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지미 지음, 이민아 옮김 / 청미래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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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줄 안되는 글, 그보다 몇 배 그득히 많은 그림, 그리고 그 둘을 합친 것보다 훨씬 깊고 그윽한 그리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는 이 책이 제 그림책의 하나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내가 아무 말 안하고 있었더니 나보다 먼저 그 책을 읽는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기에 뭘 좀 알겠냐고 물으니, 내용을 잘 모르겠단다. 그럴 수밖에. 이미 애 둘을 가진 내 삶을 통해 비추어보더라도 쉽게 닿을 수 없는 깊이이며 자리인 것을. 나는 한 바닥 한 바닥 꼼꼼히 뜯어보겠다는 마음으로 글과 그림을 읽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읽어보는 그림인가. 선 하나, 그림자 하나에조차 또 이야기들은 어찌 이토록 많이 숨어 있는가. 나는 지나가는 듯한 말로 딸에게 전한다. 이 다음에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노라고.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딸을 보며 나는 또 한편으로 생각했다. 내 아이가 이런 그림을 그릴 줄 모르면 또 어떠랴마는 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이의 정서만큼은 배워 닮았으면 좋겠다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너무도 사소하였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더 특별해지는 관계. 평소에 우리들이 쉽사리 놓쳐버림으로써 뒤늦게 안타까워하는 소중한 인연들. 그러므로 지금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을 눈여겨 볼 일이다. 너무도 친숙하여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

마음 졸였다. 읽는 내내 주인공들의 따뜻한 만남을 기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지켜보면서 아직 내게 남아 있는 따뜻함을 확인했다. 그래서 고마웠다.  (y에서 옮김20010206)

[인상깊은구절]

12월 20일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줄곧 같이 살면서도 평생을 서로 알지 못하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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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5 - 부디 이 원앙차가 맛있어지기를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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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까지는 탈레랑 커피점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미호시와 아오야마의 관계가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면 이번 호는 아오야마에게 집중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오야마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의 아오야마, 아오야마가 어려서부터 소극적인 듯하면서도 끈질긴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 주는 에피소드들. 그 중에 특별하다고 볼 수 있는 아오야마의 첫사랑 이야기 등. 


그다지 재미없었다고 쓴다. 아오야마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인물도, 그 인물을 아오야마가 첫사랑으로 여기게 되는 과정도, 첫사랑과 다시 만난 어른으로서의 태도도 도무지 내 성향과는 거리가 멀어서 소설 속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도통 이해해 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 인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이야기는 더더욱 억지스럽게 느껴질 뿐.


작가의 설정에 의심이 드는 정도다. 현재의 아오야마를 더 잘 보여 주기 위한 장치였겠지. 미호시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에피소드로 삼고 싶었겠지. 결과적으로는 아오야마와 미호시의 관계가 돈독해지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과정이 이렇게 험하고 지저분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기만 하다. 어째 내가 배배 꼬인 기분이다. 그래도 아오야마에게는 순수한 사랑이었을 텐데. 


한 권 남았다. 탈레랑 커피점 같은 곳이 내가 사는 곳 근처에도 있었으면 좋겠다.(찾아보니 일본에서는 8권까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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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가드너 4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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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구해 본 책이다. 마음에 든다. 앞에 나온 세 권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만큼 괜찮다. 그림의 형태가 아주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림에 담긴 정보가 충실해서 도움이 많이 될 듯하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가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식물을 키워 냈을까. 시행착오는 또 얼마나 겪었을까. 나로서는 간단한 메모조차도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곤 하면서 잊어버리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식물을 키우는 일이라는 게 금방 금방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서, 어떤 경우에는 1년 사계절을 보내야만 하는 경우도 있는 일이라서, 긴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작가의 수고로움이 더 진하게 와 닿는다. 그러니 이 책을 4권이나 이어 올 수 있었겠지.


사진을 이용해서 정원을 가꾸는 방법과 경험을 알려 주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설명문의 형식이든 에세이 형식이든 저마다의 특징을 살려 잘 꾸며 놓은 책들을 종종 봐 왔지만, 이 만화만큼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정보에 치였거나 너무 개인적인 감상에 실망했거나 했던 탓. 적절한 정보와 흔히 겪을 법한 실패담을 예쁜 그림과 글과 사진으로 딱 좋을 만큼 보여 주고 있다.    


