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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ㅣ 난다시편 9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6년 6월
평점 :
시집에 실린 첫 시 '공항에서'가 마음에 들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후 읽은 시들은 '공항에서'에 가려 나를 울리지 못했다. 나는 시집 전체에 푹 빠져 들겠다고 작정하고 들어섰다가 '공항에서' 한 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좋다. 한 권의 시집 안에서 단 한 편이라도 제대로 만나는 일이 어디 흔했던가. 나는 먼먼 공항으로 시인을 만나러 간다.
실제로 내가 공항에 갈 일은 없다, 아직까지는. 어디로 떠날 일도 없고 누군가를 배웅하거나 마중할 일도 없다. 비행기는 비행기, 나는 나, 우리는 서로 아득하기만 한데, 이 시인 덕분에 공항으로 간다. 내 기억 속의 공항들, 어느어느 곳들, 실제와 상상이 섞이고 뒤집혀서 내가 그려보는 공항은 나만의 공항이 된다. 공항을 상상하는 일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듯하다,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싶을 정도다.
어느 새 시인이 우리를 떠나간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누군가는 먼저 가고 누군가는 남는다. 먼저 간 이들이 시를 남겨 놓았다면 남은 쪽은 훨씬 덜 서운하겠다, 내 입장에서는.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 남겨 놓은 작품을 모은 것이라 시인 자신은 모르는 시집인 셈이다. 이 사실을 잊을 수가 없는 채로 읽다 보니 시에 깃들여 있는 죽음의 이미지를 놓칠 수가 없다. 시인은 알고 있었을까? 자신에게 다가올 마지막 상황을.
더 이상 모을 수도 쌓아 놓을 수도 없을 이 시인의 책들 위에 이 시집도 얹는다. 나보다 먼저 간 이여, 나보다 멀리 가 있기를.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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