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전 -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 위하여
김버금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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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안긴 문장'에 대해서 배웠던 적이 있다. 한 문장이 다른 문장에 속해 겹문장이 되면 바깥의 문장은 '안은 문장'이었고 그 안의 문장은 '안긴 문장'이 되었다. 어떤 모양이든,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한 문장을 품 안에 폭 안고 있는 '안은 문장'의 둥근 포옹을 그려본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주어와 초라한 형용사, 꾸밀 것 없는 부사와 끝 모르는 마침표까지도 모두 안아줄 그런 문장을.    p.89

처연하다, 홀가분하다, 먹먹하다, 저미다, 낯없다, 애틋하다, 무색하다, 아련하다, 포근하다, 사위다.... 저자는 낡은 국어사전을 펼쳐 ㄱ에서 ㅎ까지 마음의 이름들을 한 자씩 노트에 옮겨 쓴다. 사전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모두 천 개가 넘는 이름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고,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시작이었다. 크라우드펀딩텀블벅에서 에세이 분야 1위를 기록하고 높은 펀딩률을 달성해 독립출판으로 출간에 성공했으며, 브런치북 6회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비슷비슷한 류의 에세이들이 너무 출간되고 있는 요즘, 마음에 관련된 단어들을 모아 자신만의 단어 사전을 만드는 방식의 에세이라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사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가끔은 내 마음이지만 애써 모른 척 외면하는 순간들이 있다. 불안함, 쓸쓸함, 외로움, 우울함 같은 슬픔 감정들. 두렵고 싫어서 내가 그렇게 외면해왔던 이름들을 불러본다. '안녕, 너는 불안이구나. 너는 외로움이구나. 오랜만이야, 슬픔아.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숨기고 싶었던 마음과 마주하게 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일까.

 

넘어지지 않고 큰 아이는 없듯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그것이 비단 몸의 흉터만을 두고 하는 말일까. 예기치 않은 삶의 풍랑에 생긴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넘어져 본 아이만이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다친 사람만이 낫는 법을 배운다. 흉터는 부끄럽고 창피한 흔적이 아니라 '그럼에도'의 흔적이다. 넘어져 다치고 부러졌을지라도 이렇게 잘 아물었다는 흔적. 그럼에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났다는 흔적.   p.188~189

이 책에는 그녀가 고른 47개의 단어와 각각의 마음과 관련된 47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불현듯 느껴지는 허기, 밀려오는 그리움, 기어코 터지는 울음처럼 갑작스럽게 달려오는 마음들이 있다. 부러움과 미움, 슬픔과 서글픔 같은 마음들은 매번 겪을 때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비밀스러운 엄마의 일기를 우연히 보고는 키 대신 마음만 훌쩍 자랐던 밤도 있었고, 길을 찾느라 헤매던 아빠의 혼잣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랑의 시작과 끝을 겪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는 수많은 기억과 시간들을 거니는 글들이었다.

 

그저 누구에게나 있는 평범한 일상 속 에피소드들처럼 읽히지만, 문득문득 깨닫게 된다. , 마음에는 이렇게 많은 이름들이 있었구나. 내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그리고 너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가 가끔 불안하고, 우울한 것은 어쩌면 마음의 이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게 있는 이 마음을,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오롯하게 와 닿는 책이다. 설명하기 어렵고, 표현하기 힘들었던 내 마음에게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나 자신과 좀 더 가까워지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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