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ㅣ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8
박남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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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그 안에 담겨 있는 긴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읽는다. 이 가을에.

자라면서 혹은 살면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늘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들, 늘 곁에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 어느 순간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굳이 챙기지 않았는데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그게 꼭 나이 탓인 것만 같다. 그런 나이가 오는 것이다. 저절로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

박남준의 시를 이 시집에서 처음 본 것은 아닌데, 내 감상의 기록의 흔적을 찾지 못하겠다. 어쩌면 그때는 또 내게 보이지 않았던 탓인지 모르겠다. 다시 찾아봐야겠다. 내게 있을 그의 다른 시집을.

아주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끄집어 내어 소중한 느낌으로 만나게 한다. 내가 이것을 잊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잊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생각해 내었으니 참 다행이다, 라고 느끼게 하는 구절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좀 아팠다. 1부에서는 그저 좀 편했는데, 2부, 3부, 4부로 넘어가면서 시들이 아프게 한 것이다. 우리 말로 된 시들이 깊고 깊은 아픔을 준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아직도 이 아픔과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세상은 참으로, 좀처럼 변하기 어려운 모양인 것이지. (y에서 옮김20110918)

한때 그대를 위해 붉은 목숨을 내놓으리라
그런 날이 있었다 - P18

한마디로 인연이란 만나는 일이다
기쁨과 고통,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물들어간다는 뜻이다 - P29

사람의 삶도 상처를 통해서야
비로소 깊어지는가 - P30

사랑은 쉬지 않고 닮아가는 것
동그랗게 동그랗게 모나지 않는 것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는 것 - P32

그리움도 오래된 골목 끝 외딴 감나무처럼 낡아질 수 있을까 - P37

꽃을 바라보다 내 얼굴을 만져보네
새들의 하늘을 올려보다 걸어온 발등을 바라보네
이제 그만 나른해져야겠네 - P71

비, 비, 이 땅은 지금 우기의 날들
저 비를 딛고 일어설 아름다운 희망의 꿈을 꾸어봅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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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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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온 소설집이다. 다행이다, 책이 나온 것과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이.


이 소설집의 이런 소설,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잠시 바란다. 나도 소설가가 되어 보았으면, 소설가처럼 이야기를 지어 보았으면, 소설가처럼 다른 사람에게 주목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무엇보다 내가 만든 이야기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내가 받았듯이, 내가 감동하였듯이, 내가 나를 애틋하게 아낄 수 있게 되었듯이.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이야기가 되는 순간, 이것이 마법이다. 잠시 현실을 잊고, 지긋지긋한 일상을 지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원수가 되는 순간을 막을 수 있는 시간, 소설을 읽는 시간. 나는 어떤 사람인지,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무엇보다 함께 있어 행복한지 떨어져 있어 더 행복한지 확인하고 점검하고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 


아일랜드와 영국의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다. 멀다. 낯설다. 그런데도 마음이 쓰리다. 두근거리고 울컥하고 뜨끔하고 난처해진다. 등장인물이 바뀌고 배경 공간이 바뀌어도 내 안에서 일렁이는 움직임은 비슷하게 난폭하다. 거칠어지는 호흡이 소설을 읽는 나를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시켜 준다. 이렇게 흔들릴 수 있다니, 아직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삶에 열려 있구나 하면서.  


모두 10편. 나는 10번 이상의 삶을 지나왔다. 한 사람을 지나고 다음 사람을 만나면서 앞사람을 잊었다. 10편 모두 읽은 뒤 모두 잊었다. 사람은 가고 이야기만 남는다더니 나는 이야기도 보낸다. 다 보냈는데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 살아 있다, 내 주변에. 마트에서 카페에서 건널목에서 주차장에서 자꾸 나타난다. 소설도 못 쓰는 내게 어쩌라고?


어떤 이야기는 소설이 되고 어떤 이야기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어떤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다. '모르는 여자'가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다들 조금씩 모자라고 조금씩 외롭고 조금 더 짖궂은 면을 갖고 있어서 상처를 입힌다. 이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소설을 읽으면 조금 덜 하지 않을까 기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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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면서 채워지는 이상한 여행 - 탕가피코 강에서 배우는 나눔의 규칙 ㅣ 모두가 친구 35
디디에 레비 지음, 알렉상드라 위아르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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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이 재미있고 유익하다. 세상 어느 곳에선가 이런 유형의 여행이 있다면, 이런 여행에 참가할 사람을 모은다면, 글쎄, 주최측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잠깐 해 보고. 아니, 그럴 마음만 품고 있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여행이 아닐까? 결국 해 보고 싶다는 건 내 막연한 동경일 뿐이고 실제로 해 볼 의지 같은 건 없는 것으로. 


아버지를 찾아서 오지로 배를 타고 간 어린이의 여행. 중간중간에 이곳저곳을 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각자 가진 것으로 원주민과의 물물교환을 한다. 어린 주인공은 이게 또 영 마뜩하지 않다. 자기 물건을 빼앗기는 듯 여기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응하는데. 그러나 언뜻 봐서는 필요 없을 듯했던 물건들이 이후 여행에서 중요한 필수품이 되는 걸 보면서 서서히 마음이 달라진다. 그걸 보는 내 마음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으니, 이런 취지의 여행이라면....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여행의 배경지는 내 취향이 아니다. 갈 일도 없고. 다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만큼은 썩 근사했다. 나눔의 의미라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본 기회이기도 했고. 나눈다는 건 내가 내놓고 싶은 것을 내놓는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걸 내놓는 것이라는 점. 그게 내게도 귀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해도. 그러니 나눔도 쉬운 일은 아닌 거다.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마음이 열려 있으려나? 이 책도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y에서 옮김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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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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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서 2009년까지 발표된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과 같은 평론집은 글이 나온 시기를 기억하면서 읽는 게 좋다. 적어도 시간 상의 착오로 오해를 하지 않게 되니까.  

