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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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 생전 처음으로 그는 고독을 느꼈다. 밤에 다락방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방구석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램프의 불빛이 구석의 어둠에 맞서 너울거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둠이 빛 속으로 모여들어 그가 읽던 책에 나오는 상상의 모습들을 펼쳐 보였다. 그러면 자신이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거가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한데 모이고, 죽은 자들이 그의 앞에 되살아났다. 그렇게 과거와 망자가 현재의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흘러 들어 오면 그는 순간적으로 아주 강렬한 환상을 보았다.    p.24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군청 직원의 권유로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는 대학 공부도 농장 일을 도울 때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철저하게, 양심적으로 했지만, 모든 학생의 형식적인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 강의를 들으며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강의들처럼 부지런히 저자들의 이름과 작품 등을 모두 외웠음에도 첫 번째 시험에서 거의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만나고는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 해 2학기에 스토너는 농과대 커리큘럽을 따르지 않고, 영문학 강의를 비롯해 다른 강의들을 듣기 시작하며 문학 쪽으로 공부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결국 스토너는 문학사 학위를 받게 되고 졸업식이 끝난 후에 부모에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공부를 더 하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농과 대학에서 농사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배우고 돌아오길 바랬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대학에 들어 와서도 아무런 환상도 꿈도 없었던 그의 삶은 그렇게 완전히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친구들은 애국심에 도취해 입대를 자원했지만 스토너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에 남아 공부를 이어 갔고, 전임 강사로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첫 눈에 반한 여인과 짧은 연애 후 결혼을 하지만, 한 달도 안 돼서 그들의 결혼이 실패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게 되지만, 분노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주어진 상황을 견뎌낸다. 아내가 친정에서 엄청난 돈을 빌려와 무리하게 집을 구입한 것이 경제적인 궁핍으로 연결이 되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가지게 된 자신만의 서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작은 행복을 느끼고, 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아내 대신 딸을 돌보는 일을 대부분 맡고 있었지만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소박한 기쁨으로 매일을 살아 낸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한 남자의 삶이 이어진다. 열아홉의 나이로 대학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고,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고, 세월이 흘러 세상을 떠나게 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꾸민 끝에 서재가 서서히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비밀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이미지 하나가 묻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p.140~141

 

이 작품은 1965년에 출간되었는데, 초판 2천 부가 팔리지 못하고 이듬해 절판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눈 밝은 독자들 사이에서 이 책이 돌아다녔고, 출간된 지 거의 50년 만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국내에는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1965년 미국에서 처음 발행됐을 때의 초판본 표지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번 에디션에서는 기존 판의 문장을 다듬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추천사 전문을 실었으며, 초판에 담긴 일러스트레이션을 완벽히 재현한 양장본이다. 초판본 표지 이미지는 스토너가 평생을 보낸 대학에 있는, 화재로 모든 게 스러지고 기둥만 남은 어느 건물을 보여 준다.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기둥만은 불쑥 솟아 있는 모습은 스토너가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 '불굴의 용기와 지혜로 난관을 극복하기보다는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편(옮긴이의 말)'인 스토너는 그저 계속 참고, 견디며 삶을 관조한다.

 

좋은 소설은 한 번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 다르고, 처음 읽었을 때와 몇 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 또 한 번 달라진다. 5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페이지 마다 새록새록 당시의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과거의 내 모습을 마주했다. 당시에 나는 실패하고, 절망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고독을 견뎌내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일종의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외로움을 덜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인간이란 누구나 근원적으로는 외로운 존재이고, 감추고 닫아 두었던 속마음을 누군가 들어주는 것 같을 때, 내 안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해 받은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문학 작품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작품에는 평범한 주인공이 그의 앞에 나타난 장애물들을 헤치고, 역경을 극복하는 통쾌한 스토리도 없고, 묵직한 가르침을 주려는 현학적인 묘사도 없고,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전개도 전혀 없다. 그저 한 인물이 태어나고 자라서, 누군가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훌 넘겨 가며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에 그 여운이 한 동안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살면서 어떤 순간에든 다시 꺼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을 만나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이 지구에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사는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이 도시, 이 나라, 이 순간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스토너는 우리 각자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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