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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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긴장하면서 읽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작가가 보여 주는 인물들은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가, 인물을 통해 독자를 혼란시키려는 장치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는 어느 지점에서 깜빡 속아 넘어가려 하는가, 걸리지 말아야지, 하면서 읽었는데 이번에도 진 셈이다. 오죽 답답하고 궁금했으면 마지막 페이지를 슬쩍 넘겨다 보기까지 했는데, 그래도 눈치를 못 챘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런 유형의 소설 독자로서 안성맞춤일지도 모르겠다. 읽어도 읽어도 매번 잘 속아 넘어 가 주고 매번 재미를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작가는 가벼운 듯한 느낌으로 다루는 소재를 통해 은근히 무거운 의미를 전한다. 이번에는 동물 실험이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다가 내가 프랙탈의 의미를 놓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동물 관련 에피소드에 정성을 담아 놓았으니, 주인공이 수의사라는 직업도, 어릴 적 트라우마도 그렇고. 그래서 정작 소설 제목을 유의하지 못했다. 복선이 담겨 있었던 것을.


아무려나, 재미있게 읽었으니되었다. 계속 기다리고 있으려고 한다.  (y에서 옮김20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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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7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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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해 배경이 되는 독일의 역사를 찾아 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소설은 그저 그런 셈이 되고 말았고 역사 정보를 얻었다는 것에 만족해야겠다. 소설보다 역사적 사실이 더 흥미로웠을 정도로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독일, 소설 속 4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가 심심하게 여겨질 정도였으니. 


주인공으로 나오는 인물들이 가진 영사라는 직위가 제일 먼저 궁금했다. 영사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 19세기 독일 북부의 한자 도시인 뤼베크에서 상인 엘리트 계급이자 귀족적인 직함이었다고 한다. AI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였고 소설을 읽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다가 소설은 안 읽고 AI한테 전부 물어 보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 아닌 염려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독일사 산책을 읽은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귀족 가문이 4대로 이어지는 동안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그려 놓은 소설. 전쟁이라든가 재난과 같은 외적인 상황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 역량이 줄어들면서 가문이 점차 축소되고 사라져가는 모습이라 의외의 느낌을 받았다. 소설이 이렇게도 전개될 수 있구나, 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몰락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구나, 이게 오히려 진짜로 사람 사는 모습 같구나,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닌 것만 같은 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더니. 독일의 지방 도시에 있는 가문 하나가 이렇게 서운하게 스러질 수도 있다니 소설로 생생하게 지켜본 기분이다. 

매력적인 인물이 없어서 섭섭할 정도로 싱거웠다. 아직도 사람에게 매력을 기대하다니 내가 철이 안 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소설의 요소들이 활약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아버지가 이룬 일생의 성과와 업적이 아들로 손자로 이어지면서 확장되는 게 아니라 무너져 내리고 마는 과정은 흔한 듯해도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가진 능력의 근원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뛰어난 부모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지극히 어려운 방법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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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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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생은, 사는 일은, 이어져 있다. 가로로 세로로, 내가 살아온 시간으로, 남들과 더불어 살아온 시간으로. 혼자 있었어도 혼자인 적이 없고 같이 있었어도 같은 마음이었던 적은 없으니. 우리는, 나는,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이만하면 잘 살아온 듯도 싶은데.


배경은 시골 기와집을 책방으로 꾸며 놓은 곳.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남자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고 여자는 서울살이에 지쳐 책방 옆에 있는 이모네 펜션으로 쉬러 왔다가 둘은 만난다. 남자의 어릴 적 짝사랑인 그녀, 여전히 사모하고 있는 그녀. 사랑은 이어지고 삶도 이어진다. 한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던 채로.


이 작가의 연애 이야기, 상큼하고 애절하고 애틋해서 좋다. 각각의 인물이 지닌 옛 상처나 시련들은 소설적 장치로 효과있게 작용하고 있고 무엇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기본 인간성이 반듯해서 마음에 든다. 여기에도 나쁜 사람은 나쁘지만 좋은 사람들이 아주 좋아서 이런 사람들과 같이 있었으면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현실에서 모두 모아 만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그들 중의 한 사람쯤 될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작은 책방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책방 주인의 희생과 각오? 글쎄, 이래서야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돈을 아주아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하염없이 베풀며 운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책방 주인도 밥을 먹고 월세를 내고 살아야 한다면. 도대체 책을 몇 권 팔아야 책방은 문을 닫지 않을 수 있을까. 나만 해도 돈 주고 사는 책보다 공공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책이 훨씬 많은데.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 책방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이 책방에서 책을 사는 마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멀기만 한 것인지. 


해원과 은섭의 사랑이 예뻐서 읽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y에서 옮김2023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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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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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이었던가? 내가 연애소설이라고 알고 있던 형식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연애소설이 연애만큼 다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또한 나의 편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이 소설집을 평범한 연애소설로 읽지 못한 이유를 적어 보려 한다.