 

모두 6부로 이루어져 있다. 비평가로서의 작가가 다른 작가들을 크게 시인과 소설가로 나누어 편집해 놓은 구성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문학의 전문가들은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작품들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비평가의 설명을 얼마만큼 받아들일 것인가는 독자로서의 개인적인 선택이고 영역이므로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길 것까지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작가의 글은 근사한 맛이 있다. 앞서 읽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빌려 본 건데 만족스럽다. 이 책이 나올 당시에 읽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내 마음이 궁금하기는 한데 지금 이렇게 괜찮게 여겨지는 걸로 봐서 그때 읽었더라도 만족했을 것 같다. 글의 세계에서 10년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미 읽은 책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작가에 대해 써 놓은 글을 읽을 때는 당연히 반가웠다. 내가 놓쳤거나 무시했거나 부정했던 사항들을 멋지게 되살려 놓은 표현들 앞에서는 감탄했다. 그래, 이게 전문가지. 나는 왜 이만큼 읽어 낼 수 없나 하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하고, 또 이 작가처럼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는데 없는 능력 때문에 한탄하면서 스스로를 들볶을 필요는 없다는 것까지 알게 된 나이가 되기도 했고.

 

제일 좋은 건 비평가의 도움으로 새로운 작가의 이름을 얻을 때다. 내가 이미 좋아하고 있는 작가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서 이 비평가가 내가 같은 작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확인하면 뿌듯하기는 하지만 새롭지는 않다. 즐거움의 영역이 넓어진 것은 아니니까. 내가 몰랐거나 제대로 못 읽어서 못 누린 작품과 작가를 소개받게 되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으면, 나는 비평가에게도 빠지고 만다. 지금처럼. 그리고 김경주 시인을 더 얻었다. 

 

3부에 모아 놓은 짧은 글들도 산뜻하게 읽었다.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글들이다. 다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한숨이 난다. 우리는 좀처럼 변하지 못하고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 얼마나 더 읽어야 스스로를 안아 줄 수 있게 될까? (y에서 옮김20200101)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 P9

독자가 이 가치들을 전달받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것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에 독자가 마중을 나가기만 하면 될 때도 있고, 그것을 만나기 위해 독자가 낯선 길을 더듬어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분명하게 눈에 보여서 편안하지만 그래서 재미가 덜할 때도 있겠고, 너무 희미해서 과연 그것이 있기는 한가 수상쩍어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대개 전자를 ‘고전적’이라 하고 후자를 ‘실험적’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고전은 어제의 실험이었고 오늘의 실험은 내일의 고전이 될 수 있다. -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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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2026 33호 - Vol 33 : 감정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ㅣ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33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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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언제부터 나는 감정이 이성보다 수준이 낮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감정적이 되면 손해를 본다고, 감정을 앞세우면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어떤 경우에도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이성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내 생의 어느 시기에 이런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이제 와서 이것을 꼭 알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저 내 감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니까. 심지어 이성보다 더 챙겨야 할 것이 내 감정이라는 것까지. 나이가 들어서 막연하게 이성보다 감정 편이 되었던 것인가 싶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격려와 지지를 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생각 잘 하고 있다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게 아니라고, 이참에 이 책을 참 잘 읽은 것이라고. 


내 감정, 소중하다. 인간이 느끼는 기본 감정을 심리학자들은 6개에서 8개 정도로 본다는데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혐오, 놀라움이 6개로, 신뢰와 기대를 보태면 8개로. 이들은 하나씩 작용할 때도 있고 둘 이상이 섞이면서 생겨날 때도 있단다. 이론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나는 이 정보를 만나서 느끼는 감정에만 충실하겠다. 앞으로 점점 더 내 감정을 헤아리고 매만지는 생활로 가기 위하여.


이 잡지를 읽다 보면 사진이나 그림이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 만남도 즐겁다. 이번 호에서 내가 고른 그림은 박이소의 <팔방미인>.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나는 나에게 이 잡지를 계속 구해 볼 의지와 흥미가 사라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죽기 전까지 살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매 순간의 경험이 곧 우리의 삶이고, 우리가 해석하는 대로 의미가 부여되는 인생이다.
- P22

기분이 좋을 때는 세상이 기회로 가득해 보인다. 기분이 나쁠 때는 똑같은 현실이 대처하기 힘들 만큼 벅차게, 심지어는 해롭게 느껴진다.
- P35

청소하고 요리하고 가족을 돌볼 때, 내 삶의 근본적인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실존적 자아를 되찾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가사 노동의 쳇바퀴를 벗어나고 싶어도, 사랑하는 가족과 본질적인 관계로 얽힌 일상, 내가 준 사랑만큼 아니 그 이상을 되돌려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은 살아볼 만하다. - P56

<대화록>에서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다. 우리가 좌절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이 진실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당신을 헐뜯을 때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말이 나쁘다는 당신의 생각이다. 우리의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 내면의 해석으로 형성된다. - P80

조건만 적절하게 주어진다면 그 순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살아내고 느끼고 상상한 경험을 자기 앞의 경청자는 물론 역사 자체와 연결 짓게 된다. - P88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은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자각하게 되며,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자신 안에서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P95

우리가 진짜 예술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그것이 감정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 P96

삶의 모든 순간, 우리는 의미를 만든다. - P112

권리를 빼앗길까 봐 두려운 사람은 민주적 재화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죽거나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사람은 이웃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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