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문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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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 작가의 작품을 꽤나 열심히 읽어 온 편인데. 어떤 책은 사서 읽고 어떤 책은 빌려서도 읽고. 이제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이 작가의 작품을 사는 문을 닫아야 할까 보다. 더 이상 사서 읽지 않아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괜찮겠구나 하는 마음에 이르렀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은 빌려 읽으려다가 다시 사 모으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 것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 여기까지인 셈이다. 


읽는 재미? 글쎄, 지긋지긋했다. 지긋지긋한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역겨운 느낌마저 들었다. 인간이 이렇게 지독하게 나쁠 수 있나, 또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나. 이렇게 나쁜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이렇게 멍청해지는 일은 없어야지 하는 식의 반면교사로 삼기에는 작품이 좀 무책임하다. 이런 다짐은 마음먹는다고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어느 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난 정녕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만큼 나쁘지도 멍청하지도 않다고 믿는다.)


나쁜 사람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되는가, 멍청한 사람은 처음부터 멍청한 사람이 되는가. 나쁜 사람에게 질투심은 나쁜 성향을 몇 갑절로 키우게 되고, 멍청한 사람이 판단력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면 하염없이 추락하게 된다. 옆에서 충고하는 이의 진심은 끝내 닿지 않는다. 그러니 소용이 없게 되는 셈인가? 나쁜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일도 멍청한 사람의 지혜를 밝히는 일도. 


소설에서는 살인의 문을 말하고 있는데,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문이 있는 법이다. 열 수 있는 사람은 열고, 열지 못하는 사람은 끝내 열지 못하는 문들. 열고 싶다고 해서 다 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안 열리는 것도 아니고. 제각기 열고자 하는 문이 제 뜻대로 열릴 수만 있다면 그것도 참 좋은 일일 텐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또 세상의 이치라고 하니 우리 앞에 있는 각각의 문들을 어떻게 열고 닫아야 할지 살아가는 내내 궁리해야 할 모양이다.      


이 작가의 책을 더 사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니 뭔가 좀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한 기분도 든다. 이 역시 내게는 이만하면 되었다. (y에서 옮김20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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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94
박형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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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어서 그런가, 눈물이 그리운 이유는. 하긴 이 시집을 몇 차례 보았으니 꼭 가을 탓도 아니고. 그저 시를 통해 찔끔거렸으면 싶은, 애절한 맛을 보았으면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시인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말았다.


작가와 나 사이의 거리감, 작가와 나눈 것이 그다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건이든 경험이든 감정이든 비슷하거나 공감하거나 동경하는 부분이 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들에 머물지 못하였으니 내게는 빈 언어일 수밖에. 아쉬운 노릇이다. 시집을 이런 마음으로 덮고 나면 다른 책보다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데. 시간이 좀 더 흘러 다시 보게 되었을 때를 기대하는 마음 살풋 남겨 둔다.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그래도 한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시를 통해 구현하는 가족의 이미지, 그리움. 아버지. 나는 내 가족에게 좀 무심한 쪽인가. 더듬어 보아도 애절한 무엇은 떠오르지 않는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 그저 좋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래, 결핍을 느껴보지 못한 때문인가 싶다. 억울할 것도 없고, 속상할 것도 없으니 애타는 그리움이라는 게 생길 여지가 없었다. 바꿔 말하면 가족은 내게 이미 충분한 의미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고마운 일이다.


결핍은 많은 상처를 주지만 어느 한 면에서는 성장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말, 불편한 채로 인정해 보려 한다.  (y에서 옮김20131031)

나는 어스름한 빛에 얼룩진 짧은 저녁을 좋아하고
책 모서리에 닿는 작은 바스락거림을 사랑하지요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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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 카레 만드는 사람입니다 ㅣ 띵 시리즈 13
김민지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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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레를 좋아한다, 그런가? 나는 카레를 잘 먹는다, 정말 그런가? 카레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은 카레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고 그렇다면 작가는 카레를 좋아하는 게 맞겠지? 아무래도 나는 이쪽저쪽 모두 아닌 것민 같다. 


