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한 사랑 노래 문학과지성 시인선 300
박혜경.이광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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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참 어지간하다. 얼마나 더 노래할 것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 사랑 정도 되면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함께 더불어 숨쉬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질기게 이렇게 막무가내로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엮은 시집이다. 사랑이라는 소재 혹은 주제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난다면 그 시의 주인의 온전한 시집을 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 시집을 언제 샀던 것인지는 기억에도 없고, 읽었던 흔적은 남아 있는데, 이 시집에서 본 몇몇 시인의 시집을 구해 읽어 본 듯도 하고. 순서가 섞이면서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겠으나 한번 괜찮았다 싶으면 이후로도 계속 괜찮아서 내 마음은 좋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한꺼번에 읽는 글맛도 풍요롭지만 여러 시인의 작품에서 내 취향을 골라 만나는 재미도 근사하다. 낯익은 시인은 낯익어서 반갑고 낯선 시인은 낯설어서 새롭다. 새로운 시인의 이름을 하나 얻게 되면 새로운 세상 한 곳을 열고 들어 서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보았으나 기억에 없어서 이번에 다시 새겨 보는 이름 몇몇을 따로 적어 둔다. (y에서 옮김20160309)

한 물결이 다른 물결을 일으키듯이, 한 바람이 다른 바람을 펄럭이듯이(채호기) - P9

나에게로 오는 햇살을 참빗처럼 거르며(채호기) - P10

50년이 걸렸네 바보같이

그것이 그리움인 줄 아는데

안팎으론 눈보라치는데(문충성) - P20

환한 꽃 속에서 다시 만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맑은 술, 꽃잎이 지네

누구든지 한 번은

자신의 그림자에 매혹당한 적이 있네

지상에 닿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 더 무거워져야 하는가? (함성호) - P22

불타는 말 접어두고 시방

시오리길쯤 나선 걸음으로 그대 찾아가거니,

모란꽃 빛깔 잃지 않을

저녁답까진

산그림자마냥 가 닿겠거니(신중신) - P25

맑은 하늘과 비어 있는 거리

멈춰 선 버스와 흘러가는 시간 사이로(이철성) - P36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황지우) - P41

나를 기다리는 우연 하나

이미 지나쳤으니

네가 와서 들추면 지워진 자취(김명인) - P103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마음이 타올랐다 꺼지고 또 타오르고

그렇게 쌓인 재들이 수북하게

가슴을 가득 메웠던

내 사랑은



살아서 단 한 번도 나의 것이지 않았던 죽음은,

기억하지 말아다오

살아서 단 한 번도 나의 것일 수 없었던

모든 그리운 것들의 거처를(조용미) - P136

정녕 그대를 사랑한 것은 내 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은빛 시린 서리처럼 오랜 세월 말없이 견디는 계절의 눈빛마다 속 졸이며 현상되는 기억을 대웅전 연꽃무늬 문살에 새기다가 사람의 가슴에도 깊이가 있다면 그대보다 멀리 있는 그대의 그리움 또한 아득히 잠기겠지요(신용목)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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