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힘 - 평범한 순간을 결정적 기회로 바꾸는 경험 설계의 기술
칩 히스.댄 히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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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살면서 결정적 순간을 맞이한다. 결정적 순간이란 우리의 기억 속에 유난히 도드라지게 새겨진 의미심장한 경험을 가리키는데, 보통은 그 중 상당수가 운에 좌우된다. 길에서 우연히 부딪힌 상대와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진다. 학교에 새로 온 교사가 당신도 모르고 있던 재능을 발굴한다. 갑작스러운 상실로 인해 하루아침에 삶이 흔들린다. 어느 날 불현듯, 이 회사에서는 단 하루도 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놀라운 순간들은 마치 숙명이나 행운, 또는 보다 위대한 권능이 개입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통제하거나 손을 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결정적 순간은 정말우연히발생하는 것일까?

누구의 삶에나 터닝 포인트가 있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에서도 몇몇 기억에 생생한 순간들이 있다. 아주 사소한 결정이 결국 지금의 내 모습에 이르게 한 것도 있었고,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선회를 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야말로 나의 삶을 바꾸게 된 결정적 순간들이다.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게 만드는 놀라운 그 순간들이란, 사실 우연히 찾아 오거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한 경우가 많다고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히스 형제는 말한다. 우리는 언제든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낼 수 있고, 뜻대로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이 순간들을 통해 삶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 밀리언 셀러인 <스틱>, <스위치>의 저자인 히스 형제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순간의 힘>은 바로 인생의 극적인 기회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순간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연구 조사를 통해 결정적 순간이 고양, 통찰, 긍지, 교감이라는 4가지 요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평범함과 일상 속에서 맞이하게 되는 뜻밖의 놀라움이 가져오는 고양의 순간, 몇 초 또는 몇 분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에 깨닫게 되는 무언가, 우리가 최선의 모습을 드러낼 때 발생하는 결정적 순간, 그리고 이러한 결정적 순간들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다른 이들과의 공유를 통해 교감하는 사회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라고 말이다. 최고의 조직행동론 전문가와 세계 500 CEO들의 리더십 멘토가 수많은 기업 성공 사례를 통해 발견한 키워드인 빅 모먼츠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 흥미로웠다.

 

이것이 바로 결정적인 차이다. 몇몇 결정적 순간이 유도되고 계획된다면, 우리가 만난 수많은 순간들은 적극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당신이 이 책에서 배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늘 특별한 순간을 찾아 두리번거려라. 어떤 순간들은 기획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 우리는 이 책에서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들여 의도적으로 계획해야 하는 몇몇 순간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샤프의 전 직원 회합, 서명의 날 행사, 인간 본성 재판. 그렇다, 탁월한 결정적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극한 노력이 필요하다.

히스 형제가 알려주는 인상적인 순간을 우리의 삶에서도 기획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것들이 바뀔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매 순간 들었던 생각이다. 내가 삶을 계획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말이다. 사실 거대한 변화의 방아쇠가 되는 결정적 순간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종종 우연의 순간인 양 보이는 것들이 실은 의도적인 순간일 때가 있다는 사실부터 말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갑작스런 통찰을 통해 경험한 것은 실제로 자신이 행동할 수 있음을 깨달은 채찍질이었고, 그들은 본인의 의지대로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순간을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붙잡았다.’ 라고 하는 바로 그 결정적인 차이가 굉장히 놀라웠다.