날이 조금씩 추워지려고 하는데, 이번 책에 나와 있는 온실 에피소드로부터 당장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y에서 옮김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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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 다이어리 - 사계절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실전 노하우
국립수목원 지음 / 지오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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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데 얕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뭘 몰라서 이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마당에 꽃 몇 송이, 나무 몇 그루 심겠다는데 이렇게나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살짝 질린 마음도 있고. 그럼에도 차분히 한 쪽 한 쪽 그림과 그림에 따른 설명들을 읽어 나가자니 점점 더 책의 친절에 감동이 일어나는 듯했다. 누가 만든 책이라고? 음, 국립수목원이라고, 그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공기관이라면 이런 정도의 친절은 베풀어 주셔야지요.

 

책의 내용이 다 필요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어차피 나로서는 시행착오를 각오했으니 향후 몇 년 동안은 살리는 식물보다 못 살리는 식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고 있는 형편이라), 전부 필요해서 가까이 두고 매번 들여다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다 챙기려면 새로 책을 사든가 내용을 전부 옮겨 놓든가 해야 하는데 나는 다 포기하고(기억력이 많이 모자라는 것도 이런 경우 난감하다) 딱 한 쪽만 붙잡았다. 퇴비 만드는 일. 넣어도 되는 것과 넣으면 안 되는 것. 중요한 것들을 알게 되어 이것만 해도 퍽 만족스럽다. 이 책을 못 봤더라면 이 정보도 얻지 못했을 테니, 이것과 관련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더 겪을 뻔 했을 것인가.

 

꽃도 씨를 뿌려서는 키우지 못하고 있고, 나무도 어느 쪽에 뭘 심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잡초는 벌써부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있는데, 내 인내심은 얼마만큼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안 하던 꽃들 들여다 보기도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닌 것이, 이유도 모른 채 이미 지고 있는 꽃잎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꽃이라는 게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는 것이라는데 나는 아직 이 이치에도 이르지 못했으니 매번 이렇게 안달하면서 속상해 하고 말 것인지.      

 

어느 날 문득 국립수목원이라는 곳에 놀러 가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y에서 옮김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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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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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닦거나 도를 깨우치는 쪽에 관심이 없다. 당연히 해 보려는 생각도 없다. 다른 이가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간섭할 생각도 없다. 도는 도, 명상도 명상,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안 하겠다면 안 하는 것이고. 이런 것을 하라, 하지 말라 하는 그 사람이 나로서는 부담이다. 가까이 하고 싶지 않으니.


소설 제목인 헤세가 쓴 싯다르타. 읽기 전 나의 선입견이자 착각-싯다르타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부처를 말한 것인 줄 알았던 것. 읽다 보니 초반 내용이 내가 알던 부처의 일생과 달라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이름만 같았던 다른 인물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싯다르타는 진리를 찾아가는 인물로, 주인공 싯다르타가 스승으로 모시는 부처는 고타마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부처의 이름이 고타마 싯다르타였으니 작가는 이름만 빌렸던 것일까. 나처럼 착각하라고? 


내가 헤세의 글과 사상을 꽤 좋아한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의식을 몽땅 좋아할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이 책, 이 책 속의 주인공, 싯다르타를 통해 진리를 깨우치는 길을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전부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싯다르타는 고생고생을 해서, 즉 온전한 직접 경험을 통하여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된 모양이지만, 작가는 이만큼이나 직접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에궁, 읽는 나는 벅차기만 했다. 뭘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알아내어야 한단 말인가? 진리? 삶의 진리? 깨달음? 


소설 속 고타마는 싯다르타의 스승이자 부처다. 부처는 깨달은 자라고 한다. 싯다르타는 마침내 부처가 된 것일까? 깨달으면, 깨닫고 나면, 삶과 죽음에 무상해지면, 그때는 이전과 다를까? 더 나은 것일까? 내가 깨닫지를 못했으니 이대로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도 깨달아 보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으니 보이지 않는 길일 뿐이다. 이 분야에서도 사람은 다 다르게 살기 마련이고. 


헤세가 더없이 우울한 시절에 쓴 글이라고 한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회복시켰던 것일까. 나를 낫게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싯다르타의 모든 고행과 삶의 여정이 내게는 멀고도 멀기만 하였으니 별다른 위로도 받지 못하였다. 


나는 세상을 그다지 무겁게 느끼지 않는다. 그냥 살 것, 내 의지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내 의지대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살아 있는 동안 내 의지에 맞춰 살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정도. 다만 내 의지가 그릇된 방향을 취하는 일이 없도록 끝없이 경계하면서. 


싯다르타와는 어서 헤어지고 유리알 유희를 만나러나 가야겠다. 괜찮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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