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데이비스와 나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심지어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고, 왜냐하면 함께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서로 마주보는 것보다 더 친밀한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주보는 것은 누구하고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열여섯 에이자는 강박증과 불안 장애를 갖고 있다. 5년간 인지 행동 치료를 받고 약을 세 번이나 바꿨음에도 여전히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손가락에 상처라도 나면 세균에 감염되어 죽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 시작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사기 및 횡령죄 수사와 관련해 경찰로부터 도망친 억만장자에 대한 뉴스가 들려온다. 그는 바로 어린 시절 에이자의 친구였던 데이비스의 아버지였고, 그에겐 10만 달러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에이자의 단작 친구 데이지는 현상금을 받자며, 에이자를 설득한다.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 되었다는 에이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의 아들과 아는 사이니까 자신을 도와 달라는 부탁에 그들은 데이비스를 만나러 가게 된다.

이야기는 실종된 억만 장자를 쫓는 미스터리처럼 시작하지만, 사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성장 소설로 진행된다. 대학 진학 문제로 고민하고, 지나치게 염려 많은 엄마와 매사에 불만 많은 단짝 친구가 등장하고, 오래 전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친구를 다시 만나 설레이는 감정을 키워나가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평범한 성장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 에이자의 강박증과 불안 장애로 인해 그 모든 일들이 쉽지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아까 데이비스가 한 질문,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다는 참 이상한 표현이다. 마치 도랑에 빠지거나 바다에 빠져 죽는다고 할 때처럼빠지다라는 표현을 쓴다. 사랑 외에 다른 것, 이를테면 우정이나 분노, 희망에는빠지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사랑에만 빠질 수 있다.

학교 식당에 앉아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박테리아에 대해 고민하고, 작은 상처나 통증이라도 생기면 박테리아나 감염에 대한 걱정으로 곧 죽게 될 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십대 소녀. 이런 그녀이기에 좋아하는 남자친구와의 스킨십도 쉽지가 않다. 데이비스와 키스를 하면서 그의 입 속 세균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와서 뭔가에 감염이 될 수도 있으니, 항생제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러다 며칠 뒤에 그 세균 때문에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어떻게 그 순간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을까. 에이자의 그런 증상은 점점 심해지다가, 결국 손 살균제를 입 속에 넣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한 방울로 시작됐지만, 점차 마시게 되고 구토하는 지경이 된다. 게다가 자신이 소설 속 인물 같다고 느낀다.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 어느 것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외부의 힘이 결정하니, 자신의 실존 그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과연 에이자는 어떻게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살아갈 것인가.

 

이 작품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로 사랑을 받았던 존 그린의 신작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에이자라는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강박장애나 불안장애를 겪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극중 보여지는 심리 묘사는 리얼하다. 불안 장애라는 것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는 강박과 불안이라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무섭게 만드는 것인지 이 작품 속에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마냥 어둡거나, 무겁게만 풀어가고 있지 않아서 더 공감되고, 와 닿는 작품이기도 하다. 삶은 계속 된다. 그러니까 계속 살아야 한다.는 식의 희망적인 메시지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식의 따뜻한 위로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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