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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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지나보내면서, 나는 묘한 삶의 진실 같은 것을 하나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삶이란 누군가를 구하거나 구해지는 일들로 이어지며, 그렇게 여러 시절들이 서로의 둥지 같은 것이 되어 주는 누군가들을 건너가며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삶의 매 시절에 어떤 손길들이 있었다. 그 손길들은 때론 연인이거나 친구, 동료이거나 그저 낯선 사람이기도 했는데 일방적으로 나를 구해 냈다기보다는, 맞잡음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견디며 의지하는 일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 정지우, '한 시절 나의 돌다리였던' 중에서, p.43

 

이 책은 작가 초대 플랫폼 '북크루'에서 제공한 에세이 새벽 배송 서비스 '책장위고양이'에서 시작되었다. '책장위고양이'는 정지우 작가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는데, 일곱 명의 작가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구독자에게 에세이를 보내는 서비스이다. 이제 막 첫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고,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렇게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주 7일 새벽 6시마다 구독자들의 메일함으로 배송되었던 글은 모은 연작 에세이집이다. 63편의 에세이들은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뿌팟퐁커리, 비, 결혼, 그리고 커피와 쓸데없는 것에 대한 주제로 일곱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써낸 글들이다.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이렇게 일곱 명의 작가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온전한 자기 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이대가 되면 누구나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모든 물건이 내가 두고 나온 그대로 놓여 있고, 밥을 먹고 싶지 않으면 한없이 굶을 수 있고, 울고 싶으면 한없이 통곡할 수 있는, 그야말로 나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내 방을 원했다'고 말하는 남궁인 작가의 글이 어쩐지 애잔하면서도, 뭉클하기도 하고, 내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도 만들어 주었다. 작가는 고교 졸업 후에 줄곧 독립된 방에서의 독거를 꿈꿨는데, 혼자 방에 있을 수 있다면 아무리 곤궁한 삶도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은 대학 시절 가장 저렴한 고시원에서의 한 달 이었다. 시를 쓰겠다고 야심 차게 들어갔던 그곳은 '시고 불행이고 나발이고 그냥 오달지게 추웠다'는데, 그곳에서의 한 달을 그야말로 운이 좋아 생존했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이후로도 그는 지방 병원 실습 때 오피스텔에서 독거했던 경험, 의학과 4학년 때 9평 원룸에서 무려 일곱 명이 동거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분량 상 이 글에는 담지 못했는데, 그가 9평 원룸에서 살았던 그 대단한 이야기를 언젠가는 들어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나에게 술이 삶을 장식해 주는 형용사라면 커피는 삶을 움직여 주는 동사다. 원두를 갈면 하루가 시작되고 페달을 밟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 하루가 끝난다. 형용사는 소중하지만 동사는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여행에서도 그랬다. 오로라를 보던 압도적인 순간이나 유빙에 둘러싸였던 꿈결 같은 순간에는 늘 한두 잔의 술이 함께하며 찬란한 빛을 더해 주었지만, 그런 순간들 뒤에는 아침마다 마주하는 이국의 낯선 공기를 좀 더 편안하고 친밀한 무엇으로 바꾸어 주며 차분하게 하루의 모험을 계획하게 만들었던 한두 잔의 커피가 있었다.     - 김혼비, '커피와 술, 코로나 시대의 운동' 중에서, p.294

 

