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생산성, 창의성, 혁신성을 높이는 6단계 생각법
팀 허슨 지음, 강유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미래를 창조하려면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산적 사고는 상상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마법이 아니다. 더 창의적으로, 더 효과적으로 생각하기 위한 체계적 접근법이다. 실제로 우리는 훈련을 거쳐 생각을 더 잘할 수 있다. 연습할수록 더 잘하게 된다. 생각을 더 잘할수록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회사, 더 나은 인생을 만들 기회를 더 많이 얻는다.     p.41

 

리드 헤이스팅스는 인터넷을 통해 DVD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간단한 생각으로 1997년 넷플릭스를 창립했다. 그리고 2년 뒤, 영화를 빌려주는 대신 '영화를 볼 수 있는 자격'을 빌려주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 결과 넷플릭스는 3년 만에 100만 명 가까운 구독자에게 하루 평균 20만 개의 DVD를 발송하며 흑자를 보기 시작했다. 현재 넷플릭스의 규모는 전 세계 유료 구독자수 1억 8000만 명, 국내 매출만 연 5000억 원에 달한다. 시작할 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을 온라인에 옮겨놓은 것이 불과했던 기업의 엄청난 성공에 대해서 저자는 '생산적 사고'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평범한 것에서 뜻밖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생각법으로 저자는 이것을 '좋은 혁신'을 뜻하는 텐카이젠 사고라고 표현한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힘, 옛것을 재생산하기보다는 새것을 만들어내려는 사고는 우리 행동만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 다는 것이다.

 

생산성, 창의성, 혁신성을 높이는 생산적 사고를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이제 ‘괜찮은’ 생각 대신 ‘탁월한’ 생각이 필요할 때라고 말한다. 게다가 생산적 사고는 누구나 단 6단계만 거치면 간단하게 배울 수 있고, 실무에 바로 적용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효과적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생각이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일종의 기술'이라는 점이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야만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누구라도 노력에 의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즉 누구나 적절한 방법을 배우기만 하면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평생 동안 포춘 500대 기업부터 소규모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조직과 함께 작업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의 결과물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계획을 수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달러든 천만 달러든, 한 사람이 수행하든 100명이 수행하든, 하루가 걸리든 몇 해가 걸리든, 실제 프로젝트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은 프로젝트 진행 도중 틀림없이 걸림돌이나 변화를 만나게 된다. 당신이 들린 노력의 가치는 계획 자체가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 있다.    p.308

 

우리가 기본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본능적인 접근법은 3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문제를 인지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고, 선택한 방법을 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법은 간단하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를 모두 활용하는 전략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그에 따라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생산적 사고는 아래와 같은 6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단계: 무엇을 성공으로 삼을 것인가?
3단계: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4단계: 답변 생성
5단계: 해결 방안 벼리기
6단계: 자원 조정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해결이 필요한 문제를 확인하고 그것을 충분히 탐구해야 목표 미래를 명확히 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가 해결된 미래의 모습을 단단한 이미지로 확장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성공에 대한 기준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해결해야 할 핵심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하는 생산적 사고 프로세스에서 구심점이 되는 단계이다. 그러면 답변을 만들기 위해 해결을 위한 기초 수준의 아이디어가 도출되기 시작한다. 이제 초기 아이디어를 강력한 해결 방안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테스트를 거쳐, 해결 방안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활동과 자원을 파악해 책임자를 정하면 된다. 이 책은 단순히 이론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도구와 사례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팁들이 가득했다. 업무상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야 할 때, 일상생활의 어려운 과제를 헤쳐 나가야 할 때도 생산적 사고가 필요하다. 나와 팀과 조직을 바꾸는 생산적 사고의 힘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생산적 사고를 활용하게 된다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SA 밤하늘을 기록하다 NASA, 기록하다
NASA 외 지음, 박성래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밤하늘을 제대로 올려다 본 적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쁜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말이다. 별빛이 없어도 도심의 휘황찬란한 빛들이 밤을 어둡지 않게 만들어 주거나 혹은 미세먼지를 비롯한 나쁜 공기들로 인해 맑은 날에도 밤하늘에 별들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런 모든 배경과 상관없이, 그저 여유가 없어서 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양한 구도의 하늘 사진, 특히 밤하늘 풍경을 담고 있는 사진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아무 때고 할 수 있는 일이니 누구나 할 수 있다.

 

 

<NASA, 기록하다> 시리즈는 NASA가 유일하게 공식 인증한 도서로, NASA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해에 출간된 <NASA 행성을 기록하다>와 <NASA 지구와 우주를 기록하다>에 이어 이번에는 《NASA 밤하늘을 기록하다》가 나왔다.