인생에 뭔가 변화가 필요한 당신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당신이 왜 오늘도 결정적 순간을 놓쳐버렸는지 알려주며, 결정적 순간이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고 나에게는 오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도 들려줄 테니 말이다. 우리는 고양과 통찰, 긍지와 교감을 전하는 순간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귀중한 매 초, 매 분, 시간과 나날들은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모든 순간은 같지 않고, 어떤 순간은 모든 것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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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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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와 나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심지어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고, 왜냐하면 함께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서로 마주보는 것보다 더 친밀한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주보는 것은 누구하고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열여섯 에이자는 강박증과 불안 장애를 갖고 있다. 5년간 인지 행동 치료를 받고 약을 세 번이나 바꿨음에도 여전히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손가락에 상처라도 나면 세균에 감염되어 죽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 시작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사기 및 횡령죄 수사와 관련해 경찰로부터 도망친 억만장자에 대한 뉴스가 들려온다. 그는 바로 어린 시절 에이자의 친구였던 데이비스의 아버지였고, 그에겐 10만 달러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에이자의 단작 친구 데이지는 현상금을 받자며, 에이자를 설득한다.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 되었다는 에이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의 아들과 아는 사이니까 자신을 도와 달라는 부탁에 그들은 데이비스를 만나러 가게 된다.

이야기는 실종된 억만 장자를 쫓는 미스터리처럼 시작하지만, 사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성장 소설로 진행된다. 대학 진학 문제로 고민하고, 지나치게 염려 많은 엄마와 매사에 불만 많은 단짝 친구가 등장하고, 오래 전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친구를 다시 만나 설레이는 감정을 키워나가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평범한 성장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 에이자의 강박증과 불안 장애로 인해 그 모든 일들이 쉽지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아까 데이비스가 한 질문,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다는 참 이상한 표현이다. 마치 도랑에 빠지거나 바다에 빠져 죽는다고 할 때처럼빠지다라는 표현을 쓴다. 사랑 외에 다른 것, 이를테면 우정이나 분노, 희망에는빠지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사랑에만 빠질 수 있다.

학교 식당에 앉아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박테리아에 대해 고민하고, 작은 상처나 통증이라도 생기면 박테리아나 감염에 대한 걱정으로 곧 죽게 될 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십대 소녀. 이런 그녀이기에 좋아하는 남자친구와의 스킨십도 쉽지가 않다. 데이비스와 키스를 하면서 그의 입 속 세균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와서 뭔가에 감염이 될 수도 있으니, 항생제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러다 며칠 뒤에 그 세균 때문에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어떻게 그 순간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을까. 에이자의 그런 증상은 점점 심해지다가, 결국 손 살균제를 입 속에 넣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한 방울로 시작됐지만, 점차 마시게 되고 구토하는 지경이 된다. 게다가 자신이 소설 속 인물 같다고 느낀다.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 어느 것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외부의 힘이 결정하니, 자신의 실존 그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과연 에이자는 어떻게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살아갈 것인가.

 

이 작품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로 사랑을 받았던 존 그린의 신작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에이자라는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강박장애나 불안장애를 겪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극중 보여지는 심리 묘사는 리얼하다. 불안 장애라는 것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는 강박과 불안이라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무섭게 만드는 것인지 이 작품 속에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마냥 어둡거나, 무겁게만 풀어가고 있지 않아서 더 공감되고, 와 닿는 작품이기도 하다. 삶은 계속 된다. 그러니까 계속 살아야 한다.는 식의 희망적인 메시지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식의 따뜻한 위로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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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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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죄가 부르는 또 하나의 가장 큰 해악.

바로 사법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다. 원죄가 발각되면 사람들은 사법 시스템에 의심을 품는다. 이 재판은 정당한가. 이 증거는 정직한 것인가. 수사는 적절히 이뤄졌나. 사법이 악의에 찬 자들의 무기가 된 것은 아닌가.

법치국가에서 법이 권위를 잃으면 사회의 체제 자체가 붕괴해 버린다.

