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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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회에 간다는 걸 아는 사람은 몇 명 안 돼요."

그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럼 당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걸 말해봐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팅커는 진지했다.

"아무도 모르는 것?" 내가 말했다.

"딱 하나면 돼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약속해요."

그는 자기 말을 증명하려는 듯이 심장 앞에서 성호를 그었다.    p.76

1966, 케이트와 밸 부부는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다. 1930년대 말에 뉴욕 지하철에서 몰래카메라로 찍은 인물사진들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남자, 여자, 젊은이, 노인, 말쑥한 사람, 칠칠치 못한 사람..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들은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포착하고 있었다. 사진 속의 많은 이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의 자아를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공황이 시작됐을 때 열여섯 살이었던 케이트는 당시의 시대 풍경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진을 보다 30년의 세월과 만남의 협곡을 건너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얼굴을 발견한다. 팅커 그레이의 미소를 다시 보게 되면서, 케이트의 마음은 1937년의 뉴욕으로 돌아간다.

미국 중서부 출신의 놀랄 만한 미인인 이브는 케이트의 하숙집 룸메이트였다. 이브와 케이트는 신년 전야에 클럽에서 굉장한 미남에 값비싼 외투를 입고, 상냥하면서도 정중한 말투를 쓰는 신사 팅커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팅커와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맨해튼 사교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함께 영화를 보고, 재즈 음악을 즐기고, 술을 마시고, 토론을 하며 서로에게 이끌린다. 비서로 일하는 케이트는 점심시간에 우연히 팅커를 만나 커피를 한잔 하게 되고, 그 일은 이브의 질투를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그들 셋에겐 아직 사랑보다 우정이 더 중요한 시기였고, 그들은 즐거운 분위기에서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고 나와서 함께 차에 탔던 세 사람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팅커와 케이트는 무사했지만 이브는 얼굴을 심하게 다쳐 여러 번 재건수술을 받게 되는 처지가 된다. 운전을 했던 팅커는 자책감에 이브의 삶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퇴원하는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간다. 성공을 위해 조지 워싱턴의품위의 규칙을 성실히 따르던 남자, 팅커의 충동적인 결정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이제는 누가 누구의 것이고, 극장에서 누가 누구 옆에 앉을 것인지를 따질 수 없어져 버렸으니 말이다.

 

인생은 여행보다는 허니문 브리지와 더 가깝다. 20대 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수많은 꿈을 좇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도 시간이 충분할 것처럼 보인다. 게임을 하면서 카드를 하나 뽑으면 그 카드를 그냥 갖고 다음 카드를 버릴 건지, 아니면 먼저 뽑은 카드를 버리고 그 다음 카드를 가질 건지 곧바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탁자 위에는 우리가 뽑을 수 있는 카드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방금 내린 결정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p.517