 

이 책은 NASA가 지난 60년 동안 매일 밤 작업을 통해 포착한 밤하늘의 놀라운 이미지 중 일부를 담고 있다. 지상과 우주선에서 촬영한 별 사진들은 지구 밤하늘의 놀랍도록 다채로운 풍경들을 보여준다.

 

 

단순한 밤 하늘의 별들만 촬영한 것이 아니라, 일식과 월식, 야광운, 번개 그리고 지구 극지방에서 발생하는 오로라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까지 수록되어 있어 놀라웠다. 우리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넘어서는 우주의 그 무한한 모습들은 신비로우면서도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매 순간들이 작품처럼 느껴졌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았던 사진은 태양이 지평선 바로 아래에 있고 지상에 땅거미가 질 때 빛을 내는 '야광운'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북극에 낮이 계속되는 여름 몇 달 동안 야광운이 형성된다고 하는데, 푸른색의 그라데이션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야광운은 일반적으로 해가 질 무렵 움직이는 물결 모양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약간 유령 같은 느낌을 연출하기도 한다.

 

 

'오리온의 검'과 '유니콘의 장미'라는 사진도 색감이 너무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오리온자리에서 검에 해당하는 부분을 촬영한 사진은 태양보다 15~90배 무겁고 4만~100만 배 밝다고 한다. 거대한 성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수천 개의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굉장히 다양한 색상과 질감이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지구에서 1,852년 광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장미를 닮은 장미 성운은 태양보다 100배나 어두운 별로 구성된 3중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밝은 그린 빛깔과 오묘한 붉은 빛깔, 그리고 어두운 색상들이 섞여 그라데이션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이 책은 우주 탐사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최고의 선물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NASA 자료실에 보관된 백여 개의 멋진 사진들은 그 퀄리티도 너무 훌륭해서 소장가치 200%의 화보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NASA가 설립된 지도 이미 반세기가 흘렀으며, 그 동안 1,000개 이상의 우주 탐사 임무를 수행해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유인 및 무인 탐사 계획을 통해 수백만 장의 사진을 촬영했고, 그러한 결과물이 바로 <NASA, 기록하다> 시리즈일 것이다.

 

과학과 천문학, 우주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이 책에 수록된 경이로운 사진들에 매혹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오늘 밤에는 문득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싶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놀라운 현상들이 가득한 밤하늘 여행을 지금 떠나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라는 여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3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가 튀김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른이 될 때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식탁에 튀김이나 돈가스가 수시로 올라 왔다 싶지만, 아이들 있는 집은 으레 그러려니 했다. 한편 삼십대 중반이 되면서 나는 튀김을 그리 빈번히는 먹지 않게 되었다. 좋아하기는 해도 일주일에 몇 번이나 먹고 싶지는 않다고 할까, 못 먹겠다고 할까. 그런 지금의 내 상황에 견주어보면, 뭐야, 우리 엄마, 튀김 엄청 좋아하시네? 하고 깨달았다.    p.118

 

우리 엄마는 보라색을 좋아하신다. 모자를 비롯해 각종 보라색 소품들과 다양한 톤의 보라색 옷들을 가지고 있어, 거리를 지나다가도 보라색 컬러만 눈에 띄면 자동으로 엄마 생각이 나곤 한다. 가만히 둘러보면 세상의 아줌마들은 이렇게 컬러든, 꽃무늬든, 대담한 프린트든 자신만의 패션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패션 감각이 좀 떨어지더라도, 가끔은 색 조합이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당당하고 망설임이 없다.

 

 

마스다 미리는 '완벽한 패션 피플보다는 그게 뭔지도 모르는 아줌마(우리 엄마)한테서 상당한 힐링을 맛본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런 아줌마만은 절대 되기 싫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은 오히려 '저런 아줌마'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어도 세상에서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여자, 포근하고 애틋한 그 이름'인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책이라 공감하는 사람들이 참 많을 것 같다. 

 

이 책은 마스다 미리가 추억하고 싶은 어린 시절의 조각들을 담박한 23편의 에세이와 26편의 4컷/8컷 만화에 담고 있다. 마스다 미리는 그 동안의 작품에서도 가족들의 이야기를 자주 등장시켰었는데,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엄마'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만 담고 있어 세상의 모든 딸들이 읽어 보면 좋을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집안일도 거든 적이 없다. 이불은 으레 엄마가 깔고 개켰다. 졸라서 키우기 시작한 기니피그도 결국 엄마가 돌봤다. 여름방학 숙제로 받은 한자 연습장을 채우는 것도 늘 엄마 담당……. 이런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딸을 참 오냐오냐하며 키운 엄마였다는 게 드러난다.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하염없이 너그러운 엄마였다. 하지만 무슨 응석이든 받아준 엄마의 기억이 늘 가슴 한복판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나는 괜찮을 거야. 어째서인지 그 기억이 내게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p.152

 