와타세 경부가 우라와 경찰서에서 막 근무를 시작하던 쇼와 59(1984) , 부동산 주인 부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와타세 경부는 교육 담당 겸 파트너인 나루미 경부보와 함께 사건을 맡게 된다. 현경과 관할 경찰서 수사는 암초에 부딪힌 상태로 시간만 흘러 갔고, 사건 발생 후 20여일이 지나서야 와타세와 나루미는 용의자를 한 명으로 압축한다. 유일하게 알리바이가 입증되지 않은 인물인 구스노키 아키히로 피의자로 연행해 나루미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취조를 시작한다. 아키히로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지만, 범행 동기도, 현장에서의 증거도 확보가 된 상태라 그들은 폭력과 심리적인 압박으로 자백을 받아낸다. 결국 재판에서 아키히로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이후 감옥에 수감 중에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5년 후, 나루미 경부보는 퇴직하고, 와타세는 새로운 파트너인 도지마와 함께 여전히 강력계 소속으로 흉악 범죄를 쫓고 있다. 그런데 강도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 이 사건이 5년 전 부동산 살인 사건과 여러 모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사건은 이미 종결됐지만, 그것이 더욱 그의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의학 교실 시리즈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는 와타세 경부 시리즈이다. 와타세 경부는 기존에 만났던 두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던 인물이다. 와타세는 이들 시리즈에서 주요 활동하는 고테가와의 상사인, 험악한 얼굴의 무뚝뚝한 반장으로 등장했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는 와타세 경부는 경찰 안에 있는 야쿠자 같은 존재라고 했었다. 틈만 나면 자기 멋대로 수사하는 데다 서장 지시도 태연하게 무시하지만, 검거율은 본부 안에서 톱이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속죄의 소나타>에서는 그를 경찰수첩을 입에 물고 태어난 듯한 남자라고 하기도 했었다. 현경 본부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고 상급직도 노릴 수 있는 입장이면서도 여전히 현장에 머무는 베테랑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완벽한 모습으로만 비춰 줬던 그의 과거 시절을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시리즈는 매력적이다. 와타세가 파출소에서 근무하다 연쇄 강도 사건 용의자와 수배 중이던 방화범을 체포한 공을 인정받아, 간절히 바라던 형사로 우라와 경찰서에 배속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 불량소년 같은 면모가 얼굴에 남아 있는 이십대 초반의 와타세는, 당시에도 험악하고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형사로서는 미숙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는 풋풋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앞으로도 계속 형사 일을 이어 가시겠죠?”

“허용된다면.”

“느긋하게 하시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초조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억울한 누명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나락 끝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희망이 되는 형사님이 돼 주세요. 그리고 절대 진실에 등을 돌리지 않을 것. 아시겠어요? 저와 하는 약속이에요.”

와타세가 곤란해하는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여서 시즈카는 만족했다.

'원죄'를 다루고 있는 영화나 소설은 기존에도 많이 있어 왔다. '원죄'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뜻한다. 여타의 작품에서 원죄 사건을 다룰 때는 억울하게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거나, 혹은 피해자의 편에서 해당 사건을 파헤쳐 원죄임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바로 그 원죄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찰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피해자에게 사죄를 하고 그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와타세는 원죄를 감추려는 경찰 조직 전체에 맞서 외롭게 싸움을 시작한다. 와타세가 조직을 배신하고 내부고발을 하게 되기까지의 고민과 그 과정, 그리고 원죄가 발각되면서 사법 시스템 자체에 의심을 품게 되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엄청난 파급들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사회파 미스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무게감과 인간적인 캐릭터에 대한 매력,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페이지터너로서의 면모까지 보여주는 굉장히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나카야마 시리치는 48세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했음에도, 데뷔 후 약 7년 남진 동안 무려 스물여덟 편의 작품을 써냈다. 게다가 본격 미스터리, 서스펜스물, 법정 미스터리, 경찰 소설, 안락의자 탐정 소설에 이어 코미디물까지 그야말로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는다. 경이적인 집필 속도와 소재를 가리지 않는 자유자재의 작풍으로, 한때는 복수의 매체에 한 달에 동시에 열네 작품을 연재한 적도 있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 없다. 국내에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굉장한 다작 작가로 익히 알려져 있는데, 나카야마 시치리 또한 제 2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소설을 써내는 작가인 것 같다. 게다가 매 작품 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 주고 있어, 실망 시킨 적이 거의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벌써 10권이나 번역 출간이 되었고, 그 중 8권이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나온 것이라 요즘 극내에서 가장 핫한 일본 작가가 아닌가 싶다. 미소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은수의 레퀴엠>과 와타세 경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네메시스의 사자>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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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할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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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간혹 의사도 피해를 입히는 것이 사실이다. 연구에 따르면, 중증 합병증의 절반가량은 피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불가피함이 위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경우는 내가 잘못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실수로 누군가의 삶이 영원히 바뀔 수 있다. 지금도 사회는 이러한 경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실수를 저지른 의사들이 악당일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 악당 아닌 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으킨 피해는 오명으로 남는다.

