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우는 섬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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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인간은 원초적으로 이야기를 갈망해요. 기승전결 구조가 인간의 본성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죠. 이야기가 품은 메시지는 공감과 위안을 줘요. 그래서.... 역사는 잊히더라도 이야기는 남아요!"

진정란이 아련한 표정으로 마지막 말에 강조점을 붙였다.

"그렇죠! 그러니까 내 말은 리얼리티보다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리얼리티는 이야기를 받쳐주는 속성이 되어야지 그걸 우선의 가치로 두면 안 된단 말입니다. 역사소설에서 독자들이 기대해야 하는 것은....."     p.126

바람이 세차게 불고, 현재 태풍이 북상 중이라는 예보가 들려오는 통영항에는 풍랑주의보로 모든 노선의 운항을 중단한다는 안내가 뜬다. 그렇게 바다 상태가 험한 와중에 외딴섬 호죽도로 향하는 배 한 척이 출항한다. 8명의 사람들이 오픈을 앞둔 연수원의 모니터원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좋은 대나무가 자라는 섬이라는 호죽도, 그곳에 돔 형태의 독특한 구조를 한 최신식 연수 시설이 들어섰다. 건물주인 정명선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어, 이들을 연수원 모니터링 행사에 초대한다. 그렇게 모이게 된 8명은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로, 나이도, 직업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들은 물리학과 대학생인 임하랑, 요즘 가장 핫한 젊은 여가수 나리, 역사소설 작가인 최혁봉, 영화 프로듀서인 신만수, 웹툰 작가인 이윤동, 무역회사에 다니며 민담을 수집하는 블로거 진정란, 택시운전을 하는 노인 조동욱, 시사주간지 기자 공치수로 연령대도 이십대 초반, 30대 후반, 40대 초반 등 다양했다. 소박한 섬과는 어울리지 않게 현대적인 외형의 연수원에 도착한 이들은 전시대 유리관 위에 놓인 대나무 상자 속에 있던 모형 안구때문에 모두들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것이 <바늘 상자 속에 넣어둔 눈알>이라는 민담이 호죽도에서 변형되어 전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깥에는 점점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고, 바람에 휩쓸리는 대나무 숲은 서럽고 음산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도착한 첫날 밤 그들은 술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만찬을 꽤 늦게까지 즐기고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든다. 다음 날, 연수원 안에서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 게다가 하루 전까지 통화가 되었던 건물주는 연락 두절이고, 태풍으로 고립된 섬에는 젊은 경찰 한 명뿐이다.

 

말도 끝내지 못하고 임하랑은 생각에 파묻혔다. 다양하게 흩어진 사실들이 하나의 가설 아래 모이고 있었다. 상위의 가설과 하위의 가설이 가지를 뻗으며 서로 연결됐다. 사실들이 몽글몽글 무리지어 모였다.

'어떻게' ''가 동일한 맥락에서 비슷한 비중의 가치 싸움을 했다. '어떻게'가 인지적인 문제라면 ''는 심리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둘은 다르지 않았다.   p.281

대나무 가득한 섬에서 전해지는 불길한 민담, 그리고 폭풍우로 고립된 섬에서 벌어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의 살인 사건, 그리고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대학생. 송시우 작가의 전작들과는 달리 트릭과 수수께끼 풀이에 집중한 본격 미스터리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고립된 환경에서 죽어 나가는 클로즈드 서클의 배경으로 본경 미스터리의 클리셰인 태풍이 치는 섬을 선택해 아주 기본적인 형식을 구축했다. 거기에 살인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서양의 마더구스 같은 동요나 동화를 찾다가 우리나라 민담 중에 <바늘 상자 속에 넣어둔 눈알>이라는 이야기를 만난다. 그리고 민담에 나오는 대나무라는 소재에 착안해 '민담을 모티브로 고립된 섬에서 대나무를 이용하여 벌어지는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검은숲독서클럽 4주차 도서로 만나게 된 작품이다. 송시우 작가의 작품들이 그래왔듯이 이번 신작 역시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고, 탄탄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잘 짜인 미스터리를 보여주고 있다. 전 출간작이 영상화가 확정된 작가답게, 이번 작품 역시 곧 바로 영상화시켜도 무리가 없을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추리소설의 고전적인 기법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전혀 뻔하지 않은 트릭과 군더더기 없는 속도감으로 지루할 틈이 없는 작품이었다. 오랜 시간 구전되어온 기괴한 민담이 자아내는 불안이 고립된 섬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결합되어 오싹함을 자아내고, 물리학과 대학생이라는 색다른 탐정 캐릭터 또한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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