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ㅣ 문학동네 시인선 117
곽재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천히 읽히면 좋다. 나는 천천히 읽히는 시가 좋다. 짧지만, 한 페이지에 몇 줄 안 적혀 있지만 훌렁 읽히면 마음이 상하고 섭섭해진다. 최근에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고, 그러지 않았다. 이 시집에는 정말 천천히 흐르는 강이 있었고, 그 강에 착한 물고기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나는 용을 찾아다녔다. 살짝 무서웠지만. 


김소월과 윤동주와 정지용과의 인연을 말해 주는 대목도 근사하다. 작가라면, 시인이라면, 아니 독자라고 해도 제 스스로 맺은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 덕분에 작가가 되었노라고, 누구 덕분에 독자가 되었노라고 하는. 나는 이 작가와 <사평역에서>로 만났고 <은행나무>로 깊어졌으며 같은 국어 교사여서 홀로 더 친숙해졌다. 아마 그리고는 오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늘 기다려 왔을 것이다. 작가 역시 그런 시절을 거쳐 시인이 되었을 것인데, 시 사이사이로 그 인연들을 짚어 읽는 게 좋았다. 시 또한 사람 사이에서 꽃을 피우는 몫을 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마냥 환하고 밝고 명랑하지는 않다. 오히려 반대다. 좀 많이 서글프고, 쓸쓸하고, 때로는 속상하기도 하다. 사람살이가 그래서 시인은 강물과 물고기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위로해 줄 누군가가, 그것도 저 멀리 있는 게 아닌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이 그리워서. 용은, 푸른 용은, 시인에게 푸르게 보이는 모든 용들은, 시인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용들은, 가여운데도 예쁘게 보인다. 시인의 마음일 테지, 그리고 시인이 바라는 독자의 마음일 테지. 나는 몇 번 망설이다가 슬쩍 쓰다듬어 본다. 용의 반짝이는 비늘, 나도 그 비늘 하나쯤은 갖고 싶다.


어려운 시든 쉬운 시든,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는 시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이 세상이, 우리 처지가 조금 더 살 만해질 것 같다. (y에서 옮김20190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영국 기행 ㅣ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6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은 읽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게 신기하다. 그뿐이랴, 읽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음에도 다음 책까지 찾아 보게 한다. 이 어려움을 또 느끼고 싶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설도 여행기도 만만한 글이 없는데, 읽는 내내 글을 읽고 있는 자신을 대견스럽게 여기도록 해 준다. 내가 이 글을 참 묵묵히도 읽고 있구나, 다른 글이 이만큼이었다면 그만두었거나 대충 읽고 넘겼거나 했을 텐데.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여행은 제일 먼저 해당 지역의 역사를 알게 해 준다는 좋은 점이 있다. 그 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오게 되었는지, 지금의 주민들이 왜 이런 삶의 양식을 택하게 되었는지 여행지에서는 이런 의문들이 저절로 든다. 그러다가 하나씩 답을 알게 되고 궁금한점을 해결하게 되면 여행의 만족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에 알게 되는 것도 또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영국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다고 할 수 없는 내 형편(딱 하루 있어 보기는 했지만 내게 그건 상징 같은 것이고)에서 이 책은 영국에 대한 동경과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동시에 높여 놓았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영국에 대한 내 지식의 근원을 확인했던 점도 있고, 작가가 영국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좋은 마음으로 여행했는지를 알고 나니 나도 가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자꾸만 일렁이는 것이었다. 


작가가 영국을 여행하고 이 글을 쓰던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이었다고 한다. 글 곳곳에 사상의 대립 문제라든가 전쟁의 기운을 담아 놓고 있는데 역사의 결과를 알고 읽고 있노라니 색다른 감회가 생기기도 한다. 곧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일상을 이어 가는 영국민들과 그들을 바라보고 글을 쓴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자니 과거-현재-미래의 관계라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아무튼 작가의 통찰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지고 대단하고 감탄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분석의 대상으로 맡겨 보고 싶기까지 했다.    


몇 곳을 옮겨 적어 보았다. 영국 혹은 영국민의 특성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을 옮기면서 끄덕끄덕하다가 마지막에 젊은이의 특성에 대한 부분을 옮겨 쓰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는, 시공간을 막론하고 젊은이라면 누구나 언제나 다 이렇게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개인에서 개인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어떤 개인은 희생을 하고 어떤 개인은 영광을 누릴 텐데 우리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 대목에서 갑자기 자유라는 말이 묘하게도 떠올랐는데 나는 어쩌면 이제야 자유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된 것도 같다. (y에서 옮김20180822)   

 



1. 영국민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2. 키플링의 시 <IF>





 



3. 흑사병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난 후부터 제국주의 영국이 되기까지의 과정





 



4. 도시의 세 형태



5. 모국어의 가치





 



6. 스포츠 정신이란?





 



7. 젊은이들의 특성으로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미월 지음 / 창비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경로로 이 작가의 이름을 얻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 작품이 있기는 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는데. 이 책,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제야 펼쳐 읽게 된 게 섭섭할 정도로. 가끔 이렇게 뒤늦게 만나는 글이 내 마음에 들 때면, 내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때는 뭐하고 있었나 싶어서.