몇 년 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속 대사가 생각난다. 럭셔리한 재벌 상속남이자 백화점 CEO인 남자 주인공은 건방지고 예의 없지만, 완벽한 외모를 가진 까칠하고 도도한 인물이었다. 그가 임원들이 가지고 온 기획안을 볼 때마다 하는 대사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냉정을 넘어 냉철하기까지 한 남자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 주려는 대사였지만, 사실 극중 늘 똑같은 기획안을 그대로 답습해오는 임원들을 다그치고 꾸중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 이후로 이 대사는 온갖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되고, 기사의 제목으로 쓰이는 등 인기를 끌었다. 아툴 가완디의 신작을 읽는 데, 나는 오래 전 이 대사가 떠올랐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책은 어떤 종류의 일이든, 나의 일을 대하는 최선의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글 쓰는 의사 아툴 가완디는 임상 외과의로서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문제의식을 풀어놓은 이 책에서 의료 현장의 다양한 관점과 시도를 취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 전장의 야전병원, 인도의 소아마비 소탕작전, 독극물 주사를 사용하는 사형집행장, 의료 소송이 벌어지는 법정, 제왕절개 수술이 한창인 분만실 등 다양한 의료 현장을 통해 성공과 실패의 사례, 그리고 그 속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본다.

 

 

의사의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남들이 하는 대로 따르는 것, 하얀색 가운을 걸친 기계 부속이 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의사뿐 아니라, 사회에서 위험과 책임을 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래서는 안 된다.

과연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특히나 그 일에서 실패라는 것이 너무 쉽고 흔하다면 말이다. 의사들의 임무는 질병과 맞서 싸우고, 과학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모든 인간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들이란 대개 확실치 않고, 터득해야 할 지식은 광대하고 끝이 없으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신속성과 일관성도 요구된다. 만약 치료를 받다가 잘못되면 환자와 가족은 그 일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끔찍한 실수에서 빚어진 것이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사실 이런 일은 지금도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각종 의료 사고를 둘러싼 뉴스의 보도나 소송에 관련된 이야기를 누구나 한 두 개쯤 바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그럴 때 이들은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까? 그런데 만약 의사들이 책임을 회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안타깝게 보았던 한 병원의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을 알 것이다. 해당 사건 이후로 병원감염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오래 전 중국의 사스 바이러스, 몇 년 전 국내의 메르스 사태가 잇었지만, 여전히 의료기관 감염 실태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아툴 가완디는 이 책에서 19세기 중반의 병원에서 있었던 감염문제를 시작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성실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대로 된 의료란 까다로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손 씻기를 확실히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이어 열악한 환경에서 진행되었던 소아마비 소탕작전, 전장의 군의관들이 기록한 데이터가 불러온 혁신 등 과학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성실함의 가치를 말한다. 그리고 의사들의 도덕적 책무에 관한 논쟁적 이슈와 혁신에 필요한 태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이 책의 '최고보다 더 중요한 최선'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저자의 말처럼 '정답은 없지만, 더 나은 선택은 있다'는 의견에 공감이 간다. 그가 의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만큼, 그의 글도 그랬던 것 같다. 직업인의 태도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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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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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로니아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시민은 늘 항상 언제나 국가권력보다 무겁고 소중하며 우선돼야 한다. 오로지 이것만이 아로니아가 존재하는 이유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허투루 여기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몰라라 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 자격이 없고 존재 이유가 없는 국가는 반드시 사라져야 마땅하다. 잘라서 말한다. 아로니아 시민은 곧 아로니아 국가 그 자체다.