김혼비 작가는 이제부터 평생 술과 커피 중 단 하나만을 마실 수 있다면 뭘 고르겠다고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커피를 택할 거라고 한다. <아무튼, 술>이라는 책을 썼던 작가라서 다소 의외의 선택이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술을 끊을 자신은 있지만 커피 없이 살 자신은 없다는 거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나 역시 커피로 시작해서 커피로 끝나는, 하루라도 커피를 입에 대지 않고 지낸 적이 없는 커피 러버라서 유독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었다. '아무리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냈더라도 아침에 마실 맛있는 커피를 생각하면 그래도 내일을 다시 살아 볼 조그만 기대가 생긴다'는 문구를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 커피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또 한 명 발견했다는 기쁨에, 끝내주는 커피 한 잔이 주는 작은 위안이 얼마나 특별한지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알게 될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일곱 명의 작가들이 풀어내고 있는 글은 모두 색깔이 너무 달라서 더 흥미로웠다. 같은 소재를 두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분위기가 완전히 제각각이었고, 문장도, 생각도 각각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들이 직접 삶을 살아오면서 겪어온 것들, 마음 속 깊게 새겨져 있던 기억들을 보여주고 있어 따뜻하고,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언젠가, 미래의 언젠가를 떠올리면서 지금 여기에서 '언젠가'를 이야기하는 일곱 빛깔 연작 에세이집을 만나 보자.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부터 읽어도, 마음에 드는 소재의 이야기부터 읽어도 만족스러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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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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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 유우가 엄청나게 많은 도넛에 둘러싸여서 죽었다는 뉴스를 다들 알거든요. 시골에 사는 뚱뚱한 여자애의 자살 같은 건 전국 뉴스는 고사하고 지방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지만 소문은 도니까요. 시체 주위에 도넛이 백 개 넘게 뿌려져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도 있더라고요. 도넛 개수가 걔 몸무게가 최고점을 찍었을 때랑 똑같다는 둥. 근데 뭐 때문인지 걔 엄마의 저주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걔는 수면제를 엄청 먹고 죽었는데 도넛이 다잉 메시지다, 엄마를 고발하고 있다 등등. 유서가 없었으니 도넛이 유서라도 되는 것 마냥. 이상해요, 그런 거. 말도 안 되잖아요.    p.93~94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는 거라고, 외모 보다는 성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야말로 삶의 중요한 덕목이자 재능이기도 하다는 걸 말이다. 예쁜 사람이 더 많은 애정과 배려를 받고, 예쁜 외모가 면접이나 승진에서도 유리하며, 같은 상황이라도 양보를 받는 건 대체로 더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름다움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고, 인생을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니 다이어트, 몸짱, 얼짱, 외모지상주의, 취업성형 등등 외모에 대한 관심과 관리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우리는 정상체중의 사람도 체중강박증에 시달리게 되는 외모강박시대, 외모불안시대에 살고 있다. 미나토 가나에는 이 작품을 통해 과연 외모야 말로 삶의 덕목이자 재능인 것인지,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아름다움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용외과 ‘다치바나 뷰티클리닉’의 원장 ‘히사노’는 미용을 위한 수술을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왔다. 시력이 나쁘면 안과에 가고, 충치가 생기면 치과에 가고,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는 것처럼 쌍꺼풀을 만들거나 코를 세우는 시술 또한 고통 받는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뿐이라는 거다. 그러니 자신이 하는 일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고향 친구로부터 초등학교 동창의 딸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원래 밝은 성격에 평범한 아이였는데,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등교 거부를 시작했고 결국 자살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거다. 게다가 엄마가 학대를 했다거나 급격히 살이 찐 것이 원인이었다는 등의 소문이 있었고, 엄청난 수의 도넛이 흩뿌려진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도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히사노 역시 어쩐지 마음이 쓰여 소녀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시력이 나쁜 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만 외모가 나쁜 건 어떤 지장을 주는데? 가령 인간관계 형성에 지장이 생긴다는 문제가 있다 치면, 그걸 개선해야만 하는 게 외모 나쁜 사람 쪽이야? 물론 사람을 겉보기로 판단하지 말자는 도덕 교육을 몇십 년, 몇백 년 계속해도 가치관이라는 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아. 변화가 있다면 미인이나 핸섬가이의 정의 정도이고. 아, 요즘은 핸섬 가이라고 안 하지. 꽃미남? 미녀랑 미남을 부르는 말도 바뀌네. 하지만 못생긴 사람의 정의는 어떤 시대나 매한가지잖아. 세상은 안 변해.    p.147~148

 