에이모 토울스의 눈부신 데뷔작 <우아한 연인>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2013년에 국내 출간되었을 당시에 읽고는 완전히 사랑에 빠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새롭게 현대문학에서 출간되면서 <모스크바의 신사>와 같은 느낌의 디자인으로 새 옷을 입었는데, 너무도 우아하고, 아름답다. 에이미 토울스는 한 작품의 완성에 4년의 집필과 1년의 독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 <우아한 연인> 2011년 작이고, 두 번째 작품인 <모스크바의 신사> 2016년 작이다. 그러니 지금 집필 중인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아마도 2020년 이후에나 만나게 될 것이다.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동안,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그의 데뷔작을 만나 보자. 그리고 지금 책 구매 시 영어 원문이 포함된 젊은 조지 워싱턴의 <Rules of Civility> 미니북을 받을 수 있다. <우아한 연인>의 남자 주인공 팅커가 성공을 위해 조지 워싱턴의품위의 규칙을 성실히 따르던 인물이기 때문에, 미니북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이 작품의 원제인품위의 규칙(Rules of Civility)’ 또한 조지 워싱턴의 '사교와 토론에서 갖추어야 할 예의 및 품위 있는 행동 규칙'에서 가져온 것이니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민자의 딸이자 노동 계층인 케이티와 할리우드 드림을 꿈꿨던 이브, 그리고 젊고 유망한 은행가 팅커, 이들 세 사람의 운명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팅거의 충동적인 결정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진다.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이 등장하지만, 흔해빠진 삼각관계나 애정관계 없이 세 인물의 관계가 담백하게 진행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중심 서사만 따지자면 언뜻 전형적인 구성으로 보이지만, 사실 줄거리 요약만으로는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극 중 팅커는 오래 전 케이트가 무인도에 난파할 때 소로의 월든을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 책을 읽기 시작한다. 케이트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를 만나 월든을 여러 번 읽은 흔적을 발견한다. 나 역시 6년 전에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월든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케이트가 엄청난 책벌레였기 때문에 이 작품은 곳곳에서 고전 문학들을 배경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이브에게 헤밍웨이를 읽어 주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힘든 시기를 겪으며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들을 통해 위로 받기도 하는 등, 중요한 장면마다 배경에는 항상 고전 문학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극 초반, 점심시간에 우연히 마주친 케이트와 팅거가 나누었던 대화는 한 번이라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면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팅거는 케이트에게 묻는다. "당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걸 말해봐요." 그리고 이들 세 사람의 운명이 폭풍 같은 격랑에 휩쓸리고 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두 사람. 이번에는 케이트가 팅거에게 묻는다. "당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사실 하나만 얘기해줘요." ,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이 작품을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만들어 준다. 아직까지 이 장면의 페이지까지 이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 장면을 가슴이 시리도록 매우 사랑한다. 완벽하게 재현된 1930년대의 뉴욕을 배경으로 섬세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이들의 이야기를 꼭 만나 보길. 당신도 이 작품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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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가 우는 섬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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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인간은 원초적으로 이야기를 갈망해요. 기승전결 구조가 인간의 본성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죠. 이야기가 품은 메시지는 공감과 위안을 줘요. 그래서.... 역사는 잊히더라도 이야기는 남아요!"

진정란이 아련한 표정으로 마지막 말에 강조점을 붙였다.

"그렇죠! 그러니까 내 말은 리얼리티보다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리얼리티는 이야기를 받쳐주는 속성이 되어야지 그걸 우선의 가치로 두면 안 된단 말입니다. 역사소설에서 독자들이 기대해야 하는 것은....."     p.126

바람이 세차게 불고, 현재 태풍이 북상 중이라는 예보가 들려오는 통영항에는 풍랑주의보로 모든 노선의 운항을 중단한다는 안내가 뜬다. 그렇게 바다 상태가 험한 와중에 외딴섬 호죽도로 향하는 배 한 척이 출항한다. 8명의 사람들이 오픈을 앞둔 연수원의 모니터원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좋은 대나무가 자라는 섬이라는 호죽도, 그곳에 돔 형태의 독특한 구조를 한 최신식 연수 시설이 들어섰다. 건물주인 정명선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어, 이들을 연수원 모니터링 행사에 초대한다. 그렇게 모이게 된 8명은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로, 나이도, 직업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들은 물리학과 대학생인 임하랑, 요즘 가장 핫한 젊은 여가수 나리, 역사소설 작가인 최혁봉, 영화 프로듀서인 신만수, 웹툰 작가인 이윤동, 무역회사에 다니며 민담을 수집하는 블로거 진정란, 택시운전을 하는 노인 조동욱, 시사주간지 기자 공치수로 연령대도 이십대 초반, 30대 후반, 40대 초반 등 다양했다. 소박한 섬과는 어울리지 않게 현대적인 외형의 연수원에 도착한 이들은 전시대 유리관 위에 놓인 대나무 상자 속에 있던 모형 안구때문에 모두들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것이 <바늘 상자 속에 넣어둔 눈알>이라는 민담이 호죽도에서 변형되어 전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깥에는 점점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고, 바람에 휩쓸리는 대나무 숲은 서럽고 음산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도착한 첫날 밤 그들은 술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만찬을 꽤 늦게까지 즐기고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든다. 다음 날, 연수원 안에서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 게다가 하루 전까지 통화가 되었던 건물주는 연락 두절이고, 태풍으로 고립된 섬에는 젊은 경찰 한 명뿐이다.

 

말도 끝내지 못하고 임하랑은 생각에 파묻혔다. 다양하게 흩어진 사실들이 하나의 가설 아래 모이고 있었다. 상위의 가설과 하위의 가설이 가지를 뻗으며 서로 연결됐다. 사실들이 몽글몽글 무리지어 모였다.