학교에서는 주입식 교육과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경쟁심이 아니라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가르치고, 의무 교육 기간 외에 외국유학과 개인의 취미나 특기를 위한 교육을 포함해 모든 교육을 국가가 담당하는 곳이 있다. 이곳에선 0세부터 모든 시민들에게 매월 시민연금을 지급한다. 아프거나 다치거나 혹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더라도 시민연금으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화석 연류를 이용한 이동수단을 사용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뛰어 다니며, 누구든지 도움 없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 이 나라에는 군대도 없고, 검찰과 경찰은 물론 총도 칼도 없다. 시민을 보호하고 국가를 방위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적 본질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권력 기관이 아예 없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시민들이 모여 광장에서 잔치를 하고, 대통령이 직접 편지로 축하인사를 하며, 이름을 새긴 황금펜던트 목걸이를 목에 걸어준다. '영원히 행복할 의무'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나라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일들이 정말 가능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이 바로 김대현 작가의 이 작품이다.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작지만 강한 나라, ‘아로니아공화국에서는 상상만으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을 시민들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다. 그야말로 꿈꾸는 순간에만 가능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다. 국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는 사실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슬프게도 말이다.

"세상에 태어난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좋든 싫든 꼼짝없이 한 국가의 국민이 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죠. 저는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들이 장악한 국가의 국민으로 길들여진 채 평생 의무를 지고 권리를 찾아다니며 허둥지둥 살아야 한다면 슬프고 불행한 일 아닌가요? 저는 제가 선택한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를 만들 겁니다. 제가 살고 제 자식들이 살고 또 그 자식들이 살아갈 재밌고 신나는 국가를 직접 만드는 일은 정말로 멋지지 않나요? 이렇게 멋진 일을 하지 않는 건 제 자신에게 죄를 짓는 거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로니아공화국의 대통령인 김강현이다. 재선을 거쳐 다음 달이면 10년 동안의 대통령 일상에서 마침내 벗어나게 된 그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급생을 삥 뜯던 동네 꼴통 시절 아버지로부터 죽을 만큼 맞았던 일부터, 합기도 도장에서 만난 누나에게 한 눈에 반해 성당을 다니며 천주교 신자가 되고, 공부를 시작해 대학에 들어가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다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자 휴학했지만 징병검사 신체 5급으로 판정되어 가지도 못하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시작한 사법시험에 덜컥 합격하게 되는 인생 스토리가 이어진다. 악마라도 변호하는 변호사는 싫었고, 법조문에 얽매여 누군가의 인생을 허접쓰레기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 판사도 싫었기에, 검사가 되었지만, 결국 권력과 자만으로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검찰청을 박차고 나오게 된다. 동네 꼴통이 좀 달라지나 싶었는데, 검사가 되어서도 꼴통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1970년대의 대한민국부터 2038년의 미래 국가 아로니아공화국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군부독재 정권 시대부터 민주화운동 시기를 거쳐 재벌기업 회장과 자식새끼들의 주머니만 불리던 국가부도 위기 상황,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펼쳐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겪어온 과거와 현재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국민이 국가를 버리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볍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다. 국가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거침없이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의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넘어 미래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무겁지 않게, 경쾌한 필치로 담고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정말 어디 이렇게 국민이 국가 그 자체가 되는 재미있고 신나는 나라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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