2011년에 발간된 책이고 실린 작품들은 2007년부터 2011년에 발표되었다. 10년 전이다. 그때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던가. 근무했던 곳을 떠올리면 대략 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2007년부터 2011년의 10대 뉴스도 찾아보았다. 그런 시절에 쓰였던 소설이구나, 10년이나 지났음에도 답답한 마음이 인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참 느리게도 흐르는구나 싶다.

잘 읽히는 소설들이다. 그런데 전혀 가볍지 않다. 주제는 무거운데 표현은 경쾌하고 발랄하다. 그 탓에 자칫 마음을 놓을 뻔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글들이어서 계속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읽는 마음은 뿌듯했고 소설 속 상황에는 흔들렸으며 작고 큰 미움과 분노와 원망과 한탄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때 그 힘들었던 젊은이들은 지금 또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보다 한 세대 앞선 나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고 자꾸 숨고 싶어진다. 이래서야 원.

한 편 한 편 다 재미있고 따끔거린다. 배경이 되는 몇몇 곳은 앞으로도 이 작가의 소설을 떠올리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다. 서울 프라자 호텔이나, 도시의 공원이나, 중국어 학원 같은 곳들. 무심하고 게으른 내 정서의 한 쪽을 건드리면서 내가 깨어 있도록 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고마운 소설집이다. (y에서 옮김201911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점을 소재로 삼은 소설의 주제는 대체로 비슷하다. 서점을 살리자. 특히 동네서점을, 작은 규모의 서점을.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 대응해서 살아남도록 서점 주인도 독자들도 주변의 주민들까지 서점을 지켜내 보자. 조금 더 싼 값으로 책을 살 수 있다고 모른 척 하지는 말자...... 읽는 마음은 따뜻했고 한편으로는 뒷맛이 썼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고 있는 나를 보았으니. 남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그게 돈이든 정성이든 그 무엇이든.

출판사와 유통업계와 서점 간의 관계를 전혀 모른다. 이 소설 속 일본의 사정과 우리네 사정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작가가 책을 내면서부터 이 책이 내 손에 닿기까지의 과정을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이걸 알게 되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 보게 될까? 이러나저러나 사 보는 사람들만 사 볼까? 책을 안 읽는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해 주면 좋을 텐데, 하는 아무런 영향력 없는 혼잣말도 해 본다.

출판유통회사에 막 들어간 신입사원. 도쿄를 떠나 오사카 지역으로 발령이 나고 낯선 곳에서 일을 익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배우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 고바야시 서점이라는 공간과 이 서점의 주인이 주인공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까지. 주인공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해결책을 마련해 주는 서점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갓 사회에 발을 내딛는 초보자들에게 이런 장소, 이런 이웃이 있어 준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어디 초보자에게만 그러하랴. 누구에게나 그럴 텐데. 아마도 작가는 동네서점이라는 특징을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걸 보면 실제로 이런 곳이 있기도 하다는 말이고.

삶의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바람직한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적어도 자전거를 이용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소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공간에서 산다면. 그래서 서점이, 병원이, 가게가, 학교가, 등등이 중심 역할을 하나씩 맡게 된다면, 우리네 삶이 조금 덜 복잡해지게 될까? 조금 더 살 만해질까?

서점은 세상 어느 곳에 있든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230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 어느 헌책방 라이더의 고난극복 서점순례 버라이어티
조경국 지음 / 유유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에 다 나와 있다. 책방 주인이 오토바이를 타고서 일본의 책방을 여행했다는 내용. 오토바이도 책도 책방도 여행도 좋아하는 작가가 한번에 다 품고 시도한 작업이었으니 읽는 마음이 벅찰 수밖에. 이 일을 이렇게? 따라할 수도 따라하고 싶지도 않은 오토바이 여행, 그래도 책방 여행이라는 행태는 무척 끌린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내 삶과 이어지는 가치관 하나를 만날 수도 있을 듯하여.

작가는 진주에서 소소책방이라는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단다. 책방의 위치가 대략 짐작이 되는데 가 볼 수 있는 날이 올지 어쩔지.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에 밀려 돈을 벌기에는 마땅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에서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들. 할 말이 없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가서 한 권의 책도 못 사고 있는 처지에. 그저 이렇게 먼 거리에서 아무런 힘도 못될 시선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책이 좋아 책과 함께 살겠다고, 아주 잘 살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조금 더 책방을 잘 운영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일본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찾아다닌 작가의 책방 순례. 책방을 소재로 삼은 일본소설을 읽은 덕분에 작가가 들려 주는 일본의 책방 문화가 낯설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잠깐씩 부러워했던 어떤 사정을 작가도 부러워하는 걸 보면서는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이들끼리의 동질감을 갖기도 했다. 그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이럴 테지, 여기면서.

거대한 서점 말고 화려한 서점 말고 건축으로 유명한 서점 말고(이것들은 이것들대로 있어야 하겠지만), 제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단단한 책방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좀 많이 무안하고 따끔해진다. 가까이 있어도 할인율에 인터넷 서점을 이용할 것이면서, 나는 안 하면서 다른 사람은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다는 걸 알기에. 살기에 팍팍하다는 느낌이 들수록 더 벌어질 거리감이다.

사서 읽었으면 좋았겠으나 빌려 읽고 남기는 이 죄책감은 또 어찌해야 할지. (y에서 옮김202111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