'어떻게' ''가 동일한 맥락에서 비슷한 비중의 가치 싸움을 했다. '어떻게'가 인지적인 문제라면 ''는 심리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둘은 다르지 않았다.   p.281

대나무 가득한 섬에서 전해지는 불길한 민담, 그리고 폭풍우로 고립된 섬에서 벌어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의 살인 사건, 그리고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대학생. 송시우 작가의 전작들과는 달리 트릭과 수수께끼 풀이에 집중한 본격 미스터리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고립된 환경에서 죽어 나가는 클로즈드 서클의 배경으로 본경 미스터리의 클리셰인 태풍이 치는 섬을 선택해 아주 기본적인 형식을 구축했다. 거기에 살인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서양의 마더구스 같은 동요나 동화를 찾다가 우리나라 민담 중에 <바늘 상자 속에 넣어둔 눈알>이라는 이야기를 만난다. 그리고 민담에 나오는 대나무라는 소재에 착안해 '민담을 모티브로 고립된 섬에서 대나무를 이용하여 벌어지는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검은숲독서클럽 4주차 도서로 만나게 된 작품이다. 송시우 작가의 작품들이 그래왔듯이 이번 신작 역시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고, 탄탄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잘 짜인 미스터리를 보여주고 있다. 전 출간작이 영상화가 확정된 작가답게, 이번 작품 역시 곧 바로 영상화시켜도 무리가 없을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추리소설의 고전적인 기법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전혀 뻔하지 않은 트릭과 군더더기 없는 속도감으로 지루할 틈이 없는 작품이었다. 오랜 시간 구전되어온 기괴한 민담이 자아내는 불안이 고립된 섬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결합되어 오싹함을 자아내고, 물리학과 대학생이라는 색다른 탐정 캐릭터 또한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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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버리기 기술 -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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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난 우리 모두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믿어. 우연의 일치 같은 건 없어. 모든 사람이 중요한 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야. 그리고 설령 우리가 한 사람만 도울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여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야. 안 그래?'

이야, 진짜 귀여운데! 그건 당신의 희망 사항이다. 그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가치 있게 만들려고 당신 마음이 지어낸 이야기다.    p.30~31

<신경 끄기의 기술>로 전 세계 80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던 마크 맨슨의 최신작이다. 전작에서 "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 마."라며 자기계발서의 패러다임을 뒤집는 이야기를 했던 그가 이번에는희망 버리기라는 도발적인 주제로 돌아왔다. 역사적으로 절대적이라 믿은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이제 기술의 진보로 개선할 고통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세상을 살지만, 수많은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희망의 부재와 목표의 상실, 이 책은 이러한 모든 것이 일어나는 이유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진짜 희망이 무엇인지 찾고자 한다.

물고기에게 물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 조건이듯 인간의 정신은 생존하기 위해 희망을 필요로 한다. 현재보다 미래가 나아지리라는 희망, 삶이 어떻게든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없다면 왜 살아가겠는가, 왜 뭔가를 하겠는가. 희망은 우리가 자신보다 대단하다고 믿는 대상이다. 우리는 희망이 없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우울증과 불안을 겪고 방황하는 이러한 시대에 지속 가능한 희망은 무엇인가.  저자는 말한다. 희망하지 말라. 그리고 절망하지도 말라. 더 나은 것을 희망하지 말고, 그냥 더 나아지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희망 이후의 세상을 희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희망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세상을 구한다.

판도라의 상자에 관한 해석 중 덜 알려진 것이 여기 있다. 희망이 그저 또 다른 형태의 악이라면? 희망은 필레츠키의 영웅적 행위에만 영감을 준 게 아니기 때문이다. 희망은 공산주의 혁명과 나치의 집단 학살에도 영감을 줬다. 히틀러는 진화적으로 우월한 인류를 만들기 위해 유대인을 몰살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저지른 잔혹 행위의 대부분이 희망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됐다.    p.178~179

