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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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지나보내면서, 나는 묘한 삶의 진실 같은 것을 하나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삶이란 누군가를 구하거나 구해지는 일들로 이어지며, 그렇게 여러 시절들이 서로의 둥지 같은 것이 되어 주는 누군가들을 건너가며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삶의 매 시절에 어떤 손길들이 있었다. 그 손길들은 때론 연인이거나 친구, 동료이거나 그저 낯선 사람이기도 했는데 일방적으로 나를 구해 냈다기보다는, 맞잡음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견디며 의지하는 일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 정지우, '한 시절 나의 돌다리였던' 중에서, p.43

 

이 책은 작가 초대 플랫폼 '북크루'에서 제공한 에세이 새벽 배송 서비스 '책장위고양이'에서 시작되었다. '책장위고양이'는 정지우 작가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는데, 일곱 명의 작가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구독자에게 에세이를 보내는 서비스이다. 이제 막 첫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고,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렇게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주 7일 새벽 6시마다 구독자들의 메일함으로 배송되었던 글은 모은 연작 에세이집이다. 63편의 에세이들은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뿌팟퐁커리, 비, 결혼, 그리고 커피와 쓸데없는 것에 대한 주제로 일곱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써낸 글들이다.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이렇게 일곱 명의 작가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온전한 자기 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이대가 되면 누구나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모든 물건이 내가 두고 나온 그대로 놓여 있고, 밥을 먹고 싶지 않으면 한없이 굶을 수 있고, 울고 싶으면 한없이 통곡할 수 있는, 그야말로 나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내 방을 원했다'고 말하는 남궁인 작가의 글이 어쩐지 애잔하면서도, 뭉클하기도 하고, 내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도 만들어 주었다. 작가는 고교 졸업 후에 줄곧 독립된 방에서의 독거를 꿈꿨는데, 혼자 방에 있을 수 있다면 아무리 곤궁한 삶도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은 대학 시절 가장 저렴한 고시원에서의 한 달 이었다. 시를 쓰겠다고 야심 차게 들어갔던 그곳은 '시고 불행이고 나발이고 그냥 오달지게 추웠다'는데, 그곳에서의 한 달을 그야말로 운이 좋아 생존했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이후로도 그는 지방 병원 실습 때 오피스텔에서 독거했던 경험, 의학과 4학년 때 9평 원룸에서 무려 일곱 명이 동거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분량 상 이 글에는 담지 못했는데, 그가 9평 원룸에서 살았던 그 대단한 이야기를 언젠가는 들어볼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나에게 술이 삶을 장식해 주는 형용사라면 커피는 삶을 움직여 주는 동사다. 원두를 갈면 하루가 시작되고 페달을 밟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 하루가 끝난다. 형용사는 소중하지만 동사는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여행에서도 그랬다. 오로라를 보던 압도적인 순간이나 유빙에 둘러싸였던 꿈결 같은 순간에는 늘 한두 잔의 술이 함께하며 찬란한 빛을 더해 주었지만, 그런 순간들 뒤에는 아침마다 마주하는 이국의 낯선 공기를 좀 더 편안하고 친밀한 무엇으로 바꾸어 주며 차분하게 하루의 모험을 계획하게 만들었던 한두 잔의 커피가 있었다.     - 김혼비, '커피와 술, 코로나 시대의 운동' 중에서, p.294

 

김혼비 작가는 이제부터 평생 술과 커피 중 단 하나만을 마실 수 있다면 뭘 고르겠다고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커피를 택할 거라고 한다. <아무튼, 술>이라는 책을 썼던 작가라서 다소 의외의 선택이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술을 끊을 자신은 있지만 커피 없이 살 자신은 없다는 거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나 역시 커피로 시작해서 커피로 끝나는, 하루라도 커피를 입에 대지 않고 지낸 적이 없는 커피 러버라서 유독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었다. '아무리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냈더라도 아침에 마실 맛있는 커피를 생각하면 그래도 내일을 다시 살아 볼 조그만 기대가 생긴다'는 문구를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 커피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또 한 명 발견했다는 기쁨에, 끝내주는 커피 한 잔이 주는 작은 위안이 얼마나 특별한지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알게 될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일곱 명의 작가들이 풀어내고 있는 글은 모두 색깔이 너무 달라서 더 흥미로웠다. 같은 소재를 두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분위기가 완전히 제각각이었고, 문장도, 생각도 각각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들이 직접 삶을 살아오면서 겪어온 것들, 마음 속 깊게 새겨져 있던 기억들을 보여주고 있어 따뜻하고,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언젠가, 미래의 언젠가를 떠올리면서 지금 여기에서 '언젠가'를 이야기하는 일곱 빛깔 연작 에세이집을 만나 보자.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부터 읽어도, 마음에 드는 소재의 이야기부터 읽어도 만족스러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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