무조건 예뻐지고 싶어요. 날씬해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마다의 고민으로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것은 미스 재팬 출신의 히사노이다. 이 작품은 히사노를 찾아온 환자들의 심리 상담과 히사노가 주변 인물들을 만나 소녀의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각 챕터 별로 화자가 다른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 각자가 히사노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열등감, 질투, 선망 등등.. 그녀를 알았던 이들은 수십 년 묵은 감정들을 무심코 뱉어낸다. 외모를 중시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TV등 대중매체의 이미지 중시 현상 등 외모불안을 조장하는 것들은 이미 사방에 널려 있고, 그런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바로 그 외모 때문에 상처받으면서도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나 강박을 꼭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외모지상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대부분 남성보다는 여성이다. 외모가 곧 경쟁력이고 힘이며,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직결이 될 정도로 절대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나토 가나에는 이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이든, 행복이든 기준을 타인에게 맡기지 말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장점이 있으며 단점이 있고, 좋아하는 게 있으며 잘 못하는 게 있는 것처럼, 외모 역시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들어간 곳이나 튀어나온 곳이 다르다는 것이다. 조각과 조각이 맞춰져서 자기 자신이라는 하나의 조각이 만들어 지는데,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 하면 주위 균형도 깨져버린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에게 맞는 조각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수의 도넛이 흩뿌려져 있는 방에서 자살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외모에 대한 다양한 콤플렉스 혹은 트라우마를 안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외모강박시대'를 다시 한번 돌아 보자. 당신이 가지고 싶은 ‘아름다움’ 그리고 ‘행복’은 누구의 눈을 통해 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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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케빈 홉스.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티보 에렘 그림, 김효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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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에서 이 나무는 중요하다. 신화 속 생명의 나무 ‘이그드라실’은 아홉 세계의 한가운데에서 자라는 영원의 구주물푸레나무다. 이 나무는 그리스도교의 전파 후에도 잔존하던 이교에 뿌리를 두며 토르, 오딘, 프레야 같은 신들의 연대기에 등장한다... 구주물푸레나무는 이웃 나무를 쓰러뜨리고 땅에 생긴 빈 공간에 냉큼 자리를 잡는 매우 영악한 종이다. 정원사들은 이 능력을 달가워하지 않아 이 나무를 잡초처럼 홀대한다. 그 많던 구주물푸레나무가 지금은 안타깝게도 마름병으로 위협받고 있다.     p.44

 

영국의 저명한 원예전문가인 케빈 홉스와 데이비드 웨스트는 세계 곳곳을 오가며 각각의 나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나무들이 인류의 삶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나무의 가치와 지구상의 생명체들을 위해 나무가 하는 역할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티보 에렘이 그려낸 아름다운 나무 세밀화들이 마치 화보집처럼 근사하게 나무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릿적 모습을 2억 년이나 변함없이 간직한 채 살아남은 유일한 나무인 은행나무는 중생대와 현재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유럽에서 가장 수명이 긴 수종에 속하는 주목은 신비와 전설의 나무로 불리고, 기나긴 수명과 독특한 외양의 강털소나무는 현대 과학 연구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베어도 베어도 자꾸만 되살아나는 악착같은 개암 나무, 북유럽 신화 속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구주물푸레나무, 고대 이집트에서 생명을 주는 신선한 나무로 여겨졌던 돌무화과나무, 겨울의 눈과 얼음 속에서 우아하고 달콤한 향을 풍기며 봄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하는 매화 나무 등 책에 수록된 100가지 나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놀라운 드라마를 보여준다.

 

 

작지만 아름다운 이 나무는 여름이면 물결 모양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는 기다란 혁질 잎사귀가 빽빽하게 우거지고, 봄에는 분홍색 꽃이 가지에서 수술처럼 늘어진다. 꽃은 꿀벌에게 인기가 많아서 견과를 생산하는 농민들은 양봉업자들과 협력해 쌍방의 수확량을 극대화한다. 나무를 심고 결실을 얻기까지 6~7년이 걸리지만 기다릴 가치가 충분하다. 견과 알맹이는 맛이 풍부하고 부드러워 높이 평가받는다. 마카다미아 열매는 껍질이 녹색이며 호두나무 열매를 닮았다.      p.183

 

어린 시절에 읽었던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작품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나무는 소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며 행복해하고, 더 이상 줄 게 없을 만큼 세월이 지난 뒤 자신의 나무 밑동울 내어 주며 쉴 수 있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나무는 인간과 늘 공존해왔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해왔다. 지금 우리가 숨쉬는 공기부터, 글이 인쇄된 종이, 커피 원두, 가구의 재료, 자동차와 기계를 움직이는 화석연료, 의약품, 화장품, 단열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에 나무가 미친 영향은 우리가 평소 미처 일일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다.

 

 

이 책은 나무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100가지 나무들의 최대 높이, 성장 속도, 수명, 기후와 서식지, 원산지 등 식물 생태학적 정보도 꼼꼼하게 수록하고 있다. 그러한 정보들과 실제 사진보다 더 디테일하고, 아름다운 나무 일러스트들이 함께 해서 완벽한 나무 도감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약 39만 1000종으로 추정되는 세상의 관다발 식물 가운데 4분의 1정도가 나무이다. 알려진 종은 많으나 제대로 연구된 종은 거의 없고 앞으로 밝혀야 할 사실도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세상의 자연 서식지를 꼭 보존해야 한다. 이 책이 나무의 존재에 대해 무심코 당연하게 여겨왔던 사람들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안겨줄 것 같다. 나무에 대한 한층 깊이 있는 지식과 존중, 관심을 통해서 우리는 나무와 함께 영원히 공존하게 될 테니 말이다. 아름다운 세밀화와 함께 읽는 흥미진진한 100가지 나무 이야기! 지금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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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 룸
레이철 쿠시너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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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 계획은 없다. 그렇다고 짧게 살겠다는 것도 아니다. 내게는 그런 계획이라는 게 전혀 없다. 문제는 계획이 있든 없든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계획 따윈 무의미하다. 그러나 계획이 없다고 후회도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마스 룸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를 만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가 나를 스토킹하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하지만 그는 마음먹었고, 그러고 나니 끈질겼다. 저 일들 중 어느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콘크리트 구덩이 속 인생을 향해 달리는 버스에 타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p.26~27