두근거림이 생기지 않았다. 연애라면, 모름지기 연애를 하는 당사자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선을 따라 다니면서 두근거리기 마련인데 그럴 틈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나 보다,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건가? 내가 좋아하는 너를 다른 사람이 또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를 좋아하는 그의 마음을 내가 모르고 있었나?.. 등등의 궁금증이나 긴장감은 일어나지 않고. 이러다가 뭔 일이 있으려고 그러나? 작가가 뭘 숨기고 있는 것이지? 등장인물들 간에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연애 그 자체보다는 상황에 몰입하도록 하는 전개로 인해 읽는 내 마음에 연애 감정이 생겨나지 못했던 것이다. 연애소설을 읽다 보면 보통 반할 만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건만.


소설이 재미 없었던 건 아니다. 늘 그랬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읽는 재미를 준다. 다 읽고 나면 딱 이 작가의 작품 같다 싶다. 괜히 연애소설이라는 선입견에 다른 것을 기대했던 게 무안해지는 느낌이다. 연애가 뭐라고, 사랑이 뭐라고, 아직도 이런 말에 흔들리고 있는 것인지, 나도 좀 딱하고(ㅎㅎ).


사랑을 찾아 떠돌고 있을 세상의 모든 청춘들에게 행운을 빌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사랑이라는 게 겪어 보면 별것 아니지 싶어도 또 막상 얻지 못했을 경우에는 더없이 그리운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 실망할 때 실망하더라도 귀하고 소중하게 다룰 수 있을 동안에는 충분히 사랑해 볼 수 있기를. 사랑 또한 결혼만큼이나 안 해 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 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니. (y에서 옮김201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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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한 사랑 노래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00
박혜경.이광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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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참 어지간하다. 얼마나 더 노래할 것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 사랑 정도 되면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함께 더불어 숨쉬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질기게 이렇게 막무가내로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엮은 시집이다. 사랑이라는 소재 혹은 주제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난다면 그 시의 주인의 온전한 시집을 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 시집을 언제 샀던 것인지는 기억에도 없고, 읽었던 흔적은 남아 있는데, 이 시집에서 본 몇몇 시인의 시집을 구해 읽어 본 듯도 하고. 순서가 섞이면서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겠으나 한번 괜찮았다 싶으면 이후로도 계속 괜찮아서 내 마음은 좋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한꺼번에 읽는 글맛도 풍요롭지만 여러 시인의 작품에서 내 취향을 골라 만나는 재미도 근사하다. 낯익은 시인은 낯익어서 반갑고 낯선 시인은 낯설어서 새롭다. 새로운 시인의 이름을 하나 얻게 되면 새로운 세상 한 곳을 열고 들어 서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보았으나 기억에 없어서 이번에 다시 새겨 보는 이름 몇몇을 따로 적어 둔다. (y에서 옮김20160309)

한 물결이 다른 물결을 일으키듯이, 한 바람이 다른 바람을 펄럭이듯이(채호기) - P9

나에게로 오는 햇살을 참빗처럼 거르며(채호기) - P10

50년이 걸렸네 바보같이

그것이 그리움인 줄 아는데

안팎으론 눈보라치는데(문충성) - P20

환한 꽃 속에서 다시 만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맑은 술, 꽃잎이 지네

누구든지 한 번은

자신의 그림자에 매혹당한 적이 있네

지상에 닿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 더 무거워져야 하는가? (함성호) - P22

불타는 말 접어두고 시방

시오리길쯤 나선 걸음으로 그대 찾아가거니,

모란꽃 빛깔 잃지 않을

저녁답까진

산그림자마냥 가 닿겠거니(신중신) - P25

맑은 하늘과 비어 있는 거리

멈춰 선 버스와 흘러가는 시간 사이로(이철성) - P36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황지우) - P41

나를 기다리는 우연 하나

이미 지나쳤으니

네가 와서 들추면 지워진 자취(김명인) - P103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마음이 타올랐다 꺼지고 또 타오르고

그렇게 쌓인 재들이 수북하게

가슴을 가득 메웠던

내 사랑은



살아서 단 한 번도 나의 것이지 않았던 죽음은,

기억하지 말아다오

살아서 단 한 번도 나의 것일 수 없었던

모든 그리운 것들의 거처를(조용미) - P136

정녕 그대를 사랑한 것은 내 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은빛 시린 서리처럼 오랜 세월 말없이 견디는 계절의 눈빛마다 속 졸이며 현상되는 기억을 대웅전 연꽃무늬 문살에 새기다가 사람의 가슴에도 깊이가 있다면 그대보다 멀리 있는 그대의 그리움 또한 아득히 잠기겠지요(신용목)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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