판도라의 상자 신화에 관한 해석은 다양하다. 가장 흔한 해석은 신이 우리를 세상의 모든 악으로 벌했지만, 그 악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인 희망도 줬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모든 상황이 엉망이 될수록 우리는 희망을 더 많이 동원해야 하고, 충분한 희망을 모으면 누구나 악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크 맨슨은 그러한 희망에 대해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희망은 생명을 살릴 수도, 앗아 갈 수도 있으며, 우리를 고무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희망에도 건전한 희망과 해로운 희망이 있으니, 희망을 믿거나, 그것에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논리대로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결국 희망이 파괴적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사실 이는 자기계발서에서 저자가 독자에게 할법한 말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마크 맨슨은 무한 긍정만을 강요하던 기존의 자기계발서들과는 달리 믿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인생이 특별해지거나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었다. 그는 이번 신작에서도 여전히 통쾌한 직언과 유머로 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희망을 버려, 행복을 찾지 마, 고통을 선택해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리얼리스트가 되는 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길 원한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꿈꾸고 있다면, 희망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마크 맨슨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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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전 -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 위하여
김버금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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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안긴 문장'에 대해서 배웠던 적이 있다. 한 문장이 다른 문장에 속해 겹문장이 되면 바깥의 문장은 '안은 문장'이었고 그 안의 문장은 '안긴 문장'이 되었다. 어떤 모양이든,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한 문장을 품 안에 폭 안고 있는 '안은 문장'의 둥근 포옹을 그려본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주어와 초라한 형용사, 꾸밀 것 없는 부사와 끝 모르는 마침표까지도 모두 안아줄 그런 문장을.    p.89

처연하다, 홀가분하다, 먹먹하다, 저미다, 낯없다, 애틋하다, 무색하다, 아련하다, 포근하다, 사위다.... 저자는 낡은 국어사전을 펼쳐 ㄱ에서 ㅎ까지 마음의 이름들을 한 자씩 노트에 옮겨 쓴다. 사전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모두 천 개가 넘는 이름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고,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시작이었다. 크라우드펀딩텀블벅에서 에세이 분야 1위를 기록하고 높은 펀딩률을 달성해 독립출판으로 출간에 성공했으며, 브런치북 6회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비슷비슷한 류의 에세이들이 너무 출간되고 있는 요즘, 마음에 관련된 단어들을 모아 자신만의 단어 사전을 만드는 방식의 에세이라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사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가끔은 내 마음이지만 애써 모른 척 외면하는 순간들이 있다. 불안함, 쓸쓸함, 외로움, 우울함 같은 슬픔 감정들. 두렵고 싫어서 내가 그렇게 외면해왔던 이름들을 불러본다. '안녕, 너는 불안이구나. 너는 외로움이구나. 오랜만이야, 슬픔아.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숨기고 싶었던 마음과 마주하게 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일까.

 

넘어지지 않고 큰 아이는 없듯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그것이 비단 몸의 흉터만을 두고 하는 말일까. 예기치 않은 삶의 풍랑에 생긴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넘어져 본 아이만이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다친 사람만이 낫는 법을 배운다. 흉터는 부끄럽고 창피한 흔적이 아니라 '그럼에도'의 흔적이다. 넘어져 다치고 부러졌을지라도 이렇게 잘 아물었다는 흔적. 그럼에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났다는 흔적.   p.188~189

이 책에는 그녀가 고른 47개의 단어와 각각의 마음과 관련된 47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불현듯 느껴지는 허기, 밀려오는 그리움, 기어코 터지는 울음처럼 갑작스럽게 달려오는 마음들이 있다. 부러움과 미움, 슬픔과 서글픔 같은 마음들은 매번 겪을 때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비밀스러운 엄마의 일기를 우연히 보고는 키 대신 마음만 훌쩍 자랐던 밤도 있었고, 길을 찾느라 헤매던 아빠의 혼잣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랑의 시작과 끝을 겪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는 수많은 기억과 시간들을 거니는 글들이었다.