 

마켓 스트리트의 마스 룸에서 스트립댄서로 일하는 스물아홉 싱글맘 로미는 자신을 몇 달 동안 스토킹한 남자의 머리를 타이어 공구로 내려쳤다. 남자는 죽었고, 체포된 그녀는 두 번의 종신형에 추가로 육 년을 선고 받는다. 약에 취해, 도서관 책들을 읽으며 보낸 몇 해를 후회하지 않았고, 옷을 벗어 버는 수입에 대해 전혀 나쁜 삶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마스 룸에서 일했고, 그 남자를 만났던 것을 후회할 뿐이다. 로미가 체포되었을 때 다섯 살이던 잭슨은 어머니가 데려가 보살피기 시작했고, 그녀가 구치소에 있으면서 재판을 거치는 동안 아들은 일곱 살이 되었다.

 

 

로미가 사선변호인을 둘 만한 돈이 없었기에 국선변호인이 배정되었고, 그는 그녀를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남자는 로미를 미행하고 지켜보고, 그녀의 쓰레기를 뒤져 알아낸 번호로 서른 통씩 전화를 걸고, 곳곳에서 불쑥 나타나 괴롭혔지만 법정에선 그 무엇도 다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담당 검사는 남자의 과거 행적들이 사건 당일 밤에 급박한 위험을 야기한 것은 아니었다고 판사를 설득했고, 배심원들에게는 스토킹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 열두 명의 배심원들에게 알려진 것은 미심쩍은 도덕성을 지닌 젊은 여자가 강직한 시민을 죽였다는 사실뿐이었다. 결국 사건의 모든 정황은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녀의 삶은 스탠빌 교도소로 향하게 된다.

 

 

그 모든 후회의 말들. 저들은 당신의 삶이 한 가지, 당신이 이미 저질러버린 그 한 가지를 중심으로 맴돌게 만든다. 그리고 당신은 그 되돌릴 수 없는 일로부터 스스로를 성장시켜야만 한다. 저들은 당신이 무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를 원한다. 저들은, 당신 자신을 미워하게 만든다. 저들 자신이 곧 세상인 양 굴고, 당신이 그 세상을, 저들을 배반했다는 양 굴지만 세상은 그보다 훨씬 크다. 후회한다는 거짓말, 선로를 이탈한 삶이라는 거짓말. 무슨 선로. 삶이 곧 선로다. 삶 그 자체가 선로이고, 삶이 가는 곳이 곧 길이다. 삶은 제 길을 끊기도 한다. 내 길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p.514~515

 