이 책은 국내에는 2011년에 소개되었는데, 이번에 마스다 미리 작가의 제안으로, 산뜻한 표지로 옷을 갈아 입고 새로운 번역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아빠라는 남자>와 <엄마라는 여자>를 함께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딸의 입장에서 읽다 보니 엄마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와 닿았다. 가방이든 지갑이든 잔뜩 뭔가 넣어가지고 다니는 아줌마들의 습성, 어떤 상황에서든 '아깝잖아'라는 말로 필요없 는 것조차 아끼는 습관, 산책 가서든 여행가서든 활짝 핀 꽃만 보면 소녀처럼 설레어 하는 모습까지.. 마스다 미리가 그려내는 엄마의 모습이 우리 엄마의 모습과 교차되어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책은 엄마를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사는 게 급급한 우리에게 여전히 우리 곁에 엄마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어 좋았다.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가 매 페이지마다 마음을 쿡쿡 찔러 대고, 가끔은 귀찮게 느껴졌던 엄마의 잔소리조차 그리워지도록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어른이 되어 버린 딸에게 아직도 밥은 먹었냐, 어디 아픈 데는 없냐며 걱정하고, 챙기는 엄마에게 조금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간단히 해내시던 일들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엄마가 쉽게 했던 많은 것들을 나는 아직 못 따라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된 걸까 생각해 보지만, 그럼에도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투덜대는 어린 딸일 뿐이다. 마스다 미리가 그리는 따뜻한 이야기들을 통해 '엄마'와 함께한 일상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라는 남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미가 '불같이' 급한 우리 아빠. 빨리빨리 먹지 못하는 요리가 식탁에 나오면 곧잘 도중에 벌컥 성질을 부리고는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선 잔가시가 많은 작은 생선은 거의 금지였다. 아버지가 잔가시에 부글부글하다가 결국 화를 내기 때문이다. 뜨거운 음식도 안 된다. 아버지가 빨리빨리 드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은 매일 저녁 갓 지은 따끈한 밥이었지만, 아버지만은 언제나 어제 한 찬밥이었다. 따끈따끈한 밥은 빨리 먹지 못하니까 싫으시단다.     p.54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는 것이 아마 세상 모든 딸들의 감정 아닐까. 나와 수십 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함께 밥을 먹고 지낸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가끔은 너무 먼 존재처럼 느껴지곤 하는 게 바로 '아빠'이니 말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의 대부분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 채 보냈다. 자주 버럭 하는 성격도, 엄마에게 다정하지 않은 태도도, 주말 아침마다 가족들을 강제 기상시키는 클래식 음악 취향도, 아빠가 싫어하는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지 않는 것도.. 그렇게 이런 저런 소소한 것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무뚝뚝하고 애정표현에 서투른 그 모습 그대로의 아빠를 인정한다. 분명 어린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을 테고, 자식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아빠의 본 모습도 있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이제는 그만큼 내가 어른이 되었고, 세상을 겪었으니 말이다.

 

마스다 미리가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난 뒤의 작품 <영원한 외출>과 <오늘의 인생>을 읽었기에, 오래 전에 쓰인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녀가 아빠와 함께한 일상과 추억들이 다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굉장히 특별한 사건이나, 엄청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만드는 일들이 펼쳐지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매일 겪는 일상의 수많은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창피했다. 아버지와 외출하는 게 어릴 때는 창피해서 싫었다. 길을 걷다가 예사로이 방귀를 뀌고, 가게에서 밥 먹다가 '이거, 맛이 별론데....' 같은 말을 한다. 목소리가 우렁찬 것도 난처한 점이다. 쇼핑하다 말고 점원의 태도가 나쁘다면서 벌컥 화를 내며 나가 버리는 일도 숱하게 있었다.... 어째서 대외용 얼굴을 하지 못할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반 친구들한테 이런 아빠인 걸 들키면 창피해서 학교도 못 갈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래서 외출해서는 늘 아버지와 떨어져 걷고, 일행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p.96~97

 