 

그저 누구에게나 있는 평범한 일상 속 에피소드들처럼 읽히지만, 문득문득 깨닫게 된다. , 마음에는 이렇게 많은 이름들이 있었구나. 내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그리고 너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가 가끔 불안하고, 우울한 것은 어쩌면 마음의 이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게 있는 이 마음을,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오롯하게 와 닿는 책이다. 설명하기 어렵고, 표현하기 힘들었던 내 마음에게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나 자신과 좀 더 가까워지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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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피해자 없는 범죄, 성폭력 수사 관행 고발 보고서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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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에는 언제나 신뢰라는 문제가 있다. 일반 폭행죄의 경우 경찰들은 눈에 보이는 상처나 손상을 입은 피해자를 대면한다. 하지만 성범죄에서는 상해의 정도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법의학적 검사 단계에서조차 합의된 성관계를 한 여성과 총구 앞에서 강간당한 여성이 외견상 똑같을 수 있다. 성폭력에 있어서 만큼은 가해자의 신뢰성만큼이나 피해자의 신뢰성이 이슈가 된다.    p.30

2010 8, 워싱턴주 린우드에서18세 소녀 마리는 경찰에 강간 신고를 했다. 아파트에 침입한 낯선 남자는 그녀의 눈에 눈가리개를 하고 팔다리를 묶고 재갈을 물린 후 강간했다. 이후 일주일 동안 마리는 경찰에게 이 이야기를 반복했고, 진술할 때마다 말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다. 그 와중에 경찰은 마리를 의심하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주목했고, 그녀에게 그러한 의심을 전달했다. 마리는 흔들렸고, 무너졌고, 결국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자백한다. 그녀는 대략 스무 곳 이상의 위탁가정을 전전했고, 일곱 살 때 강간당한 적이 있으며, 생전 처음으로 완전히 홀로 살아가게 되자 불안하고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녀는 결국 허위 신고죄로 기소되어 벌금형을 선고 받았고, 마리의 사건은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과 신뢰성이라는 해묵은 논쟁을 대표하는 사례가 되었다.

사람들은 마리 때문에 진짜 성폭력 피해자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며, 그녀를 욕하고, 그녀에게 비난의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걸까. 그리고 3년 뒤 진범이 잡히고, 마리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 중심에는 갤브레이스와 헨더샷이라는 두 여성 형사가 있었다. 그들은 보통 경찰들이 걸리기 쉬운피해자다움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으며,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두 형사는 각기 다른 자신들의 관할구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사하며 공조 수사를 했고, 아주 작은 단서 하나로 몇 년에 걸쳐 강간을 저질러오던 범인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은 그 놀라운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탁월한 탐사보도 르포르타주이다.

 

성폭력은 이미 가장 신고율이 낮은 범죄로 알려져 있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나선 사람을 믿지 않고 허위 신고라고 단정짓는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진술을 꺼리게 되고, 범인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며, 재범 확률도 높아진다. 많은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거짓말을 한다는 잘못된 편견에 부채질을 할 수도 있다. 경찰 교육 책자에는 국제여성폭력방지위원회의 다음과 같은 제안이 담겨 있다. "허위 신고는 보통 심각한 심리적, 감정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 "     p.215

이 작품은 2016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무고죄로 기소된 한 소녀와 연쇄강간범을 추적하는 두 여성 형사의 이야기는 너무도 리얼해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참혹하고, 끔찍하고, 슬프다. 성폭력을 둘러싼 수많은 편견과 오해와 불신의 과정들에 분노하며 읽었고, 우리 사회가 강간을 다루는 방식 안에 스며 있는 성차별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은 성폭력 2차 피해를 일으킬 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 사범으로 몰아간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논픽션이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널리스트인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은 방대한 서면 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여 웬만한 범죄 소설 못지 않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불편한 사건의 전말을 전하면서도, 이야기로서의 서사가 있고, 시사하는 바가 명확한 놀라운 작품이었다. 국내에서도 미투 운동을 비롯해 안희정 지사 사건이나 몇몇 연예인들의 성폭력 사건을 보면,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회의적인 시선, 2차 가해가 줄을 이었다. 그러니 피해자들은 엄격한증명’에 대한 부담감과피해자다움의 잣대에서 고통 받고 무고죄로 기소 당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자신의 피해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 모든 것을 감수하겠는가 말이다. 폭력 범죄는 피해자가 거짓말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는 유일한 범죄라고 한다. 수사기관부터 주변 지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피해자의 말을 의심하기 때문에, 강력범죄 중 신고율이 가장 낮은 범죄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폭력은 오랫동안피해자 없는 범죄’로 불려 왔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 범죄 수사 시스템에 대해서도 조금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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