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간혹 의사도 피해를 입히는 것이 사실이다. 연구에 따르면, 중증 합병증의 절반가량은 피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 불가피함이 위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경우는 내가 잘못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실수로 누군가의 삶이 영원히 바뀔 수 있다.
지금도 사회는 이러한 경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실수를 저지른 의사들이
악당일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 악당 아닌 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으킨 피해는 오명으로 남는다.
몇 년 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속 대사가 생각난다.
럭셔리한 재벌 상속남이자 백화점 CEO인 남자 주인공은 건방지고 예의 없지만, 완벽한 외모를 가진 까칠하고 도도한
인물이었다. 그가 임원들이
가지고 온 기획안을 볼 때마다 하는 대사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냉정을 넘어 냉철하기까지 한 남자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 주려는 대사였지만, 사실 극중 늘 똑같은 기획안을 그대로 답습해오는
임원들을 다그치고 꾸중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 이후로 이 대사는 온갖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되고, 기사의 제목으로 쓰이는 등 인기를 끌었다. 아툴 가완디의 신작을 읽는
데, 나는 오래 전 이 대사가
떠올랐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책은 어떤 종류의 일이든,
나의 일을 대하는 최선의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글 쓰는 의사 아툴 가완디는
임상 외과의로서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문제의식을 풀어놓은 이 책에서 의료 현장의 다양한 관점과 시도를 취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 전장의
야전병원, 인도의 소아마비
소탕작전, 독극물 주사를
사용하는 사형집행장, 의료
소송이 벌어지는 법정, 제왕절개 수술이 한창인 분만실 등 다양한 의료 현장을 통해 성공과 실패의 사례, 그리고 그 속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본다.
의사의 선택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남들이 하는 대로 따르는 것, 하얀색 가운을 걸친 기계 부속이 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의사뿐 아니라,
사회에서 위험과 책임을 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래서는 안 된다.
과연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특히나 그 일에서 실패라는 것이 너무 쉽고 흔하다면 말이다. 의사들의 임무는 질병과 맞서
싸우고, 과학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모든 인간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들이란 대개 확실치 않고, 터득해야 할 지식은 광대하고 끝이 없으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신속성과 일관성도
요구된다. 만약 치료를 받다가
잘못되면 환자와 가족은 그 일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끔찍한 실수에서 빚어진 것이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사실 이런 일은 지금도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각종 의료
사고를 둘러싼 뉴스의 보도나 소송에 관련된 이야기를 누구나 한 두 개쯤 바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그럴 때 이들은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까? 그런데 만약 의사들이 책임을 회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안타깝게 보았던 한 병원의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을 알 것이다. 해당 사건 이후로 병원감염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오래 전 중국의 사스 바이러스, 몇 년 전 국내의 메르스 사태가 잇었지만, 여전히 의료기관 감염 실태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아툴
가완디는 이 책에서 19세기
중반의 병원에서 있었던 감염문제를 시작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성실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대로 된 의료란 까다로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손 씻기를 확실히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이어 열악한 환경에서 진행되었던 소아마비 소탕작전, 전장의 군의관들이 기록한 데이터가 불러온 혁신 등
과학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성실함의 가치를 말한다.
그리고 의사들의 도덕적 책무에 관한 논쟁적 이슈와 혁신에 필요한 태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이
책의 '최고보다 더 중요한
최선'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저자의
말처럼 '정답은
없지만, 더 나은 선택은
있다'는 의견에 공감이
간다. 그가 의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만큼,
그의 글도 그랬던 것 같다.
직업인의 태도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