재미있게 읽고 있다, 띵 시리즈. 기회가 된다면 다 봐야지, 그러던 참에 카레가 주인공인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내가 먹는 카레는 카레가 아닌 것만 같다. 카레가 이렇게 정성을 기울여서 만드는 음식이라고? 카레 가루를 물에 풀어서 끓인 카레국물 정도로 여길 수 있는 나의 카레, 많이 단순하고 꽤나 한심하게 보일 지경이다. 그래도 내가 만든 것을 내가 잘 먹으면 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이 작가가 서울의 성북동에서 카레 가게를 열고 있단다. 갈 수 있을까? 그럴 기회가 올까? 모든 기회 비용을 고려하여 내가 가서 먹을 만한 음식인 것일까? 고기를 안 먹는 나로서는 시금치 카레밖에 못 먹을 텐데. 이 책을 읽는 것으로 그칠 것 같기는 한데, 앞으로 카레를 만들어 먹을 때마다 이 집을 떠올리게 될 것 같기는 하지만.


몽상 속을 떠도는 기분으로 읽었다. 음식 이야기는 대체로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는 실제로 먹지도 않으면서 먹고 맛있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아주 배부르게 먹고 난 듯한 기분이 되는. 여러 모로 이득이 되는 내 취향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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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문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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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소재와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 사건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몰라도 되는 게 아니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더 정확하게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떤 마음에서 이런 소재를 선택했을까?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세상에 더 많은 악들이 활개를 칠 것 같아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염려하고 경계하는 마음으로 쓴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절절하게 다룰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전체 두 권 중에서 1권이다. 아직 확실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채 1권이 끝났다. 모든 일이 일어날 사건 쪽으로 집중하고 있는 것만 같다. 뭔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로 흐르는데, 바라지 않는 어떤 일이 벌어질 듯한데, 주인공은 점점 내가 기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려 가고 있고.


나쁜 마음 혹은 악의 기운,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해치고자 하는 의도는 선천적인 걸까, 후천적인 걸까. 이런 마음은 본바탕에 감춰져 있다가 솟는 것일까, 이런저런 환경에 의해 자라기도 하는 것일까. 최근 읽는 책들에서 이런 물음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꼭 다른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 내 안에도 잠재되어 있고 기회만 생기면 스멀스멀 피어나려고 꼼지락거리는 것 같은, 아니 어쩌면 이미 몇 번은 발휘했을 내 안의 악의 본성까지.


2권에서는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하니 괜찮다. (y에서 옮김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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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아직 따뜻하다 ㅣ 창비시선 174
이상국 지음 / 창비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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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촌스러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느끼고 있다. 이 말은 내가 도시스럽다거나 세련된 사람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나처럼 촌스러운 사람도 드물 정도로 난 어눌한 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촌스러움이 좋다고 느끼는 것, 나는 사람이 촌스럽다는 것과 촌스러움을 좋아하는 일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나는 흙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어떤 식물이나 동물도 키워 본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시설 좋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므로 내 어린 시절은 참 삭막했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놀 수 있었던 곳은 고작 학교 운동장일 뿐이었으며 어떠한 풀이나 곤충과도 친구가 되어 본 적은 없었다. 촌스러움도 전혀 모르고 그렇다고 도시생활의 혜택을 누리지도 못했던 내 어린 시절.

언젠가부터 그 촌스러움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내 어린 시절의 환경에 대해 억울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꽃 이름 하나, 풀이름 하나, 곤충 이름 하나도 변변하게 아는 게 없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른 생명체에게 해로운 것인지 이로운 것인지도 모르고, 하다 못해 나 아닌 생명에 대한 관심조차 없이 살아왔던 것에 대해 누구에겐지 모를 원망의 마음이 생겨났던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정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던 것일까.

그러다가 이상국의 이 시집을 보면서 나는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촌스러움의 갈망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일부러 찾아 읽어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던 시의 그림들이 이 시집 속에서 천천히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집'이 본래 우리에게 그런 것이 아닐까. 제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들어있음을 채 알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그 속을 깨닫게 되는 그런 것. '문을 닫지 못하고 다시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65p)는 언제나 따뜻한 '집'처럼. 이제는 내 속에서 늘 따뜻할 나의 촌스러움처럼. 지극히 촌스러워서 더욱 따뜻한 이 시집처럼. (y에서 옮김20011101)

[인상깊은구절]

슬픔도 꽃도 지천인데

산 내다버리고 오는 물처럼

누가 다시는 세상과 싸우지 않겠다며

늙은 소 같은 어둠 앞세우고 돌아오는데

다 안다 다 안다 하며

물소리가 따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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