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평점 :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로니아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시민은 늘 항상 언제나 국가권력보다 무겁고 소중하며 우선돼야
한다. 오로지 이것만이
아로니아가 존재하는 이유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허투루 여기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몰라라 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 자격이 없고 존재
이유가 없는 국가는 반드시 사라져야 마땅하다.
잘라서 말한다.
아로니아 시민은 곧 아로니아 국가 그 자체다.
학교에서는 주입식 교육과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경쟁심이 아니라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가르치고, 의무 교육 기간 외에 외국유학과 개인의 취미나
특기를 위한 교육을 포함해 모든 교육을 국가가 담당하는 곳이 있다.
이곳에선
0세부터 모든 시민들에게 매월 시민연금을 지급한다. 아프거나 다치거나 혹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더라도 시민연금으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화석 연류를 이용한 이동수단을 사용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뛰어 다니며, 누구든지 도움 없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
이 나라에는 군대도 없고,
검찰과 경찰은 물론 총도 칼도 없다. 시민을 보호하고 국가를 방위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적 본질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권력
기관이 아예 없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시민들이 모여 광장에서 잔치를 하고,
대통령이 직접 편지로 축하인사를 하며, 이름을 새긴 황금펜던트 목걸이를 목에 걸어준다. '영원히 행복할 의무'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나라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일들이 정말 가능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이 바로 김대현 작가의 이 작품이다.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작지만 강한 나라, ‘아로니아공화국’ 에서는 상상만으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을 시민들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다. 그야말로 꿈꾸는
순간에만 가능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다. 국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는 사실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슬프게도 말이다.
"세상에 태어난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좋든 싫든 꼼짝없이 한 국가의 국민이 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죠.
저는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들이 장악한 국가의 국민으로 길들여진 채 평생 의무를 지고 권리를
찾아다니며 허둥지둥 살아야 한다면 슬프고 불행한 일 아닌가요?
저는 제가 선택한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를 만들 겁니다. 제가 살고 제 자식들이 살고 또 그 자식들이
살아갈 재밌고 신나는 국가를 직접 만드는 일은 정말로 멋지지 않나요?
이렇게 멋진 일을 하지 않는 건 제 자신에게 죄를 짓는 거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로니아공화국의 대통령인 김강현이다.
재선을 거쳐 다음 달이면
10년 동안의 대통령 일상에서 마침내 벗어나게 된 그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급생을 삥 뜯던
동네 꼴통 시절 아버지로부터 죽을 만큼 맞았던 일부터,
합기도 도장에서 만난 누나에게 한 눈에 반해 성당을 다니며 천주교 신자가
되고, 공부를 시작해 대학에
들어가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다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자 휴학했지만 징병검사 신체
5급으로 판정되어 가지도 못하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시작한 사법시험에 덜컥 합격하게 되는 인생 스토리가
이어진다. 악마라도 변호하는
변호사는 싫었고, 법조문에
얽매여 누군가의 인생을 허접쓰레기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 판사도 싫었기에,
검사가 되었지만,
결국 권력과 자만으로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검찰청을 박차고 나오게 된다. 동네 꼴통이 좀 달라지나
싶었는데, 검사가 되어서도
꼴통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1970년대의
대한민국부터 2038년의 미래
국가 아로니아공화국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군부독재 정권 시대부터 민주화운동 시기를 거쳐 재벌기업 회장과 자식새끼들의 주머니만 불리던 국가부도 위기 상황,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펼쳐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겪어온 과거와
현재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국민이 국가를 버리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볍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다. 국가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거침없이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의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넘어 미래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무겁지 않게, 경쾌한 필치로 담고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정말 어디 이렇게
국민이 국가 그 자체가 되는 재미있고 신나는 나라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