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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갇히다 -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김성일 외 지음 / 구픽 / 2021년 1월
평점 :
8편의 SF 소설이 실려 있는 책을 신청해서 받았다. 책과 서점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글들인데 낯선 기획이 아니라고 여겼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분위기의 책을 읽은 적이 있고. 이런 종류의 소설집이 계속 나오고 있는 건 독자인 한 사람으로서 퍽 반가운 일이다. 작가들은 자꾸자꾸 쓰고 독자들은 자꾸자꾸 읽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은 분명히 높아지게 마련일 테니까.
이번에는 읽기 전부터 내 멋대로의 계획을 세워 두었다. 세 가지 기준을 정해 놓고 8편의 작품을 줄로 세워 보겠다는 것. 순전히 내 편의를 위한 작품 줄세우기로, 나는 SF 소설 비평가도 아니고 작품의 우열을 평가할 만한 안목이나 능력이 없으므로 오로지 내 취향에 따른 것임을 먼저 밝혀 놓으려고 한다. 작품의 좋고 안 좋고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그럼에도 굳이 줄세우는 방식을 택한 내 태도가 불쾌하신 분께는 너그러운 용서를 구한다. 이렇게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탓이오니.)
8편의 작품을 줄세운 내 기준은 세 가지다. 재미, 감동, 참신. 하나씩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 써 보고 순서대로 나열해 보겠다.
1. 재미
나는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도 이것이다. 이 글, 재미가 있구나, 혹은 재미없구나. 재미있는 글은 단편소설일 경우 한달음에 읽게 된다. 읽는 중에는 남은 책장이 얼마 안 되어 곧 끝날 것만 같은 마음에 두근거리는 기분을, 다 읽고 나면 더 읽고 싶다는 아쉬움을 많이 느낀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나면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산 행복한 기분이 들고 재미가 없을 경우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쓰린 기분을 느끼고 만다.
SF 소설의 경우 배경(특히 과학적 지식이나 원리)에 대한 설명이 글 안에 녹아 있지 않고 겉으로 장황하게 드러나 있으면 재미가 많이 없어진다.
재미(읽는 몰입도)에 따른 작품 순서 |
1 |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
2 |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
3 |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
4 | 이지연(역표절자들) |
5 |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
6 |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
7 | 천선란(두 세계) |
8 | 오승현(켠) |
2. 감동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그래서 감동을 주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를 나는 많이 존경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 사람이 사람에게서 감동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주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로서 이보다 쉽고 진하게 행복을 나누는 활동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소설에서 얻는 감동의 양은 내가 바라는 이상향을 얼마나 잘 그려 내고 있나에 달려 있다. 소설이 있음직한 현실을 바탕으로 작가가 바라는 모습으로 나타내는 글의 장르라고 할 때 내 바람과 작가의 바람이 얼마나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작가가 그려 놓은 세상이 내가 바라는 세상과 가까워 보인다는 느낌을 받으면 내 바람이 엉뚱한 게 아니라는 것, 내 바람이 무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내 바람과 같은 바람을 갖고 있는 소설가가 있으니 외롭지 않다는 느낌마저 얻을 수 있어 더욱 좋다.
SF 소설은 현실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모습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는 볼 수도, 체험할 수도 없는 환경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그렇지만 다루는 내용이나 주제는 우리네 현실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상상과 현실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섞이고 넘나드는 가운데에서도 삶의 진실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러니 바라는 마음은 더욱더 간절할 수밖에. 현실이 고달프다고 느끼는 강도가 셀수록 상상의 세상에서 끌어당기는 빛은 더 환하더란 말이지. 빛에 대한 기억이 남루한 현실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정도로.
감동(내가 바라는 이상향과의 일치도)에 따른 작품 순서 |
1 |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
2 |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
3 | 이지연(역표절자들) |
4 |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
5 |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
6 |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
7 | 오승현(켠) |
8 | 천선란(두 세계) |
3. 참신
SF 소설이라면 뭔가 새로울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소설을 읽는 중에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이 자꾸 떠오르면 그만 내려놓게 된다. 물론 본 듯한 것임에도 다루는 방식이 새로우면 당연히 그 작가의 솜씨에 반한다. 이게 중요하다. 시간 여행이든 외계인과의 만남이든 다른 차원에서의 사건이든 알만한 내용이지만 이들이 어떻게 내게로 새롭게 와 닿는가 하는 것.
참신(지겹지 않은 새로움)에 따른 작품 순서 |
1 |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
2 | 이지연(역표절자들) |
3 |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
4 |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
5 | 천선란(두 세계) |
6 |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
7 | 오승현(켠) |
8 |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
4. 장점
8편의 글을 20자 이내로 요약해 보았다. 앞서 세 가지 기준으로 내 멋대로의 줄을 세워 보기는 했지만 각각의 글은 각각의 장점을 갖고 있고 이를 간단히 말하는 게 나름 흥미로웠다. 단점은 굳이 들먹일 필요를 못 느낀다.
[20자로 요약한 장점]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 짧은 분량이 품고 있는 길고 낭만적인 서사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 사람을 책으로 만들어 버린 혹독한 발상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 누구나 품고 있을 길모퉁이 서점 하나
오승현(켠) -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말겠다는 태도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 어떤 첨단 시대에도 중요한 건 자유의지
이지연(역표절자들) - 표절과 창조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경험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책만 있다면 괜찮아
천선란(두 세계) - 여기가 아닌 그곳으로의 위험한 선택
5. 권하고 싶은 사람
오랜 시간 해 왔던 일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이 글을 읽었으면 싶은 사람을 탐색해 보는 일. 좋은 것은 나누면 두 배 이상으로 좋아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작품을 두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은 그 대상에 대한 내 관심의 양과 호감도를 대신 보여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이 아직도 즐겁다. 막상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생각만으로도.
[권하고 싶은 사람]
김성일(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 신화의 가치와 참된 역할에 대해 새삼 확인하고 싶은 사람
문녹주(금서의 계승자) - 남자와 여자 사이의 풋풋하고도 기묘한 사랑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
송경아(12월, 길모퉁이 서점) - 위로가 될 공간이 한 곳쯤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
오승현(켠) - 도저히 포기가 안 되는 대상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
이경희(바벨의 도서관) -인류의 기억을 다 모은 바벨탑이 전하는 메시지가 궁금한 사람
이지연(역표절자들) - 자신이 자신의 기억을 못 믿는 상황이 꽤 흥미롭다고 여기는 사람
전혜진(모든 무지개를 넘어서) - 책과 서점이 누군가의 생을 구할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 사람
천선란(두 세계) -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을 끝내 받아들이겠다고 각오한 사람
6. 그리고
따뜻한 SF 소설을 읽고 싶다. 따뜻한 SF 소설은 없을까. 나만 이런 따뜻한 SF 소설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못 찾았고 못 읽은 것일까.
마지막으로 나만의 세 기준에 따라 점수를 종합했을 때 가장 좋다고 여겼던 작품은 이경희의 ‘바벨의 도서관’이라고 남겨 놓는다.(y에서 옮김20210222)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