마스다 미리는 이 책에서 아빠와 함께한 일상을 짤막짤막한 에세이와 만화에 담아 추억한다. 국내에는 2011년에 소개되었던 작품인데, 마스다 미리 작가의 제안으로, 산뜻한 표지로 옷을 갈아 입고 최대한 원문에 가까운 번역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찾는 물건이 눈에 띄지 않으면 늘 엄마 탓처럼 말하는 아빠, 외출했다 들어와도 자주 손을 씻지 않는 아빠, 딸이 아프면 걱정을 표현하는 일이 서툴어 언짢아하는 아빠, 성미가 급하고 주의 산만한 아빠, 잡학 상식을 좋아하는 아빠, 어쩐지 둘만 있으면 서먹서먹해지는 아빠와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뭐 맛있는 거 좀 없나~ 라며 수시로 간식을 찾는 아빠의 모습, 티비 프로그램을 보며 기어코 엄마한테 안 해도 될 말을 한마디씩 하는 모습 등 여느 집이나 아빠들의 모습은 비슷한 것인지 마스다 미리가 그려내는 아빠의 모습에서 우리 아빠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아빠의 모습에서도 장점도 있고, 좋아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런 사람이 애인이라면 절대로 싫다고 말하는 마스다 미리의 모습에 빵 터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빠라면 괜찮지만, 애인으로서는 빵점인 남자, 아빠라는 존재는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했다. 이러나 저러나 나의 절반을 만들어 준 존재가 바로 아빠이고, 내 얼굴 어딘가 한 부분은 아빠를 닮았으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아빠의 성격 중 하나도 나에게 내제되어 있다. 따뜻하고, 코믹하게 풀어내는 만화와 에세이였지만, 읽으면서 지금은 세상에 부재하는 아빠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너무 좋았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아빠가 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니, 단 한 사람 마음에 걸리는 아이가 있다고 해야 할까. 그 소년이었다. 입학식 때, 유사쿠를 빤히 보던 소년. 자기하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 그 인물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아니고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 얼굴을 보면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유사쿠에게 그 소년은 그런 존재였다.    p.82~83

 

이야기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전기기기 제조업체인 UR전산의 대표인 우류 나오아키가 암으로 투병하다 임종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들인 아키히코는 아버지의 사십구재 전에 그가 소장했던 대량의 장서와 미술품을 처분하기로 하고 사람들을 부른다. UR전산은 우류가와 친척인 스가이가 양쪽이 번갈아가며 실권을 잡아 왔지만, 장남인 아키히코는 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고 의사가 되는 길을 선택했기에, 지금은 스가이 가에서 실권을 잡고 있는 분위기였다. 우류 나오아키는 대부분의 재산을 아들인 아키히코에게 남겼기에, 남은 미술품들을 친척들에게 보여주고 나눠주기로 해 집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때, 현재 UR전산의 대표이사인 스가이 마사키요가 살해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게다가 흉기는 우류 나오아키의 유품인 석궁이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하게 된 형사 와쿠라 유사쿠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기묘한 경쟁 관계에 있었던 우류 아키히코와 다시 만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공부를 잘했지만 유사쿠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 언제나 학급의 리더였던 데 반해, 우류는 뛰어난 실력에 비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전혀 관심이 없어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유사쿠는 우류와의 대결에서 공부든, 운동이든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살인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로 다시 만나게 된 그들은 대체 무슨 악연인지, 우류의 아내는 바로 유사코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 미사코였던 것이다. 오래 전 입시를 준비하던 당시 아버지가 쓰러지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지망하던 의대 대신 경찰의 길을 택했던 유사쿠는 당시 연인이었던 미사코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이별을 했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사코는 자신이 우류와 결혼하게 된 것부터 현재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운명의 ‘실’에 조종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들 세 사람 사이에 얽힌 과거와 현재의 살인 사건 수사가 함께 진행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당신은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녀석이 하는 일 하나하나가 묘하게 거슬렸어. 하지만 녀석을 잘 알기 전부터 나는 그 녀석을 의식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나. 어째서일까. 파장이 맞지 않는다고 할까, 하여간 본능적으로 배척하려고 했어. 마치 자석의 S와 S, N과 N이 서로 반발하는 것처럼 말이야."     p.184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1993년 작으로 국내에는 2007년에 출간되었었다. 이번에 새로운 표지로 옷을 갈아 입고, 번역도 새롭게 다시 해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상징적으로 그려 넣은 표지도 인상적이고, 작품이 발표된 지 이십여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군더더기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최근작도 물론 좋지만, 초기작들도 그에 못지 않은 완성도와 필력을 보여주고 있어 읽을 때마다 새삼 감탄하게 되는 것 같다.

 

이야기는 한 대기업의 대표이사가 독화살로 살해되는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중심 플롯은 범인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라이벌이었던 두 남자,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한 여자의 운명 같은 드라마에 더 치중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관계가 시작하게 된 과거에 숨겨진 비밀이 다가갈 수록 뇌의학, 전두엽 절제수술 등 첨단 의학을 악용하려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마음이 3대에 걸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동안 과학과 의학의 최첨단 소재들을 자주 작품 속에서 다루어 왔는데, 이 작품에서는 비인간적인 인체 실험 자체보다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과 이후에 나타나는 결과들을 통해 얽히고설킨 두 남자의 삶과 운명을 장대한 드라마로 그려내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얼마나 끔찍한 무게일까. 날 때부터 타고난, 이미 정해져서 자신의 의지대로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끊을 수 없는 운명으로 묶인 두 남자의 치열한 삶 속에서 펼쳐지는 매혹적인 드라마 속으로 떠나보자.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휴먼 미스터리' 분야에서 최고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