가상의 공간인 ‘스탠빌 여자 교도소’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여성 범죄자들의 사연들은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너무도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마약중독자인 부모 밑에서 자라 같은 처지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여자, 상습사기죄로 종신형을 선고 받은 흑인 성전환자, 친구들과 중국인 유학생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미성년자,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여자 등.. 이 작품은 그녀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 작가인 레이철 쿠시너는 애초에 직업과 안정적인 주거와 적합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이들이 어떠한 종류의 자비도 허락 받지 못한 채로 교도소에 들락거리는 삶을 살게 된 과정에 관심을 가진다. 소외와 학대의 피해자들이 결국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오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레이철 쿠시너는 범죄와 처벌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으로 캘리포니아 교정법제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교도소와 법원을 다니면서 어쩌면 가난과 폭력이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난의 문제에는 눈감으면서 폭력의 처벌에는 열을 올리는 국가?사회?제도의 모순에서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 남자가 죽었다. 하지만 진짜 피해자는 죽은 남자가 아니라 그를 죽게 한 여자이다. 물론 세상은 그러한 진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교도소에 도착한 첫날, 삼십칠 년 뒤에나 있을 가석방 심의의 기회 마저 날려버린다. 임신한 채로 수감된 어린 여자애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출산하려는 걸 도와줬다는 이유로. 과연 로미는 교도소의 생존방식을 터득해가면서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레이철 쿠시너는 이 작품으로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주인공 로미의 사연에 집중하기 보다 교도소에 수감된 여자들의 다양한 삶에 대해 보여주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각자의 과거와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고, 혹은 휘말리고 교도소에 오게 되었는지를 통해 캘리포니아 교정법제 전반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그녀들의 범죄를 미화하거나, 동정을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더욱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도,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희망도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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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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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 생전 처음으로 그는 고독을 느꼈다. 밤에 다락방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방구석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램프의 불빛이 구석의 어둠에 맞서 너울거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둠이 빛 속으로 모여들어 그가 읽던 책에 나오는 상상의 모습들을 펼쳐 보였다. 그러면 자신이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거가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한데 모이고, 죽은 자들이 그의 앞에 되살아났다. 그렇게 과거와 망자가 현재의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흘러 들어 오면 그는 순간적으로 아주 강렬한 환상을 보았다.    p.24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군청 직원의 권유로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는 대학 공부도 농장 일을 도울 때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철저하게, 양심적으로 했지만, 모든 학생의 형식적인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 강의를 들으며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강의들처럼 부지런히 저자들의 이름과 작품 등을 모두 외웠음에도 첫 번째 시험에서 거의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만나고는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 해 2학기에 스토너는 농과대 커리큘럽을 따르지 않고, 영문학 강의를 비롯해 다른 강의들을 듣기 시작하며 문학 쪽으로 공부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결국 스토너는 문학사 학위를 받게 되고 졸업식이 끝난 후에 부모에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공부를 더 하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농과 대학에서 농사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배우고 돌아오길 바랬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대학에 들어 와서도 아무런 환상도 꿈도 없었던 그의 삶은 그렇게 완전히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친구들은 애국심에 도취해 입대를 자원했지만 스토너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공부를 이어 갔고, 전임 강사로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첫 눈에 반한 여인과 짧은 연애 후 결혼을 하지만, 한 달도 안 돼서 그들의 결혼이 실패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게 되지만, 분노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주어진 상황을 견뎌낸다. 아내가 친정에서 엄청난 돈을 빌려와 무리하게 집을 구입한 것이 경제적인 궁핍으로 연결이 되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가지게 된 자신만의 서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작은 행복을 느끼고, 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아내 대신 딸을 돌보는 일을 대부분 맡고 있었지만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소박한 기쁨으로 매일을 살아 낸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한 남자의 삶이 이어진다. 열아홉의 나이로 대학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고,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고, 세월이 흘러 세상을 떠나게 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꾸민 끝에 서재가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비밀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이미지 하나가 묻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p.140~141

 

이 작품은 1965년에 출간되었는데, 초판 2천 부가 팔리지 못하고 이듬해 절판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눈 밝은 독자들 사이에서 이 책이 돌아다녔고, 출간된 지 거의 50년 만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국내에는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1965년 미국에서 처음 발행됐을 때의 초판본 표지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번 에디션에서는 기존 판의 문장을 다듬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추천사 전문을 실었으며, 초판에 담긴 일러스트레이션을 완벽히 재현한 양장본이다. 초판본 표지 이미지는 스토너가 평생을 보낸 대학에 있는, 화재로 모든 게 스러지고 기둥만 남은 어느 건물을 보여 준다.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기둥만은 불쑥 솟아 있는 모습은 스토너가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 '불굴의 용기와 지혜로 난관을 극복하기보다는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편(옮긴이의 말)'인 스토너는 그저 계속 참고, 견디며 삶을 관조한다.

 

좋은 소설은 한 번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 다르고, 처음 읽었을 때와 몇 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 또 한 번 달라진다. 5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페이지 마다 새록새록 당시의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과거의 내 모습을 마주했다. 당시에 나는 실패하고, 절망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고독을 견뎌내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일종의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외로움을 덜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인간이란 누구나 근원적으로는 외로운 존재이고, 감추고 닫아 두었던 속마음을 누군가 들어주는 것 같을 때, 내 안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해 받은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문학 작품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작품에는 평범한 주인공이 그의 앞에 나타난 장애물들을 헤치고, 역경을 극복하는 통쾌한 스토리도 없고, 묵직한 가르침을 주려는 현학적인 묘사도 없고,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전개도 전혀 없다. 그저 한 인물이 태어나고 자라서, 누군가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훌 넘겨 가며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에 그 여운이 한 동안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살면서 어떤 순간에든 다시 꺼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을 만나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이 지구에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사는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이 도시, 이 나라, 이 순간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스토너는 우리 각자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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