 빠져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마냥 마음에 드는 인물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내가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소설이 아닌 듯하기만 한 소설이어서. 


흡족했던 요소는 등장인물들의 됨됨이다. 이를테면 나쁜 사람이나 나쁜 관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속인다거나 해친다거나 가로챈다거나 하는 따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나쁜 게 주변 인물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내 읽기를 더욱 격려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또 많으니까. 물론 도움이 안 되는 인물들은 나온다. 고향 마을의 관리 같은 사람, 대사관에 근무하는 안내인 같은 이들.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 관료인들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인가. 


신기하게도 레브가 만나는 이들은 모두 레브를 도운다. 대부분 영국에 온 이민자들이다. 이민자들끼리 소소한 연대의식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그동안 내가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쁜 사람들을 많이 봤던 것일까, 의심부터 했는데 레브가 만나는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기만 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사람 덕분에 살 수 있겠다고, 살고 싶다고 믿으라는 듯이. 


음식이라는 소재, 이 소설에서 또 내 마음에 들었던 요소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먹는 것이 사람을, 삶을, 관계를, 희망 등등을 키운다는 것을 확인한다. 요리사는 앞으로도 중요한 직업이 될 듯하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알약 하나만 먹고 사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한 요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찾을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니.    


집을 떠나서 집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비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집이 있는 그 마을이 조금이라도 이전보다는 바람직한 모습의 사회로 자리잡고 있기를. 마음이 아프다. (y에서 옮김20230709)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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