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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여자 ㅣ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3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평점 :
엄마가 튀김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른이 될 때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식탁에 튀김이나 돈가스가 수시로 올라 왔다 싶지만, 아이들 있는 집은 으레 그러려니 했다. 한편 삼십대 중반이 되면서 나는 튀김을 그리 빈번히는 먹지 않게 되었다. 좋아하기는 해도 일주일에 몇 번이나 먹고 싶지는 않다고 할까, 못 먹겠다고 할까. 그런 지금의 내 상황에 견주어보면, 뭐야, 우리 엄마, 튀김 엄청 좋아하시네? 하고 깨달았다. p.118
우리 엄마는 보라색을 좋아하신다. 모자를 비롯해 각종 보라색 소품들과 다양한 톤의 보라색 옷들을 가지고 있어, 거리를 지나다가도 보라색 컬러만 눈에 띄면 자동으로 엄마 생각이 나곤 한다. 가만히 둘러보면 세상의 아줌마들은 이렇게 컬러든, 꽃무늬든, 대담한 프린트든 자신만의 패션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패션 감각이 좀 떨어지더라도, 가끔은 색 조합이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당당하고 망설임이 없다.
마스다 미리는 '완벽한 패션 피플보다는 그게 뭔지도 모르는 아줌마(우리 엄마)한테서 상당한 힐링을 맛본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런 아줌마만은 절대 되기 싫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은 오히려 '저런 아줌마'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어도 세상에서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여자, 포근하고 애틋한 그 이름'인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책이라 공감하는 사람들이 참 많을 것 같다.
이 책은 마스다 미리가 추억하고 싶은 어린 시절의 조각들을 담박한 23편의 에세이와 26편의 4컷/8컷 만화에 담고 있다. 마스다 미리는 그 동안의 작품에서도 가족들의 이야기를 자주 등장시켰었는데,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엄마'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만 담고 있어 세상의 모든 딸들이 읽어 보면 좋을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집안일도 거든 적이 없다. 이불은 으레 엄마가 깔고 개켰다. 졸라서 키우기 시작한 기니피그도 결국 엄마가 돌봤다. 여름방학 숙제로 받은 한자 연습장을 채우는 것도 늘 엄마 담당……. 이런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딸을 참 오냐오냐하며 키운 엄마였다는 게 드러난다.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하염없이 너그러운 엄마였다. 하지만 무슨 응석이든 받아준 엄마의 기억이 늘 가슴 한복판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나는 괜찮을 거야. 어째서인지 그 기억이 내게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p.152
이 책은 국내에는 2011년에 소개되었는데, 이번에 마스다 미리 작가의 제안으로, 산뜻한 표지로 옷을 갈아 입고 새로운 번역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아빠라는 남자>와 <엄마라는 여자>를 함께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딸의 입장에서 읽다 보니 엄마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와 닿았다. 가방이든 지갑이든 잔뜩 뭔가 넣어가지고 다니는 아줌마들의 습성, 어떤 상황에서든 '아깝잖아'라는 말로 필요없 는 것조차 아끼는 습관, 산책 가서든 여행가서든 활짝 핀 꽃만 보면 소녀처럼 설레어 하는 모습까지.. 마스다 미리가 그려내는 엄마의 모습이 우리 엄마의 모습과 교차되어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책은 엄마를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사는 게 급급한 우리에게 여전히 우리 곁에 엄마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어 좋았다.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가 매 페이지마다 마음을 쿡쿡 찔러 대고, 가끔은 귀찮게 느껴졌던 엄마의 잔소리조차 그리워지도록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어른이 되어 버린 딸에게 아직도 밥은 먹었냐, 어디 아픈 데는 없냐며 걱정하고, 챙기는 엄마에게 조금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간단히 해내시던 일들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엄마가 쉽게 했던 많은 것들을 나는 아직 못 따라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된 걸까 생각해 보지만, 그럼에도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투덜대는 어린 딸일 뿐이다. 마스다 미리가 그리는 따뜻한 이야기들을 통해 '엄마'와 함께한 일상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