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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가까운 말 ㅣ 창비시선 386
박소란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평점 :
시는, 노래는 본원적으로 아픔을 먹고 자라는 글일까. 아프지 않는 시, 아프지 않는 노래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것마저도 삶 자체가 아픔을 원천으로 삼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일까. 우리는 아프게 태어나서 아프게 살다가 아프게 사라지는 것인가 하는 말이지. 아픈 사이사이 안 아픈 순간들로 견디면서.
이 시집, 아픈 말들 투성이다. 안 아픈 행이 거의 안 보인다. 겨우 몇 줄 건진다. 아프지 않아 보이는 행의 아래 위를 덮고 읽으니 잠깐은 반짝인다. 열면 아파서 다시 주저앉는다. 반갑지 않다, 잊었던 사랑과 인연의 아픈 조각에 걸려 자꾸만 넘어지는 기분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시집. 작가는 어떤 시대의 배경에서 이 시집을 냈을까? 등단 6년 만, 2015년 4월에 출간된 책이니 먼저 2014년에 있었던 일들을 찾아보면 얼마쯤 짐작할 수 있겠구나. 곧 먹먹해진다. 반드시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겠지만, 또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을 그 시절의 아픔들이 시행 사이에서 되살아난다. 어떤 과거는, 어떤 역사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그때보다 더 아플지도. 이 시집 속 몇 편의 시가 2014년에 탄생했을지 나는 모른다. 몰라도 충분하고 안다고 해도 달라질 느낌은 아닐 듯하다.
시를 쓰는 이는 아팠을지라도 시를 읽는 사람은 아픔 후의 어루만짐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사라져간 모든 영혼들을 위로함으로써 위로 받고 싶은 추운 날이다.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 P9
참외를 깎는다 샛노랗게 익은 웃음을 - P28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 P38
늘 하나쯤 갖고 싶던 머플러, 너는 참 따뜻하구나 - P86
검은 하늘 촘촘히 후회가 반짝일 때 그때가 아름다웠노라고, - P106
서로의 멍든 표정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곤히 낡아갈 수도 있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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