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원죄가 부르는 또 하나의 가장 큰 해악.
바로 사법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다. 원죄가 발각되면
사람들은 사법 시스템에 의심을 품는다. 이 재판은 정당한가. 이 증거는 정직한 것인가. 수사는 적절히 이뤄졌나. 사법이 악의에 찬 자들의 무기가 된 것은 아닌가.
법치국가에서 법이 권위를 잃으면
사회의 체제 자체가 붕괴해 버린다.
와타세 경부가 우라와 경찰서에서
막 근무를 시작하던 쇼와 59년(1984년) , 부동산
주인 부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와타세 경부는 교육 담당 겸 파트너인 나루미 경부보와 함께 사건을 맡게 된다. 현경과 관할 경찰서 수사는 암초에 부딪힌 상태로 시간만 흘러
갔고, 사건 발생
후 20여일이 지나서야
와타세와 나루미는 용의자를 한 명으로 압축한다.
유일하게 알리바이가 입증되지 않은 인물인 구스노키 아키히로 피의자로 연행해 나루미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취조를 시작한다. 아키히로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지만,
범행 동기도,
현장에서의 증거도 확보가 된 상태라 그들은 폭력과 심리적인 압박으로 자백을
받아낸다. 결국 재판에서
아키히로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이후 감옥에 수감 중에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5년 후,
나루미 경부보는 퇴직하고,
와타세는 새로운 파트너인 도지마와 함께 여전히 강력계 소속으로 흉악 범죄를 쫓고
있다. 그런데 강도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 이
사건이 5년 전 부동산 살인
사건과 여러 모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사건은 이미 종결됐지만,
그것이 더욱 그의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법의학 교실 시리즈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는
와타세 경부 시리즈이다. 와타세 경부는 기존에 만났던 두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던 인물이다.
와타세는 이들 시리즈에서 주요 활동하는 고테가와의 상사인, 험악한 얼굴의 무뚝뚝한 반장으로
등장했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는 와타세 경부는 경찰 안에 있는 야쿠자 같은 존재라고 했었다. 틈만 나면 자기 멋대로 수사하는 데다 서장 지시도 태연하게
무시하지만, 검거율은 본부
안에서 톱이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속죄의 소나타>에서는 그를 경찰수첩을 입에 물고 태어난 듯한 남자라고 하기도
했었다. 현경 본부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고 상급직도 노릴 수 있는 입장이면서도 여전히 현장에 머무는 베테랑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완벽한 모습으로만 비춰 줬던 그의 과거
시절을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시리즈는 매력적이다.
와타세가 파출소에서 근무하다 연쇄 강도 사건 용의자와 수배 중이던 방화범을 체포한 공을
인정받아, 간절히 바라던
형사로 우라와 경찰서에 배속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 불량소년 같은 면모가 얼굴에 남아 있는 이십대 초반의
와타세는, 당시에도 험악하고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형사로서는 미숙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는 풋풋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앞으로도 계속 형사 일을 이어 가시겠죠?”
“허용된다면.”
“느긋하게 하시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초조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억울한 누명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나락 끝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희망이 되는 형사님이 돼 주세요. 그리고 절대 진실에 등을 돌리지 않을
것. 아시겠어요? 저와
하는 약속이에요.”
와타세가 곤란해하는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여서 시즈카는 만족했다.
'원죄'를 다루고 있는 영화나 소설은 기존에도 많이 있어
왔다. '원죄'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뜻한다. 여타의
작품에서 원죄 사건을 다룰 때는 억울하게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거나, 혹은 피해자의 편에서 해당 사건을 파헤쳐 원죄임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바로 그 원죄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찰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피해자에게 사죄를 하고 그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와타세는 원죄를 감추려는 경찰 조직 전체에 맞서 외롭게 싸움을 시작한다. 와타세가 조직을 배신하고 내부고발을 하게
되기까지의 고민과 그 과정, 그리고 원죄가 발각되면서 사법 시스템 자체에 의심을 품게 되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엄청난 파급들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사회파 미스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무게감과 인간적인 캐릭터에 대한 매력,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페이지터너로서의 면모까지 보여주는 굉장히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나카야마
시리치는 48세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했음에도, 데뷔
후 약 7년 남진 동안 무려
스물여덟 편의 작품을 써냈다. 게다가 본격 미스터리, 서스펜스물, 법정
미스터리, 경찰
소설, 안락의자 탐정 소설에
이어 코미디물까지 그야말로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는다.
경이적인 집필 속도와 소재를 가리지 않는 자유자재의 작풍으로, 한때는 복수의 매체에 한 달에 동시에 열네 작품을
연재한 적도 있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 없다.
국내에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굉장한 다작 작가로 익히 알려져 있는데, 나카야마 시치리 또한 제 2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소설을 써내는 작가인 것 같다.
게다가 매 작품 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 주고 있어, 실망 시킨 적이 거의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벌써 10권이나 번역 출간이
되었고, 그
중 8권이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나온 것이라 요즘 극내에서 가장 핫한 일본 작가가 아닌가 싶다. 미소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은수의 레퀴엠>과 와타세 경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네메시스의
사자>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